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동요 '산토끼'가 오랫동안 작사·작곡 미상이었던 이유

경남 창녕군 이방면 산토끼 노래학교에서 알게 된 이일래 선생 이야기

등록|2024.11.07 14:03 수정|2024.11.07 14:08

▲ 산토끼 모형에 산토끼 가사가 적혀있다 ⓒ 박귀단


국민 동요인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래가 일제강점기 시절 탄압받았다는 사실을 알까?

10월 말, 지인과 함께 경남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산토끼 노래학교를 방문했다. 산토끼 노래가 탄생한 학교는 이방초등학교다. 작은 학교인 이 학교에는 현재 16명이 재학 중이다.

동요 '산토끼'는 고 이일래(1903~1979) 선생이 1928년 작사·작곡했다. 선생은 당시 이방공립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이곳은 1921년 10월 5일 설립된 유서 깊은 학교다. 선생은 학교 뒷산인 고장산 기슭을 자주 산책 했다. 그곳에는 산토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 산토끼노래 작사 작곡자인 이일래 선생 흉상 ⓒ 박귀단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해방 되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생은 이런 염원을 담아 산책길에서 흥얼거리다 집에 돌아와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여 동요 산토끼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는 2007년 8월에 이방초등학교 동문회 발의와 경남교육청의 지원으로 선생의 흉상과 음악비 등을 세웠다. 이일래 선생의 뜻을 기리고, 동요 '산토끼' 탄생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산 교육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선생의 흉상은 이일래 선생께서 염원하던 조국해방을 연상하여 화강석 8각형으로 사방사우로 조각하여 안으로 조화를 꾀하고 밖으로 힘찬 전진을 나타냈다.

▲ 이방초등학교 전경 ⓒ 박귀단


흉상의 책을 받친 기둥 전면에 센서를 부착하여 앞에 서면 누구나 선생이 작곡한 동요가 흘러나오게 제작했다. 자연스런 홍보를 위한 기발한 발상이다. 2009년 8월에는 이방초등학교 동문들과 학교 인근 주민들이 모여서 대한민국 '산토끼노래학교'로 선포했다.

동요 <산토끼>는 1938년에 발간된 <이일래 조선동요작곡집>에 실린 21곡 중 하나다. 그 노래는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등 혼란한 사회 분위기로 인해 한동안 잊히게 됐다. 그 후 교과서에 작사, 작곡 미상으로 실리고, 누구의 노래인지도 모른 채 불려졌다.

선생이 돌아가시기 4년 전인 1975년 어느 날 이 동요집 1부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났다. 젊은 날 선생이 연모했던 소학교 여선생에게 1권을 몰래 빼서 줬던 책이다. 그해 영인본(복사본)을 발간하면서 이일래 동요는 뒤늦게 빛을 보게 되었다. 선생이 영인본 작곡집 서문에 쓴 글이다.

"내 젊음의 정열은 오직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봉사할 것이냐 하는 생각뿐이었다. 산토끼 노래가 귀엽고 예쁘게 이 강산에 널리 펴져나가면 그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1975년 영인본(복사본) 발간 전까지 오랫동안 동요 '산토끼'가 작사·작곡 미상인 채 불린 데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우리 민족을 억압했던 뼈 아픈 사연이 있다.

▲ 산토끼벽화와 산토끼 동요 탄생에 대한 안내 벽화 ⓒ 박귀단


선생은 교회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호주에서 파견 온 목사와 친분이 두터웠다. <조선동요작곡집>은 이 목사가 선생의 음악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1938년 마산에서 한영(韓英) 판으로 출판했다. 목사는 한국의 풍물과 민속을 해외에 소개할 목적으로 삽화를 그리고 가사를 영문으로 번역했다.

이 노래들이 세상에 알려지자 일본당국은 '산토끼'가 민족혼을 일깨우는 불순한 노래라는 트집을 잡아 이일래 작품 활동을 방해했다. 일본 관헌이 책을 압수할 낌새를 예감한 목사는 <조선동요작곡집>을 호주 선교회로 발송해버렸다. 그 후 이 작곡집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고 절판됐다.

이일래 선생이 재직 시절 자주 산책했던 이방초등학교 뒷산 기슭에는 2013년 11월 '산토끼 노래동산'을 개장했다. 동요 '산토끼'를 모티브로 한 체험 시설이다. 산토끼를 주제로 해서 이일래 선생 기념관과 '산토끼' 동요관을 비롯한 다양한 산토끼 1000여 마리와 만날 수 있다.

산토끼 서식 환경을 조성한 토끼마을, 토끼동굴, 토끼먹이 체험장 등에는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의 토끼들이 어린이들을 맞이한다. 토끼먹이 체험장에서는 현금 1천원으로 건초자판기에서 건초를 사서 산토끼에게 먹이를 줄 수 있다. 양, 거북이, 미어캣 등 동물 관람시설과 놀이시설도 있어서 아이들이 동물들과 교감하며 즐길 거리도 많다.

▲ 이방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산토끼 동요비 ⓒ 박귀단


일제 강점기 엄혹한 시기에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찾기 위한 자주 독립운동을 지속했고, 윤동주 시인이나 이일래 선생처럼 우리 민족혼을 살리려는 다양한 문화 활동들을 했다. 일제 암흑기 우리 선조들의 불타는 열정과 노고에 무한히 감사드린다.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깡충깡충 뛰면서 어디를 가느냐?' 내 어릴 적 불렀던 노래. 우리 아이들 키울 때 함께 불렀고, 지금 34개월 손주와 함께 부르는 동요다. 귀여운 손주와 '산토끼'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일래 선생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되새겨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