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엄마인데요... 뜻밖의 호출에 힘이 솟네요
수능 앞둔 고3 딸아이를 응원해주는 친구와 동료들을 보며
벌써 11월이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휙 지나갔을까. 매번 빠른 시간의 속도는 올해도 어김이 없다. 그저 있던 자리에서 하던 대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연말인데 올해 유난스럽게 다가오는 건 오는 14일에 치러지는 대학수능시험 때문이리라. 수능 시험을 일주일 전은 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집 고3 아이를 더 생각해 주는 시간이었다.
고3 딸아이를 위한 주변의 응원
"딸램 체질이 양인이야, 음인이야?"
친구의 톡에 뜬금없이 이런 건 왜 묻나... 하다가 눈치가 먼저 알아들었다. 수능을 앞둔 딸아이게에 뭔가 보내려나 싶어 아무것도 보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 역시도 대학교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며 반수 중인 아들을 둔 친구였다. 그쪽도 수능 입시생이 있는데 내 딸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나도 이번엔 입 씻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P가 보낸 것은 요즘 여자 아이들의 기호를 반영했다는 드럭스토어 올OO영 기프트 카드, 친구 K가 보낸 것은 딸이 다니는 학원가에 새로 크게 들어선 커피 전문점의 마카롱 세트였다. 친분이 있는 동료 선생님이 별 거 아니라며 건네주신 선물은 초코바 상자였다.
작년에 나는 수능을 치르는 친구 아들에게 모 베이커리 찹쌀떡 선물권을 주었는데... 옛날 입시 세대의 이 촌스러운 안목은 언제 개선이 되려나.
"긴급회의요!"
지난주 월요일, 오전 1교시를 마치고 옆 반 선생님께서 다급하게 알려주셔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학년 연구실로 달려갔다. 11명이나 되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사전 공지된 회의 일정이 아닌 시간대에 모두 모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므로 무슨 긴급 사안인가, 싶어 눈만 똥그래져 부장 선생님만 바라보았다.
"고3 따님 수능 대박 나길 바랍니다!"
학년 연구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쇼핑백 하나를 내게 건네주시며 친목 담당 선생님께서 하신 이 말에 모두가 급히 모인 까닭을 알았다.
"아이고, 우리 딸이 보답을 잘해야 할 텐데요."
민망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었지만 너무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화요일 오후, 우리 교실 키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에 동학년이었던 20대 선생님이었는데, 잠깐 교실에 들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가끔 퇴근 시간 이후 교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 잠깐 들러도 되냐고 와서는 이런저런 고민을 얘기하고 가던 분이었다.
그날은 다른 선생님들과 2주에 한 번 갖는 동아리 모임 시간이어서 난색을 표했는데도 잠깐이면 된다고 들른다는 것이었다. 평소 예의 바른 사람이 지금은 좀 곤란하다는데도 웬일인가, 싶었다.
잠시 후, 교실 밖에서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두런거림에 그때서야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른 교실 밖으로 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동학년이었던 선생님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콕! 찍어도 정답! 우주의 기운이 혜영샘께 가길~'
선생님들은 메시지 카드와 배달앱 배O 상품권을 전달해 주며 응원의 말들을 건네주었다. 초등학교 2학기는 짧은 학사 일정에 할 일은 많아 더 바쁘다. 더군다나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힘든 학부모들이 할 말, 못 할 말 다하셔서 누군가는 무척 힘든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지난해의 인연까지 챙기는 동료들의 넉넉한 마음씀에 감동이 몰려왔다. 너무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들을 안았다. 내가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N선생님이 "스킨십을 유도하는 자본주의 포옹"이라고 말해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딸에게 전달한 이 모든 선물들 중 딸은 이 배달음식 상품권을 제일 좋아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시켜 먹고도 돈이 남았다며. 참 특이한 딸의 선물에 대한 개취(개인적인 취향)에 또 한 번 놀랐다.
"선생님, 오늘 쉬는 시간이나 아이들 하교 후에 교장실에 한 번 들러주세요."
지난 금요일에 교장 선생님께서 보내신 이 메시지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무슨 일로 교장 선생님이 개인적인 호출까지 하시는 걸까? 오만 가지 걱정스러운 시뮬레이션이 순식간에 그려지는 걸 자제하며 아이들 하교 후에 내려가겠다고 답을 보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실까요?"라고 추가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근심 가득한 마음을 안고 쉬는 시간에 서둘러 내려가 교장실 문을 똑똑, 두드려 조심스레 열었다. 교장 선생님의 환한 미소에 일단 안심했는데, 테이블 위에 황금색 보자기로 곱게 싼 꾸러미들 가운데 하나를 들어 건네주시자 주책 맞게 눈앞이 뿌애졌다.
교장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불러일으킨 오만 가지 걱정이 일순 안도감으로 바뀌자 감정이 격하게 올라왔던 걸까.
"오시는 길에 무슨 일일까 걱정 많으셨죠?"
교사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뭉클해졌던 걸까. 열심히 파이팅을 외쳐 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응원에 내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라도 될 듯 힘이 솟았다.
황금색 보자기 안에 풍성하게 들어찬 것은 찹쌀떡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내가 같은 입시 세대였음을 실감했다. 절로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그려졌다. 주변에서 보내주신 이 모든 응원에 힘입어 딸이 수능일에 최대 역량을 발휘해 주면 좋겠다.
내 일도 벅찬 시대에 다른 사람을 챙기는 마음
내가 맡은 일과 문제를 처리하기에도 하루가 벅찰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민이나 경조사에 마음을 쓴다. 왜 그럴까? 가까운 이들에게 생긴 일들이 나와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나 지인이 겪는 힘듦이나 수고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참 살만해진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는 작은 내 존재를 또렷하게 만든다.
딸에게 지난 3년 간의 희로애락 고교 시절을 마감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보통의 고3 엄마들처럼 애태우며 한 해를 보내지 않도록 그런대로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준 딸에게 감사하다. 자식 일은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실감했던 고1, 고2에 비한다면 발등에 불 떨어진 고3 시기는 이정도면 건강하게 보냈다. 감사할 일이다.
끝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작과 연결된다. 딸이 힘겹게 버틴 고교 시절의 끝이 새롭게 빛날 시작으로 꼬리를 물고 단단하게 연결되길 기원한다. 3년을 잘 견뎌준 모든 고3 수험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어떻게 이렇게 시간이 휙 지나갔을까. 매번 빠른 시간의 속도는 올해도 어김이 없다. 그저 있던 자리에서 하던 대로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르게 되는 연말인데 올해 유난스럽게 다가오는 건 오는 14일에 치러지는 대학수능시험 때문이리라. 수능 시험을 일주일 전은 내 주변 사람들이 우리집 고3 아이를 더 생각해 주는 시간이었다.
▲ 윤관식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11일 오전 경북 경산시 팔공산 갓바위 앞에 수능 고득점과 대학 합격 등 소원이 적힌 공양물이 놓여 있다. 2024.11.11 ⓒ 연합뉴스
"딸램 체질이 양인이야, 음인이야?"
친구의 톡에 뜬금없이 이런 건 왜 묻나... 하다가 눈치가 먼저 알아들었다. 수능을 앞둔 딸아이게에 뭔가 보내려나 싶어 아무것도 보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그 역시도 대학교를 업그레이드 하겠다며 반수 중인 아들을 둔 친구였다. 그쪽도 수능 입시생이 있는데 내 딸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나도 이번엔 입 씻겠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P가 보낸 것은 요즘 여자 아이들의 기호를 반영했다는 드럭스토어 올OO영 기프트 카드, 친구 K가 보낸 것은 딸이 다니는 학원가에 새로 크게 들어선 커피 전문점의 마카롱 세트였다. 친분이 있는 동료 선생님이 별 거 아니라며 건네주신 선물은 초코바 상자였다.
작년에 나는 수능을 치르는 친구 아들에게 모 베이커리 찹쌀떡 선물권을 주었는데... 옛날 입시 세대의 이 촌스러운 안목은 언제 개선이 되려나.
"긴급회의요!"
지난주 월요일, 오전 1교시를 마치고 옆 반 선생님께서 다급하게 알려주셔서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학년 연구실로 달려갔다. 11명이나 되는 동학년 선생님들이 사전 공지된 회의 일정이 아닌 시간대에 모두 모이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므로 무슨 긴급 사안인가, 싶어 눈만 똥그래져 부장 선생님만 바라보았다.
"고3 따님 수능 대박 나길 바랍니다!"
학년 연구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쇼핑백 하나를 내게 건네주시며 친목 담당 선생님께서 하신 이 말에 모두가 급히 모인 까닭을 알았다.
"아이고, 우리 딸이 보답을 잘해야 할 텐데요."
민망한 마음에 너스레를 떨었지만 너무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난 화요일 오후, 우리 교실 키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작년에 동학년이었던 20대 선생님이었는데, 잠깐 교실에 들러도 되겠냐고 물었다. 가끔 퇴근 시간 이후 교실에 혼자 남아 있을 때, 잠깐 들러도 되냐고 와서는 이런저런 고민을 얘기하고 가던 분이었다.
그날은 다른 선생님들과 2주에 한 번 갖는 동아리 모임 시간이어서 난색을 표했는데도 잠깐이면 된다고 들른다는 것이었다. 평소 예의 바른 사람이 지금은 좀 곤란하다는데도 웬일인가, 싶었다.
잠시 후, 교실 밖에서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의 두런거림에 그때서야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얼른 교실 밖으로 나가 보니 아니나 다를까. 작년에 동학년이었던 선생님들이 우르르 함께 몰려오고 있었다.
'콕! 찍어도 정답! 우주의 기운이 혜영샘께 가길~'
선생님들은 메시지 카드와 배달앱 배O 상품권을 전달해 주며 응원의 말들을 건네주었다. 초등학교 2학기는 짧은 학사 일정에 할 일은 많아 더 바쁘다. 더군다나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힘든 학부모들이 할 말, 못 할 말 다하셔서 누군가는 무척 힘든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지난해의 인연까지 챙기는 동료들의 넉넉한 마음씀에 감동이 몰려왔다. 너무 감사해서 나도 모르게 선생님들을 안았다. 내가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N선생님이 "스킨십을 유도하는 자본주의 포옹"이라고 말해 모두가 한바탕 웃었다.
딸에게 전달한 이 모든 선물들 중 딸은 이 배달음식 상품권을 제일 좋아했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초밥을 시켜 먹고도 돈이 남았다며. 참 특이한 딸의 선물에 대한 개취(개인적인 취향)에 또 한 번 놀랐다.
"선생님, 오늘 쉬는 시간이나 아이들 하교 후에 교장실에 한 번 들러주세요."
지난 금요일에 교장 선생님께서 보내신 이 메시지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무슨 일로 교장 선생님이 개인적인 호출까지 하시는 걸까? 오만 가지 걱정스러운 시뮬레이션이 순식간에 그려지는 걸 자제하며 아이들 하교 후에 내려가겠다고 답을 보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실까요?"라고 추가하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근심 가득한 마음을 안고 쉬는 시간에 서둘러 내려가 교장실 문을 똑똑, 두드려 조심스레 열었다. 교장 선생님의 환한 미소에 일단 안심했는데, 테이블 위에 황금색 보자기로 곱게 싼 꾸러미들 가운데 하나를 들어 건네주시자 주책 맞게 눈앞이 뿌애졌다.
교장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호출이 불러일으킨 오만 가지 걱정이 일순 안도감으로 바뀌자 감정이 격하게 올라왔던 걸까.
"오시는 길에 무슨 일일까 걱정 많으셨죠?"
교사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교장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뭉클해졌던 걸까. 열심히 파이팅을 외쳐 주시는 교장 선생님의 응원에 내가 수능 시험을 치르는 학생이라도 될 듯 힘이 솟았다.
▲ 수능을 앞둔 고3 딸을 위한 선물. ⓒ 정혜영
황금색 보자기 안에 풍성하게 들어찬 것은 찹쌀떡이었다. 교장 선생님과 내가 같은 입시 세대였음을 실감했다. 절로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그려졌다. 주변에서 보내주신 이 모든 응원에 힘입어 딸이 수능일에 최대 역량을 발휘해 주면 좋겠다.
내 일도 벅찬 시대에 다른 사람을 챙기는 마음
▲ 배재만 기자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11일 오전 세종시 한 인쇄공장에서 인수책임자와 관계자들이 수능 문제지와 답안지를 무진동 특수차량으로 옮기고 있다. 2024.11.11 [공동취재] ⓒ 연합뉴스
내가 맡은 일과 문제를 처리하기에도 하루가 벅찰 때가 많다. 그래도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민이나 경조사에 마음을 쓴다. 왜 그럴까? 가까운 이들에게 생긴 일들이 나와 무관하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나 지인이 겪는 힘듦이나 수고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참 살만해진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는 작은 내 존재를 또렷하게 만든다.
딸에게 지난 3년 간의 희로애락 고교 시절을 마감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보통의 고3 엄마들처럼 애태우며 한 해를 보내지 않도록 그런대로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준 딸에게 감사하다. 자식 일은 부모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실감했던 고1, 고2에 비한다면 발등에 불 떨어진 고3 시기는 이정도면 건강하게 보냈다. 감사할 일이다.
끝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시작과 연결된다. 딸이 힘겹게 버틴 고교 시절의 끝이 새롭게 빛날 시작으로 꼬리를 물고 단단하게 연결되길 기원한다. 3년을 잘 견뎌준 모든 고3 수험생들과 그들의 학부모님들께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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