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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문 억지로 열려던 손님... 검게 뒤덮인 팔 보고 놀란 까닭

[나는 택시 운전사] 문신을 한 손님을 무서워하는 나의 편견

등록|2024.11.07 09:57 수정|2024.11.07 09:57

▲ 문신한 팔 ⓒ pexels.com


오래전 이용하던 단골 카센터 사장님 팔에는 하트 그림 아래 사랑이라는 글자가 문신으로 새겨져 있었다. 희미해져 가는 푸른색이었던 하트는 좌우가 비대칭으로 비틀어져 있었고 손으로 쓴 글씨는 엉성하고 조악했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사람의 팔에 새겨진 문신은 다소 의외였고 어색한 조합이었다.

그가 차를 손볼 때 옆에서 구경하다 잠깐씩 듣게 되는 말을 종합하면 거칠게 살았던 젊은 시절은 지나가고 아내와 자식을 돌봐야 하는 순박한 가장으로서의 현실을 그는 잘 살아가고 있었다. 문신은 젊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말썽 많은 시기에 '야매'로 새긴 자국이었다.

십여 년 전 건설 목수 일을 할 때 현장에서 말로만 듣던 '차카게살자'는 문신을 처음 마주쳤을 때 살아 있는 전설이 앞에 나타난 듯 감격한 마음마저 들었었다. 정작 장본인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늙어 측은함까지 일었는데 이때도 문신은 희미해져가는 푸른색이었다.

그는 손주들까지 둔 할아버지였지만 아직도 게임장을 오가는 '철없는 노인네'로 살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일 끝나면 심심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서,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당도 센 어엿한 기공으로 살고 있는 그가 진실로 '차카게' 살기 시작한 때는 언제부터였을지가 궁금했는데 끝내 묻지 못했다.

'문신'과 '타투'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주변에서의 문신은 열손가락으로 셀 수도 있는 극소수 사람들 몸에 새겨진 문화였다. 그들은 대체로 가난했고 배우지 (않거나)못했으며 불량했던 한때를 힘들게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문신은 그러니까 내게 그런 의미였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바뀌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시대 극소수만의 문화였던 문신이 연예인을 필두로 거리에서 흔하게 보는 '타투'가 되었다. 게다가 조악한 필체의 '차카게살자'나 '사랑' 일변도였던 모양도 트라이벌과 포트레이트, 레터링에서 이레즈미까지 다양한 종류로 진화하였고 이를 새겨주는 '타투이스트'들의 예술적 영역으로 전문화되었다.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 문신도 오랜 인류문화의 하나였고 시대에 따라 그 모양과 색과 의미가 다양하게 변주되어 왔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도둑이나 노비의 얼굴에 새기는 낙인과 같은 형벌이었다. 근대에 와서는 교도소에서 범죄자들이 자신을 뽐내기 위한 징역살이의 증거로 감방 안에서 새기는 경우가 유행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 과거 문신이 조악한 이유다.

그러니까 우리 역사 속에서도 내 개인의 삶에서도 문신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이 오랜 세월 강하게 그리고 깊이 내면화 되어있다.

그럼에도 집단에 함몰된 몰개성의 시대에서 한 개인의 개성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문신은 과거의 유산으로 물러나고 그 자리에 타투라는 단어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같은 말인데 문신은 왠지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촌스럽고 불온한 것인 반면 타투는 마치 예술적 표현의 한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

길에서 보게 되는 여성들 몸에 새겨진 앙증맞은 화살 표시나 작은 손글씨 타투는 불쾌하거나 음흉할 뻔한 시선을 익살맞거나 재치 있는 것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유럽 프로축구 선수들의 팔과 다리를 가득 메운 타투는 상대 선수를 기선제압하려는 용맹의 상징이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손님의 문신'

▲ 택시 ⓒ 픽사베이


반면, 택시 운전을 하면서 차창 밖으로 목격하고 잊을 만하면 손님으로 만나는 문신한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불안과 부정의 대상이다. 특히 한 여름에는 오토바이를 탄 배달 청년의 반바지 아래 굵은 다리를 가득 채운 검은 색의 문신을 자주 보게 된다.

대개 그런 문신을 한 사람들은 신호 대기 중에(심지어는 주행 중에도) 한쪽 발은 양반 다리를 하고 담배를 피워 문 채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터치하느라 바쁘다.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목격하면서 다리 문신을 한 배달 노동자를 떠올릴 때면 절로 연상되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아무래도 불편하다.

지난여름 평일 어느 날 오후였다. 주택가에서 콜이 왔다. 출발지에 도착했는데 손님이 보이지 않았다. 가끔 차가 도착한 후에 나오는 경우도 있어 으레 곧 나오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기미가 없다. 불길한 예감과 함께 짜증이 밀려왔다. 기사가 직접 예약취소를 할 수 있는 시간 3분을 넘기 직전이었다.

앞쪽에서 건장한 젊은 남자가 전혀 서두르는 기색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오더니 차 문을 열었다. 그의 왼쪽 팔에 새겨진 '이레즈미' 문신이 섬뜩했다.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로 새긴 문신이었다면 내겐 탁월한 효과였다. 직전에 일었던 짜증은 간데없이 사라지고 모종의 두려움 섞인 긴장감이 불쑥 파고들었다.

목적지는 가까운 초등학교였다. 도착할 즈음 그가 약간 명령조의 어투로 학교 앞에서 아이를 태우고 다시 집으로 갈 수 있냐고 물었다. 마음속으로는 그와 금방 헤어지고 싶었지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럼요."

학교 앞에 도착해서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썩 불쾌한 상황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곧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차에 오르는데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이다. 학교가 끝났고 아빠를 만났고 집으로 가는 기분 좋은 길인데다 잠시도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조잘대야 할 어린아이가 한마디 말이 없었다.

침묵을 깬 아빠가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어투로) 학교는 어땠냐고 물었는데 아이는 내가 들을 수 없는 작고 초라한 목소리로 무슨 말인지를 짧게 대답했고 더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두 부자의 아우라는 무겁고 어두웠다. 문신이 풍기는 이미지가 편견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표정 없는 얼굴이 그날 저녁까지 괜히 우울하게 머릿속을 떠다녔다.

문신한 사람들을 자주 목격하는 곳은 서울 전철역 주변 유흥가다. 영등포에서 유명한 유흥가는 지금은 철거 중인 고가 옆 골목길에 있는데 어느 날 밤 두 팔이 온통 검은 문신으로 도배된 여성이 한쪽 팔에 형형색색의 문신을 한 남자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비상등을 켜고 느리게 움직이는 택시 안에서 보고 있자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이하게 인상적이었다.

택시를 하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음성적인 직업에 대한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예를 들어 저녁 늦은 시간 오피스텔에서 오피스텔로 이동하는 여성인데 택시 콜을 불러 주고 요금까지 자동결제를 대신해 준 사람이 따로 있다면 성매매 여성일 수 있다. 서울 논현동이나 역삼동 인근 밀집된 빌라촌에서 저녁에 화려한 복장으로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여성들의 목적지는 보통은 룸살롱이거나 유흥주점이다.

강남 일대 크고 작은 주점들이 즐비한 거리에서 문신을 한 젊은 남자가 클러치백을 들고 있다면 역시나 룸살롱이나 유흥주점 종사자일 확률이 높다. 이 모든 걸 어떻게 아느냐면 가는 도중에 듣게 되는 그들의 통화 내용이나 대화의 맥락이 그걸 말해주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문신 혹은 타투가 주는 문화적 의미를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이십대 후반 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는 할 생각도 없고 하지도 않겠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하는 것을 평가하고 싶지 않은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문신에 대한 우리 세대의 인식은 대체로는 부정적이었고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어쩌면 하류인생의 상흔 같은 거였다. 그런 내가 택시 운전을 하면서 보고 만나는 문신은 타투라는 예술의 경지로 탈바꿈하는 요즘 시대정신과 무관하게 여전히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하나의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서울에서 분당으로 장거리 손님을 내려주고 빈 차로 오려는데 역근처 유흥가에서 콜이 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는데 손님이 보이지 않아 전화를 했다. 그는 마지막 한잔만 하고 금방 가겠다고 했다. 마지막 한 잔 이라는 말이 꺼림칙했지만 3분은 의무적으로 내가 기다려야 할 시간이었다.

하지만 3분이 다 지날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진짜 정말로 곧 끝나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했다. 약간 불량기 섞인 어투가 심상치 않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주기로 했다. 5분이 지나고 있는데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자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말하는 어투에 사실 자존심도 좀 상해 있었다. 서울을 향해 차를 출발시켰다. 10미터쯤 유흥가 골목을 천천히 벗어나 큰길로 나가는 신호등에 서 있었다. 곧 신호가 들어와 좌회전을 하는데 누군가 급하게 뛰어와 주행 중인 차 문을 열려 했다. 택시 차문 손잡이는 내가 버튼을 눌러야 외부로 노출되는 방식이라 그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

위험한 행동이었다. 차가 신호에 맞춰 가속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뒤로 멀어져 갔는데 얼핏 보니 조금 전 멀쩡하게 기다리는 택시 옆에서 일행들과 큰 소리로 얘기 중이던 청년이었다. 5분을 넘게 기다리는 택시에게 양해 한마디 없이 태연하게 대화를 하던 그의 양 팔을 뒤덮은 검은 문신이 선명했었다.

그걸 기억해 내곤 '후유~' 라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빈 차로 서울로 돌아가야 했지만 허전함이나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것을 문신이라 부르든 조금 더 고상하게 타투라고 명명하든 상관없이 몸에 영원히 새겨지는 그것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더욱 굳세어지는 순간이었다.

내 생각이 '편견'임을 인정하게 되는 날이 오길

▲ 타투 [강민지 제작] 일러스트 ⓒ 연합뉴스


과거에 문신을 했거나 지금 타투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문신이 타투가 되었어도 그걸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근원은 큰 차이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상징하고 싶은 무엇을 위해 혹은 자기 과시를 위해 아니면 예술 행위의 하나일 수도 있다.

사회의 규범 안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한 개인의 의사표현이나 어떤 행위는 그 자체로 인정되고 존중받아야 한다는데 깊이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문신이라는 행위 역시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고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다만 그런 그들의 문화가 건강하게 사회에 비교적 좋은 영향을 주는 방향이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이 있다. 비록 문신에 얽힌 개인적 서사는 거의 부정적이고 위압적이며 위험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내 편견이 100%짜리는 아니라는 실증적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늦은 밤 택시를 부른 손님이 이레즈미는 아니지만 양팔에 알 수 없는 복잡한 문양을 문신으로 가득 채운 젊은 청년이었는데 클러치백까지 들고 있었다. 그동안의 관례에 따르면 그는 평범한 직장인은 아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당연한 듯 긴장감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말투는 거칠고 행동은 거침없었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기분도 좋지 않은 그런 경우였다. 차가 섰고 택시 문이 열렸다.

"기사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정중한 말투와 부드러운 고음으로 그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예의바른 언어와 음전한 행동거지가 몸에 밴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문신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한참 벗어난 경우였지만 이런 경험이 자주 반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럴수록 내가 가진 문신에 대한 관념이 잘못된 편견임을 기분 좋게 인정하는 날이 빨리 다가올 수 있다. 아직은 나는 내 차를 불러세운 사람의 몸에 새겨진 문신인지 타투인지 하는 것의 갯수와 넓이만큼 불안과 공포에 비례해서 압도되는 소심한 택시운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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