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나 임기 단축 위한 원포인트 개헌보다 더 중요한 건 '이것'"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이 녹음 파일에는 대통령 취임식 있기 전인 2022년 5월 9일 윤 대통령과 명 씨가 김영선 의원 공천에 대해 대화를 나눈 내용이 담겨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을 지적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라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헌법적 해석을 들어보고자 지난 5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 때보다 심각한 상황"
- 9월 <뉴스토마토>의 보도로 명태균이란 인물이 알려지며, 이 이슈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2016년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의 기시감이 든다고도 하는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심합니다.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의 경우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권력 행사나 그 책임이 대통령에 귀속되는 틀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도처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권력이 철저히 사유화되고 사적인 경로 통해 행사되고 있습니다. 정책 결정이나 집행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또 그것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해 국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계속 허위 사실을 내세우며 그때그때 책임만 모면하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 내지는 대통령실이라는 조직 자체가 없어졌거나, 또는 도대체 누가 진정한 대통령인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명태균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지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국면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국민들의 비판들은 물론 민심의 흐름 자체에 대해 관심조차도 없는 모습입니다. 세간의 이야기들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에 답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그 주변이 국민들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지난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5월 9일 대통령 취임식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전화 녹취를 공개했습니다.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문제가 언급되죠. 대통령실이나 친윤계는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하던데 교수님은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맞다고 하셨네요.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은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민간인 신분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법체제에서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특별법이거든요. 이 법은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상당하게 예우합니다. 한마디로 예비 대통령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공적 권한과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법에서는 대통령 당선자의 직무상의 의무에 관한 규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순수한 민간인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적, 행정적 영향력은 현직 대통령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 작용은 당선자를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사실상의 법적인 의미에서도 공무원에 준하는 사람입니다.
이 점은 선거관리라는 행정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원의 공천 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행위 중심으로 그 적법 여부를 판단하는데, 법적으로 이 사건을 선거관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통령 당선자의 행위가 당내 경선 절차를 비롯한 전반적인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법 명령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선거를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정당의 업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했습니다. 선거에서의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더욱 가중된다고 보았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행위가 향후의 선거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중심으로 법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는 단순히 형식 논리로 민간인 신분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에둘러 말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곧 대통령이 되면 선거 관리에 임해야 되는 그런 사람이기에 그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더욱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당원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그 '당원'이 일반적인 당원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죠. 그는 대통령 당선자의 지위에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의 의견은 공천 과정이나 선거 과정에 지대한 영향 미치는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선거관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단순한 '당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당 내부든 공무원 사회든 그 구성원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선거의 원칙이나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공천 관련해 실행 시점도 논란이더라고요. 전화 통화한 시점이 5월 9일이고 공천 확정된 건 10일이죠.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그런 주장은 정말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으로 봅니다. 첫째 앞서 말했듯이 대통령 당선자 또한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저버린 주장입니다. 둘째 이 사건은 일반인이 아니라 공적 인물이 한 행위를 다룹니다. 일반인의 경우 행위 그 자체의 올바름 여부를 중심으로만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자와 같은 공직자 혹은 공직 인물의 경우는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가 야기한 결과까지도 책임추궁의 대상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룻밤 사이의 신분 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공천개입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대통령실 해명도 문제인 거 같아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이 드러나며 결국 대통령이 사임했잖아요. 이 부분 어떻게 보세요?
"미국을 거론할 것도 없이, 정부의 거짓말은 있어서는 안 되죠. 과거 18세기 프랑스 인권 선언에서 모든 시민은 공무원으로부터 답변 들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답변하기를 거부하거나 거짓말로써 국민을 속이는 정부라면 더 이상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것입니다.
대통령실이 국민에게 거짓된 메시지를 내놓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입니다. 요즘 거짓은 한순간을 지속하기도 어렵습니다. 국민들은 그에 속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거짓됨으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누적되고 상례화된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거짓 메시지를 내놓는 대통령실 또한 그 거짓됨으로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허위로 위기를 넘겨버리다 보면, 더 이상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일종의 중독 현상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불신과 정부의 귀닫음이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양자의 단절된 간극은 점차 커지게 되어 총체적인 난국을 초래하게 됩니다. 지금이 딱 그 국면입니다."
"국민들은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하는 반쪽의 헌법"
- 탄핵과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 얘기가 나오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게 맞을까요?
"저는 둘 다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탄핵으로 갈 경우 국정운영에 관한 정치적 동력의 상당 부분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렇다고 지금 재판관이 6명밖에 없어서 심리조차 힘겨운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일을 해낼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국은 탄핵 절차는 현재의 난국을 해소하기보다는 그대로 유지시키거나 또는 확산시킬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헌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는 건 가능할 것입니다만, 그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전망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난맥상은 현행의 87년 헌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 너무도 많은 권력을 시민사회로부터 국가영역으로 이전시켜 둔 것이 현행 헌법인데, 그 약점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이 현재의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를 제거하는 수준에 머무는 개헌이라면 언제든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될 수 있게 방치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건가요?
"대통령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해 놓고 그를 국민이 통제하고 경우에 따라 소환할 수 있는 길을 막아놓은 걸 들 수 있습니다. 임기 단축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이런 문제점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실제 우리에게 절실한 건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지칭됨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이 가지고 있는 비민주적 한계 조항들을 제대로 고쳐내는 작업이고, 이 작업을 우리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탄핵 또는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보다 2단계의 개헌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는 이 점에서 좋은 모범이 됩니다. 1994년 백인 정부를 축출한 남아공은 임시헌법 만들어 일단 정권교체 실시한 뒤, 제대로 된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 시기 등을 세세하게 정해서 이 임시헌법에 명문 규정으로 못 박아 둡니다.
우리의 경우 일각에서 2단계 헌법 개정 방식을 거론하기는 하는데, 그 2차의 헌법개정을 하나의 정치적 약속으로 차기 정부에 일임한다는 점에서, 그 개헌 과정을 임시헌법에 명문화한 남아공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지난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제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헌법 개정 논의가 나오다가 결국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기왕에 헌법 개정할 것 같으면 대통령 임기 단축과 더불어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절차, 방법 또는 방향성을 이 개정 헌법에다가 못 박아두는 그런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해서 결정하는 게 우리 헌법체제죠. 이게 맞을까 싶거든요. 대통령은 선출직이죠. 대통령이 되는 건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죠. 그런데 우리 헌법 체제는 국민적 지지가 0%라도 헌법과 법률에 중대한 위반이 없다면 탄핵을 당하지 않아요. 차라리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적어도 대통령 탄핵은 국민 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그것이 현행 헌법의 한계입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면서도 국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정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권력도 부여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게 현행 헌법의 치명적인 한계입니다. 국민들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든지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등 헌법기관을 소환할 수 있는 국민 소환제도 규정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현행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철저하지 못해요. 그래서 국민들은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하는 반쪽의 헌법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입니다. 헌법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합니다. 국가영역에 집중된 권력을 다시 원주인인 국민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실질적인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는 그런 헌법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미국은 어떤가요?
"미국헌법에도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근데 미국은 연방국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51개의 정부가 존재하거든요. 국민들의 일상에 주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 정부의 법이지 연방헌법이나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방차원에서의 국민소환이나 국민발안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지방자치제조차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대부분의 권력이 국가영역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대통령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은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이 탄핵이니 임기 단축 개헌이니 하는 우회적인 경로가 거론되는 상황이 벌어졌고요. 실제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을 제대로 바꾸어내는, 그래서 국민들이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이 되도록 만드는 그런 헌법적 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고민이겠지요."
- 지금 많이 나오는 얘기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거쳤어도 안 바뀌었단 거죠, 그게 헌법 개정을 안 했기 때문일까요?
"헌법은 권력에 관한 법입니다. 그것은 국가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에 귀속되는가를 정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민주사회라면 헌법을 바꾸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런 목소리에 바탕을 두어서 정치 체제를 바꿔냅니다. 근데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개정의 논의는 이런 당위론과 먼 거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개헌논의의 핵심적인 의제는 4년 중임제냐 5년 단임제냐 등의 통치 기구에 관한 것에 한정되었고 국민들이 국가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또는 국가에 집중된 권력들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분산하면 되는 것인지 같은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러다 보니까 현재와 같은 이런 정치적인 난맥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저는 지금부터라도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선거 중립 위반'을 지적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선자 신분이라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헌법적 해석을 들어보고자 지난 5일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유성호
- 9월 <뉴스토마토>의 보도로 명태균이란 인물이 알려지며, 이 이슈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어요. 일각에서는 2016년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의 기시감이 든다고도 하는데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심합니다. 박근혜-최서원 국정농단의 경우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권력 행사나 그 책임이 대통령에 귀속되는 틀이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도처에 흩어져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공적인 권력이 철저히 사유화되고 사적인 경로 통해 행사되고 있습니다. 정책 결정이나 집행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또 그것이 추구하는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해 국민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계속 허위 사실을 내세우며 그때그때 책임만 모면하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대통령 내지는 대통령실이라는 조직 자체가 없어졌거나, 또는 도대체 누가 진정한 대통령인지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지금 명태균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지 않을지 걱정해야 하는 국면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국민들의 비판들은 물론 민심의 흐름 자체에 대해 관심조차도 없는 모습입니다. 세간의 이야기들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에 답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대통령과 그 주변이 국민들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지난 10월 31일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5월 9일 대통령 취임식 전날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전화 녹취를 공개했습니다.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 문제가 언급되죠. 대통령실이나 친윤계는 당선자 신분이기 때문에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하던데 교수님은 공무원의 정치 중립 의무 위반이 맞다고 하셨네요.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대통령 당선자 신분은 형식적으로만 보자면 민간인 신분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법체제에서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특별법이거든요. 이 법은 대통령직 인수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상당하게 예우합니다. 한마디로 예비 대통령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공적 권한과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법에서는 대통령 당선자의 직무상의 의무에 관한 규정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순수한 민간인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입니다. 그의 정치적, 행정적 영향력은 현직 대통령 이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 작용은 당선자를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사실상의 법적인 의미에서도 공무원에 준하는 사람입니다.
이 점은 선거관리라는 행정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원의 공천 문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행위 중심으로 그 적법 여부를 판단하는데, 법적으로 이 사건을 선거관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대통령 당선자의 행위가 당내 경선 절차를 비롯한 전반적인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법 명령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선거를 관리하는 공무원이나 정당의 업무에 미치는 영향 등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에서 헌법재판소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했습니다. 선거에서의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더욱 가중된다고 보았습니다.
대통령 당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행위가 향후의 선거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중심으로 법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계속 대통령실이나 여당에서는 단순히 형식 논리로 민간인 신분이라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에둘러 말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곧 대통령이 되면 선거 관리에 임해야 되는 그런 사람이기에 그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더욱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당원의 한 사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는데요.
"그 '당원'이 일반적인 당원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죠. 그는 대통령 당선자의 지위에서 의견을 말했습니다. 그의 의견은 공천 과정이나 선거 과정에 지대한 영향 미치는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선거관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단순한 '당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당 내부든 공무원 사회든 그 구성원들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힘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선거의 원칙이나 선거관리의 정치적 중립성 요청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공천 관련해 실행 시점도 논란이더라고요. 전화 통화한 시점이 5월 9일이고 공천 확정된 건 10일이죠.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저는 그런 주장은 정말 국민들을 우롱하는 것으로 봅니다. 첫째 앞서 말했듯이 대통령 당선자 또한 공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당연한 상식을 저버린 주장입니다. 둘째 이 사건은 일반인이 아니라 공적 인물이 한 행위를 다룹니다. 일반인의 경우 행위 그 자체의 올바름 여부를 중심으로만 판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자와 같은 공직자 혹은 공직 인물의 경우는 행위뿐 아니라 그 행위가 야기한 결과까지도 책임추궁의 대상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룻밤 사이의 신분 변화가 문제가 아니라, 공천개입에 따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대통령실 해명도 문제인 거 같아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해명 과정에서 거짓말이 드러나며 결국 대통령이 사임했잖아요. 이 부분 어떻게 보세요?
"미국을 거론할 것도 없이, 정부의 거짓말은 있어서는 안 되죠. 과거 18세기 프랑스 인권 선언에서 모든 시민은 공무원으로부터 답변 들을 권리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답변하기를 거부하거나 거짓말로써 국민을 속이는 정부라면 더 이상 사회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것입니다.
대통령실이 국민에게 거짓된 메시지를 내놓는 건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입니다. 요즘 거짓은 한순간을 지속하기도 어렵습니다. 국민들은 그에 속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이런 거짓됨으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누적되고 상례화된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거짓 메시지를 내놓는 대통령실 또한 그 거짓됨으로 자신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허위로 위기를 넘겨버리다 보면, 더 이상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일종의 중독 현상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불신과 정부의 귀닫음이 서로 악순환을 일으키면서 양자의 단절된 간극은 점차 커지게 되어 총체적인 난국을 초래하게 됩니다. 지금이 딱 그 국면입니다."
"국민들은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하는 반쪽의 헌법"
- 탄핵과 개헌을 통한 대통령 임기 단축 얘기가 나오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어떤 게 맞을까요?
"저는 둘 다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탄핵으로 갈 경우 국정운영에 관한 정치적 동력의 상당 부분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렇다고 지금 재판관이 6명밖에 없어서 심리조차 힘겨운 헌법재판소가 제대로 일을 해낼 것 같지도 않습니다. 결국은 탄핵 절차는 현재의 난국을 해소하기보다는 그대로 유지시키거나 또는 확산시킬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개헌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시키는 건 가능할 것입니다만, 그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아무런 전망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난맥상은 현행의 87년 헌법이 가지는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넘어 너무도 많은 권력을 시민사회로부터 국가영역으로 이전시켜 둔 것이 현행 헌법인데, 그 약점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한 것이 현재의 윤석열 정부의 난맥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 정부를 제거하는 수준에 머무는 개헌이라면 언제든지 지금과 같은 상황이 또 반복될 수 있게 방치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어떤 건가요?
"대통령에게 무한한 권력을 부여해 놓고 그를 국민이 통제하고 경우에 따라 소환할 수 있는 길을 막아놓은 걸 들 수 있습니다. 임기 단축 위한 원포인트 개헌은 이런 문제점을 치유하지 못합니다. 실제 우리에게 절실한 건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지칭됨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이 가지고 있는 비민주적 한계 조항들을 제대로 고쳐내는 작업이고, 이 작업을 우리 시민들이 능동적으로 처리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탄핵 또는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보다 2단계의 개헌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례는 이 점에서 좋은 모범이 됩니다. 1994년 백인 정부를 축출한 남아공은 임시헌법 만들어 일단 정권교체 실시한 뒤, 제대로 된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 시기 등을 세세하게 정해서 이 임시헌법에 명문 규정으로 못 박아 둡니다.
우리의 경우 일각에서 2단계 헌법 개정 방식을 거론하기는 하는데, 그 2차의 헌법개정을 하나의 정치적 약속으로 차기 정부에 일임한다는 점에서, 그 개헌 과정을 임시헌법에 명문화한 남아공의 경우와 큰 차이를 보입니다. 지난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제안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헌법 개정 논의가 나오다가 결국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방식이 아니라 기왕에 헌법 개정할 것 같으면 대통령 임기 단축과 더불어서 새로운 헌법을 만들기 위한 절차, 방법 또는 방향성을 이 개정 헌법에다가 못 박아두는 그런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하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해서 결정하는 게 우리 헌법체제죠. 이게 맞을까 싶거든요. 대통령은 선출직이죠. 대통령이 되는 건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지지가 있어야죠. 그런데 우리 헌법 체제는 국민적 지지가 0%라도 헌법과 법률에 중대한 위반이 없다면 탄핵을 당하지 않아요. 차라리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경우, 적어도 대통령 탄핵은 국민 투표로 결정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그것이 현행 헌법의 한계입니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로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면서도 국민의 민주화를 향한 열정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권력도 부여하지 않은 것이지요. 이게 현행 헌법의 치명적인 한계입니다. 국민들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든지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 등 헌법기관을 소환할 수 있는 국민 소환제도 규정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현행 헌법은 국민주권주의에 철저하지 못해요. 그래서 국민들은 아무런 권력을 갖지 못하는 반쪽의 헌법이라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입니다. 헌법을 제대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가능합니다. 국가영역에 집중된 권력을 다시 원주인인 국민들에게 되돌려 줌으로써 실질적인 국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는 그런 헌법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미국은 어떤가요?
"미국헌법에도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근데 미국은 연방국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51개의 정부가 존재하거든요. 국민들의 일상에 주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주 정부의 법이지 연방헌법이나 미국 대통령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방차원에서의 국민소환이나 국민발안의 필요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지방자치제조차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고 대부분의 권력이 국가영역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대통령의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은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지금과 같이 탄핵이니 임기 단축 개헌이니 하는 우회적인 경로가 거론되는 상황이 벌어졌고요. 실제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을 제대로 바꾸어내는, 그래서 국민들이 실질적인 국가의 주인이 되도록 만드는 그런 헌법적 틀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고민이겠지요."
- 지금 많이 나오는 얘기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를 거쳤어도 안 바뀌었단 거죠, 그게 헌법 개정을 안 했기 때문일까요?
"헌법은 권력에 관한 법입니다. 그것은 국가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와 어디에 귀속되는가를 정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민주사회라면 헌법을 바꾸는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그런 목소리에 바탕을 두어서 정치 체제를 바꿔냅니다. 근데 박근혜 탄핵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개정의 논의는 이런 당위론과 먼 거리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 개헌논의의 핵심적인 의제는 4년 중임제냐 5년 단임제냐 등의 통치 기구에 관한 것에 한정되었고 국민들이 국가 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 또는 국가에 집중된 권력들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분산하면 되는 것인지 같은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러다 보니까 현재와 같은 이런 정치적인 난맥 현상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저는 지금부터라도 그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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