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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해변에 새끼고래 사체... 이래도 지구 위기가 아닌가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극장판 <고래와 나>

등록|2024.11.09 11:47 수정|2024.11.09 11:47

▲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 이미지 ⓒ SBS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스타워즈>와 함께 미국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극장판 영화 중 현재까지도 가장 큰 인기를 구가하는 1986년 네 번째 장편 <귀환의 항로>는 우연히 듣게 된 알 수 없는 고등생물의 노래가 이미 멸종한 지 오래인 혹등고래의 것임을 알게 된 엔터프라이즈호 승무원들이 20세기 지구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들의 목표는 바로 고래를 구출하는 것이다. 인류의 생존과 고래의 부활은 동일한 연장선에 놓여 있다.

# 일본 인기 애니메이션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에서 우주 괴수에 맞서는 지구함대의 기함 엘트리움 호는 전뇌화된 돌고래를 항행의 중추로 삼는다. 복잡하고 위험천만한 외우주 항행은 고래의 존재가 아니면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멸망에서 벗어난 지구 통합정부는 훗날 고래와 돌고래에게 인권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에서 주인공 나디아의 선조인 아틀란티스 인들은 인류를 창조하기 전 고등종족으로 고래에 주목했으나 미완성으로 그친다. 실험에 사용되어 높은 지능을 획득한 개체 중 '이리온'은 20만 살 넘게 살면서 나디아의 부친 네모 선장과 우정을 나눈 조언자로 등장한다.

# 제임스 카메론의 Life Work <아바타> 시리즈 2편에 등장한 판도라 해양생태계의 '끝판왕' 톨쿤은 외계행성 판 고래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한 존재다. 지구의 고래도 높은 교감능력을 지니지만, 톨쿤은 인간과 지적 대화가 가능할뿐더러, 독자적인 언어와 문명을 보유한 존재다. 게다가 압도적인 힘과 지능을 지녀 석기시대 문명에 머문 나비 종족과는 달리 인간군대와 전면전이 가능한 종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은 생태계 균형을 위해 '톨쿤의 길'이란 그들만의 법을 지키며 비폭력 평화주의로 일관한다. 그들이 과연 전통을 고수할지는 판도라 행성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다.

7년간 오대양을 누비며 기록한 경이로운 생물 목격담

극장판 <고래와 나>는 SBS가 제작해 2023년 연말 방영한 동명의 4부작 다큐멘터리를 개봉 용도로 재편집한 작업이다. TV 시리즈는 51회 한국방송대상을 탈 만큼 호평과 격찬을 획득했다. 내친김에 극장 상영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추측하긴 어렵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작업은 방송용 다큐멘터리의 구성 특징을 전형적으로 지닌다. 인간 본위 시선으로 고래를 대상화하기에 보기 편하고 감정을 이입하기에도 수월하다. 배우 한지민과 박해수의 음성해설 참여로 풍성하다 못해 넘칠 정도인 설명을 들어가기에 눈과 귀를 맡기면 된다.

▲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 이미지 ⓒ SBS


시작과 함께 카메라는 태평양 섬나라 통가로 향한다. <아바타>의 '톨쿤' 모델이 된 혹등고래들이 바다 곳곳에서 출몰한다. 가족과 유소년 관객 기호에 맞춤형으로 고래 무리가 일상에서 자주 보이는 행동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거대한 몸집의 혹등고래가 구애와 다툼, 놀이에서 구사하는 온갖 행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혹등고래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수면 위로 육중한 덩치를 솟구치며 물보라를 흩뿌리는 '브리칭'의 장관, 경쟁자를 밀어내기 위해 꼬리와 지느러미를 활용한 동작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공들인 촬영으로 지루할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히트 런', '스파이홉', '에스코트' 등 다채로운 기술은 눈요깃거리가 아니다. 혹등고래가 고도로 발달한 의사소통은 물론 인간 못지않은 생활문화를 보유함을 설명하려는 의도다. 마침표를 찍는 건 멀리 미국 글로스터 항구까지 찾아가 고래 전문연구자와 만나는 장면이다. 1970년대 처음으로 혹등고래 소리가 그냥 소음이 아니라 '노래'라는 것을 발견했던 회고와 함께 외계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 실려 지구의 메시지를 전하는 음반에 고래의 노래가 실리게 된 배경이 해설된다. 최초로 비-인간 동물이 가수이자 시인으로 공인된 순간이다.

이제 주연이 바뀔 차례다. 제작진은 아프리카 대륙과 인접한 섬나라 모리셔스로 향한다. 그곳에는 소설 <모비딕>의 주인공이라 할 향(유)고래가 기다린다. 거대하고 흉포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이 경이로운 생명체는 모계사회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모리셔스 앞바다를 두셋의 모계 공동체가 분점하며 교류한다. 고래는 동종이라도 집단에 따라 고유의 '사투리'를 구사하며, 필요한 경우 통역 겸 중재자를 통해 소통해 나간다.

유명 해양 다큐멘터리 <오션즈> 촬영을 맡은 프랑스 사진가는 자신이 처음 이 경이로운 존재들과 대면했을 때 기억을 회상하며, 향고래 공동체가 '코다' 체계로 대화하는 놀라운 장면을 제공한다.

혹등고래가 뛰어난 가수라면, 향고래는 수다스러운 이웃 격이다. 짧은 어휘 조합으로 쉴 틈 없이 진행되는 복잡하고 정교한 의사소통 방식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해저 2만리> 등에서) 잔인한 포식자로 그려진 선입견과 달리 공동육아를 하며 '마그리트 포메이션'이라는 노약자 보호 대형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모범적인 공동체 생활 실태가 소개된다.

의인화 절정은 3/4년 1번 출산하는 향고래 특성상 '금쪽이'로 양육되는 어린 개체 중 이제 생후 1달 된 '미리암' 관찰기이다. 새끼고래가 어미 젖을 빠는 진귀한 장면이 공개된다. 4살 때까지 하루 오백 리터 모유를 수중에서 어떻게 섭취하는지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순간에는 그저 말을 멈추고 멍하니 볼 수밖에 없다. 미리암이 성체가 되기 전까지 겪게 될 온갖 위험과 함께 향고래 공동체가 '유치원'을 꾸려 규범과 지혜를 전수하는 교육과정 역시 흥미를 자극한다.

우리가 고래에 대해 알지 못했던 진실들

▲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 이미지 ⓒ SBS


중반부는 고래라는 종의 역사 해설에 할애된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현재까지 발견되고 분류한 92종의 고래 중 90% 표본이 수집된 런던 자연사 박물관 수장고로 향한다. 컴퓨터 그래픽과 영상자료를 통해 고래의 선조가 5천만 년 전 먹이 경쟁을 위해, 바다로 역진출하는 서막, 그리고 최초의 고래 '파키케투스'로부터 물려받은 육상 포유동물의 흔적을 설명한다. 고래의 바다 생활은 돌연변이를 거쳐 500만 년 전 완전한 수생동물로 진화하기에 이른다. 성공적으로 육지하던 중 다시 바다로 귀환한 희귀한 사례다.

다음은 해양생태계 정점인 고래가 갖는 위상이 설명될 차례다. 고래는 심해에서 지상의 숲처럼 생태계 순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고래 낙하'를 통해 자신의 유해를 충분한 양분을 얻기 힘든 심해 생태계에 아낌없이 내어준다. 한 마리 대형 고래가 완전분해될 때까지 50년에 걸쳐 재활용된다. 경이로운 자연의 순환 그 자체인 셈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름다운 산호초 해변 코랄 베이에서 해저의 숲 역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모비딕>은 위대한 소설이지만, 작품 속 고래와 현실 운명은 딴판이었다. 미국 뉴 베드포드 항구로 이동한 카메라는 포경박물관으로 향한다. 베드포드는 북미 포경업 중심지였고, 한때 인구 절반 이상이 종사하는 동네였다. 큐레이터가 설명하는 고래의 산업 용도와 이로 인한 남획으로 멸종 위기로 치닫던, 오래되지 않은 역사가 드러난다.

해저 생태계가 감사함을 표하듯 무엇 하나 낭비하지 않던 것과 달리 인간은 이 지구 최대의 동물을 멸종으로 내몰 뻔했다. 양초 원료가 되는 경뇌유와 온갖 자원을 착취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위기는 과거에 그치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중이다.

고래라는 '거울'로 극화되는 생태위기와 환경파괴 경고

북극에 인접한 캐나다 허드슨만이 다음 무대다. 이곳엔 가장 친숙한 고래 중 하나인 하얀색 벨루가들이 서식한다. '바다의 카나리아'로 불리며 고래 중 유일하게 입술로 소리내는 종이다. 같은 고래라도 노래와 언어가 각기 다르다. 벨루가와 접촉하기 위해 온갖 꾀를 내는 제작진과 벨루가의 근접 만남이 두근거리지만, 최근 벨루가에겐 새로운 위협이 도래한 상태다.

해변 곳곳 누비던 제작진은 꽃이 만발한 가을 허드슨만에서 뜻밖의 이웃과 마주친다. 바로 북극곰이다. 불과 몇십 년 사이 평균온도가 5도 넘게 상승해 한낮 18도 따뜻한 날씨가 된 기후변화 탓이다. 차가운 바다의 벨루가를 관찰하러 왔다가 어울리지 않게 초원에서 유빙 위에 있어야 할 북극곰을 만난 게 기괴하다.

▲ 극장판 <고래와 나> 스틸 이미지 ⓒ SBS


수백만 년 동안 물개와 바다표범을 사냥해온 북극곰은 전진기지인 유빙이 사라지면서 위기에 처한다. 궁여지책으로 이들은 암초에 의지해 벨루가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최초 관측된 게 2016년이라 한다. 말 그대로 최근 급속하게 벌어진 변화다. 새로운 포식자 위협에 직면한 벨루가도, 성공률이 훨씬 낮아진 북극곰도 모두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위험을 불러온 건 그들이 아니다. 벨루가와 북극곰에겐 아무 잘못이 없다.

대양을 종횡하던 카메라가 전라북도 부안군 해변으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깊은 바다에 사는 희귀종 보리고래 사체가 떠밀려와 있다. 70년을 산다는 보리고래 갓 1살 된 아성체가 뱃속을 막은 플라스틱으로 죽은 것이다.

부검하는 연구자들의 낙담한 표정은 제작진에게 전이된다. 상업 어선에서 선원으로 일하던 공익제보자 증언을 통해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천백만 톤 넘는 쓰레기 외에도 대형 해양포유류 멸종에 일조하는 무단 투기와 혼획 피해가 공개된다. 이쯤 슬슬 시선을 돌리거나 딴전을 피우게 된다. 보고 듣기 곤혹스럽기 때문이다.

친근하게 출발한 장구한 지구 한 바퀴 여정은 결국 바로 우리 곁, 그리고 인간의 편의 추구로 초래된 고래와 지구의 비극으로 치닫는다. 방송 다큐멘터리 특유의 교훈과 계몽이 좀 어색하더라도, 이만큼 대중적으로 수월하게 위기의 실체를 접하기는 흔치 않은 노릇이다. 경이롭고 아름다운 고래의 삶을 목격한 다음 그들이 처한 비극을 대화면으로 본다면 측은지심 갖지 않을 이가 얼마나 되랴. 동물 예능프로그램 부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을지언정, 대중교육용으로 특화된 자연 다큐멘터리의 한 정점에 설 작업이다.

"극장판 고래와 나" 포스터영화 포스터 이미지 ⓒ SBS


[작품정보]

극장판 고래와 나
WHALES AND I
2024 한국 고래 블록버스터 다큐멘터리
2024.10.30. 개봉 96분 전체관람가
감독 이큰별(SBS 시사교양본부 PD)
주연 혹등고래, 향고래, 벨루가, 보리고래
내레이션 한지민, 박해수
제공 스튜디오 HIM, 썬더필름
제작 SBS
배급 썬더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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