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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손이 가지 않던 모과, 이렇게 좋은 걸 몰랐네요

이웃이 준 모과 청으로 만들었더니... 맛있고 기침과 가래 완화하는 효능도 있어

등록|2024.11.13 11:10 수정|2024.11.13 11:22
울긋불긋해진 마른 잎들이 바람결에 이 집 저 집으로 날아든다. 마당 데크와 잔디밭엔 너저분한 낙엽들이 쌓였다. 울타리 전체를 감싸고 있던 담쟁이 덩굴도 불그스름하게 물들어 가을의 정취를 뽐낸다. 해가 짧아져 오후 다섯 시만 넘어도 사위가 칠흑 같다.

앞집 할아버지 댁 키 큰 모과나무엔 모과 몇 알만이 덩그러니 달려있다. 할아버지는 매년 늦가을에 노랗게 익은 모과 몇 알을 가져다 주셨다. 왁스를 바른 것처럼 미끄덩거리는 열매를 받아 들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고,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라는 속담처럼 모과의 생김새는 울퉁불퉁했고, 영 손이 가지 않았다.

코끝에 스치는 달큼한 향에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이맘때면 텔레비전 위에 늘 올려져 있던 열매. 엄마는 대체 저 못생긴 과일을 철마다 어디서 가져와 올려두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특유의 향에 거부감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리던 내 표정까지 그려졌다.

노란 열매는 금방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잃었다. 표면에 손톱만 한 갈색 반점이 생기고, 반점이 점점 커져 전부 갈색으로 변하고 나서야 모과는 우리 집을 떠났다.

모과청 만들기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모과를 엄마처럼 똑같이 집안에 그대로 두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모과청을 만들기로 했다. 단단한 모과의 과육을 자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손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반으로 가른 모과 안에는 까만 씨앗이 보인다. 아이는 씨앗을 보고 괴물 이빨 같다고 했다. 모과씨는 섭취 시 독성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 꼭 제거해야 한다. 손에 힘을 잔뜩 주고 과육을 적당한 크기로 썰고 나면 손목이 뻐근하다 못해 어깻죽지까지 아팠다.

잘라둔 모과는 동량의 설탕과 버무려 열탕 소독한 유리병에 담으면 완성이다. 실온에서 일주일 정도 숙성 후 먹으면 된다. 주전자나 냄비에 끓여 먹으면 더욱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달콤했다. 숙성된 모과청으로 끓여낸 모과차의 맛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나이가 들어 취향이 바뀐 것일까? 애초에 생김새로 오해받던 모과의 진심을 몰랐던 것일까?

향긋하고 우아한 맛에 푹 빠져 나는 매년 모과청을 담았다. 환절기 목이 따갑고 으슬으슬한 기운이 느껴지면 뜨끈하고 달큼한 모과차 한 잔을 마셨다. 그러고 나면 기웃대던 감기 기운이 싹 달아났다. 실제로 모과는 비타민C가 풍부하고 기침과 가래를 완화하는 효능이 있어 기관지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궁금한 이웃의 안부

올해는 익은 모과가 땅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시커멓게 썩어가는 와중에도 이웃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마음에 울타리 너머 마당을 돌보는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많다고 했다. 요즘 할아버지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구나. 스산한 가을의 정경처럼 마음이 쓸쓸해졌다.

▲ 단단한 모과 두 알 ⓒ 원미영


며칠 뒤 할아버지 댁 울타리 앞에 가지런히 놓아둔 모과가 보였다.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모과를 두 알을 손에 쥐고 집으로 들어왔다. 수고로움 뒤 한 병의 귀한 모과청을 얻었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 가지엔 이미 봄을 기다리는 꽃눈이 보인다. 꽃눈이 꽃이 될 때쯤, 계절을 무사히 잘 보낸 할아버지에게 다정한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 내가 만든 모과청, 모과차는 향긋하고 우아한 맛이 난다. ⓒ 원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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