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찾은 관객에 에이즈 예방 요법 중요성까지 설명"
[인터뷰]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김승환 프로그래머
국내에서 유일한 퀴어 영화 축제의 장이 벌써 14회째를 맞았다. 오는 7일 개막하는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외연 확장과 연대를 통해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과 만날 준비 중이었다. 성소수자 인권을 비롯해 프렙(PrEP)이라는 에이즈 예방 요법의 중요성까지 설파한다.
총 30개국 10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를 기획한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올해가 어떤 해보다 힘든 건 맞지만, 작품 수를 줄일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쩌면 사명감일 수도 있는 그의 생각을 자세히 듣기 위해 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프라이드영화제 사무국에서 만났다.
정부 당국 및 서울시의 예산 삭감으로 당장 영화제 국고 지원이 30%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다. 다행히 11개 주요영화제를 지원하는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사업엔 선정됐지만, 절대 금액은 지난해에 비해 많이 깎인 채였다. 전쟁과 혐오가 전 세계적으로도 극단화되는 추세에 영화제 차원에서도 여러 고민이 많아 보였다.
"퀴어 영화 제작 늘었지만 양극화 심하다"
"일단 한번 줄이면 회복할 수 없으니까. 무리해서라도 규모는 줄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퀴어 영화 제작이 많이 늘어났지만, 양극화는 심하다. 만들어지는 곳에선 많이, 그렇지 않은 곳에선 아예 줄고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 동유럽권이 그렇다. 최근 독일 출장에서 외무부 장관이 이렇게 말하더라. 성소수자 인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마치 냉전시대처럼 열린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나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그걸 판단하는 기준이 성소수자 인권과 HIV 이슈일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우리 영화제도 계속 할 일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올해 프라이드영화제가 힘을 실은 게 홍콩 퀴어 영화 특별전이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우산혁명) 이후 당연하게도 중화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 선제적으로 연대의 손길을 뻗은 것. 개막작 또한 홍콩 레이 영 감독의 <모두 다 잘될 거야>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오히려 홍콩 퀴어 영화에 홍콩 영화 유산이 이어지고 있더라"며 말을 이었다.
"우산혁명 10년이 지나며 다들 잊어버린 것 같다. 중화권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홍콩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하기로 했다. 사실 중국에선 국가적으로 퀴어 영화를 만들지 않으니 우리와 일할 일이 없다. 아이러니하게 중국 자본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홍콩 퀴어 영화에 과거 홍콩 영화 황금기의 유산이 담겨있었다.
개막작의 레이 영 감독님이 장예모 감독 연출부 출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과 오래 일한 제작사 폴티시모(Fortissimo) 공동 대표였던 마이클 워너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이분들 덕에 홍콩영화계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영화도 틀게 됐다."
이와 함께 매년 오픈 프라이드 섹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관련 단체와 연대해 온 영화제는 올해 질병관리청과 대한에이즈학회와 행사를 준비했다. 그간 대체 복무 문제, 동물권, 난민 문제 등 국내외 현안을 다뤘다면, 프렙(PrEP)라는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예방 요법을 주제로 한다.
"동성애는 무조건 에이즈? 공식 성립하지 않아"
"퀴어 영화뿐 아니라. 다른 단체와 연대하는 섹션인데 아일랜드 다큐멘터리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영화가 있다. 유럽에서 에이즈 대재앙을 안 겪은 유일한 곳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국가다 보니 젊은이들이 성인이 된 후 대부분 영국 런던으로 떠나버리거든.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은 합법화했지만, 에이즈 예방 이야기는 꺼내기조차 힘든 곳이기도 하다.
프렙은 지금 150개국 이상이 국가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신규 감염을 낮추고 치료제가 있어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국가적 도움 덕이라는 연구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이런 부분을 영화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이더스 맨>이라고 비틀즈를 성장시킨 프로듀서 영화도 상영한다. 이분도 성소수자고 에이즈로 돌아가셨거든.
여전히 한국은 프렙에 대해선 계몽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집단 면역이 생겼는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프렙을 처음 들어본다는 비중이 60% 이상이더라. 처방받는 방법도 모르시고. 제가 11년 전에 결혼하면서 느꼈지만,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하나의 주제를 설파할 때 굳이 싸우는 방식을 택하지 않기로 했다. 질병청과 에이즈학회와 손잡은 것도 그런 이유다. 동성애는 무조건 에이즈고, 그건 굳 죽음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단계를 밟는 중이라고 본다."
이밖에도 올해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한국영상자료원 지원으로 국내 퀴어 영화 중 하나인 <가슴 달린 남자>를 디지털 복원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런 퀴어영화 복원은 <사방지>(1988)를 시작으로 해당 영화제가 이어오고 있었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흥행에서도 거리가 멀고 소재상 에로 영화로 포장되다 보니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는데 이런 영화들의 비평이 활발하게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퀴어영화사 등을 출판한 것도 영화제의 성과다. 올해는 퀴어영화 연출자들을 망라한 인터뷰집을 낸다고 한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전 세계에 프라이드 영화제만 250개가 넘는데, 그런 데이터가 제 머리에만 있으니 너무 힘들었다"며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 사업이라고 보시면 된다. 한국 퀴어 영화 데이터가 쌓이면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질 것"이라 강조했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의 영문판도 만들고, 나중엔 복원된 한국퀴어영화에 영어자막을 넣는 게 목표다. 예전 영화에 대본이 소실됐는데 하나하나 타이핑을 쳐야겠지(웃음). 사실 올해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와 드라마로 공개됐는데 좀 더 전면적으로 홍보가 안 돼서 아쉽더라. 특히 영화는 감추는 마케팅을 했는데 성소수자 이야기라는 게 흥행에 큰 영향을 안 줬을 거라고 보거든. 그 원작 소설이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잖나. 훗날 영화나 드라마 시장에서 큰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프라이드(Pride)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단순히 영화제를 LGBTQ(성소수자 전반)만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기에 좀 더 다양한 장르를 다루려 한다. 올해 암스테르담 이주민 영화제와 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난민 이야기를 영화제를 통해 할 수도 있다. 미국도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지 않는 비율이 30% 정도더라. 점점 이 시장은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LGBTQ 영화제들이 위축되는 흐름인데 그 안에서 확장을 고민하며 시도해나가겠다."
총 30개국 104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번 영화제를 기획한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올해가 어떤 해보다 힘든 건 맞지만, 작품 수를 줄일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쩌면 사명감일 수도 있는 그의 생각을 자세히 듣기 위해 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프라이드영화제 사무국에서 만났다.
"퀴어 영화 제작 늘었지만 양극화 심하다"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김승환 프로그래머.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일단 한번 줄이면 회복할 수 없으니까. 무리해서라도 규모는 줄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퀴어 영화 제작이 많이 늘어났지만, 양극화는 심하다. 만들어지는 곳에선 많이, 그렇지 않은 곳에선 아예 줄고 있다. 예를 들면 러시아, 동유럽권이 그렇다. 최근 독일 출장에서 외무부 장관이 이렇게 말하더라. 성소수자 인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마치 냉전시대처럼 열린국가와 권위주의 국가로 나뉘는 걸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그걸 판단하는 기준이 성소수자 인권과 HIV 이슈일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우리 영화제도 계속 할 일이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올해 프라이드영화제가 힘을 실은 게 홍콩 퀴어 영화 특별전이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우산혁명) 이후 당연하게도 중화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 선제적으로 연대의 손길을 뻗은 것. 개막작 또한 홍콩 레이 영 감독의 <모두 다 잘될 거야>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오히려 홍콩 퀴어 영화에 홍콩 영화 유산이 이어지고 있더라"며 말을 이었다.
"우산혁명 10년이 지나며 다들 잊어버린 것 같다. 중화권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누군가는 홍콩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걸 우리가 하기로 했다. 사실 중국에선 국가적으로 퀴어 영화를 만들지 않으니 우리와 일할 일이 없다. 아이러니하게 중국 자본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홍콩 퀴어 영화에 과거 홍콩 영화 황금기의 유산이 담겨있었다.
개막작의 레이 영 감독님이 장예모 감독 연출부 출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왕가위 감독과 오래 일한 제작사 폴티시모(Fortissimo) 공동 대표였던 마이클 워너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했다. 이분들 덕에 홍콩영화계 네트워크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거 영화도 틀게 됐다."
이와 함께 매년 오픈 프라이드 섹션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이슈와 관련 단체와 연대해 온 영화제는 올해 질병관리청과 대한에이즈학회와 행사를 준비했다. 그간 대체 복무 문제, 동물권, 난민 문제 등 국내외 현안을 다뤘다면, 프렙(PrEP)라는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예방 요법을 주제로 한다.
"동성애는 무조건 에이즈? 공식 성립하지 않아"
▲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 스틸컷.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상영작 스틸컷. ⓒ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퀴어 영화뿐 아니라. 다른 단체와 연대하는 섹션인데 아일랜드 다큐멘터리 <비밀을 이야기하는 방법>이라는 영화가 있다. 유럽에서 에이즈 대재앙을 안 겪은 유일한 곳이다. 보수적인 기독교 국가다 보니 젊은이들이 성인이 된 후 대부분 영국 런던으로 떠나버리거든.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은 합법화했지만, 에이즈 예방 이야기는 꺼내기조차 힘든 곳이기도 하다.
프렙은 지금 150개국 이상이 국가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신규 감염을 낮추고 치료제가 있어서 관리가 가능하다는 인식이 국가적 도움 덕이라는 연구가 많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이런 부분을 영화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이더스 맨>이라고 비틀즈를 성장시킨 프로듀서 영화도 상영한다. 이분도 성소수자고 에이즈로 돌아가셨거든.
여전히 한국은 프렙에 대해선 계몽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나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집단 면역이 생겼는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도 프렙을 처음 들어본다는 비중이 60% 이상이더라. 처방받는 방법도 모르시고. 제가 11년 전에 결혼하면서 느꼈지만,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하나의 주제를 설파할 때 굳이 싸우는 방식을 택하지 않기로 했다. 질병청과 에이즈학회와 손잡은 것도 그런 이유다. 동성애는 무조건 에이즈고, 그건 굳 죽음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 단계를 밟는 중이라고 본다."
이밖에도 올해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는 한국영상자료원 지원으로 국내 퀴어 영화 중 하나인 <가슴 달린 남자>를 디지털 복원했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이런 퀴어영화 복원은 <사방지>(1988)를 시작으로 해당 영화제가 이어오고 있었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흥행에서도 거리가 멀고 소재상 에로 영화로 포장되다 보니 정당한 평가를 못 받았는데 이런 영화들의 비평이 활발하게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간 한국퀴어영화사 등을 출판한 것도 영화제의 성과다. 올해는 퀴어영화 연출자들을 망라한 인터뷰집을 낸다고 한다. 김승환 프로그래머는 "전 세계에 프라이드 영화제만 250개가 넘는데, 그런 데이터가 제 머리에만 있으니 너무 힘들었다"며 "일종의 데이터 베이스 사업이라고 보시면 된다. 한국 퀴어 영화 데이터가 쌓이면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질 것"이라 강조했다.
"지금까지 나온 책들의 영문판도 만들고, 나중엔 복원된 한국퀴어영화에 영어자막을 넣는 게 목표다. 예전 영화에 대본이 소실됐는데 하나하나 타이핑을 쳐야겠지(웃음). 사실 올해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와 드라마로 공개됐는데 좀 더 전면적으로 홍보가 안 돼서 아쉽더라. 특히 영화는 감추는 마케팅을 했는데 성소수자 이야기라는 게 흥행에 큰 영향을 안 줬을 거라고 보거든. 그 원작 소설이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잖나. 훗날 영화나 드라마 시장에서 큰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프라이드(Pride)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단순히 영화제를 LGBTQ(성소수자 전반)만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소수자만을 위한 영화제가 아니기에 좀 더 다양한 장르를 다루려 한다. 올해 암스테르담 이주민 영화제와 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난민 이야기를 영화제를 통해 할 수도 있다. 미국도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지 않는 비율이 30% 정도더라. 점점 이 시장은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LGBTQ 영화제들이 위축되는 흐름인데 그 안에서 확장을 고민하며 시도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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