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리, 여동생 사망 슬픔 딛고 전성기 포스 회복할까?
러시아 강자 상대로 722일만에 타이틀 1차 방어전 예약
▲ 안젤라 리(이승주)-크리스천 리(이승룡) 남매. 동생을 잃은 슬픔으로 인해 안젤라는 사실상 은퇴한 상태이며 크리스천은 2년여 만에 복귀 경기를 치르게 됐다. ⓒ 원챔피언십 제공
원챔피언십 두 체급 종합격투기 챔피언에 빛나는 크리스천 리(26·한국명 이승룡)가 여동생 죽음의 충격을 이겨내고 2년여 만에 복귀전을 치른다. 오는 9일(한국시간) 미국 애틀랜타주 스테이트팜 아레나서 있을 'ONE 169대회'가 그 무대다. 리는 제9대 라이트급 챔피언 자격으로 도전자 알리베크 라술로프(32·러시아/튀르키예)와 타이틀 1차 방어전을 벌이게 된다.
2022년 11월까지만 해도 리는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파이터였다. 그해 8월 원챔피언십 라이트급, 11월 웰터급을 차례로 정복하며 두체급 챔피언에 올랐기 때문이다. 원챔피언십 초대 여자 아톰급 챔피언에 빛나는 누나 안젤라 리(28‧한국명 이승주)와 더불어 최강의 격투 남매로 명성을 떨쳤다.
기회다 싶은 순간에는 망설임 없이 들어가 정신없이 몰아친다. 완력이 엄청나거나 하드펀처급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타격, 서브미션 및 레슬링 압박 연계를 쉬지 않고 거듭한다. 장대비 같은 공격에 상대가 포지션을 바꾸려 들면 삽시간에 백을 잡아버린다. 탑이나 사이드 포지션에서의 폭풍 파운딩 및 팔꿈치 공격은 물론 원챔피언십 룰을 활용한 그라운드 니킥, 사커킥, 스탬핑 킥도 위력적이다.
과거 세계 최고 단체였던 프라이드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대목으로 완전히 흡사한 것은 아니지만 특유의 싸움꾼같은 부지런한 파이팅 스타일을 보며 한창때 마우리시오 '쇼군' 후아를 연상하는 이들도 많다. 다소 투박하면서도 파괴력 넘치고 특유의 기세를 통해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 닮아있다는 의견이다. 리에게 한번 페이스를 빼앗긴 상대가 위기를 벗어나거나 반격을 가하기 어려운 이유다.
▲ 2년여 만에 복귀전을 치를 예정인 크리스천 리 ⓒ 원챔피언십 제공
가족 잃은 시련 털어내고 재기 할 수 있을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2체급 석권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다음 달 '여자종합격투기 신동'으로 불린 6살 연하 동생 빅토리아 리(이승혜)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가족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누나 안젤라 리는 더 이상 파이터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은퇴하고 만다.
722일(1년 11개월 22일) 만의 출전은 라이트급 왕좌를 지키는 것부터다. 2019년 3월 제7대 원챔피언십 챔피언으로 등극해 2021년 4월 2차 방어까지 성공하는 등 웰터급보다 정상에 오르고 지킨 기간이 길다.
2021년 9월 '미스터 사탄' 옥래윤(33)에게 만장일치 판정으로 져 라이트급 3차 방어에 실패했지만, 재대결을 통해 타이틀을 되찾았다. 라술로프는 지난 7월 6일 ONE 파이트 나이트 24에서 옥래윤을 3-0 판정으로 꺾었다. 원챔피언십 공식 홈페이지는 "전 챔피언과 겨뤄 승리를 거두며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과 기술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리는 2018년 5월 페더급 도전자로 나선 것을 시작으로 서로 다른 세 체급에서 7차례 종합격투기 타이틀매치를 뛰었다. 아직 20대 중반이지만, 메이저대회 정상을 다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다. 원챔피언십 홈페이지는 "라술로프가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고 전망하면서도 "옥래윤을 제압한 강력한 레슬링과 클린치, 근접 타격은 리와 라이트급 챔피언 벨트를 놓고 맞붙을 기회를 잡을 만큼 인상적이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부터 파이터로 활동한 라술로프는 프로 전적 15전 15승(6KO·4서브미션)을 자랑한다. 러시아종합격투기연맹 아마추어대회 웰터급 선수 시절에는 2013 다게스탄 토너먼트 우승, 2013 북캅카스 연방관구 대회 우승, 2013·2015 전국선수권대회 준우승, 2016 전국선수권대회 우승 등 화려한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원챔피언십은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9년 무패 전적은 놀랍다. '난 승리하는 방법밖에 모른다'는 라술로프의 자신감은 리의 라이트급 타이틀을 뺏기 위한 도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해도 승부의 세계를 대신할 수는 없다. 리의 감각에 녹이 슬어 경기력 저하로 이어진다면 챔피언이 바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예상했다.
리에 대해서는 "완벽한 프로 정신의 소유자이자 유능한 파이터다. 라술로프의 심각한 도전에 대비해 모든 노력을 할 것이지만 오랜 공백 때문에 실전 적응을 위한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말로 공백에 따른 변수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모습이었다. 리는 한국계 캐나다인 어머니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아버지로부터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미국 시민권은 하와이 거주 때문에 획득했지만, 종합격투기선수로서 미국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싱가포르, 일본,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마카오, 미얀마 등 24살에 벌써 서로 다른 9개 나라 무대를 경험하며 좋은 성적을 낸 적응력은 이미 검증이 됐다. 그러나 2년 동안 실전에서 멀어져 있었고 낯선 미국에서 상승세의 라술로프를 상대해야 된다는 점 등이 동시에 악재로 작용하면 전성기 같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딛고 파이터 생활을 재개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큰 결심이다. 그러나 챔피언이 차지하고 있는 정상을 뺏으려 하는 도전자는 그런 사정을 전혀 고려할 이유가 없다. 2년을 쉬었던 리가 슬픔을 딛고 돌아와 세계 MMA의 중심 미국에서 전성기 기량을 재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