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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끊길 정도로 생활고, 연기 포기할 생각 안 했다"

[액터인사이드] 배우 홍의준

등록|2024.11.07 08:08 수정|2024.11.07 08:09
작품 속 '주연'과 '조연', 그리고 '단역'의 구분은 있을지언정 연기와 인생의 주연, 조연은 따로 없습니다. 액터 인사이드는 연기를 해오며 온갖 희로애락을 겪었을 배우들을 응원하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죽는 날짜를 고지받고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며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 지난 10월 2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지옥> 시즌2는 동명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묵시록적 세계관을 대한민국 사회에 녹여내며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누군가는 신의 뜻을 따르겠다며 광신도가 되고, 한편에선 그럴싸한 종교 단체를 만들어 사람들을 관리한다. 그 틈에서 무신론을 주창하며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돕는 소도라는 단체가 암약한다.

민혜진(김현주) 변호사를 주축으로 한 소도의 존재감은 시즌2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중 소도 남부 리더 김성집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원리원칙주의자로 소도 여러 리더들의 분쟁을 중재하다가 결국 민혜진의 목숨마저 노리게 된다. 배우 양동근이 맡을 것으로 알려진 이 캐릭터를 일정 문제로 하차하게 되면서 홍의준이 맡게 되었다. 아직 대중에게 생소한 이 배우는 특유의 액션과 눈빛 연기로 눈도장을 찍는 중이다. 6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직접 만났다.

"큰 기쁨이 큰 무게감으로 다가와"

▲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시즌2의 한 장면. ⓒ 넷플릭스


극중 과거 사연이 자세하게 나오진 않지만 김성집은 국무총리 이수경(문소리)의 선거운동을 돕다가 환멸을 느끼고 태권도장을 운영해 온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그랬던 그가 소도 멤버가 된 후 민혜진과 함께 모종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배우 입장에선 김성집의 심리와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었다. 10년 넘게 연극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다 처음으로 매체에서 중심인물을 맡게 된 그 순간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기생수 더 그레이>에서 단역 출연했을 당시 연상호 감독이 눈 여겨 보고 주변에 의견을 물어 캐스팅한 경우였다고 한다.

"양동근 선배가 일정상 못하게 되면서 <기생수: 더 그레이> 촬영 감독님께 물어보셨다더라. 그리고 제가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 60초 독백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는데 당시 심사위원장이셨던 권해효 선배께서도 추천하셨다고 들었다. 작년 3월이었는데 햇살이 유독 좋았던 날로 기억한다. 매니저 형이 대본을 들고 집 앞에 왔다. 보니까 <지옥2>더라. 너무 큰 역할이다 보니 마냥 기뻤던 것 같다. 형이 지금은 큰 기쁨이겠지만, 큰 무게감으로 다가올 거라며 잘 준비해보자고 했었다.

정말 그랬다. 이런 큰 역할이 처음이다 보니 현장에서 여러 조언도 들었고 혼나면서 정신을 차리기도 했다. 연상호 감독님도 여러 가이드를 주시면서 서서히 자유도를 주셨다. 돌아보면 많이 부족했는데 이런 경험을 했다는 게 제겐 너무도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제 한계를 봄과 동시에 희망을 얻었달까. 이젠 어떤 작품을 만나도 더 잘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

역할상 홍의준은 격한 액션을 소화해야 했다. 파편이 튀는 위험한 장면을 제외하곤 모두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특히 폐차장에서 민혜진과 격투하는 장면은 약 3개월 전부터 연습했다고. 홍의준은 "예전에 액션 연극을 한 적이 있어서, 익숙했지만 이번에 발차기 액션이 많아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2>에서 소도 남부 지부장 김성집을 연기한 배우 홍의준. ⓒ 메이크위드


무엇보다 김성집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게 관건이었다. "어떤 이유로 소도 멤버가 되었는지, 왜 국무총리 이수경 말에 모든 걸 걸게 됐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했다"며 홍의준은 말을 이었다.

"명분을 찾는 이상주의자일 수도 있고, 가족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큰 의미를 두기 보단 내 자녀를 위해 모든 걸 바친다는 마음이 소도를 선택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본인이 느낀 혼란한 세상에서 아이가 살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에 이수경 말대로 혼란 속에서 규칙을 만들고 체계가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화살촉이나 새진리회는 김성집과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괴기스럽게 얼굴 분장을 한 화살촉은 개인의 개성을 감추고 악행과 선행 구분이 모호해진 집단이다. 새진리회는 정치권과 유착이 심했고, 비리가 있는 집단이고. 재난 상황일 때 누구는 약탈과 무질서를 택하지만, 인간 특유의 따뜻함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김성집은 후자에 가깝다고 봤다. 그러다 소도 또한 점차 테러 집단화가 되잖나. 새진리회나 화살촉처럼 변해가는 과정에서 민혜진 홀로 고귀한 가치를 지키다 보니 김성집 입장에선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생활고에도 연기 포기할 생각 안해"

상명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인 그는 많은 배우들이 그랬듯 애초부터 연기자가 꿈은 아니었다고 한다. 전라남도 여수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손재주가 좋았고, 건축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도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돈을 많이 벌어보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 연예인을 꿈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버지껜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한다고 하고, 혼자 연극영화과가 있는 학교를 알아보고 다녔다. 다행히 실기시험 없이 수능 성적만으로 갈 수 있는 학교들이 있더라. 그렇게 입학했는데 동기들이 다들 반짝반짝하더라.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하이라이트 조명을 받았을 때 느낌을 잊지 못한다. 아, 다른 차원의 세상이구나. 그 조명 안이 나만의 공간이고 정말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구나. 거기서 자유로움을 느꼈다."

그렇게 극단 마방진에 소속하게 됐고, 서른두살이 됐을 무렵 참여한 <홍도야 우지 마라>에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게 됐다고 한다. 늦다고 하면 늦을 수도 있지만, 극단 생활을 하며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홍의준은 단 한 번도 연기를 그만둘 생각을 안 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은 직장에 다니며 안정된 모습인 것 같더라. 어느 순간 만나는 게 망설여졌다. 항상 얻어먹는 신세였거든. 사실 서른 초반까지 여러 회사에 들어갈 기회는 있었다. 여수로 내려가면 얻을 수 있는 직장도 있었고. 저도 신기한데 가스요금을 못 내서 끊기기도 했고, 밥도 연출님 댁에 가서 얻어 먹거나 극단 선배가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기도 했던 때인데 선뜻 포기할 생각이 안들더라. 근자감이라고 할까.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무대를 경험하다가 2019년 무렵 매체 연기를 하게 됐다. 선배들이 종종 제게 무대에 있더라도 안테나를 외부로 뻗어는 놓으라 조언하곤 하셨는데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 동료들과 영화 제작사에 프로필을 돌리기도 했는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서로 경쟁이라 정보를 물어보기 괜히 미안하고 그랬다. 지금이야 온라인 사이트도 있고 하잖나. 지금의 매니저형을 만나면서 뭐랄까 당장 프로필만 돌리면서 만족하기보단 연기적으로 제가 준비돼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든 무대 연기를 할 생각이 있지만, 홍의준은 영화 및 드라마에 힘을 쏟을 예정이란다. 최근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단편 영화 촬영도 마치고 왔다. 앞으로 보여줄 모습이 더 많은 그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 물었다.

"제가 절 보기에 좀 차가운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시골에서 자랐기에 푸근한 감성도 있다. 저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는 배우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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