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실종된 친구 찾아 나선 감독에 걸려온 뜻밖의 전화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클로즈 유어 아이즈>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40년생, 팔순이 훌쩍 넘은 영화감독은 1973년 첫 장편으로 격찬을 받았다. 이후 10년 단위로 두 편의 영화를 차례로 내놓았다. 전형적인 과작 감독의 작품 주기다. 10년도 까마득한 간격이라 감독의 팬이라면 현기증에 쓰러질 지경인데, 세 번째 영화 이후 후속작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0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환갑은커녕, 칠순도 지난 지 오래인 감독에게 신작을 기대하기란 헛된 소망이라 다들 생각했다. 그의 단 3편 영화는 모두 걸작으로 칭송되었지만, 이제 감독의 이름은 과거형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바로 그 감독의 신작 소식이 들려왔다. 갑자기 감독의 이름이 언급되자 적지 않은 이들이 신작 예고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부고 소식이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을 테다. 하지만 감독은 건재를 알렸고, 영화는 완성되어 칸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맞았다. 30년 만에 돌아온 감독이 네 번째 작품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그 감독의 이름은 빅토르 에리세, 신작의 제목은 <클로즈 유어 아이즈>다.
촬영 도중 홀연히 사라진 배우의 미스터리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70살이 넘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이것저것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던 미겔은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제사건'에게서 출연 요청을 받는다. 세상과 담을 쌓은 듯 일상을 살아가던 그로선 오랜만에 받는 제안이다. 그런데 하필 왜 '미제사건'일까. 프로그램 담당자는 뜻밖의 제안을 건넨다. 22년 전 미겔의 두 번째 영화 주인공이었던 배우 훌리오에 관한 내용이다. 훌리오는 미겔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훌리오는 미겔과의 촬영 중 어느 날 갑자기 해변에서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행방은 누구도 알지 못했고, 아무리 수색해도 시신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22년째 실종 상태로 누구나 다들 훌리오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자살인지 사고인지만 의견이 분분할 따름이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선 바로 그 훌리오의 실종에 대해 다루고자 한 것이다. 담당자는 미겔에게 훌리오의 마지막에 대한 증언을 요청한다. 오랜 고심 끝에 미겔은 촬영에 응하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로 향한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전달할 촬영 당시 자료가 보관된 창고에 오랜만에 들른 미겔은 훌리오와의 추억이 깃든 소품들을 챙기며 생각에 잠긴다. 그의 머릿속에 끝내 완성되지 못한 <작별의 눈빛> 촬영 당시 기억과 오랜 시간 쌓아왔던 훌리오와의 인연이 주마간산처럼 스친다. 방송 인터뷰 녹화를 마친 그는 오랜만에 마드리드로 나온 김에 오랜 친구이자 필름 보관소를 운영하는 막스를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 그들 역시 훌리오 실종의 미스터리를 그저 추정할 뿐이다.
제작진은 훌리오의 딸 아나가 출연을 거절했다며 혹시 설득해 줄 수 있는지 미겔에게 청한다. 적극적으로 방송국의 요구를 따를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 미겔은 친구의 딸과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렇게 다시 반려견과 이웃들이 기다리는 바닷가 거처로 돌아온 미겔에게 얼마 후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거장의 도전
많은 이들이 전통적인 '영화'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평한다. 21세기 들어 이삼 년만 지나도 휙휙 바뀌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미 영화는 한물간 과거의 유물로 점점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란 준엄한 표정으로 경고를 던진다. 실시간으로 손에 쥔 휴대전화나 편안한 자세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홈비디오 환경이 갖춰진 요즘이다. 누가 몇 시간씩 불 꺼진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타인과의 불편한 접촉을 감수하며 영화를 보려 한단 말인가. 마블 시리즈나 아바타 연대기 같은, 오직 큰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인 극소수를 제외하면 극장과 그에 맞춰 제작된 영화는 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서슴지 않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전성기를 누리는 시류에 그런 경고는 합당한 것으로 들려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895년 공식적으로 탄생해 고작 130년 채 안 된 영화가 벌써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아니 영화라는 대중예술 형식이 과연 완성된 건 맞는가부터 다시 원점에서 고찰해보고 싶어진다. 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영화의 수동적 관람환경은 어쩌면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건은 아닐까, 텔레비전이 등장할 때 영화는 곧 망한다며 좌절했던 영화인들이 적지 않았으나 영화는 거뜬히 살아남은 것처럼 이번 '종말론' 또한 지나가는 일이 아닐지 믿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과거 몇 차례의 풍랑(텔레비전, 케이블 채널, OTT와 다양한 숏폼 콘텐츠까지)을 고찰하면 지금의 상황이 그 강도가 역대 최고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그런 위기의식의 발로인지 가장 혁신적이고 첨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영화제에서 유독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주제를 쉽게 만나게 된다. 개별 작품과 작가의 판단이나 방향은 각각이 다양하지만, 치열한 고민과 모색의 공통 기반은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런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필름 촬영과 전통적인 극장 상영을 고수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vs .적극적으로 OTT와 협업하며 극장 포맷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색을 거듭하는 데이빗 핀처의 논쟁처럼 현역 창작자 사이에도 고민은 나뉘는 게 현실이지만, 영화가 어떻게 변모할진 몰라도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란 판단과 기대는 대동소이함을 관측할 수 있다. 빅토르 에리세 역시 그런 시류를 깊이 고민하며 장고를 거듭했을 테다. 거장의 대답이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2시간 30분, 요즘 세대에겐 참을성 유지하기 만만찮은 시간 동안 활짝 개방되어 관객에게 전해지는 셈이다.
톱니바퀴 같은 연출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수미쌍관을 취한다. 영화를 열고 또 닫는 건 미겔과 훌리오의 미완성작 <작별의 눈빛> 촬영 현장과 러쉬필름 상영의 몫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의 영화는 사건의 발단과 결말이자 영원히 순환되는 소우주로 완벽하게 작동한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 한 구절, 영원히 인용될 것만 같은 바로 그 문장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처럼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 구현되는 영화의 마술을 확인하라는 거장의 일갈로 들릴 지경이다.
영화의 역사와 그 시간을 거쳐 간 숱한 고전 명작들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시치미 뚝 떼고 그 찬란한 역사의 유산을 복기하고 기억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로 가득한 작업이 될 것이다. 미겔이 단 한 번도 스크린에 상영되지 못한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연출작이 보관된 막스의 필름 보관소를 방문할 때, 화면 가득 드러나는 셀룰로이드 필름 통은 그 자체로 '영화의 성지'이자 잊힌 보물창고로 기능한다.
아마도 영화의 역사 그 자체로 상상될 이런 곳곳에 숨은 장치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최고의 암살자이자 검술 고수인 주인공이 일본도 장인의 걸작품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영롱한 표정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작품들을 돌아보며 짓던 표정이 아마 가장 비슷한 광경일 테다. 역시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에서 대체역사로 활용된 영화적 상상의 표현, 히틀러와 나치 도당을 척결하는 극장의 방화 재료가 불에 타기 쉬운 영화 필름 산더미였던 상징과도 통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잃어버린 기억과 사라지는 유산에 대해 끊임없이 환기한다. 기억은 그저 개인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격동의 20세기 역사가 개별의 삶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용하는지 고찰한다. <작별의 눈빛>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세파르딤(이베리아 반도 유대인)'이 자신과 중국 무용수 사이에 태어난 딸과 죽기 전 재회하고자 의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코의 파시즘과 맞서 싸웠던 과거를 간직한 채 방황하던 참이다.
영화 속 현실의 미겔 역시 독재에 맞서다 투옥된 적이 있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던 청춘 시절 일이다. 훌리오와 우정의 출발도 그 인연으로부터 비롯된다. 씨줄 날줄처럼 교차하는 묘사를 통해 꾸준히 역사와 사회에 대해 은유로 발언해 온 감독 입장이 재확인된다.
어떤 극한을 응시하는 결말
감춰진 시의적 묘사도 발군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가진 매력을 긍정하고 오락거리를 넘어 예술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믿는 태도가 넘실거린다. 훌리오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안간힘 쓰는 미겔에게 친우 막스가 던지는 한마디, '드레이어 이후 영화가 기적을 만든 적은 없다.' 쓴소리지만 정작 막스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무신론자인 그가 기적을 꿈꾼다면 수단은 바로 영화의 몫이다.
감독의 전작을 감명 깊게 본 이들이라면 아련해질 순간이 도래한다. <벌집의 정령> (1973)으로 데뷔했던 아나 토렌트가 무려 50년 만에 감독과 재회한다. 첫 영화 촬영 당시 너무 어려서 아직 배역을 구분하지 못하던 배우를 위해 감독이 원래 정한 극 중 이름을 수정해 모두 실명으로 출연했던 추억을 상기하듯, 혹은 영화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순환한다는 점을 강조하듯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도 '아나'로 등장한다. 그냥 TMI가 아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고, 둘 사이 관계를 탐구한다.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순환되며 중력처럼 작용한다. 어두운 극장에 앉아 두 눈을 빛내던 관객은 맞은편에서 같은 표정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영화 속 관객과 마주한다. 감흥이 극점에 달하자 양자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영화와의 단절이 아니라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지는 '결정적 찰나'다. 아직은 영화만이 옆에 앉은 이들과 함께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마법을 30년 만에 귀환한 거장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스며든다. 믿기지 않는다면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라.
<작품정보>
클로즈 유어 아이즈
Cerrar los ojos, Close Your Eyes
2023|스페인, 아르헨티나|드라마/미스터리
2024.11.06. 개봉|169분|12세 관람가
감독 빅토르 에리세
출연 마놀로 솔로, 호세 코로나도, 아나 토렌트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1940년생, 팔순이 훌쩍 넘은 영화감독은 1973년 첫 장편으로 격찬을 받았다. 이후 10년 단위로 두 편의 영화를 차례로 내놓았다. 전형적인 과작 감독의 작품 주기다. 10년도 까마득한 간격이라 감독의 팬이라면 현기증에 쓰러질 지경인데, 세 번째 영화 이후 후속작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30년이란 시간이 훌쩍 흘렀다. 환갑은커녕, 칠순도 지난 지 오래인 감독에게 신작을 기대하기란 헛된 소망이라 다들 생각했다. 그의 단 3편 영화는 모두 걸작으로 칭송되었지만, 이제 감독의 이름은 과거형이 된 지 오래였다.
촬영 도중 홀연히 사라진 배우의 미스터리
▲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틸 ⓒ 엠엔엠인터내셔널㈜
영화감독이자 작가로 활동했지만, 이제는 70살이 넘어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이것저것 소일하며 여생을 보내던 미겔은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미제사건'에게서 출연 요청을 받는다. 세상과 담을 쌓은 듯 일상을 살아가던 그로선 오랜만에 받는 제안이다. 그런데 하필 왜 '미제사건'일까. 프로그램 담당자는 뜻밖의 제안을 건넨다. 22년 전 미겔의 두 번째 영화 주인공이었던 배우 훌리오에 관한 내용이다. 훌리오는 미겔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훌리오는 미겔과의 촬영 중 어느 날 갑자기 해변에서 가지런히 벗어둔 신발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의 행방은 누구도 알지 못했고, 아무리 수색해도 시신 역시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22년째 실종 상태로 누구나 다들 훌리오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다만 자살인지 사고인지만 의견이 분분할 따름이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선 바로 그 훌리오의 실종에 대해 다루고자 한 것이다. 담당자는 미겔에게 훌리오의 마지막에 대한 증언을 요청한다. 오랜 고심 끝에 미겔은 촬영에 응하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로 향한다.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전달할 촬영 당시 자료가 보관된 창고에 오랜만에 들른 미겔은 훌리오와의 추억이 깃든 소품들을 챙기며 생각에 잠긴다. 그의 머릿속에 끝내 완성되지 못한 <작별의 눈빛> 촬영 당시 기억과 오랜 시간 쌓아왔던 훌리오와의 인연이 주마간산처럼 스친다. 방송 인터뷰 녹화를 마친 그는 오랜만에 마드리드로 나온 김에 오랜 친구이자 필름 보관소를 운영하는 막스를 만나 과거를 회상한다. 그들 역시 훌리오 실종의 미스터리를 그저 추정할 뿐이다.
제작진은 훌리오의 딸 아나가 출연을 거절했다며 혹시 설득해 줄 수 있는지 미겔에게 청한다. 적극적으로 방송국의 요구를 따를 생각은 딱히 없어 보이지만, 미겔은 친구의 딸과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렇게 다시 반려견과 이웃들이 기다리는 바닷가 거처로 돌아온 미겔에게 얼마 후 뜻밖의 전화 한 통이 걸려 온다.
거장의 도전
▲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틸 ⓒ 엠엔엠인터내셔널㈜
많은 이들이 전통적인 '영화'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평한다. 21세기 들어 이삼 년만 지나도 휙휙 바뀌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이미 영화는 한물간 과거의 유물로 점점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란 준엄한 표정으로 경고를 던진다. 실시간으로 손에 쥔 휴대전화나 편안한 자세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홈비디오 환경이 갖춰진 요즘이다. 누가 몇 시간씩 불 꺼진 어두컴컴한 극장 안에서 타인과의 불편한 접촉을 감수하며 영화를 보려 한단 말인가. 마블 시리즈나 아바타 연대기 같은, 오직 큰 스크린으로 봐야 제맛인 극소수를 제외하면 극장과 그에 맞춰 제작된 영화는 소멸할 것이라는 예언을 서슴지 않는다.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전성기를 누리는 시류에 그런 경고는 합당한 것으로 들려온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1895년 공식적으로 탄생해 고작 130년 채 안 된 영화가 벌써 사양길로 접어든다는 게 과연 맞는 말인가. 아니 영화라는 대중예술 형식이 과연 완성된 건 맞는가부터 다시 원점에서 고찰해보고 싶어진다. 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영화의 수동적 관람환경은 어쩌면 영화의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건은 아닐까, 텔레비전이 등장할 때 영화는 곧 망한다며 좌절했던 영화인들이 적지 않았으나 영화는 거뜬히 살아남은 것처럼 이번 '종말론' 또한 지나가는 일이 아닐지 믿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히 과거 몇 차례의 풍랑(텔레비전, 케이블 채널, OTT와 다양한 숏폼 콘텐츠까지)을 고찰하면 지금의 상황이 그 강도가 역대 최고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보인다. 그런 위기의식의 발로인지 가장 혁신적이고 첨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영화제에서 유독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하는 주제를 쉽게 만나게 된다. 개별 작품과 작가의 판단이나 방향은 각각이 다양하지만, 치열한 고민과 모색의 공통 기반은 대동소이한 것이다.
그런 격렬한 소용돌이 속에서 필름 촬영과 전통적인 극장 상영을 고수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vs .적극적으로 OTT와 협업하며 극장 포맷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색을 거듭하는 데이빗 핀처의 논쟁처럼 현역 창작자 사이에도 고민은 나뉘는 게 현실이지만, 영화가 어떻게 변모할진 몰라도 사라지는 일은 없으리란 판단과 기대는 대동소이함을 관측할 수 있다. 빅토르 에리세 역시 그런 시류를 깊이 고민하며 장고를 거듭했을 테다. 거장의 대답이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2시간 30분, 요즘 세대에겐 참을성 유지하기 만만찮은 시간 동안 활짝 개방되어 관객에게 전해지는 셈이다.
톱니바퀴 같은 연출
▲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틸 ⓒ <장편리뷰> 클로즈 유어 아이즈 Cerrar
장대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수미쌍관을 취한다. 영화를 열고 또 닫는 건 미겔과 훌리오의 미완성작 <작별의 눈빛> 촬영 현장과 러쉬필름 상영의 몫이다. 그리고 이 영화 속의 영화는 사건의 발단과 결말이자 영원히 순환되는 소우주로 완벽하게 작동한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 한 구절, 영원히 인용될 것만 같은 바로 그 문장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처럼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 구현되는 영화의 마술을 확인하라는 거장의 일갈로 들릴 지경이다.
영화의 역사와 그 시간을 거쳐 간 숱한 고전 명작들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시치미 뚝 떼고 그 찬란한 역사의 유산을 복기하고 기억을 소환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로 가득한 작업이 될 것이다. 미겔이 단 한 번도 스크린에 상영되지 못한 자신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연출작이 보관된 막스의 필름 보관소를 방문할 때, 화면 가득 드러나는 셀룰로이드 필름 통은 그 자체로 '영화의 성지'이자 잊힌 보물창고로 기능한다.
아마도 영화의 역사 그 자체로 상상될 이런 곳곳에 숨은 장치들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에서 최고의 암살자이자 검술 고수인 주인공이 일본도 장인의 걸작품이 가득한 다락방에서 영롱한 표정으로 예술의 경지에 이른 작품들을 돌아보며 짓던 표정이 아마 가장 비슷한 광경일 테다. 역시 타란티노의 <바스터즈>에서 대체역사로 활용된 영화적 상상의 표현, 히틀러와 나치 도당을 척결하는 극장의 방화 재료가 불에 타기 쉬운 영화 필름 산더미였던 상징과도 통하는 지점이다.
영화는 잃어버린 기억과 사라지는 유산에 대해 끊임없이 환기한다. 기억은 그저 개인적인 데 그치지 않는다. 격동의 20세기 역사가 개별의 삶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작용하는지 고찰한다. <작별의 눈빛>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세파르딤(이베리아 반도 유대인)'이 자신과 중국 무용수 사이에 태어난 딸과 죽기 전 재회하고자 의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 속 영화의 주인공은 프랑코의 파시즘과 맞서 싸웠던 과거를 간직한 채 방황하던 참이다.
영화 속 현실의 미겔 역시 독재에 맞서다 투옥된 적이 있다.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던 청춘 시절 일이다. 훌리오와 우정의 출발도 그 인연으로부터 비롯된다. 씨줄 날줄처럼 교차하는 묘사를 통해 꾸준히 역사와 사회에 대해 은유로 발언해 온 감독 입장이 재확인된다.
어떤 극한을 응시하는 결말
▲ <클로즈 유어 아이즈> 스틸 ⓒ 엠엔엠인터내셔널㈜
감춰진 시의적 묘사도 발군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가진 매력을 긍정하고 오락거리를 넘어 예술 장르로서의 가능성을 믿는 태도가 넘실거린다. 훌리오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안간힘 쓰는 미겔에게 친우 막스가 던지는 한마디, '드레이어 이후 영화가 기적을 만든 적은 없다.' 쓴소리지만 정작 막스도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한다. 무신론자인 그가 기적을 꿈꾼다면 수단은 바로 영화의 몫이다.
감독의 전작을 감명 깊게 본 이들이라면 아련해질 순간이 도래한다. <벌집의 정령> (1973)으로 데뷔했던 아나 토렌트가 무려 50년 만에 감독과 재회한다. 첫 영화 촬영 당시 너무 어려서 아직 배역을 구분하지 못하던 배우를 위해 감독이 원래 정한 극 중 이름을 수정해 모두 실명으로 출연했던 추억을 상기하듯, 혹은 영화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고 순환한다는 점을 강조하듯 <클로즈 유어 아이즈>에서도 '아나'로 등장한다. 그냥 TMI가 아니다.
영화는 끊임없이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고, 둘 사이 관계를 탐구한다. 그 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순환되며 중력처럼 작용한다. 어두운 극장에 앉아 두 눈을 빛내던 관객은 맞은편에서 같은 표정으로 화면 밖을 응시하는 영화 속 관객과 마주한다. 감흥이 극점에 달하자 양자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영화와의 단절이 아니라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지는 '결정적 찰나'다. 아직은 영화만이 옆에 앉은 이들과 함께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마법을 30년 만에 귀환한 거장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진심이 스며든다. 믿기지 않는다면 영화를 보고 확인하시라.
<작품정보>
클로즈 유어 아이즈
Cerrar los ojos, Close Your Eyes
2023|스페인, 아르헨티나|드라마/미스터리
2024.11.06. 개봉|169분|12세 관람가
감독 빅토르 에리세
출연 마놀로 솔로, 호세 코로나도, 아나 토렌트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 <클로즈 유어 아이즈> 포스터 ⓒ 엠엔엠인터내셔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