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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같은 노란 돼지"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미 선거 기간 집 근처에서 들은 혐오발언... 건강한 시민 의식은 회복될 수 있을까

등록|2024.11.06 17:18 수정|2024.11.06 17:19
지난 9월, 미국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공화당의 트럼프가 '스프링필드에서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애완견과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라고 가짜뉴스를 인용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 벤스는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아이티 이민자가 소년을 살해했다'라며 부정확한 뉴스를 본인 SNS에 올린 것이다. 1년 전, 면허가 없는 아이티 이민자가 몰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스쿨버스와 충돌했고, 이 사고로 11살 소년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논쟁이 가열되자, 소년의 아버지는 대선 토론 후 즉각 성명 발표했다. 그는 '제발 우리 아들의 이름을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에 사용하지 말아 달라. 그것은 사고였지 사건이 아니었다'라고 호소했다.

트럼프의 가짜뉴스 언급으로 인해 오하이오주의 작은 마을 스프링필드는 조용하고 평온하던 일상을 잃었다. 아이티 이민자 가정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했고, 공공기관과 특정 건물은 테러 위협을 받아야 했다. '트럼프발 가짜 뉴스'는 우스개 같은 릴스와 밈으로도 인터넷에 퍼졌다.

은근한 차별, 사소하지 않은 혐오

▲ 이웃에 걸린 민주당 해리스-공화당 트럼프 후보 지지 깃발. 이번 선거가 끝나면 후보 지지 깃발은 내려오겠지만, 어떤 후보를 지지했든 성조기는 그대로 깃대에 남아 휘날릴 것이다. 미국민의 가슴 속 깃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 장소영


대선이 아니어도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살다 보면 은근한 차별을 겪는다. 다만 '그래서는 안 된다', 즉 차별은 나쁘다는 사회적 분위기도 같이 자리 잡고 있었을 뿐이다. 또, 이민자들 또한 은근한 차별에는 은근하게 저항을 하는 법도 터득해 가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런 '은근한 차별'과는 달리 지도자의 태도와 발언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파장이 크게 일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던 2016년 대선 기간 동안, 순식간에 달라진 동네 분위기에 당황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이번에는 그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내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 되어, 아이들을 데리러 스쿨버스 스탑(하차 지정 장소)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때 내 곁으로 갑자기 차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가면서 한 젊은이가 욕설 섞인 단어들과 함께 '바보 같은 노란 돼지!'라고 소리를 질렀다.

'노란 돼지', 황인종을 향한 혐오 섞인 그 말들이 나를 향한 것인지, 이미 스쿨버스 스탑에 서서 손주를 기다리던 중국계 할머니를 향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둘 다에게 한 욕설일 수 있겠지만, 청년들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노란'이란 단어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중국계 할머님은 영어를 거의 못하신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할머니 얼굴에 당혹감을 넘어 무서워 하시는 표정이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어디에나 저런 나쁜 놈들이 있다고 천천히 다독였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영 편치 않아 보였다.

며칠 후, 아이들 친구 엄마이자 할머님의 따님인 중국계 이웃이 스쿨버스 정류장에 나왔다. 평소 직장을 다니는 분이라 잘 보지 못하는데 나를 보기 위해 일부러 나온 듯 했다. 역시 내게 '그 차에서 정확히 뭐라고 했느냐'라고 묻더니, 내게 동네 주민들이 애용하는 SNS에 올라온 사건을 봤는지도 물어온다.

개요는 이렇다. 익명으로 올라온 게시물에는, 매일 운동 삼아 자주 동네를 걷던 어떤 주민이 음료 컵 공격을 당했다고 써 있었다. 빠르게 지나가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창문을 조금 열더니, 욕설과 함께 음료가 든 컵을 자신에게 던지고 재빨리 달아났다고 한다.

거기엔 많은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은 '링'(현관 설치용 cctv)을 설치한 집이 많으니 사건 근방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cctv 화면을 가지고 가서 경찰에 신고를 하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다른 내용의 댓글이 눈에 띄었다.

'아마 경찰은 그 정도 일에 일하려고 하지 않을 거다. 젊은 애들의 장난이라 여길 것이다. 미안하지만, (인종 혐오 문제로) 일을 크게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작성자가 백인이 아니라면, 그 정도 일로 경찰이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중국계 이웃은 그 컵을 맞으며 모욕을 받은 익명 이웃이 아마 '아시안'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 트럼프 정부에서 중국을 겨냥한 코로나 팬데믹 시즌을 모질게 겪은 데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노모의 일이다 보니 그녀의 걱정은 당연했다.

▲ '은근한 차별'과는 달리 지도자의 발언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파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며칠 전 아이들 하교 시간, 한 젊은 운전자가 내게 '노란 돼지'라는 혐오발언을 소리치고 지나갔다. 사진은 아시안 혐오를 반대하는 한 시위(자료사진) ⓒ ninjason on Unsplash


그녀의 걱정어린 표정을 보며 가급적 내가 자주 일찍 나와 그 노모와 같이 있겠다고 했지만, 초중고 스쿨버스 시간이 다르니 더 어린 손녀를 마중할 때는 할머니께서 혼자 계실 수밖에 없다. 손녀 마중 시간에는 다른 학부모들이 더 많으니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움츠러들고 겁 먹었던 할머님의 모습과 표정이 눈에 그려져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중국계 이웃은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핼러윈을 앞두고 어느 학교의 개인 사물함에 박쥐 스티커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의 핼러윈 장난이라 지나칠 수도 있지만, 누군지 알 수 없는 이가 아시안계 학생 캐비닛을 특정해서 '박쥐 스티커'를 붙였다는 건 사소해 보이지가 않았다.

'아이티(인)들은 개를 먹고 중국은 박쥐를 먹지. 너네는 뭘 먹어?'

학교에서 소수 인종 친구에게 그렇게 물었다는 한 어린이 이야기도 들었다. 그 어린 아이는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고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마 그 아이도 가정에서 부모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우리 앞 집도 몇 년 전부터 부부가 함께 산책을 한다. 재작년, 우리가 이사를 간다는 잘못된 소문을 듣고 물으러 왔다가 '좋은 이웃은 오래 함께 해야 한다. 이사를 가지 않아 참 좋다'라고 하며 남편과 함께 걷게 된 사정을 말해 주었었다. 자신이 혼자 조깅을 하다가 비슷한 모욕적인 일을 겪었다고.

한편, 집 가까운 곳에 우리 가족과 가장 잘 지내는 남미계 이웃이 있다. 얼마 전, 그는 공화당의 뉴욕 대선 렐리에서 푸에르토리코를 향해 '쓰레기 섬'이라고 발언한 뉴스를 듣고 '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내게 말하며 한숨을 쉰다.

중국계 이웃은 이번 일로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왔다. '(2016년) 대선 이후 마치 그래도 된다는 듯, 대놓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거만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늘었다. (미세하지만) 오래된 이웃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가 슬프다. (인종 문제만이 아니라)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이다.

슬펐지만, 나도 느낀 바가 있었기에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민지가 범죄자? 시민 의식(Citizenship)이 필요한 때

트럼프는 대선 랠리 마지막까지도 이민자를 '범죄자'로 취급하며 그들 때문에 미국이 세계의 쓰레기통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하면 첫날 대규모 추방이 있을 거라 예고했다. 바이든은 트럼프 지지자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조용한 근외 주택가인 우리 동네도 그런 정치권의 발언에 공기가 뜨거웠다 차가워졌다 한다.

백인 이웃은 평화로울까. 그렇지만도 않다. 최근 미국 내 한 조사에서는 대선 유권자의 61% 이상이 정치적 대화를 할 때 위협감을 느낀다는 결과도 있었다.

내가 뉴욕으로 이사왔던 10여 년 전만해도,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와 싫어하는 후보를 적은 샌드위치맨(정치적 지지나 반대 사인을 온 몸에 두른 사람)을 곳곳에서 보았다.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고, 시비가 붙은 적도 없다. 주변 마트에서, 공원에서, 버스와 기차에서도 가벼운 정치적 대화들이 오고 갔었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정치 발언에는) 노코멘트'가 정답이란 우스개 소리도 있고, 누구를 지지하냐 물으면 '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라 대답하라는 말도 들어봤다.

▲ 지난 8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라크로스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 참석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과 8월 22일 일리노이주 시카고 유나이티드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 연합뉴스


'빨리 대선이 지나갔으면', 이전 대선에는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번 대선에는 '빨리 내전(Civil War)이 지나갔으면' 한다는 댓글을 봤다. 내전(Civil War)은 과거 링컨 대통령 시대의 남북전쟁을 뜻하는 단어다. 그만큼 현재 대선을 치르는 미국 내의 분위기가 흉흉하고 어렵다는 뜻이다.

가치관의 문제로 혼란스럽고, 지도자들은 혼란을 부추기고, 국외의 전쟁 영향도 파장이 크고, 선거가 끝나도 후유증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라고들 한다. 미국의 강점으로 꼽혔던 '시민 의식(Citizenship)'이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

동네를 걷다가 두 깃대를 바라보았다. 각각 트럼프와 해리스를 지지한다고 펄럭이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한국의 국기에 대한 맹세처럼, 미국에는 충성의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가 있다. 성조기가 의미하는 공화정과,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 하나님 아래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국가에 대해 성조기에 맹세를 한다.

선거가 끝나면 각각 트럼프와 해리스의 이름이 걸린 깃발은 다 내려오겠지만, 성조기는 여전히 두 깃대에서 계속 힘차게 휘날릴 것이다. 미국 국민의 마음속 깃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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