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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극장>도 나왔는데... '79세 초등생'들 학교가 위기입니다

[갑이네 시골살이 27] 매일 즐겁다는 어르신들... 학생 적어 분교위기 놓인 증산초

등록|2024.11.05 14:25 수정|2024.11.05 14:42
올해 초 따뜻한 봄날, 경북 김천 산골 마을의 증산초등학교에서 뒤늦은 입학식이 열렸다. 여느 초등학교와 달리 입학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들은 학생의 부모가 아니라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다. 신입생 평균 나이가 79세로 학령이 지나도 한참 지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것이다.

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조용한 산골 마을에 많은 사람들과 차들이 붐볐다. 이를 취재하기 위해 지역 방송과 신문사에서도 많이 찾아와서 취재하였다. KBS 인기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서 어르신 부부의 초등학교 1학년의 학교생활을 취재해 간 뒤, 5부짜리 '할매요, 학교가재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7월 방영하기도 했다.

평균 79세 초교 입학식... 못 배운 한 푸는 어르신들

입학식이 내 눈에는 마을 잔치처럼 보였지만, 어르신들에게는 어쩌면 그동안 쌓였던 한을 비로소 풀어내는 날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무시 당하고 외면 받았던 한들이 뒤엉켜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 한들이 오늘 입학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불치하문(不恥下問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공자가 배움의 자세를 나타낸 말이다. 이러한 자세는 아무나 지닐 수 없다. 이 자세만 지녔어도 학문의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공자는 생각했다.

어르신들이 한글은, 구구단은 아직은 잘 몰라도 배움에 대한 열정은 이미 최고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 국어 시간에 친구 이름 찾기를 통해 한글을 익히고 있는 어르신들 ⓒ 증산초등학교


스스로 배우지 못했다고 이제 당당하게 드러내고 배움에 도전하는 그 용기, 정말 정말 대단하다. 그런 용기가 있었기에 험난하고 모진 세월을 견디고 이겨왔을 것이다.

어르신들의 초등학교 입학은 사람을 살리고 마을을 살렸다. 초등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질 수 있다. 증산초등학교는 지난해까지 총 7명의 학생으로 분교장 직전에 놓였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김창국증산면 이장협의회장을 비롯한 증산면 마을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어르신들은 지금까지 온갖 어려움을 온몸으로 겪고, 가난한 산골에 있었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 교육을 받을 권리를 누리지 못하였다. 지금이라도 그 권리를 찾아 한을 풀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들이 모아졌다.

어르신들이 입학하게 되면 자연스레 학교는 분교 위기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일거양득인 셈이다. 마을 이장들은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학교에 다니지 못한 어르신 가운데 학교에 입학하고 싶은 어르신들을 모았다.

권경미 교장은 '2022년 경북도교육청이 교장이 허가하면 학령초과자도 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는 규정'을 토대로 하여 지역사회의 발전과 함께 공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기 위해 어르신 학생 입학을 허가했다.

성가신 일들이 엄청 많을 텐데도 그러한 결정을 내린 교장 선생님에게 경외심이 절로 든다. 만남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삶을 바꾸고, 마을을 살리는 대단한 결정을 내려 준 교장 선생님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우리 이웃집 할머니가 너무나 즐겁게 학교에 다니며 삶이 바뀌는 모습을 나는 곁에서 시시각각 지켜 보았다. 할머니는 아침이 되면 집에서 3km 떨어져 있는 학교에 할아버지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학교에 다니면서 할머니의 얼굴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뿐만 아니라, 몸도 더욱 건강해지신 듯 보인다. '안 가던 학교에 가니 힘들지 않으시냐'라는 내 물음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한다.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갈 준비로 거울을 보고 옷을 갈아입는 일이 즐겁다. 선생님 말씀을 듣고 하나하나 알아 가는 것이 재미있다. 짝과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고 알아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학교에서 돌아와 학습하는 시간도, 집안일로 어제 다하지 못한 학습을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일도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이 즐겁고, 재미있고, 행복하다."

▲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가르쳐 주는 어르신들 ⓒ 증산초등학교


음악 시간에는 어르신들에게는 동요보다는 트로트를 부르는 것이 어떠냐는 선생님의 말씀에, 어르신들은 말한다.

트로트는 언제든지 듣고 부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릴 적 학교에 다니지 못해 배우지 못한 동요를 지금이나마 부르고 싶다고. 동요를 부르면 어린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아 동요를 마음껏 부르고 싶다고들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가슴에 묻어둔 응어리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 응어리를 지금이나마 이렇게 풀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 합창 발표회에 참여한 어르신들 ⓒ 증산초등학교


▲ 인근에 있는 치유의 숲을 찾아 야외 체험 수업에 참여한 어르신들 ⓒ 증산초등학교


어르신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에게, '수업하기 힘들지 않으냐'라고 물음을 던져 보았다.

"적령기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 샘솟는 걸 느낍니다. 인생 선배님에게 다가서는 것도 쉽지 않은데, 가르치는 일이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진정성은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알게 된 기쁨, 바로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애틋함이 그대로 전해 옵니다. 그 무엇보다 어르신들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습니다."

어르신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변화한 삶이 내 눈에 보였다. 사람의 삶이 바뀌었다. 그동안 쌓였던, 못 배운 한이 녹아내리고 있는 듯하다.

어르신들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재미나고, 행복해 보인다. 교육이란 사람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교육의 힘이 있을까. 그 행복이 나에게까지 스며들고 있어, 이들의 열정 어린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행복해진다.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는 할머니를 보고 나는 가끔 마당에 나가서 할머니에게 '학교에 잘 다녀오십시오'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할머니는 '예, 잘 갔다 오겠습니다.'라고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답하여 주신다. 할머니도 나도 하루를 기분 좋게 열어간다.

'증산초는 분교해야 한다'는 경북교육청... 도의회 회의 예정돼

그런데 이렇게 삶이 바뀌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경북교육청에서 학령 초과자는 정식 학생이 아니라면서, 학교 통폐합을 막으려는 편법적인 시도이므로 이를 차단하여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증산초등학교 분교장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실제 경북도교육청 측은 지난 8월 말 "증산초등학교는 경상북도교육청의 「2024년 적정규모 학교 육성 계획」에 따른 분교장 개편 기준인 '학생 수보다 교직원 수가 많은 학교'에 해당하여 분교장 개편 조건에 해당"된다고 결론 내렸다. 경북도의회에서 관련 회의를 오는 11월 27일 열 예정이라고 한다.

이에 증산면 주민들은 학령초과자 입학은 법령과 기준 및 지침에 어긋나지 않기에 편법에 해당하지 않으며, 학령초과자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학생으로 등록되어 있는 정식 학생이라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분교가 된다는 것은,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초등학교의 정식학생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주민들과 학생 일부는 증산초 분교를 막아 달라고 경북김천교육지원청 측에 5일 오후 항의를 갈 예정이다.

▲ 지난 7월 인간극장에 방송된 한 장면 ⓒ 화면캡쳐


다시 한번 교육의 본질을 생각해본다. 학교에서 지식과 덕성을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의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데 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은 가난 등 온갖 어려움으로 취학의 시기를 놓쳐 취학 의무 대상자는 아니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는 당연히 살아 있다. 의무교육 대상자에 나이가 제한되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어르신들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뒤늦게나마 배우는 즐거움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삶의 마지막 불꽃으로 타오르는 어르신들의 배움의 열정을 결코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삶을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는 교육의 본질은 진리의 빛처럼 밝게 빛나고,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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