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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핑크에서 붉은색으로... 그가 '경력단절'이라 말하지 않는 이유

[1막보다 화려한 2막] 이미라 안양여성의전화 대표

등록|2024.11.10 11:03 수정|2024.11.10 11:03

▲ 이미라 안양여성의전화 대표 ⓒ 이민선


가수 김광석, 남궁옥분, 이승철... 이들의 공통점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활발하게 활동했다는 점이다. 그와 내가 공유하는 기억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이니 이제 슬슬 기력이 달릴만 한데, 그의 목소리에서는 활력이 넘쳤다.

"제 인생 1막이 화려한 핫핑크였다면 저의 2막은 붉은색이라 말할 수 있어요."

이것이 활력의 원천이었다. 붉은색으로 비유된 것은 열정, 즉 열정이 솟구친다는 말이다. 이런 열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금 여성 인권 역사를 써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고, 정말 가치 있는 활동을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고요. 굉장한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이미라 안양여성의전화(아래 안양여전) 대표를 만난 것은 지난 5일 오전. 사무실(만안구 안양로 149) 문을 열자 "지금처럼 당당하게 여전답게 싸우자" 등의 전투적인 글이 눈에 들어왔다. 교육실 현수막에 적힌 글이다. 이 문구를 보고 '안양여성의전화'라는 단체의 성격을 알 수 있었다.

안양여성의전화는 1997년 문을 연 여성 인권 시민단체다. 폭력으로부터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고, 여성의 복지증진과 가정·직장·사회에서의 성평등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해 민주사회 실현에 기여한다는 목적도 있다.

이를 위해 가정폭력·성폭력 통합상담소와 안양디지털성범죄피해지원센터, 가정폭력피해여성 자립공동체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통합상담소에서는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스토킹, 교제 폭력 등 친밀한 관계 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인 폭력에 대한 상담 및 법률·의료· 정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젠더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과 재발 방지 캠페인도 진행한다.

안양디지털성범죄피해지원센터에서는 불법촬영, 유포협박, 유포불안, 딥페이크 피해, 온라인 그루밍 등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무료심리상담과 피해 촬영물 삭제 지원 연계와 법적 지원, 의료비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디지털 성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한 교육과 인식개선 캠페인도 한다.

자립공동체 쉼터는 가정폭력 피해를 본 여성과 자녀를 위한 중장기 쉼터다. 상담과 심리치료, 법률·의료 지원과 함께 피해 여성과 자녀의 자립도 돕고 있다.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운동을 한다는 자부심"

▲ 여성가족부 폐지 규탄 전국집중집회에 참가한 이미라 안양여성의전화 대표(오른쪽) ⓒ 이미라


▲ 안양여성의전화, 전문가 집담회 ⓒ 이미라


이미라, 그가 안양여전에 발을 들인 것은 2012년이다. 상시 근무자가 아닌 자원봉사자로 첫발을 들이면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됐다.

"의미 있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찾은 일이 여성의전화 자원봉사예요.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한번 해보라'는 친구의 강력한 추천이 있기도 했고요.

자원봉사자라는 신분으로 전화 상담, 폭력예방 강의활동, 여성인권영화제 기획단 및 다양한 행사 기획단 참여, 가정폭력 피해 현실을 담은 연극 모의재판 참여, 여성폭력 추방을 위한 1인시위 및 각종 캠페인 참여 등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열정이 강해졌고, 그래서 더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자부심이랄까,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 인권운동을 한다는 게 가슴에 와 닿는 게 있었어요."

지금은 누가 뭐래도 굳은 신념을 가진 여성인권운동가인 그녀지만, 안양여전에 발을 들일 때만 해도 우리나라 여성 인권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정폭력 상담원,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받으면서 여성인 자신이 여성 인권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깨우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폭력에 대한 민감성이 내가 이렇게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을 교육을 받으면서 알게 됐어요. 제가 수없이 많은 폭력의 피해자였기도 했고 가해자였던 점들을 많이 반성 했고요. 공주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 사회에서 성폭력 경험이 없다는 것, 저는 그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서 성폭력이란 성추행, 성희롱 등 모든 것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상담하다 보면, 아픈 기억을 그냥 안고 살아가는 분이 많아요. 늘 피해의식에 젖어 있죠. 저는 그분들이 피해 속에 매몰되지 않고 생존자(당당한 사회인)로 거듭나게 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끔 '덕분에 이제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연락도 받는데, 이럴 때 정말 기쁘고 굉장한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죠."

듣고 보니 그는 충분히 열정이 샘솟을 만한 일을 하고 있었다. 여성 인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김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미투(Me,too)'운동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었고, 시의적절했다고 생각해요. 광풍이 불었던 2018년을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왔다는 게 느껴지니까요. 성희롱이나 성폭력 예방 교육을 나가보면 대중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어요.

직장에서 성희롱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했고요. 좀 더 엄격해진 거죠. 2018년 이전 실태조사에서는 성희롱 피해를 봐도 '참는다' 라는 응답이 대부분이었는데, 2021년에는 10명 중 6명 정도가 '참지 않는다'는 대답을 했어요. 미투운동 보면서 이런 일(성폭력문제)은 이제 국가에서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말에 이어 화제가 자연스레 여성가족부 문제로 넘어갔다. 성폭력 방지나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여성가족부이기 때문이다. 예상은 했지만, 정부에서 추진하는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그의 견해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여성의 권익증진 등이 목적인 여성가족부 폐지는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 시절 공약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도 '여가부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며 여가부 폐지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더 이상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는 이유였다.

김현숙 전 장관이 올해 2월 퇴임한 이후 여가부 장관은 현재 9개월째 공석이다.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폐지)하겠다"며 여가부 장관에 지명된 김행 후보자가 드라마틱하게 엑시트(자진 사퇴)한 지난해 10월 이후, 정부는 신임 여가부 장관을 지명하지 않았다. 당시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주식 파킹, 배임 의혹 등을 받다가 인사청문회 도중 자리를 떠난 뒤 그다음 날에도 청문회장에 복귀하지 않아 파문을 일으켰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면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 공약하고 이번 정부가 들어섰잖아요. 그렇다면, 수많은 성희롱 사건과 성폭력 사건은 왜 아직도 발생하는지 저는 반문하고 싶어요. 장관 자리를 이렇게 오랜 기간 공석으로 두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요. 정말 어이가 없는 것은 여가부를 없애겠다는 사람을 장관으로 지명했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장관으로 앉히려 했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면서 즐거웠던 1막이었지만..."

▲ 가수 고 김광석과 20대 이미라 안양여성의전화 대표 ⓒ 이미라


▲ 가수 한동준씨와 한영애씨, 가운데는 20대 이미라 대표 ⓒ 이미라


그가 '화려한 핫핑크' 였다고 표현한 인생 1막은, 먹고 사는 직업으로만 보면 기획사였다. 이 일 외에도 대학생 시절부터 하던 장애인 후원단체에 대한 봉사도 적극적으로 했다.

기획사에서 하는 일은 가수들 공연 기획, 체육대회 기획과 진행 등 다양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레크레이션 강사 자격증까지 딸 정도로 열심히 산 젊은 날이었다. 그는 "정말 즐거운 나날이었다"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기억에 남는 일은 가수 김광석이나 한영애, 이승철 같은 그 당시 유명 음악인들 공연을 기획한 일이다. 무전기를 들고 무대 뒤에서 뒷바라지해야 하는 실무자라서 노래를 감상하기는 어려웠지만,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는 유명 가수를 가까이 할 수 있어 20대 젊은 그에게는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광주(전남)에서 근무했는데, 제가 주로 하던 게 가수를 밀착 지원하고 안내해서 무대에 오르게 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노래를 제대로 감상할 수는 없었어요. 가수 김광석 노래도 무대 뒤에서 들었는데, 그래도 정말 미치도록 좋았어요. 지금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김광석 노래입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는 제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공연 포스터에 사인도 했는데, 그 사진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며칠 뒤 그는 가수 김광석과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빨간 모자를 쓴 20대 발랄한 모습의 이미라와 가객 김광석 옆얼굴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는 "이 기억이 있어 가수 김광석이 젊은 나이에 고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그가 기획사 일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늘 새로웠기 때문이다.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그렇기도 했지만, 저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늘 만들어내는 일이라 정말 즐거웠어요"라고 마치 입버릇처럼 몇 번을 말했다. 이렇듯 즐겁고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결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제 일을 존중해 주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혼생활과 일을 병행하기는 어려웠어요.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과 제가 일하는 시간이 너무 달랐거든요. 남편은 주말에 쉬는데, 저는 주로 주말에 일을 해야 했으니, 어쩔 수가 없었던 거죠."

이런 이유로 그는 결혼 이후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임신에 이어 출산을 하면서 부터는 대부분의 바깥 일에서 손을 놓게 된다. 이른바 '경력 단절'을 겪게 된 것이다. 2001년에는 남편이 서울로 발령이 나면서 광주(전라도)에서의 삶을 접고 서울로 왔다. 2년 뒤 안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경력 단절을 겪으셨네요'라고 하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흔히 그렇게 말하는데, 저는 단절이라 말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고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저는 준비, 그러니까 재도약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기회가 왔을 때 준비하면 그때는 이미 늦었다는 말이 있어요. 준비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한다는 말이죠. 결혼, 출산, 육아... 정말 열심히 공부한 시간이었어요.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고, 컴퓨터 활용 능력도 길렀어요. 포토샵, 동영상 편집 같은 실무 능력도 갖췄고요. 배울 수 있는 것을 그때 다 배운거죠. 그래서 저는 제가 경력 단절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멀리 뛰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

이미라 안양여전 대표. 그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대표가 된 게 아니었다. 아주대학교 성폭력상담센터 전임연구원, 여가부 산하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희롱·성폭력 특별신고센터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2020년 안양여성의전화 부설기관인 통합상담소장을 거쳐 지난해 대표로 임명됐다.

이 모든 게 그의 말대로 철저히 준비 했기에 가능했음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붉은색 인생2막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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