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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장례식 치르는데... 기괴한 '수능 대박' 신드롬

[아이들은 나의 스승] 입시에 매달리지만, 종착지는 껍데기만 남은 대학

등록|2024.11.12 14:59 수정|2024.11.12 14:59

▲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열흘 앞둔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종로학원 강북본원에서 학생이 자율학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3 수험생에게는 수능을 코앞에 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간이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며, 당장 내일 수능을 치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긴장한 탓에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고, 불안감에 입맛마저 잃었다고 하소연한다. 없던 병까지 생겨날 지경이라고들 한다.

그들에게 수능일은 사실상 고등학교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10대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고등학교가 오로지 대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식은 유명무실해졌다. 주인공이라 할 졸업생의 참석률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입 합격자들만의 행사여서다.

수능에 모든 학교 교육과정이 맞춰져 있다. 수능이 끝나면 고3에겐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학교마다 수능 이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참여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개인 사정에 따라 체험학습을 신청할 수도 있고, 대학별 면접 준비 시간으로 활용해도 무방하다.

수능일을 '불행 끝, 행복 시작'으로 여기는 인식은 고3 수험생의 고통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이맘때쯤이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거나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등의 하나 마나 한 조언이 난무한다. 수능이 끝나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짐짓 모르는 척한다.

"대학에 거는 기대는 없어요" 슬픈 그 말

"대체 대학이 뭐길래 이렇게 저희를 고통스럽게 할까요?"
"......"

고3 한 아이의 푸념 섞인 질문에 대꾸하는 대신, 자문자답하도록 뜸을 들였다. 그는 지금껏 대학에 왜 가야 하는지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한 이상 대학 진학은 '기본값'이라는 생각뿐이었다며, 친구들 모두 그럴 거라고 했다.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취업과 결혼이 힘들 테고 사회생활에서 사람 대접 받기도 어려울 거라고 두루뭉수리 대답했다. 그 말인즉슨, 남들 다 가는데 나만 안 갈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초면에 '학번'을 서슴없이 묻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신분증' 역할을 한다는 거다.

그에게 학과 선택은 관심 밖이었다. 배우고 싶은 전공이 딱히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흥미와 적성을 따져가며 전공을 고민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뿐더러 대학의 '간판' 앞에 학과는 순식간에 무력해진다고 털어놨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말도 덧붙여진다.

"지금까지 공부에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대학엔 가지만, 대학에 거는 기대는 없어요."

잦아드는 목소리에 실린 이 말이 교사로서 슬펐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며 등 떠밀지만, 그들 역시 대학의 역할과 대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선 무관심하다고 꼬집었다. 여쭤봐야 그런 고민은 대학에 합격하고 난 뒤 해도 늦지 않다는 답변뿐이라고 했다.

고3 수험생들이 아무런 배움을 향한 열정도 없이 진학한 대학이 '학문과 지성의 전당'으로 우뚝 서기란 연목구어일 테다. 흥미나 적성이 아닌 성적에 따라 대학과 전공이 결정되는 현실에서 그들에게 남는 건 서열 의식뿐이다. 이제 '입결'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가 됐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긴장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아이들을 다독이는 와중에 우울한 뉴스가 잇따라 들려왔다. 대학 진학에 목매단 우리 교육의 맹목성과 대학 교육의 본령을 망각하고 취업 알선 기관으로 전락한 우리 대학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참담한 소식이었다.

우선, 특성화고 졸업생의 대학 진학률이 취업률을 크게 앞질렀다는 내용이다. 전공에 맞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다는 것과 현장 실습생의 빈번한 산업 재해가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능력 사이의 괴리가 크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렇다면, 특성화고 교육과정을 현실에 맞도록 손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기업이 고졸자 채용을 늘리도록 정부가 나서는 게 모범정답일 테다. 그런데도 현 정부 들어 공공 기관조차 고졸자 채용을 줄이는 형국이다. 이는 '각자도생'하라는 신호로 여길 수밖에 없다.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 300'이라는 이름으로 마이스터고가 출범했다. 전문 직업인 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진학한 아이들은 지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현실에 절망한 그들에게 남은 선택이라곤 대학 진학뿐인 셈이다.

취업률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다면, 특성화고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 싶다. 대학조차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마당에 배움이 전 단계에서 멈춘 특성화고 졸업생은 애초 '미숙련 노동자'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다. 특성화고는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를 여실히 증명해 줄 뿐이다.

취업이 대학의 존재 이유가 된 현실

▲ 7일 오후 경북 경산시 대구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장례식(학술제)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독자제공


한편, 며칠 전 대구 지역 한 사립대에서는 '사회학과 장례식'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고등학생마저 '문송합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실에서 대학의 인문 사회 관련 학과의 폐과 소식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방 사립대 '문사철'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서울 지역 명문대의 경우엔 그나마 낫다. 어차피 대학의 '간판'을 염두에 둔 선택이어서 '문송한' 정도가 훨씬 덜하다. 복수 전공 제도를 잘만 활용하면 적성과 학과가 불일치하는 핸디캡도 극복할 수 있다. 아예 로스쿨 진학을 목표로 '문송한' 학과를 선택한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인문 사회 관련 학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낮다는 건, 우리 사회에서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진다. 취업하기 어렵다고 하니 선택을 주저하게 되고, 지원자가 적으니 결국 학과의 문을 닫는 악순환이다. 최근 우리 사회의 학령 인구 급감은 그들 학과에 직격탄이 됐다.

대학마다 취업률을 끌어올리는 게 폐과의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여긴다. 입시 철 지방대의 홍보 문구에는 어김없이 '취업률 1위'라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순위가 매겨져 있다. 대학의 처절한 생존 전략일 테지만, 취업이 대학의 존재 이유라는 고백 같아 씁쓸하다.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취업률을 올리기가 여의치 않자 연구와 강의에 매진해야 할 교수들이 '영업 사원'을 자처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수시 모집 기간 고3 교무실을 찾아 아이들을 보내달라고 읍소하는 풍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텅 빈 연구실에서 대학의 암울한 미래를 본다.

취업률에 얽매여 획일화하는 우리 대학의 현실은 이른바 '덕후'가 설 자리를 앗아간다. 독일 철학에 심취한 아이가 갈 곳은 사실상 지방대 중엔 없다.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영수 성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들에겐 배울 기회조차 없다.

대한민국은 본령마저 내팽개친 대학 교육의 실상을 뻔히 알면서도 모두가 대학 진학에 목매단 그로테스크한 사회다. 우리 대학엔 구성원들의 서열 의식과 취업률이라는 껍데기만 남았다. '수능 대박'만 꿈꾸는 현실은 대학 교육의 붕괴가 가까워졌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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