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74세 가수 노래에 '뭉클했다'는 MZ… 꼭 뮤비를 보세요

조용필이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 '원로'보다 '가왕'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 뮤지션

등록|2024.11.10 11:07 수정|2024.11.10 11:07

▲ 가수 조용필이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정규 20집 '20' 발매기념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원조 오빠 '조용필(74)'이 돌아왔다. 스무 번째 앨범을 대중들에게 선사하면서. 물론 조용필 전에도 '오빠 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뭉쳐 막강한 화력을 선보이는 팬덤은 조용필로부터 비롯됐다.

조용필 등장 후 대중들은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이 음악의 일부가 되는 현상을 경험하게 됐다. 조용필이 노래를 부를 때 터져 나오는 비명은 다른 가수들을 향한 그것과 데시벨부터 달랐다.

1982년에 발표한 '비련'이 대표적이다. 서정적 전주에 이어 조용필이 비장한 목소리로 '기도하는!'을 내뱉자마자 터져 나오는 팬들의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은, 마치 편곡에 추가된 새로운 악기 파트 같았다.

일렉트릭 사운드의 신세계

조용필의 이름과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1980년 어느 날이었다. 한 지상파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 예고편에 잠깐 그의 노래가 소개됐다. 예전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운드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뿅뿅뿅' 하는 전자 악기 소리와 가성의 목소리.

한창 음악에 귀가 틔어 가던 소년은 조용필이 등장하는 본방송을 사수했다. 예고편에 흘러나왔던 노래는 '단발머리'였다. 가성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수록곡들을 부른 '비지스(BeeGees)' 같은 세계적 가수나 할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했는데 조용필도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무엇보다 소년의 귀를 자극한 건 악기 소리였다. 전자 악기. 그 시절 전자 오르간 정도로 알려진 신시사이저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해 밴드에 편성하고 음악을 편곡했다.

당시에도 신시사이저를 악기 편성에 추가한 밴드나 편곡에 활용한 앨범이 많았다. 하지만 귀에 익숙한 오르간 소리나 피아노 대용 악기 정도로만 활용했다. 많은 음향 소스가 담겨 다양한 소리를 구사할 수 있는 신시사이저는 이들 소스를 전혀 다른 음향으로도 변형해 구현할 수 있는 악기다. 조용필은 이러한 신시사이저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한 뮤지션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용필의 음악은 그 시절 그 어떤 가요보다 새롭게 들렸다. 10대 소년 관점에서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사이 한국 대중음악은, 대학가요제 스타일 아니면 그냥 가요였다. 대중적 인기는 대학가요제 출신 밴드들이 높았지만, 이들은 아마추어티를 갓 벗어나기 시작했다.

▲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7년 05월 25일 방송 ⓒ KBS


그런 음악을 주로 들어왔던 소년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팝송에 뒤지지 않는 세련된 음악이었다.

무엇보다 조용필 음악의 강점은 그의 목소리에 있다. 단단하면서도 부드럽다. 다만 꾹꾹 눌러 내뱉는 그의 창법은 특징이 뚜렷해 많은 이가 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모창 가수들에게 살길을 열어주는 건 물론 개그맨들에게는 개인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의 독보적인 목소리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애절한 데다 호소력 깊은, 속삭이듯 내뱉어도 폭발력 있는 조용필의 목소리는 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 그의 목소리는 팝과 록 스타일은 물론 한국 전통 스타일의 노래와도 잘 어울린다. 조용필은 1992년까지 매년 앨범을 발표했다. 모든 앨범에 히트곡을 배출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앨범을 내며 2013년에 19집을 발표했다.

가슴을 뛰게 하거나 마음을 어루만지거나

2013년에 발표한 19집 앨범에 실린 '바운스(Bounce)'는 사회 현상이 됐다. 2003년에 나온 18집 이후 10년 만에 선보인 음악이었다.'<바운스'는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고 당시 트렌드와도 잘 맞는 사운드의 노래였다.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어필하며 가슴을 뛰게 했다.

그렇게 '바운스'는 주요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앨범 수록곡들 또한 주요 음원 차트에 올라 이른바 '차트 줄 세우기', '차트 올킬' 같은 아이돌 그룹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19집 발표 후 11년 만에 나온 20집 <20>에는 위로가 담겼다. 특히 '그래도 돼'를 뮤직비디오와 함께 감상한다면 조용필이 지금 시대에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에는 영화 <괴물>, <부산행>,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면들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괴물에 쫓기고 좀비에 쫓기듯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 지난날의 기억이 희미해질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그런 우리에게 조용필은 "이제는 믿어 믿어봐/자신을 믿어 믿어봐"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지치고 힘이 들 때면/이쯤에서 쉬어가도 되잖아"라고 위로한다. "그래도 돼, 늦어도 돼"라며, 마치 등을 두드려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유튜브에 올라온 공식 뮤직비디오의 댓글을 보면 '그래도 돼'를 들으며 위로받았다는 취지의 글이 대부분이다. 오랜 팬들부터 MZ 세대까지 다양하다. 특히, 쉬어가도 된다거나 늦어도 된다거나 하는 가사에 뭉클했다는 MZ의 글을 꽤 볼 수 있다.

이렇듯 '그래도 돼'는 가수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노래다. 어떤 가수나 위로의 노래를 부를 순 있겠지만, 조용필은 선배로서 후배 세대에게 진정한 위로를 보내고 있었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가슴에 와닿는 가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가왕의 노래는 앞으로도 계속

▲ KBS 2TV <이소라의 프로포즈> 1997년 05월 25일 방송 ⓒ KBS


20집 앨범 발표를 알리는 기자 간담회에서 조용필은 어쩌면 이번 앨범이 정규 앨범으로는 마지막일 수도 있다 암시했다. 그래도 새 노래는 계속 발표할 것이라는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아마도 호흡하는 한 조용필은 새로운 노래를 대중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이런 조용필에게 '원로'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젊은 가수들이 '선생님'으로 부르는 원로 가수들이 많지만, 조용필은 선생님이란 호칭보다는 '선배님'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현역 가수다.

무엇보다 조용필은 새로운 음악으로 후배 음악인들에게 롤모델이 돼줬고, 대중들에게는 가슴 울리는 음악을 선사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게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조용필은 '가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현역 가수이기도 하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