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현장, 투명해지는 목소리... 다시 이어야 한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874]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
하릴없이 방 안에 앉아 좋은 것을 보고 맛난 것을 먹는다. 고요하고 안온한 시간을 즐긴다. 그러다 보면 온 세상이 내 방과 같이 평화로운 것만 같다. 내 몸이 편하면 저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이 안온하다. 퍼붓는 빗줄기를 대하는 감상도 마찬가지. 온기가 도는 방에 앉아 후두둑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일은 운치가 있다. 폭우 속에 집을 잃은 수재민이며 애써 지은 농작물이 떠내려갈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내다보는 건 번거롭기만 하다.
마음도 관심도 쉬이 고립된다. 제 자리에 눌러 붙어서는 볕이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를 친다. 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화려하고 커다란 것뿐. 그를 가만히 보다보면 누구 말처럼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 소실되는 게 있다는 걸 우린 너무 쉽게 잊는다.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려오지 않는, 바람결에 실리지 않고서야 전해질리 없는, 그런 목소리를.
그러고 보면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 높고 반듯한 빌딩 앞에 쳐진 텐트에서, 또 도심 높은 건물 옥상 위에 올라선 누구에게서, 그도 아니면 통근길 지하철을 가로막고 소리를 내지르는 어떤 이에게서 그런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단의 사람들과 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누구들과 또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목소리를 들었던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귀 기울여 본 적 드물다. 매체가 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여서,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이어서 나는 그를 외면해온 것일까.
세상에 흩뿌려진, 관심 간절한 목소리들
세상에 흩뿌려진 목소리는 하나같이 투명해진다. 피켓을 들고 대로 한 가운데 있어도 지나치는 이들 가운데 눈여겨보는 이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배경으로, 목소리가 아닌 배경음으로 전락하는 존재들. 매체가 좀처럼 조명하지 않는 이들을 어느 바람이 감싸 우리 곁에 이르렀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다는 바람이다.
<봄바람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는 모두 12개 짤막한 영상이 이어 붙은 다큐멘터리다. 학교 성폭력을 공론화했다 불이익을 당한 사건으로부터 강원도교육청이 혁신학교를 감사해 몇몇 교사를 부당하게 징계한 사례, 정부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시민사회를 지켜나가려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차례로 비춘다.
할매할배들이 농성한 밀양 송전탑 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 가덕도와 제주도에서 이뤄지는 신공항 건설계획이 자연을 얼마만큼 훼손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10·29 이태원 참사 속 국가책임을 재차 조명하고 정권에 뿌리내린 뉴라이트 역사관과 반공주의 문제를 비판한다. 탈북민을 앞세워 여성가족부 폐지논란을 환기하는 한편,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의 필요,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제한규정의 해소 또한 촉구한다.
마지막은 이 모든 사안에 강력한 책임이 있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비판으로 채웠다. 투쟁현장을 잇는 일의 중요성이 언급되는 가운데 서로 다른 12편의 다큐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음을 알도록 한다.
<봄바람 시즌2>는 서로 다른 다큐멘터리를 이어 붙인 한 편의 장편이다. 각각의 투쟁현장을 여러 감독이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전작 <봄바람 프로젝트-여기, 우리가 있다>와 궤를 같이하지만, 전작과 같이 문정현 신부를 중심으로 한 봄바람 순례단이 각각의 투쟁현장을 찾아나서는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봄바람 시즌2>는 서로 다른 주제와 형식의 짧은 다큐를 한 데 묶어 상영하는 일이 유효한지를 따져보는 작품이 된다. 시민사회, 또 투쟁의 기록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층위에서 쟁점을 다루는 작품을 한 데 묶은 결과물이란 점에서 형식의 적절함을 논해볼 수는 있는 일이다.
엔딩 크레디트에 오른 작품은 모두 11편이다. 순서대로 <지해복 교사의 투쟁>, <차별없이 억압없이 배제없이 혐오없이>, <손잡으면 죽지 않으니까 온빛>, <지지않는 마음>,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하라!>, <대수산봉, 통한못, 그리고 숨골>, <Don't Look Again>, <사상전쟁>, <향아에게>, <동냥하지 않고 공부하기>, <이주노동자에게는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다.
서로 다른 11편이 모여 87분짜리 다큐를 이뤘으니 편당 평균 8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단편으로 쳐도 짧은 이 시간 동안 각각의 작품이 서둘러 제 이야기를 내보인다.
처음 두 편은 교사의 이야기다. 지해복 교사는 30년 간 사회교사로 근무하다 성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의 문제를 고발한 뒤 다른 학교로 부당전보를 당한 이다. 영화는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워 학교는 물론 교육청까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한 사실을 고발한다. 서울시교육청의 부당전보 결정을 철회하라며 지 교사와 연대한 이들의 투쟁현장을 찾아나선 카메라가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담아낼 때 관객은 비로소 매체가 제대로 담아 전하지 않은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음 또한 마찬가지. 강원도형 혁신학교로 지정됐던 유천초 교사들의 이야기다. 교사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인터뷰한 영화는 혁신학교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부터 강원도교육청의 집요한 감사,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부당한 징계를 받고 싸워온 교사들의 인터뷰가 저들의 사정과 학교를 넘어 세상의 변화로까지 나아가며 바람은 세 번째 영화를 이어 붙인다.
이번엔 지리산 인근 전북 남원 산내면에서 자원순환가게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 온빛이 주인공이다. 귀촌해 지역사회에서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직업을 요약하자면 풀뿌리 활동가쯤이 될까.
현 정부가 시민사회 단체며 활동가에 대한 지원을 줄인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세수결손과 경기침체로 시민사회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등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다양한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주체들이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린 건 예고된 일이다.
온빛의 삶 또한 얼마 다르지 않다. 인터뷰 내내 돈 벌지 못하는 활동가의 지쳐가는 삶과 그럼에도 의미 있는 일상을 토로하니 듣는 이도 절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노인들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 도시에서 쓰는 전기를 지역 발전소에서 끌어오기 위해 존재하는 송전탑, 그로 인해 유발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질병, 악화되는 삶의 질 따위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다. 또 한 편으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제조기업과 그 경쟁력을 위해 일방적일 만큼 편의를 봐주는 정부의 이야기도 한 데 얽혀 있다.
지역 활동가를 카메라 앞에 앉혀 에너지 생산과 소비로 이어지는 고리 가운데 놓인 부정의함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전기를 쓰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엔 관심 없는 나 같은 이의 무심함을 질타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기후위기 가운데서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에 관심 없는 한국의 현실은 이를 그저 무심함의 문제로만 놓아둘 수도 없도록 한다. 아직 밀양엔 18개 마을, 143가구 주민들이 합의 않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가까이가 지나는 동안 관심에서 멀어진 밀양을 우리는 얼마나 외면하고 지나쳐 왔던가.
다음 두 편은 신공항 건설에 대한 것이다. 먼저 것은 가덕도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발맞춰 서둘러 건설한다던 명분이 엑스포 유치 실패에도 모른 척 이어지고 있다. 인근엔 김해공항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13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새로 공항을 건설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핀다. 외부에서 유입된 투기자본만이 승자가 되는 상황, 국가가 국민들을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터뷰가 마음에 남는다. 한편으로 수용되는 부지의 환경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파괴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더 많은 개발을 부르는 현 체제 아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자연이 아닐까.
제주 제2공항 건설로 예견되는 환경파괴 문제를 다룬 뒷 작품은 제주시민들이 조직한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시민단체의 뒤를 따른다. 수용될 부지 안에 물이 토지로 빠져드는 수백 개의 숨골이 있다. 이곳을 콘크리트로 메우면 어떤 효과가 일까. 그 영향이 어떠할지를 말하는 시민의 말 뒤로 정부가 환경파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이 차근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정부는 강행을 예고하고 변화는 없다. 부족한 것은 관심이다. 제주 어느 시민단체만의 노력으론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고립을 풀고 현장을 잇는 일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그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다음을 이룬다. 반복되는 참사, 정부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된다.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 끝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침묵하는 만큼 불행해진다"는 말을 전하는 내래이터는 그날 이후 "자주 살아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고 떠올린다.
영화는 차츰 제 표적에 다가선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발견된 '공산전체주의'란 단어, 사전에도 없는 그 단어가 뉴라이트로부터 유래했음을 알린다. 이 나라의 정치가, 심지어 대통령이 가져선 안 될 역사관과 세계관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것일 테다. 개개의 투쟁현장으로부터 정권의 핵으로 다가서는 것이 <봄바람 시즌2>의 방향성인 걸까. 국가의 무능을 넘어 국가폭력의 정당화로 나아가는 정부의 모습을 영화는 읽어내려 한다.
다음 작품은 영화 가운데 다분히 예외적 인상을 준다. 어느 탈북민의 내래이션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현 정권의 공약 중 하나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에둘러, 하지만 명확히 비판한다. 북한에 두고 온 여자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영상에세이로 투쟁현장이거나 정치다큐라 보아도 무방할 앞의 것과 달리 여러모로 감성적인 전달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작품이 이르는 결론이 정권, 특히 여성가족부 해체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넓게보면 한 틀 안에 들었다 봐도 좋겠다.
장애인의 평생교육 투쟁은 한국이 여전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를 되짚게 한다. 살펴보려 애쓰지 않으면 눈에 들지 않는 그네들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주의 깊게 살펴왔는가. 전국 하나 남은 평생교육기관이 예산 문제로 문을 닫고, 또 장애인도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달란 요구에 번번이 예산 탓을 하는 현실을 이와 같은 투쟁기가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교육받기 위해 동냥을 해야 하느냔 외침에 어느 누가 다른 말을 내놓을 수 있을까. 현 정권이 들어선 뒤 장애인 평생교육법에 신중검토 입장으로 돌아선 한국 정부를 제외하곤 말이다.
고용허가제에 묶인 이주노동자 문제가 마지막 꼭지를 장식한다. 3년 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는단 사실, 임금체불액 또한 연간 1500억 원가량 지급받지 못한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주노동자 단체가 벌이는 집회를 뒤따르고 그들의 주장을 담아내며,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다큐는 이주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담아낸다. 이로써 <봄바람 시즌2>에 든 열한 편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11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감독과 출연자가 각각의 문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명한다. 교육과 개발, 시민사회와 투쟁현장이란 점에서 나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와 긴밀히 엮이는 것은 아니다. 현 정권 아래서 생긴 문제도 일부 있으나 지난 정권, 혹은 진보적 인사의 책임 아래 문제화된 건도 적지 않다. 다만 이 모두가 한국이란 국가, 또 한반도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부정의를 지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22년 문 신부와 봄바람 순례단의 투쟁현장 방문기를 중심축으로 했던 영화가 비슷한 구성으로 11개의 서로 다른 작품을 붙인 점이 이색적이다. 시즌2를 표방했지만 순례단은 어디에도 없다. 11편의 작품 가운데 투쟁현장이 아닌 곳도, 단순한 주의·주장인 이야기도 없지 않다. 어느 것은 이대로가 딱인 듯도 싶지만, 또 어느 것은 장편으로 만들어져야 더 적합하다는 인상도 든다. 8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문제와 얽힌 여러 면모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긴 무리가 따르는 탓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투쟁현장을, 그 모두가 현 정권이 촉발한 것이 아님에도 윤석열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묶어내는 것이 적합했을까. 영화가 연속성 있는 대한민국 정부보다도 윤석열과 현 정권을 가리키고 있음이 명백하단 사실이 이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봄바람 시즌2>의 미덕은 차라리 현장과 관객 모두의 고립을 풀고 현장과 삶의 터전을 잇는 본래의 기획의도에 있다 보아야 할 테다. 투쟁현장을 찾아 잇는 일의 중요성을 알린 첫 작품이 그러했듯, 두 번째 이야기 또한 제 현장과 삶의 터전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들을 잇고 맺어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고백하자면 나 또한 세상에 있는 줄도 알지 못하였던 문제를 여럿 알게 됐다. 또 누군가는,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를 보다 상세히 알아보고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각각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엔 턱없이 부족한 러닝타임일지라도 애써 그를 편집해 한 편의 영화로 묶어내는 작업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어느 못난 정권을 향한 칼바람이 아니라 현장과 현장을 잇는 봄바람으로서, 나는 이 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다 여긴다.
마음도 관심도 쉬이 고립된다. 제 자리에 눌러 붙어서는 볕이 좋은 방향으로만 가지를 친다. 매체를 통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는 화려하고 커다란 것뿐. 그를 가만히 보다보면 누구 말처럼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많은 목소리가 있었다. 어느 높고 반듯한 빌딩 앞에 쳐진 텐트에서, 또 도심 높은 건물 옥상 위에 올라선 누구에게서, 그도 아니면 통근길 지하철을 가로막고 소리를 내지르는 어떤 이에게서 그런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다.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일단의 사람들과 크레인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는 누구들과 또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목소리를 들었던 것만 같다.
그러나 그 목소리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를 귀 기울여 본 적 드물다. 매체가 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소리여서, '돈 많이 벌고 TV 나오고 유명해지고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이들이어서 나는 그를 외면해온 것일까.
세상에 흩뿌려진, 관심 간절한 목소리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스틸컷 ⓒ 다큐이야기
세상에 흩뿌려진 목소리는 하나같이 투명해진다. 피켓을 들고 대로 한 가운데 있어도 지나치는 이들 가운데 눈여겨보는 이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배경으로, 목소리가 아닌 배경음으로 전락하는 존재들. 매체가 좀처럼 조명하지 않는 이들을 어느 바람이 감싸 우리 곁에 이르렀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다는 바람이다.
<봄바람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는 모두 12개 짤막한 영상이 이어 붙은 다큐멘터리다. 학교 성폭력을 공론화했다 불이익을 당한 사건으로부터 강원도교육청이 혁신학교를 감사해 몇몇 교사를 부당하게 징계한 사례, 정부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시민사회를 지켜나가려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차례로 비춘다.
할매할배들이 농성한 밀양 송전탑 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리고, 가덕도와 제주도에서 이뤄지는 신공항 건설계획이 자연을 얼마만큼 훼손할 수 있는지를 경고한다. 10·29 이태원 참사 속 국가책임을 재차 조명하고 정권에 뿌리내린 뉴라이트 역사관과 반공주의 문제를 비판한다. 탈북민을 앞세워 여성가족부 폐지논란을 환기하는 한편,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의 필요,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제한규정의 해소 또한 촉구한다.
마지막은 이 모든 사안에 강력한 책임이 있는 윤석열 정부를 향한 비판으로 채웠다. 투쟁현장을 잇는 일의 중요성이 언급되는 가운데 서로 다른 12편의 다큐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음을 알도록 한다.
<봄바람 시즌2>는 서로 다른 다큐멘터리를 이어 붙인 한 편의 장편이다. 각각의 투쟁현장을 여러 감독이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전작 <봄바람 프로젝트-여기, 우리가 있다>와 궤를 같이하지만, 전작과 같이 문정현 신부를 중심으로 한 봄바람 순례단이 각각의 투쟁현장을 찾아나서는 모습은 따로 보이지 않는다.
그 점에서 <봄바람 시즌2>는 서로 다른 주제와 형식의 짧은 다큐를 한 데 묶어 상영하는 일이 유효한지를 따져보는 작품이 된다. 시민사회, 또 투쟁의 기록이란 공통점이 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층위에서 쟁점을 다루는 작품을 한 데 묶은 결과물이란 점에서 형식의 적절함을 논해볼 수는 있는 일이다.
엔딩 크레디트에 오른 작품은 모두 11편이다. 순서대로 <지해복 교사의 투쟁>, <차별없이 억압없이 배제없이 혐오없이>, <손잡으면 죽지 않으니까 온빛>, <지지않는 마음>, <가덕도 신공항 백지화하라!>, <대수산봉, 통한못, 그리고 숨골>, <Don't Look Again>, <사상전쟁>, <향아에게>, <동냥하지 않고 공부하기>, <이주노동자에게는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스틸컷 ⓒ 다큐이야기
서로 다른 11편이 모여 87분짜리 다큐를 이뤘으니 편당 평균 8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다. 단편으로 쳐도 짧은 이 시간 동안 각각의 작품이 서둘러 제 이야기를 내보인다.
처음 두 편은 교사의 이야기다. 지해복 교사는 30년 간 사회교사로 근무하다 성폭력에 노출된 학생들의 문제를 고발한 뒤 다른 학교로 부당전보를 당한 이다. 영화는 그녀를 카메라 앞에 세워 학교는 물론 교육청까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한 사실을 고발한다. 서울시교육청의 부당전보 결정을 철회하라며 지 교사와 연대한 이들의 투쟁현장을 찾아나선 카메라가 그들이 외치는 구호를 담아낼 때 관객은 비로소 매체가 제대로 담아 전하지 않은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음 또한 마찬가지. 강원도형 혁신학교로 지정됐던 유천초 교사들의 이야기다. 교사들을 카메라 앞에 세워 인터뷰한 영화는 혁신학교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부터 강원도교육청의 집요한 감사, 그 결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부당한 징계를 받고 싸워온 교사들의 인터뷰가 저들의 사정과 학교를 넘어 세상의 변화로까지 나아가며 바람은 세 번째 영화를 이어 붙인다.
이번엔 지리산 인근 전북 남원 산내면에서 자원순환가게를 비롯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이 온빛이 주인공이다. 귀촌해 지역사회에서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가는 그녀의 직업을 요약하자면 풀뿌리 활동가쯤이 될까.
현 정부가 시민사회 단체며 활동가에 대한 지원을 줄인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세수결손과 경기침체로 시민사회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등 당장 돈을 벌지 못하는 다양한 부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주체들이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내몰린 건 예고된 일이다.
온빛의 삶 또한 얼마 다르지 않다. 인터뷰 내내 돈 벌지 못하는 활동가의 지쳐가는 삶과 그럼에도 의미 있는 일상을 토로하니 듣는 이도 절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2014년 6월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노인들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이뤄졌다. 도시에서 쓰는 전기를 지역 발전소에서 끌어오기 위해 존재하는 송전탑, 그로 인해 유발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질병, 악화되는 삶의 질 따위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있다. 또 한 편으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제조기업과 그 경쟁력을 위해 일방적일 만큼 편의를 봐주는 정부의 이야기도 한 데 얽혀 있다.
지역 활동가를 카메라 앞에 앉혀 에너지 생산과 소비로 이어지는 고리 가운데 놓인 부정의함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전기를 쓰면서도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엔 관심 없는 나 같은 이의 무심함을 질타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기후위기 가운데서 근본적인 에너지 전환에 관심 없는 한국의 현실은 이를 그저 무심함의 문제로만 놓아둘 수도 없도록 한다. 아직 밀양엔 18개 마을, 143가구 주민들이 합의 않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10년 가까이가 지나는 동안 관심에서 멀어진 밀양을 우리는 얼마나 외면하고 지나쳐 왔던가.
다음 두 편은 신공항 건설에 대한 것이다. 먼저 것은 가덕도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발맞춰 서둘러 건설한다던 명분이 엑스포 유치 실패에도 모른 척 이어지고 있다. 인근엔 김해공항이 운영되고 있음에도 13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새로 공항을 건설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핀다. 외부에서 유입된 투기자본만이 승자가 되는 상황, 국가가 국민들을 투기꾼으로 만들고 있다는 인터뷰가 마음에 남는다. 한편으로 수용되는 부지의 환경이 되돌릴 수 없을 만큼 파괴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더 많은 개발을 부르는 현 체제 아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자연이 아닐까.
제주 제2공항 건설로 예견되는 환경파괴 문제를 다룬 뒷 작품은 제주시민들이 조직한 제주 제2공항 강행저지 시민단체의 뒤를 따른다. 수용될 부지 안에 물이 토지로 빠져드는 수백 개의 숨골이 있다. 이곳을 콘크리트로 메우면 어떤 효과가 일까. 그 영향이 어떠할지를 말하는 시민의 말 뒤로 정부가 환경파괴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이 차근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정부는 강행을 예고하고 변화는 없다. 부족한 것은 관심이다. 제주 어느 시민단체만의 노력으론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고립을 풀고 현장을 잇는 일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스틸컷 ⓒ 다큐이야기
159명이 사망한 이태원 참사, 그에 대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이 다음을 이룬다. 반복되는 참사, 정부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된다.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 끝내서는 안 된다. "세상은 침묵하는 만큼 불행해진다"는 말을 전하는 내래이터는 그날 이후 "자주 살아있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진다"고 떠올린다.
영화는 차츰 제 표적에 다가선다.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발견된 '공산전체주의'란 단어, 사전에도 없는 그 단어가 뉴라이트로부터 유래했음을 알린다. 이 나라의 정치가, 심지어 대통령이 가져선 안 될 역사관과 세계관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것일 테다. 개개의 투쟁현장으로부터 정권의 핵으로 다가서는 것이 <봄바람 시즌2>의 방향성인 걸까. 국가의 무능을 넘어 국가폭력의 정당화로 나아가는 정부의 모습을 영화는 읽어내려 한다.
다음 작품은 영화 가운데 다분히 예외적 인상을 준다. 어느 탈북민의 내래이션으로 시작하는 작품은 현 정권의 공약 중 하나인 여성가족부 폐지를 에둘러, 하지만 명확히 비판한다. 북한에 두고 온 여자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영상에세이로 투쟁현장이거나 정치다큐라 보아도 무방할 앞의 것과 달리 여러모로 감성적인 전달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작품이 이르는 결론이 정권, 특히 여성가족부 해체에 대한 비판이란 점에서 넓게보면 한 틀 안에 들었다 봐도 좋겠다.
장애인의 평생교육 투쟁은 한국이 여전히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가를 되짚게 한다. 살펴보려 애쓰지 않으면 눈에 들지 않는 그네들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주의 깊게 살펴왔는가. 전국 하나 남은 평생교육기관이 예산 문제로 문을 닫고, 또 장애인도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달란 요구에 번번이 예산 탓을 하는 현실을 이와 같은 투쟁기가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교육받기 위해 동냥을 해야 하느냔 외침에 어느 누가 다른 말을 내놓을 수 있을까. 현 정권이 들어선 뒤 장애인 평생교육법에 신중검토 입장으로 돌아선 한국 정부를 제외하곤 말이다.
▲ 봄바람 프로젝트 시즌2: 다시, 바람이 분다사전 후원 포스터 ⓒ 봄바람
고용허가제에 묶인 이주노동자 문제가 마지막 꼭지를 장식한다. 3년 간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받는단 사실, 임금체불액 또한 연간 1500억 원가량 지급받지 못한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주노동자 단체가 벌이는 집회를 뒤따르고 그들의 주장을 담아내며,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다큐는 이주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를 담아낸다. 이로써 <봄바람 시즌2>에 든 열한 편의 이야기가 끝이 난다.
11편의 영화는 서로 다른 감독과 출연자가 각각의 문제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명한다. 교육과 개발, 시민사회와 투쟁현장이란 점에서 나름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와 긴밀히 엮이는 것은 아니다. 현 정권 아래서 생긴 문제도 일부 있으나 지난 정권, 혹은 진보적 인사의 책임 아래 문제화된 건도 적지 않다. 다만 이 모두가 한국이란 국가, 또 한반도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부정의를 지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윤석열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22년 문 신부와 봄바람 순례단의 투쟁현장 방문기를 중심축으로 했던 영화가 비슷한 구성으로 11개의 서로 다른 작품을 붙인 점이 이색적이다. 시즌2를 표방했지만 순례단은 어디에도 없다. 11편의 작품 가운데 투쟁현장이 아닌 곳도, 단순한 주의·주장인 이야기도 없지 않다. 어느 것은 이대로가 딱인 듯도 싶지만, 또 어느 것은 장편으로 만들어져야 더 적합하다는 인상도 든다. 8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가운데 문제와 얽힌 여러 면모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긴 무리가 따르는 탓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투쟁현장을, 그 모두가 현 정권이 촉발한 것이 아님에도 윤석열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묶어내는 것이 적합했을까. 영화가 연속성 있는 대한민국 정부보다도 윤석열과 현 정권을 가리키고 있음이 명백하단 사실이 이 질문을 묻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봄바람 시즌2>의 미덕은 차라리 현장과 관객 모두의 고립을 풀고 현장과 삶의 터전을 잇는 본래의 기획의도에 있다 보아야 할 테다. 투쟁현장을 찾아 잇는 일의 중요성을 알린 첫 작품이 그러했듯, 두 번째 이야기 또한 제 현장과 삶의 터전을 벗어나기 어려운 이들을 잇고 맺어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누군가는, 고백하자면 나 또한 세상에 있는 줄도 알지 못하였던 문제를 여럿 알게 됐다. 또 누군가는, 고백하자면 나 또한 그를 보다 상세히 알아보고 관심을 두게 될 것이다.
각각의 문제를 제대로 풀기엔 턱없이 부족한 러닝타임일지라도 애써 그를 편집해 한 편의 영화로 묶어내는 작업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어느 못난 정권을 향한 칼바람이 아니라 현장과 현장을 잇는 봄바람으로서, 나는 이 프로젝트가 이어질 수 있다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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