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소설, 나이 들어 읽으니 또 다르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소설 <진흙> 단상
이웃 단지에 사는 사촌언니와 나는 가끔 만나 같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헤어진다. 며칠 전 언니와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고 커피 마실 곳을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웬만한 커피숍엔 들어가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됐다.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들 천지였던 것. 그래서 멈춰선 곳이 햄버거집 앞. 점심 끝무렵이라 매장이 반쯤 비었고 커피값도 싸니 우리는 잘됐다 싶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 앱으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잠시 후 왜소한 체격에 나이들어 뵈는 여성이 걸어와 테이블 위에 커피 쟁반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랜 만에 오셨네요. 슈거 드릴까요? 맛있게 드세요~" 그녀는 나를 알아본 듯 밝은 목소리로 말하고 사뿐사뿐 걸어갔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작년 이맘때지 싶은데 나이들어 뵈는 그 여성이 손님들 테이블로 햄버거나 콜라를 갖다주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햄버거를 먹으러 들를 때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채 빈 테이블을 닦고 있는 그녀를 보았었다. 친절하게 아는 척 해주고 돌아서는 그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머릿속으로 '마리아' 이미지가 휙 스치는 걸 느꼈다.
'마리아'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단편 <진흙>(Clay)에 등장하는 인물. 제임스 조이스는 이야기 첫 머리에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내가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1984년 가을이다. 영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수업 첫 날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이라는 영문소설책을 손에 들고 한 학기 동안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 그리고 이 소설책을 공부하겠다고 선포하셨다.
영어 실력이 별로였던 나는 책만 들고 건성으로 강의실을 들락거리던 학생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 시절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세월이 한참 지나 외국여행을 하다가 서점에서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원서를 발견했고 옛 생각을 하며 덥석 샀다가 다시 또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집에서 천천히 읽게 되었으니, 나와 40년이라는 오랜 인연으로 맺어진 책이다.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 중 하나가 바로 <진흙>(Clay)이고 내용은 이렇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사는 마리아는 개신교 단체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일한다. 갈 곳 없는 미혼모나 성매매 여성들이 새 삶을 시작할 때까지 기거하는 그 시설에서 마리아는 빨래와 허드렛일을 해주고 약간의 돈을 번다. 마리아는 여자들끼리 일어나는 크고작은 분란을 잘 처리해준다. 그래서 모두가 마리아를 좋아한다.
핼로윈 저녁, 마리아는 서둘러 일과를 마치고 조카 조우의 집으로 향한다. 조우 부부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산 뒤 기차를 타고가다 처음 보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만 선물을 기차에 두고 내린다. 조우의 집에 도착해서야 선물을 두고내린 사실을 안 마리아는 자책한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곧 잊어버리고 아이들과 핼로윈 게임을 즐긴다. 눈을 가린 마리아가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운 물체를 만진다. 진흙이다. 조우 부부는 깜짝 놀라 마리아 몰래 진흙을 내다버린다. 진흙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물체라 해서 핼로윈 게임 테이블에는 절대 올려놓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그걸 갖다 놨냐며 조우는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고, 분위기를 바꾸려 마리아에게 노래를 부탁한다.
마리아가 수줍어하며 노래한다. 가난한 집시 아가씨가 꿈에서 으리으리한 부잣집에 살았다는, 꿈에서 변치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애인을 보았다는 노래가사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자 조우는 눈물을 글썽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조우는 마리아의 친아들이 아니지만 마리아를 친엄마 이상으로 사랑하고 마리아 역시 조우를 친아들처럼 아낀다. 조우는 마리아가 나이들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사는 걸 안쓰러워 한다.
마리아가 부르는 노랫말에 마리아의 처지를 이입해 몰래 눈물짓기도 하고. 조우는 마리아에게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가끔씩 조른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때마다 조용히 거부한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조우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마리아를 동정했는데 지금은 마리아의 태도에 감탄한다. 마리아는 세탁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다. 많진 않지만 일해서 번 돈을 자유롭게 쓸 줄도 안다. '독립적으로 산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속으로 외치며 뿌듯해한다.
가톨릭 신자인 마리아는 개신교 단체에서 일하지만 종교갈등없이 모두와 잘 지낸다. 친화력은 얼마나 좋은가. 기차에서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 깜박 선물을 두고 내리는 실수도 한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아깝긴 하지만 금세 잊을 줄도 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바라보며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봐줄만 하다며 높은 점수를 줄 줄도 안다.
40년 전, 나는 마리아를 그저 무기력하게 순종만 하는, 의식이 마비되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답답하게 나이든 인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마리아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런 사람이었어?' 똑같은 문장인데 젊은 시절엔 왜 그렇게 읽었을까? 헛웃음이 났다.
나이 들면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어린애처럼 고집은 더 세지고 욕심은 더 늘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누고 베풀며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대충 이 두 부류로 갈린다는 걸 노년에 이르니 알겠더라.
마리아는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인물이다. 꼭 물질이나 금전이 아니어도 나누고 베푸는 일은 가능하다. 마리아는 그걸 보여준다. 하여, 마리아의 키는 아주 작지만 마음속 키는 아주 큰 여자라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지긋한 분들이 모여서 어린 애들처럼 깔깔대며 담소했다. 활기차 보였다. 저 분들에 비하면 난 초보 노인이다. 노년에 대해 더 언급하는 건 주제넘는 짓이 될 터. 마리아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건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사촌언니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걷다보니 동네 영어학원앞에 지난 핼로윈 때 사용했을 법한 기괴한 모형들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제임스 조이스는 할로윈 저녁 풍경을 묘사한 이 이야기의 제목을 왜 <진흙>(Clay)이라 했을까. <호박 랜턴>(Jack-o-lantern)이라는 제목은 어떨라나. 원숙하게 잘 익은 늙은 호박 이미지가 마리아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집에 들어와 예전에 그린 그림 하나를 끄집어냈다. 노랗게 잘 익은 늙은 호박 그림 위에 검은 물감으로 눈 코 입을 그려넣었다. 좀 기괴해 보이지만, 따듯하고 맛있어 보이는 늙은 호박 랜턴이 완성되었다.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들 천지였던 것. 그래서 멈춰선 곳이 햄버거집 앞. 점심 끝무렵이라 매장이 반쯤 비었고 커피값도 싸니 우리는 잘됐다 싶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 앱으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작년 이맘때지 싶은데 나이들어 뵈는 그 여성이 손님들 테이블로 햄버거나 콜라를 갖다주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햄버거를 먹으러 들를 때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채 빈 테이블을 닦고 있는 그녀를 보았었다. 친절하게 아는 척 해주고 돌아서는 그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바라보려니 머릿속으로 '마리아' 이미지가 휙 스치는 걸 느꼈다.
'마리아'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단편 <진흙>(Clay)에 등장하는 인물. 제임스 조이스는 이야기 첫 머리에 그녀를 이렇게 묘사했다.
"마리아는 키가 아주 아주 작지만 그녀의 코와 턱은 아주 아주 길다.
Maria was a very, very small person indeed but she had a very long nose and a very long chin."
내가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1984년 가을이다. 영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수업 첫 날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이라는 영문소설책을 손에 들고 한 학기 동안 제임스 조이스라는 작가, 그리고 이 소설책을 공부하겠다고 선포하셨다.
영어 실력이 별로였던 나는 책만 들고 건성으로 강의실을 들락거리던 학생이었다. 그러니 내가 그 시절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세월이 한참 지나 외국여행을 하다가 서점에서 <더블린 사람들>(Dubliners) 원서를 발견했고 옛 생각을 하며 덥석 샀다가 다시 또 세월이 한참 지난 뒤 집에서 천천히 읽게 되었으니, 나와 40년이라는 오랜 인연으로 맺어진 책이다.
▲ 책과 호박랜턴 수채화 ⓒ 홍윤정
책에 수록된 여러 단편 중 하나가 바로 <진흙>(Clay)이고 내용은 이렇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 사는 마리아는 개신교 단체가 운영하는 복지시설에서 일한다. 갈 곳 없는 미혼모나 성매매 여성들이 새 삶을 시작할 때까지 기거하는 그 시설에서 마리아는 빨래와 허드렛일을 해주고 약간의 돈을 번다. 마리아는 여자들끼리 일어나는 크고작은 분란을 잘 처리해준다. 그래서 모두가 마리아를 좋아한다.
핼로윈 저녁, 마리아는 서둘러 일과를 마치고 조카 조우의 집으로 향한다. 조우 부부와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산 뒤 기차를 타고가다 처음 보는 남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만 선물을 기차에 두고 내린다. 조우의 집에 도착해서야 선물을 두고내린 사실을 안 마리아는 자책한다.
하지만 할 수 없는 일. 곧 잊어버리고 아이들과 핼로윈 게임을 즐긴다. 눈을 가린 마리아가 테이블 위에 놓인 차가운 물체를 만진다. 진흙이다. 조우 부부는 깜짝 놀라 마리아 몰래 진흙을 내다버린다. 진흙은 죽음을 연상시키는 물체라 해서 핼로윈 게임 테이블에는 절대 올려놓지 않는다. 그런데 누가 그걸 갖다 놨냐며 조우는 아이들 앞에서 화를 내고, 분위기를 바꾸려 마리아에게 노래를 부탁한다.
마리아가 수줍어하며 노래한다. 가난한 집시 아가씨가 꿈에서 으리으리한 부잣집에 살았다는, 꿈에서 변치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애인을 보았다는 노래가사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자 조우는 눈물을 글썽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조우는 마리아의 친아들이 아니지만 마리아를 친엄마 이상으로 사랑하고 마리아 역시 조우를 친아들처럼 아낀다. 조우는 마리아가 나이들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사는 걸 안쓰러워 한다.
마리아가 부르는 노랫말에 마리아의 처지를 이입해 몰래 눈물짓기도 하고. 조우는 마리아에게 자기 집에서 같이 살자고 가끔씩 조른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때마다 조용히 거부한다.
젊은 시절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조우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마리아를 동정했는데 지금은 마리아의 태도에 감탄한다. 마리아는 세탁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여성이다. 많진 않지만 일해서 번 돈을 자유롭게 쓸 줄도 안다. '독립적으로 산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속으로 외치며 뿌듯해한다.
가톨릭 신자인 마리아는 개신교 단체에서 일하지만 종교갈등없이 모두와 잘 지낸다. 친화력은 얼마나 좋은가. 기차에서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 남자와 대화를 나누다 깜박 선물을 두고 내리는 실수도 한다. 얼마나 인간적인가.
아깝긴 하지만 금세 잊을 줄도 안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을 바라보며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 봐줄만 하다며 높은 점수를 줄 줄도 안다.
40년 전, 나는 마리아를 그저 무기력하게 순종만 하는, 의식이 마비되어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답답하게 나이든 인물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마리아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어서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런 사람이었어?' 똑같은 문장인데 젊은 시절엔 왜 그렇게 읽었을까? 헛웃음이 났다.
나이 들면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어린애처럼 고집은 더 세지고 욕심은 더 늘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누고 베풀며 이타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대충 이 두 부류로 갈린다는 걸 노년에 이르니 알겠더라.
마리아는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인물이다. 꼭 물질이나 금전이 아니어도 나누고 베푸는 일은 가능하다. 마리아는 그걸 보여준다. 하여, 마리아의 키는 아주 작지만 마음속 키는 아주 큰 여자라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이지긋한 분들이 모여서 어린 애들처럼 깔깔대며 담소했다. 활기차 보였다. 저 분들에 비하면 난 초보 노인이다. 노년에 대해 더 언급하는 건 주제넘는 짓이 될 터. 마리아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건 이쯤에서 끝내야겠다.
사촌언니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와 걷다보니 동네 영어학원앞에 지난 핼로윈 때 사용했을 법한 기괴한 모형들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제임스 조이스는 할로윈 저녁 풍경을 묘사한 이 이야기의 제목을 왜 <진흙>(Clay)이라 했을까. <호박 랜턴>(Jack-o-lantern)이라는 제목은 어떨라나. 원숙하게 잘 익은 늙은 호박 이미지가 마리아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집에 들어와 예전에 그린 그림 하나를 끄집어냈다. 노랗게 잘 익은 늙은 호박 그림 위에 검은 물감으로 눈 코 입을 그려넣었다. 좀 기괴해 보이지만, 따듯하고 맛있어 보이는 늙은 호박 랜턴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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