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영국 라이징 스타, 두 딸과 목도한 뜨거운 현장
[현장] 작사·작곡, 프로듀싱, 패션 디자인까지 하는 Griff (그리프) 콘서트
영국 글래스고의 지난 금요일(8일, 현지시각) 밤거리는 우리가 사는 마을과 확연히 달랐다. 강 사이를 두고 반짝이는 집들의 불빛이 화려했고 늦게까지 문을 연 펍에서는 라이브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술 마시고 비틀거리거나 욕하며 고함치는 소리까지 몇 배나 사나웠다. 두 딸을 데리고 이곳을 나온 이상 나는 도시의 밤 주정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서 걸어."
버스 정류장에는 한 다섯 명의 젊은 아이들이 어슬렁거렸고 내가 지나가자 동양인을 비하하는 '칭챙총창' 중국말을 흉내 내면서 비웃기도 했다. 오후 여섯 시 반이었지만 짙은 어둠이 깊게 내려와 싸늘한 바람이 소매 사이로 파고들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가로 불빛 밑으로 뱀처럼 길게 늘어진 줄이 보았다. 드디어 도착했다. O2 아카데미 공연장.
테일러 스위프트 투어 오프닝 맡은 신예
내 생에 유명한 가수의 공연을 본 건 국민학교 시절(지금의 초등학교)의 김건모와 대학교 때 유승준이 전부였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인 셈이다. 그리프(Griff)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디자이너다. 그녀는 2021년 영국 시상식에서 라이징 스타로 선정됐고 올해 < Vertigo >라는 앨범을 냈다. 사랑과 이별, 혼돈, 자아 발견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반복하며, 팬데믹을 극복한 이후 팬들과 함께한 성장의 여정을 앨범 속에 긍정적으로 담아냈다. 지난 6월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으며 더욱 유명해졌다.
40분 정도 기다린 긴 줄이 조금씩 줄어들고 드디어 콘서트장에 들어섰다. 우리는 스탠딩석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앞에서 여섯 줄쯤 되다 보니 무대와 제법 가까웠다. 마흔여섯 살인 나는 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두 명의 십 대 아이들을 이길 수가 없다.
공연에 앞서 아지아(Aziya)라는 가수가 30분 동안 오프닝 공연을 선보였다. 오프닝이 끝난 후 콩나물시루가 된 사람들은 지루하게 또 다음 공연을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 하는 듯 했다. 이내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흘러 나오자 절로 몸이 움직였다. 마치 공연장에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는 듯 팬들의 일렁거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랫동안 서서 그리프를 기다리는 건 설레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파와 힘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9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기다리던 그리프가 등장했다.
그리프는 노래 말고도 직접 옷을 디자인하기로 유명한 아티스트다. 그렇기에 팬들은 이번 공연에서 그가 어떤 옷을 만들었을지 관심을 보였다. 이날 그리프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윤기 나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었다. 빅토리안 파티 때 입을만한 볼륨 있는 검은색 레이스가 양옆으로 달려 있는 옷이었다.
'Vertigo'라는 첫 곡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놀랍게도 그리프의 목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닿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연한 청록색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떠오르게 했다. 독특한 피스타치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오드득 씹히는 견과 같은 목소리다.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해서 한 입 더 먹고 싶게 되는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공연 중간에 그리프가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보다 더 뒤로 걸어가서 기타를 메고 'So Fast'를 불렀다. 이 곡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아이들이 적어도 한 곡은 따라 불러야 되지 않겠냐며 가르쳐 준 곡이었다. "You don't have to go so fast, so fast" (너무 빨리 갈 필요는 없어.) 나도 머리를 살랑거리며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I miss me too'라는 곡인데 '예전의 내가 그립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어떻게 저런 작은 몸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올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프는 관객 모두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려는 했다. 모든 곡을 다 부르고는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더니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23살의 청년 그리프. 참으로 빛났다.
그리프의 아빠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는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에 속했던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이다. 어머니 킴(Kim)은 베트남계 중국 사람이다. 내 남편의 할아버지도 윈드러시 세대로 그즈음에 자메이카에서 낯선 런던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그리프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절로 마음이 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정체성을 노래에 담아 그녀만의 독특함과 고유함으로 자신을 발산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11시가 다 될 무렵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기차를 갈아타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행복에 겨워 미소 짓고 있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그리프의 노래에 취해 여전히 흥얼거리고 있었다. 딸 둘과 함께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은 밤이었다.
*윈드러시 세대 (위키백과 참조)
영국시민자에서 출생하였거나 당대 영국 식민지의 국적을 지닌 이들이라면 영국 본토에서의 거주권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1948-1970년간 약 50만 명이 이민 왔고 이는 영국 정부에서 장려한 것이었다. 영국은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갓 헤어 나온 상황으로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영국으로 이민 온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 부르는데,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에서 따왔다.
"엄마 옆에 바짝 붙어서 걸어."
테일러 스위프트 투어 오프닝 맡은 신예
▲ 그리프가 직접 만든 초록색 드레스. 빅토리안 파티 때 입을만한 볼륨 있는 검은색 레이스가 양 옆으로 달려 있었다. ⓒ 제스혜영
내 생에 유명한 가수의 공연을 본 건 국민학교 시절(지금의 초등학교)의 김건모와 대학교 때 유승준이 전부였다.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인 셈이다. 그리프(Griff)는 영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디자이너다. 그녀는 2021년 영국 시상식에서 라이징 스타로 선정됐고 올해 < Vertigo >라는 앨범을 냈다. 사랑과 이별, 혼돈, 자아 발견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감정을 반복하며, 팬데믹을 극복한 이후 팬들과 함께한 성장의 여정을 앨범 속에 긍정적으로 담아냈다. 지난 6월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투어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으며 더욱 유명해졌다.
40분 정도 기다린 긴 줄이 조금씩 줄어들고 드디어 콘서트장에 들어섰다. 우리는 스탠딩석이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이 앞으로 달려갔다. 앞에서 여섯 줄쯤 되다 보니 무대와 제법 가까웠다. 마흔여섯 살인 나는 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두 명의 십 대 아이들을 이길 수가 없다.
공연에 앞서 아지아(Aziya)라는 가수가 30분 동안 오프닝 공연을 선보였다. 오프닝이 끝난 후 콩나물시루가 된 사람들은 지루하게 또 다음 공연을 어떻게 기다리나 싶어 하는 듯 했다. 이내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흘러 나오자 절로 몸이 움직였다. 마치 공연장에 거대한 물결이 일어나는 듯 팬들의 일렁거림이 느껴질 정도였다. 오랫동안 서서 그리프를 기다리는 건 설레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파와 힘들었다. 좁은 공간에서 예쁜 드레스를 입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9시가 조금 넘자 드디어 기다리던 그리프가 등장했다.
그리프는 노래 말고도 직접 옷을 디자인하기로 유명한 아티스트다. 그렇기에 팬들은 이번 공연에서 그가 어떤 옷을 만들었을지 관심을 보였다. 이날 그리프는 비단처럼 부드럽고 윤기 나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었다. 빅토리안 파티 때 입을만한 볼륨 있는 검은색 레이스가 양옆으로 달려 있는 옷이었다.
'Vertigo'라는 첫 곡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놀랍게도 그리프의 목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닿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연한 청록색의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떠오르게 했다. 독특한 피스타치오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면서 오드득 씹히는 견과 같은 목소리다.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달콤해서 한 입 더 먹고 싶게 되는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공연 중간에 그리프가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서 있는 곳보다 더 뒤로 걸어가서 기타를 메고 'So Fast'를 불렀다. 이 곡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아이들이 적어도 한 곡은 따라 불러야 되지 않겠냐며 가르쳐 준 곡이었다. "You don't have to go so fast, so fast" (너무 빨리 갈 필요는 없어.) 나도 머리를 살랑거리며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I miss me too'라는 곡인데 '예전의 내가 그립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어떻게 저런 작은 몸에서 이런 목소리가 흘러나올까 싶을 정도였다. 그리프는 관객 모두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려는 했다. 모든 곡을 다 부르고는 아이처럼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더니 "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23살의 청년 그리프. 참으로 빛났다.
▲ 'Vertigo' 앨범 커버의 나선형 모티프 빛 아래서 노래하는 그리프. ⓒ 제스혜영
그리프의 아빠 마크 그리피스(Mark Griffiths)는 *윈드러시 세대(Windrush Generation)에 속했던 자메이카 이민자의 아들이다. 어머니 킴(Kim)은 베트남계 중국 사람이다. 내 남편의 할아버지도 윈드러시 세대로 그즈음에 자메이카에서 낯선 런던 땅을 처음으로 밟았다. 그리프를 보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절로 마음이 가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혼란스러운 자신의 정체성을 노래에 담아 그녀만의 독특함과 고유함으로 자신을 발산하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11시가 다 될 무렵 지하철을 타고 또 다른 기차를 갈아타며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모두 행복에 겨워 미소 짓고 있었다. 공연은 끝났지만, 그리프의 노래에 취해 여전히 흥얼거리고 있었다. 딸 둘과 함께 또 하나의 추억을 쌓은 밤이었다.
*윈드러시 세대 (위키백과 참조)
영국시민자에서 출생하였거나 당대 영국 식민지의 국적을 지닌 이들이라면 영국 본토에서의 거주권을 부여했다. 이로 인해 1948-1970년간 약 50만 명이 이민 왔고 이는 영국 정부에서 장려한 것이었다. 영국은 당시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갓 헤어 나온 상황으로 심각한 인력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시 영국으로 이민 온 이들을 '윈드러시 세대'라 부르는데, 윈드러시 세대 이민자들이 타고 온 배의 이름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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