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으로 스타덤... 2000년대 여심 흔든 주지훈
[드라마 보는 아재] 주지훈-윤은혜 등 신인들이 주연 맡은 만화원작 드라마 <궁>
▲ 2003년 데뷔해 모델로 이름을 날리던 주지훈은 <궁 >이 연기 데뷔작이었다. ⓒ MBC 화면캡처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 작가들의 상상력은 '현실적이지 못한 허황된 스토리'라는 인식이 많았다. 1986년 <이장호의 외인구단>과 1987년 <지옥의 링>처럼 이현세 작가의 만화가 영화화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만화를 원작으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만큼 웹툰 원작의 드라마가 차고 넘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절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SBS에서 제작한 허영만 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아스팔트 사나이>와 <미스터큐>가 차례로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만화원작 드라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에도 MBC에서 방학기 작가의 <다모>가 이재규 감독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됐고 영화로 먼저 만들어졌던 허영만 작가의 <타짜>와 <식객>도 2008년 나란히 드라마로 제작·방송됐다.
'신의 한 수'된 신인배우 캐스팅
▲ <궁>으로 성공적인 배우변신에 성공한 윤은혜는 이후 <포도밭 그 사나이>와 <커피프린스 1호점>을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 MBC 화면캡처
드라마 <궁>의 원작 만화를 그린 박소희 작가는 지난 2005년 <궁>의 드라마 제작이 확정된 후 신채경 역을 맡을 배우로 <명랑소녀 성공기>에서 여고생 연기를 능청스럽게 소화했던 장나라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드라마 <궁>을 연출하게 된 황인뢰 감독은 캐릭터들의 풋풋하고 신선한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4명의 주요 배역을 모두 신인들로 채우는 파격적인 캐스팅을 단행했다.
1999년 만 14세의 어린 나이에 베이비복스 3집 멤버로 합류한 윤은혜는 베이비복스의 막내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윤은혜는 베이비복스 잠정 해체 후 연기자로 변신했지만 연기 경력은 베이비복스 시절에 나왔던 영화 < 긴급조치19호 >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가 전부였다. 하지만 윤은혜는 <궁>의 여주인공 신채경 역을 맡아 많은 우려를 이겨내고 자신만의 신채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2003년 데뷔해 모델로 이름을 날리던 주지훈은 <궁 >이 연기 데뷔작이었다. 황인뢰 감독은 주지훈의 귀공자 같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날카로운 카리스마가 원작의 이신 황태자와 일치한다고 판단했고 과감하게 주지훈에게 이신 역을 맡겼다. 실질적인 연기 데뷔작이었던 만큼 연기력 논란도 있었지만 주지훈은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드라마의 인기를 이끌었다.
서브 주인공들 역시 신예들로 채웠다. 이신과 황태자 자리, 그리고 채경의 사랑을 두고 다투는 의성군 이율 역은 남성듀오 UN 출신의 김정훈이 맡았다. 이신의 첫사랑 민효린 역의 송지효가 그나마 영화 < 여고괴담3:여우계단 >, <썸>에서 주연을 맡아 주인공 4인방 중 연기 경험이 가장 많았지만 송지효 역시 드라마 주연은 <궁>이 처음이었다.
이처럼 <궁>은 신인들로 주요 배역을 채운 대신 검증된 배우들을 조연으로 배치해 신인 배우들이 줄 수 있는 불안 요소를 최소화했다. 태황태후 역의 김혜자 배우를 비롯해 혜정궁 역의 심혜진, 황제 역의 박찬환, 황후 민씨 역의 윤유선, 채경 부모 역의 강남길과 임예진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렇게 신예와 베테랑 배우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며 출발한 MBC 월화 드라마 <궁>은 2006년 상반기를 강타했다.
아쉬운 연기 만회한 아름다운 영상미
▲ <궁>은 배우들의 신선한 매력으로 캐스팅 당시의 비판들을 씻어 버렸다. ⓒ <궁> 홈페이지
<궁>은 1945년에 광복한 대한민국이 구 대한제국 황실을 부활시키고 입헌군주제를 채택해 2000년대까지 황실이 이어진다는 설정의 대체 역사물이다. 많은 순정만화 원작의 드라마들이 그런 것처럼 <궁> 역시 박소희 작가의 원작 만화의 인기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방영 초기에는 캐스팅 논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 <궁>은 우려와 달리 10대와 20~30대 여성 시청자들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궁>은 평범한 여고생이었던 신채경(윤은혜 분)이 어른들의 약속 때문에 졸지에 황태자와 결혼해 궁에 살게 되고 까칠한 황태자 이신(주지훈 분)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궁>은 전체적으로 유쾌한 트렌디 드라마의 색깔을 유지하지만 뜬금없이 대하 사극에서나 등장할 법한 궁중 암투나 황제와 황태후의 금지된 사랑이 등장하는 등 여러 장르의 매력을 잘 조합했다.
사실 <궁>은 연기 경력이 매우 짧은 신인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했기 때문에 젊은 배우들의 아물지 못한 연기가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신인배우들의 다소 아쉬운 연기는 황인뢰 감독이 진두지휘한 뛰어난 영상미를 통해 완벽하게 만회했다. 특히 <궁>에서는 테디베어 인형을 활용해 주요 장면을 재현한 엔딩 장면을 연출해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았다.
드라마 초반 채경은 인터넷 채팅에서나 사용할 법한 표현들을 현실에서 입버릇처럼 사용하면서 궁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좌우당간', '대략 낭패', '므흣', '꾸벅' '불끈' 같은 표현들이다. 하지만 채경과 신, 율(김정훈 분), 효린(송지효 분)의 사각관계가 본격화되고 이야기가 진지해지면서 채경의 장난스러운 말버릇도 점점 줄어든다. 실제로 드라마가 후반에는 채경의 만화 같은 말버릇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궁>이 최고 시청률 27.1%를 기록하며 높은 인기 속에 종영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시즌2 제작에 대한 요구가 커졌고 실제로 2007년 후속작 < 궁S >가 제작·방영됐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하지만 전편의 주역들이 대부분 교체되면서 < 궁S >는 한 자릿 수의 저조한 시청률로 종영했다. 지난 봄에는 <궁> 리메이크에 대한 소식도 있었지만 11월이 될 때까지 <궁> 리메이크 캐스팅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송지효의 첫 드라마 주연작
▲ 주로 영화에서 활동하던 송지효에게 <궁>은 데뷔 후 첫 드라마 주연작이었다. ⓒ MBC 화면캡처
2010년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 합류하면서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상승한 송지효에게 <궁>은 데뷔 첫 드라마 주연작이었다. 송지효가 연기한 발레 유망주 민효린은 이신의 첫사랑이자 힘든 가정 환경에도 최고의 발레리나를 꿈꾸는 당찬 소녀로 태국에서 이신과 비밀 데이트를 즐기며 채경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결국 황실의 유학 제안을 받아들이고 20화에서 이신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퇴장했다.
김정훈이 연기한 의성군 이율은 효열태자(김상중 분)의 죽음으로 황위계승 서열에서 밀려나 영국으로 떠났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돌아가신 아버지의 추존(사망 후 생전의 직위보다 높은 직위를 올려주는 것) 후 서열 2위로 급부상했다. 율은 드라마 중반 황위에 대한 욕심과 채경에 대한 집착으로 나쁜 마음을 먹기도 했지만 결국 어머니 혜정궁(심혜진 분)의 과오를 모두 덮어쓰고 어머니와 함께 궁 밖으로 나간다.
비교적 캐릭터가 확실한 황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가 바로 심혜진이 연기했던 혜정궁이었다. 과거 황후였지만 효열태자의 죽음으로 아들과 영국으로 떠났던 혜정궁은 한국으로 돌아와 황태후 자리에 올라 아들 율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온갖 음모와 악행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율의 폭로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혜정궁은 교통사고를 당하며 다리를 크게 다치고 궁에서 쫓겨났다.
황족은 사회에 대한 봉사를 통해 품위를 지키며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태황태후 역할은 '국민엄마' 김혜자 배우가 연기했다. 태황태후는 평소 인자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채경에게 신조어를 배워 따라 하는 등 다소 철없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황실의 큰 어른으로서 카리스마를 발산하기도 했다. 마지막 회에는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난 손자 신과 함께 봉사 여행을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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