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아버지 댁에 온 남자... 그가 밝힌 반전 정체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위대한 부재>
코로나19로 인한 최근 몇 년 동안은 온라인 환경의 눈부신 약진 속에 현실의 경계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각기 단절되고 분리돼 극심한 당혹감과 소외에 시달려야 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는 순식간에 대중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변화에 따라가기 급급하던 참에 마치 세상이 뒤집히듯 발생한 일이다. 대역병의 공포에서 이제 원래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이제 더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겉보기엔 다시 예전처럼 살아가는 듯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무척 달라진 것이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이 봉쇄된 가운데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했다. 산으로 들로 나가거나, 그동안은 돌아보지 못했던 집 안에서의 소소한 거리를 찾았다. 그동안은 바쁜 삶을 이유로 떨어져 있던 가족이 거의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타인이 되면서 좋건 나쁘건 다양한 상황이 발생했다. 누군가는 가족의 재발견을 체험하고, 다른 누군가는 도망칠 수 없는 유배지에 갇힌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 숱한 개별적 상황을 첫 장편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차기작에 들어가려던 한 감독 역시 겪게 된다.
하필 코로나가 퍼지던 시기에 치매 판정을 받은 부친을 면회하기 위해 월 1회, 고향인 규슈 북부지방으로 당시 거주하던 도쿄에서 신칸센 고속열차를 타고 왕복해야 했다. 때가 때인지라 다른 일정을 잡기도 어렵고, 준비하던 작업도 무기한 연기되던 상황, 답답한 가운데에도 열차 좌석에서 이것저것 평소에 하지 않던 사색에 잠기던 감독의 머릿속에 '부재'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두 번째 장편 <위대한 부재>의 출발점은 그렇게 시작됐다.
노학자가 치매에 걸린 후 드러나는 비밀들
평범해 보이는 어느 주택가, 그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긴박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중무장한 경찰 특수부대 대원들이 테러 진압 작전이라도 벌이는지 한 집 주변을 포위한 채 돌입명령을 기다린다. 순간 영화의 장르를 잘못 알았나 싶을 정도다. 방탄 방패를 들고 기관단총으로 완전무장한 부대원들이 마침내 현관으로 진입하려는 참,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린다. 정장을 차려입은 초로의 남성이 출근길에 나서듯 등장한 것이다.
장소가 바뀌면, 도쿄의 어느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한창 연극 연습에 매진하는 중이다. 배우 중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급한 전갈을 확인한 그는 짐을 꾸려 고향인 후쿠오카로 부랴부랴 달려간다. 인질 없는 인질극을 벌이던 중 긴급 체포된 뒤 치매 판정을 받아 병원에 수용된 노인의 아들이다. 보호자로서 수속절차를 진행하는 그의 곁에 아내 역시 급히 당도한다. 둘은 병원 관계자와 입원 후속 조치를 논의한다. 아들은 정작 부친의 내밀한 사적 정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병원이 확인하고픈 결정사항에도 쉽게 답할 수 없다.
난처한 심경을 숨기려는 듯 그는 병원 관계자에게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한다. 아내는 남자의 그런 행동을 나무라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는 표정을 보인다. 새어머니와 재혼한 부친과 그는 성년이 된 후 20년 넘게 한두 번만 만나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 배우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대작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한 사실을 알릴 겸 아버지를 찾아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자신이 병원 직원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의 판박이, 아니 몇 배 더 냉랭한 표정과 태도로 기껏 찾은 부친은 아들에게 마치 불성실한 학생을 얼음 같은 논리로 꾸짖듯 대할 따름이다. 그런 불편한 부자관계를 염려하며 중재하는 건 새어머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동극 이후 그의 행방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아들은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재혼 이후 삶을 거슬러 추적하기 시작한다. 집에서 발견된 개인적인 노트와 일기장, 구석구석에 가득 붙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메모지와 파편적 일상을 기록한 사진들을 조합해 그는 부친의 과거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물리학 교수로 X선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권위 있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퇴임 후 소일거리로 아마추어 무전에 몰두하며 새어머니와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석연찮은 증언과 여전히 실종상태인 새어머니의 안위, 그리고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아버지가 면회 때마다 불쑥 들려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비밀 이야기들이 연달아 아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대체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일기장에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다시피 재혼한 속사정과 함께 새어머니를 향한 기구한 순애보가 가득 기록돼 있었다. 일기를 읽어가며 그들의 내밀한 연정을 상상할 때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체 앞에 선 아들
영화는 내내 기억과 감정, 그리고 '부재'의 감각을 연결하며 혈연으로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남이나 다를 바 없었던 가족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탐구생활 시간으로 진행된다. 아들은 자기 행복하겠다고 어머니와 자신을 내팽개친 부친에게 어릴 적 마땅한 애정을 별로 얻지 못한 유년기를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어엿하게 자리를 잡은 소식을 전하고자 어려운 걸음을 했지만, 그가 어릴 적 겪었던 냉담함은 여전한 데다 지적 권위를 내세우는 재수 없는 태도 역시 변한 게 없다. 그런데도 유일한 혈육인지라 보호자로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는 어차피 별 기대치가 없었다는 듯, 배우의 호기심으로 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대체 아버지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사이 좋던 새어머니와 사이에서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들은 탐정이자 고고학자가 돼 어릴 적 파편적으로 기억하는 부친의 은밀한 삶의 조각을 차례로 수집해나간다. 메모지에 적힌 단편적인 사건들을 지도처럼 배치하니 지난 몇 년간 조금씩 심각해지던 치매 증상이 확인된다.
50년에 걸친 사랑을 키워온 새어머니 '나오미'와 본인에게 그런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를 돌보던 새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과연 측량할 수 있는 성격일까. 그런 아들의 머릿속 상상은 시각화돼 관객에게 줄곧 제시된다.
아버지가 병원에 수용되고, 새어머니가 종적을 감춘 집을 방문한 아들은, 누군가가 최근에도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정체를 통 알 수 없다. '내가 모르는 게 이리도 많을 줄이야!' 하며 그저 추리하고 또 추리할 뿐이다.
온갖 불길한 상상과는 달리, 결국 마주친 의문의 침입자는 새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각자 부모의 느닷없는 이혼으로 동병상련으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둘은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하지만, 미스터리는 통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은 채다. 오히려 몇 배로 증폭됐다는 게 더 적합해 보인다.
영화는 탐정 스릴러물보다는 심리 미스터리에 한층 더 가까운 태도로 접근한다. 열심히 이곳저곳 수소문하며 아버지의 은밀한 후반생을 쫓는 아들은 부친의 비밀에 근접하지만, 그가 추론한 것들이 온전히 진실인지는 사실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일기장에서 몰래 읽은 아버지의 연애편지는 그와 새어머니의 장구한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지만, 혹자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가정부처럼 착취하며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아버지의 만행은 그뿐만이 아니라는 폭로도 속출한다.
자신과 어머니에게만 냉정했을 뿐, 새어머니에겐 무한한 사랑을, 공적으로는 성실하고 존경받는 학자로 널리 인정을 받던 부친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 길 사람 속은 어찌 이리도 모순적이란 말인가. 파면 팔수록 혼란은 더해만 간다.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이제 뭔가 좀 큰 그림은 그려진 것 같다. 아들은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새어머니의 행방을 찾고, 주기적으로 아버지를 면회하며 어떤 결론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아버지에게 새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치매에 걸린 지성의 화신 같은 껍질 속에 지고지순한 감정을 감춘 부친의 당혹감은 얼마나 격렬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랑과 함께 충격과 혼돈을 동시에 겪어야 했던 새어머니의 심경은 어땠을까, 타인의 삶을 해석하고 재현해야 하는 배우로서 아들은 그들의 모순 가득한 생애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흩어진 모래를 주워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가 필사의 추적으로 도달한 어떤 진실은 겉으로는 무엇 하나 크게 바꾸지 못하고 말 성질의 것이다. 실제로 <위대한 부재>의 결말은 속이 시원한 종막과 까마득히 멀다. 그러나 감독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본인의 현재 나이 무렵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며 멀리 돌고 돌아 도착한 인생의 도착점에서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용서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혐오에서 연민으로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악연을 청산하는 과정을 사색적으로 풀이하는 동시에, 아버지+새어머니 vs 아들+아내의 2:2 조합을 연결과 대비로 그려낸다. 두 커플은 같은 듯 다른 듯 교차하며 관객 각자에게 흥미로운 비교와 판단을 열어둔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낸 아들은 이제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온전히 대면할 수 있다. 당황스러운 뜻밖의 상봉은 그렇게 평생 미뤄둔 어떤 관계의 회복으로, 하지만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공백을 동반해 완성된다.
일본영화 팬이라면 특급 스타는 아니라도 오랜 세월 활약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혼을 다한 열연이 더없이 반갑다. 그런 신뢰 가득한 연기에 감독의 정돈된 연출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 가족 드라마의 특별한 변주로 구현된다. 그 궁극의 종착점은 이 영화가 수행하는 과업처럼, 배우인 아들이 그동안 풀지 못하던 배역 연구로 승화된다. 이 역시 영화로 도달 가능한 어떤 극점의 표현법일 테다.
[작품정보]
위대한 부재
Great Absence, 大いなる不在
2023|일본|미스터리/드라마
2024.11.06. 개봉|134분|15세 관람가
감독 치카우라 케이
출연 모리야마 미라이(토야마 타카시 역), 후지 타츠야(토야마 요지 역),
마키 요코(유키 역), 하라 히데코(나오미 역)
수입/배급 판시네마(주)
2023 7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최우수배우상)
2023 6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글로벌 비전 어워드
사람들은 타인과의 접촉이 봉쇄된 가운데 어떻게든 적응해야만 했다. 산으로 들로 나가거나, 그동안은 돌아보지 못했던 집 안에서의 소소한 거리를 찾았다. 그동안은 바쁜 삶을 이유로 떨어져 있던 가족이 거의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타인이 되면서 좋건 나쁘건 다양한 상황이 발생했다. 누군가는 가족의 재발견을 체험하고, 다른 누군가는 도망칠 수 없는 유배지에 갇힌 것처럼 힘들어했다. 그런 숱한 개별적 상황을 첫 장편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차기작에 들어가려던 한 감독 역시 겪게 된다.
노학자가 치매에 걸린 후 드러나는 비밀들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 이미지 ⓒ 판시네마(주)
평범해 보이는 어느 주택가, 그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긴박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중무장한 경찰 특수부대 대원들이 테러 진압 작전이라도 벌이는지 한 집 주변을 포위한 채 돌입명령을 기다린다. 순간 영화의 장르를 잘못 알았나 싶을 정도다. 방탄 방패를 들고 기관단총으로 완전무장한 부대원들이 마침내 현관으로 진입하려는 참,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린다. 정장을 차려입은 초로의 남성이 출근길에 나서듯 등장한 것이다.
장소가 바뀌면, 도쿄의 어느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한창 연극 연습에 매진하는 중이다. 배우 중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급한 전갈을 확인한 그는 짐을 꾸려 고향인 후쿠오카로 부랴부랴 달려간다. 인질 없는 인질극을 벌이던 중 긴급 체포된 뒤 치매 판정을 받아 병원에 수용된 노인의 아들이다. 보호자로서 수속절차를 진행하는 그의 곁에 아내 역시 급히 당도한다. 둘은 병원 관계자와 입원 후속 조치를 논의한다. 아들은 정작 부친의 내밀한 사적 정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병원이 확인하고픈 결정사항에도 쉽게 답할 수 없다.
난처한 심경을 숨기려는 듯 그는 병원 관계자에게 퉁명스러운 태도로 일관한다. 아내는 남자의 그런 행동을 나무라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는 표정을 보인다. 새어머니와 재혼한 부친과 그는 성년이 된 후 20년 넘게 한두 번만 만나봤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 배우로 활동하며 처음으로 대작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한 사실을 알릴 겸 아버지를 찾아갔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자신이 병원 직원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의 판박이, 아니 몇 배 더 냉랭한 표정과 태도로 기껏 찾은 부친은 아들에게 마치 불성실한 학생을 얼음 같은 논리로 꾸짖듯 대할 따름이다. 그런 불편한 부자관계를 염려하며 중재하는 건 새어머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소동극 이후 그의 행방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아들은 자신이 거의 알지 못하는 아버지의 재혼 이후 삶을 거슬러 추적하기 시작한다. 집에서 발견된 개인적인 노트와 일기장, 구석구석에 가득 붙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메모지와 파편적 일상을 기록한 사진들을 조합해 그는 부친의 과거 삶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물리학 교수로 X선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권위 있는 학자였던 아버지는 퇴임 후 소일거리로 아마추어 무전에 몰두하며 새어머니와 평화로운 노후를 보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석연찮은 증언과 여전히 실종상태인 새어머니의 안위, 그리고 치매로 오락가락하는 아버지가 면회 때마다 불쑥 들려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비밀 이야기들이 연달아 아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대체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일기장에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다시피 재혼한 속사정과 함께 새어머니를 향한 기구한 순애보가 가득 기록돼 있었다. 일기를 읽어가며 그들의 내밀한 연정을 상상할 때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금 상황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다.
아버지의 실체 앞에 선 아들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 이미지 ⓒ 판시네마(주)
그는 어차피 별 기대치가 없었다는 듯, 배우의 호기심으로 아버지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대체 아버지는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사이 좋던 새어머니와 사이에서 자신이 모르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 아들은 탐정이자 고고학자가 돼 어릴 적 파편적으로 기억하는 부친의 은밀한 삶의 조각을 차례로 수집해나간다. 메모지에 적힌 단편적인 사건들을 지도처럼 배치하니 지난 몇 년간 조금씩 심각해지던 치매 증상이 확인된다.
50년에 걸친 사랑을 키워온 새어머니 '나오미'와 본인에게 그런 예기치 못한 상황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버지를 돌보던 새어머니가 감당해야 할 부담은 과연 측량할 수 있는 성격일까. 그런 아들의 머릿속 상상은 시각화돼 관객에게 줄곧 제시된다.
아버지가 병원에 수용되고, 새어머니가 종적을 감춘 집을 방문한 아들은, 누군가가 최근에도 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정체를 통 알 수 없다. '내가 모르는 게 이리도 많을 줄이야!' 하며 그저 추리하고 또 추리할 뿐이다.
온갖 불길한 상상과는 달리, 결국 마주친 의문의 침입자는 새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각자 부모의 느닷없는 이혼으로 동병상련으로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내던 둘은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하지만, 미스터리는 통 풀리지 않고 그대로 남은 채다. 오히려 몇 배로 증폭됐다는 게 더 적합해 보인다.
영화는 탐정 스릴러물보다는 심리 미스터리에 한층 더 가까운 태도로 접근한다. 열심히 이곳저곳 수소문하며 아버지의 은밀한 후반생을 쫓는 아들은 부친의 비밀에 근접하지만, 그가 추론한 것들이 온전히 진실인지는 사실 확인할 길이 없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일기장에서 몰래 읽은 아버지의 연애편지는 그와 새어머니의 장구한 사랑을 증언하는 것이지만, 혹자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가정부처럼 착취하며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한다. 아버지의 만행은 그뿐만이 아니라는 폭로도 속출한다.
자신과 어머니에게만 냉정했을 뿐, 새어머니에겐 무한한 사랑을, 공적으로는 성실하고 존경받는 학자로 널리 인정을 받던 부친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 길 사람 속은 어찌 이리도 모순적이란 말인가. 파면 팔수록 혼란은 더해만 간다.
마침내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 영화 <위대한 부재> 스틸 이미지 ⓒ 판시네마(주)
이제 뭔가 좀 큰 그림은 그려진 것 같다. 아들은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해 새어머니의 행방을 찾고, 주기적으로 아버지를 면회하며 어떤 결론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아버지에게 새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치매에 걸린 지성의 화신 같은 껍질 속에 지고지순한 감정을 감춘 부친의 당혹감은 얼마나 격렬했을까, 그리고 그런 사랑과 함께 충격과 혼돈을 동시에 겪어야 했던 새어머니의 심경은 어땠을까, 타인의 삶을 해석하고 재현해야 하는 배우로서 아들은 그들의 모순 가득한 생애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흩어진 모래를 주워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가 필사의 추적으로 도달한 어떤 진실은 겉으로는 무엇 하나 크게 바꾸지 못하고 말 성질의 것이다. 실제로 <위대한 부재>의 결말은 속이 시원한 종막과 까마득히 멀다. 그러나 감독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본인의 현재 나이 무렵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며 멀리 돌고 돌아 도착한 인생의 도착점에서 비로소 아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용서는 말처럼 쉬운 게 아니지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혐오에서 연민으로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기나긴 악연을 청산하는 과정을 사색적으로 풀이하는 동시에, 아버지+새어머니 vs 아들+아내의 2:2 조합을 연결과 대비로 그려낸다. 두 커플은 같은 듯 다른 듯 교차하며 관객 각자에게 흥미로운 비교와 판단을 열어둔다. 그리고 마침내 감정의 찌꺼기를 훌훌 털어낸 아들은 이제 자신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온전히 대면할 수 있다. 당황스러운 뜻밖의 상봉은 그렇게 평생 미뤄둔 어떤 관계의 회복으로, 하지만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공백을 동반해 완성된다.
일본영화 팬이라면 특급 스타는 아니라도 오랜 세월 활약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혼을 다한 열연이 더없이 반갑다. 그런 신뢰 가득한 연기에 감독의 정돈된 연출이 화학적 결합을 이뤄 가족 드라마의 특별한 변주로 구현된다. 그 궁극의 종착점은 이 영화가 수행하는 과업처럼, 배우인 아들이 그동안 풀지 못하던 배역 연구로 승화된다. 이 역시 영화로 도달 가능한 어떤 극점의 표현법일 테다.
▲ 영화 <위대한 부재> 포스터 이미지 ⓒ 판시네마(주)
[작품정보]
위대한 부재
Great Absence, 大いなる不在
2023|일본|미스터리/드라마
2024.11.06. 개봉|134분|15세 관람가
감독 치카우라 케이
출연 모리야마 미라이(토야마 타카시 역), 후지 타츠야(토야마 요지 역),
마키 요코(유키 역), 하라 히데코(나오미 역)
수입/배급 판시네마(주)
2023 71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은조개상(최우수배우상)
2023 67회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글로벌 비전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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