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300일... 괜찮다, 괜찮아진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고공농성 노동자들, 연대버스 소감을 나누다
▲ 연대버스 문화제 중 노래에 맞춰서 고공 농성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 지혜복
2024년 1월 8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2022년 11월 4일, 잘 나가던 회사는 200여 명의 노동자 전원에게 문자로 청산을 갑자기 통보했다. 고용을 책임지라며 노동조합으로 뭉친 이들에겐 가압류, 가처분 등 법적 압박을 진행했다. 노동조합은 공장을 점거하고 싸웠으나, 회사는 물리적으로 공장을 철거할 계획이었고 구미시는 해당 철거를 승인해 주었다.
1월 8일,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부장이 옥상에 올랐다. 혹한, 폭염을 지나 고공농성은 300일이 되었다. 이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11월 2일, 전국에서 '연대버스'가 떴다. 천여 명이 두 사람이 있는 고공 농성장 앞에 모였다. 소현숙 고공 농성자가 느낀 그날의 감상을 정리했다.
▲ 고공농성장에 응원의 메시지가 적힌 형형색색 만국기가 걸렸다. ⓒ 황상윤
고공농성이 길어지면서, 우리가 잊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우릴 잊는 거 같았다. 지회장님이 '연대버스'를 할 거라고 말했을 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준비하는 내용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어... 이거 큰 행사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걱정됐다. 주말에 자기 시간 내서 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고공 300일 당일, 사람들이 많이 왔다. 첫 감정은 안도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기 일처럼 회사에 화내고, 우리에게 끝까지 연대할 거니까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용기를 얻었다. 이제까지 잘 버텨온 것에 대한 위로도 받았다. 뒤에서 믿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한 발 더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받았다.
애써 모른 척한 서러움, 오늘 터졌어요
▲ 연대버스 문화제에서 노동가요 '내일의 노래'에 맞춰 두 고공농성자가 춤을 추고 있다. ⓒ 황상윤
문화제 내내 눈물이 났다. 평소엔 회사를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일부러 생각을 잘 안 한다. 그런데 연대버스 날은 그동안 참고 무시했던 감정이 폭발했다. 서러웠다. 회사가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갑자기 우릴 버리고 떠난 게 서러웠다. 회사가 교섭도 제대로 안 하고 우릴 지금까지 무시한 것도 서러웠다. 조금씩 쌓인 서러움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조합원들이 다 같이 '노동의 꿈' 노래를 부를 때도 가사가 다 내 이야기 같았다.
'땀 흘리며 일만 했던 내가... 돈 못 벌면 못 번다고 잘라내고 돈 잘 벌면 잘 번다고 끝없는 노동...'
기를 쓰고 일만 했던 지난날의 내가 생각났다. 공장 잘 돌아갈 때 일주일에 72시간씩 일했던 기억도 났다. 회사한테 서러웠던 게 연대버스에서 터져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동지들이 많이 위로해 줘서 고마웠다. 울고 나니까 시원했다.
다 지나가면 괜찮다
▲ 문정현 신부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연대버스 문화제에 참여해서 무대를 바라고 있다. ⓒ 황상윤
우리보다 앞서 고공농성을 했던 동지들이 무대에서 발언해 주었다. 다들 덤덤하게 말하는 게 좋았다. 다들 괜찮아 보여서. 그 모습이 '괜찮다. 다 지나가면 괜찮아진다.'라고 말해주는 거 같아서.
문화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저 분들도 일상으로 돌아가는구나.' 사람은 한 명이라도 있다가 없으면 티가 나는데, 그 많은 인원이 사라지고 공장이 텅 비니까 조금 공허했다. 하지만 '오늘 300일 잘했으니까, 감정 잘 추스르고 앞으로 투쟁도 잘하자'고 생각하며 잠들었다.
다시 시작하는 301일
▲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 300일 연대버스 문화제에서 제안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대표로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 황상윤
동지들이 엽서를 위로 올려주었다. 연대버스를 타고 오며 쓴 거라고 했다. 200장도 넘었다. 고공농성 301일엔 엽서를 하나하나 읽었다. 고 김용균님의 어머니인 김미숙 동지가 써주신 것도 있었다. 큰일을 겪으셨는데 여기까지 오셔서 엽서를 주셨다는 게 정말 감사했다. 응원해 주신 만큼 열심히 투쟁할 테니까, 우리 걱정 조금만 하셨으면 좋겠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연대버스 하루 지난 오늘, 고공농성 301일차다. 의외로 덤덤하다. 그냥 또 하루가 밝았다. 300일 동안 달려왔지만 다시 또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연대버스 동지들께 말하고 싶은 게 있다. 동지들, 솔직히 앞이 보이지 않는 투쟁이라서 답답하지만 계속 버티고 또 버텨서 반드시 결론을 얻을 거니까 끝까지 지켜봐 주세요.
-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소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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