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앞둔 엄마와 쉰 넘은 딸이 풀어낸 재일 조선인의 삶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되살아나는 목소리>
*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박수남은 중년이 지나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다. 공개된 첫 다큐멘터리가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이니 어지간히 굴곡 많은 인생이다. 딸은 엄마와의 인터뷰와 기록 수집을 통해 이제 곧 구순을 앞둔 주인공을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1단계: 박수남의 인생사 돌아보기
일제강점기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서 일하던 부모 슬하에 태어난 박수남은 본인 언급대로라면 '황국 소녀'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자신이 천황 폐하의 신민임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편 일본어는 한마디도 모르지만,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해 치마저고리를 입으면 그렇게 빛나던 모친과 함께 거리를 다니길 좋아한 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선인 혐오를 담아 그들을 향해 일본인이 던진 돌은 이 '황국 소녀'에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대체 왜 같은 일본인인 우리를 차별하는 걸까.
의문은 해방 이후 분단과 함께 기회를 놓친 후 언젠가 올 귀환을 대비해 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에 다니며 해소된다. 식민지 출신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정착하는 걸 우려한 당국이 학교 폐쇄를 위해 공권력을 투입할 때 친구들과 함께 맞서며 자연히 민족 정체성에 눈뜨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민족정신 함양을 주도하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아래 조총련, 친북 성향의 재일본인 단체)계열 기자로 활동하게 된 건 딱히 친북이라기보단 자연스러운 행보였을 테다. 마침 북송선이 출발하고, 박수남의 여동생도 배에 오른다. 그렇게 평범한 재일동포의 삶을 살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는.
훗날 일본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거장 오시마 나기사에 의해 <교수형(교사형)>으로 극화된 '고마쓰가와 사건'이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고등학생 재일동포 소년이 두 명의 일본 여성을 살해한 일은 소년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극대화된다. 장애인 모친을 둔 극빈층 출신으로 공부를 잘했지만, 조선인 차별로 취업이 막힌 불우한 행적 때문이다. 저명한 지식인들의 감형 청원이 이어졌고, 박수남 역시 언론인으로 피의자 이진우를 취재하면서 교류하게 된다. 재일동포라는 공감대 덕분에 둘은 누나 동생처럼 교감하고, 적극적으로 구명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조총련은 재일동포의 흉악범죄가 일본 정부의 표적이 된다는 판단 아래, 박수남에게 지원 활동을 중단하도록 종용한다. 부끄러운 조선인과 엮이지 말라는 경고다. 그러나 그는 이진우의 삶은 조선인으로 정체성을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차별에 직면했기 때문이므로 조선인 사회가 힘써 구명과 갱생에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거두지 않았다. 그 결과 직장을 잃는다. 당시 많은 재일동포들이 호구지책으로 삼던 고깃집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4년 후 끝내 형장에서 사라진 이진우와 교류한 서간집을 펴낸 박수남은 꾸준히 재일동포 사회의 피압박 역사를 기록했지만, 피해자의 망설임과 함께 낮은 학력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말과 글로 오롯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게 더 적절하고 효과적임을 말이다. 뒤늦게 영상 기술을 습득해 감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이후 4편의 기록영화를 완성하고 상영과 강연, 행사에 참여하며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2단계: 영화가 아니라면 사라지고 말았을 피해자의 역사
다큐멘터리 감독에겐 딜레마가 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파격적 소재를 갈구하지만, 이를 온전히 (착취하지 않고) 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수준의 이해와 감정 이입이 요구된다. 반드시 대상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교감은 필수다. 상담과 비슷한 측면이라면 이해가 쉬울 법하다. 타인의 기구한 사연을 듣는 건, 그 감정의 진폭과 상처의 무게가 자신에게 옮겨오는 것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박수남은 본인도 겪었던 차별의 생생한 체험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하필 4편 영화들은 개요만 들어도 듣는 가슴을 철렁하게 할 정도다.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재일조선인을 찾아다닌다.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처절한 민간인 피해를 낳은 전장인 오키나와를 찾아 전쟁의 상흔을 목격한다. 위안부 생존자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곳곳을 헤맨다. 일본 각지를 탐방하던 카메라는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공론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이다. 역사의 흔적마다 박수남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의 작업은 본인의 재일조선인 정체성을 놓지 않은 평생의 삶, 자신의 부모세대부터 자녀세대에 이르기까지 공유하는 차별과 혐오에 직면한 피해자의 역사, 그리고 미래 협력과 교류를 위해 짚어야 할 숙제가 삼위일체처럼 거대한 순환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가해자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이자 피압박 민중의 역사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한 인간이 수행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과제다. 하지만 박수남의 탁월함은 남들이 도전하기 꺼리는 소재에 천착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가 이기에 특별해진다.
한국은 일제에서 독립한 이후 국가 주도로 반일 감정을 주창했지만, 정작 이를 주도한 세력은 친일 전력이 있거나, 부역자들을 보호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박정희 정권은 민간의 피해보상 청구권을 훼손하는 한일협약을 강행했고, 대일 관계에서 외교적 수사학으로 위안부 문제를 써먹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 지원이나 실태조사조차 외면하기 일쑤였다. 정치가들의 협상 게임 장기 말로 전락한 것이다. 박수남은 그 공백을 자신의 평생 작업으로 바로 세우고자 분투해 왔다. 차례로 소개되는 기록영화 4편 요약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3단계: 12km 길이의 복원된 필름 속에서 부활하는 역사의 교훈
박수남은 이제 고령에다 지병으로 영구적으로 시력에 제약이 생겼다. 간간이 대외 활동을 이어가며 평생 목격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알리지만, 4편의 다큐멘터리로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방대한 기록자료가 더 남아 있었다. 그의 집에는 아직 영상으로 공개되지 못한 16mm 필름이 10만 피트(30cm 전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km 길이 미공개 분량이 남아 있었다. 역시 감독의 길을 걷던 딸 박마의는 여기에 주목한다. 엄마를 돌보며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다.
필름은 물론 별도 녹음된 사운드 자료 역시 어마어마하지만, 광화학 필름 특성상 열화를 피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늦췄다면 영영 재생하지 못했을 법했다. 그 50시간 분량 기록이 세상에 부활하는 과정이 박수남의 장대한 기억 투쟁과 합을 맞춰 5번째 영화로 세상에 공개된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제목 그대로 그가 기록한 재일조선인 피압박 역사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마지막 싸움인 것이다.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국(과 중국) 지도층 공식 입장과 달리 20대 시절 박수남에게 조총련 간부가 강권하던 것처럼, 자랑스럽지 않은 기록과 개인은 덮는 행태는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조선 기득권층이 '화냥년'으로 피해자를 매도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민족의 수치, 조선인답지 않은 찌꺼기 취급을 받으며 희생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박수남의 카메라가 그들과 접속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무엇을 담고 있나. 제암리 양민학살 마지막 증인은 치매에 걸려 인터뷰 불가능한 상태지만, 카메라 앞에서 역사의 증언을 위해 마지막 생명력을 쥐어짜듯 또박또박 과거의 참극을 어제 일처럼 말한다. 심지어 정갈한 복장을 갖춘 채다. 치매로 증거능력을 의심받을지 긴장한 것처럼 말이다.
종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해 고소하다 통쾌하다는 시각을 접하지만, 강제로 징용된 숱한 조선인 노무자와 동포들이 그중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후유증을 안고 살면서도 의연한 생존자와 후손들의 자긍심, 하지만 치유 불가능한 상흔이 카메라에 담긴다. 이들을 돕는 일본인 피폭자 단체 활동가는 그들과 교유하며 피해를 공감하되 양자가 동등한 맥락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정부가 숨기는 것을 피해자 의식을 공유할 때 돌파할 수 있다는 예시다. 과거의 상처에서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 소리 없는 웅변을 듣는 셈이다.
영화는 불의한 세상과 망각에 맞서 싸우는 법
숨어 있던 필름엔 대부분 고인이 된 마지막 증언자들이 가득하다. 침략 전쟁에 강제동원된 노동자의 입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황국신민 세뇌 교육이 생생하게 각인된다. 이는 박수남과 박마의 모녀가 일본 내에서 조선인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희생했던 기억과 직결된다. 요즘 논란이 되는, 기미가요 제창에 관해 몸서리치는 박수남의 과거, 일본 이름 대신 조선 이름을 표기했다 왕따 대상이 된 박마의의 학창 시절이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의 경계를 무력화시킨다.
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 경고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정경유착 기업인 미쓰비시의 동양 최대 조선소에 징용당해 항공모함 건조에 종사하던 피폭자의 증언은 지금 현재도 전쟁할 권리와 해외 진출을 노리는 해상자위대의 최신 군함이 정박한 부두로 넘어온다. 전쟁에 희생당한 오키나와는 미국과 그 파트너 지위를 움켜쥔 일본에 의해 군사화 중이다. 평화운동 시위에 결합하면서 비범한 모녀 감독은 과거를 올바로 기억하는 게 어떻게 미래 전망을 열 수 있는지 입증한다. 이를 반박하기란 불가능하다.
매년 등장하는 재일조선인과 한일 과거사 영화가 지루하다는 선입견은 <되살아나는 목소리> 앞에서 순식간에 무력해지고 만다. 관동대학살과 태평양전쟁, 일본 패망과 전후 분단, 작금의 일본 재무장과 평화헌법 폐기 논쟁까지 동북아시아 긴장과 대결의 역사가, <아이 캔 스피크>와 <군함도>, <말모이>와 <마이웨이>의 실제 역사, 그것도 상업영화의 역사 재현에서 빼먹은 것들이 본 다큐멘터리 1편에 보물 상자처럼 압축되어 있다는 걸 감히 장담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역사의 파도 앞에 치열하게 당당히 맞설 때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그 생생한 증거를 맞이하는 중이다.
<작품정보>
되살아나는 목소리
Voices of the Silenced
2023|한국|다큐멘터리
2024.11.13. 개봉|148분|12세 관람가
연출 박수남, 박마의
제작 영화사 하르빈, 아리랑의 노래 제작위원회, 박수남
배급 시네마 달, 푸른영상
박수남은 중년이 지나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것도 독립 다큐멘터리 작가다. 공개된 첫 다큐멘터리가 그의 나이 50이 넘어서이니 어지간히 굴곡 많은 인생이다. 딸은 엄마와의 인터뷰와 기록 수집을 통해 이제 곧 구순을 앞둔 주인공을 형상화하기 시작한다.
▲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 ⓒ 시네마 달
일제강점기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서 일하던 부모 슬하에 태어난 박수남은 본인 언급대로라면 '황국 소녀'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자신이 천황 폐하의 신민임을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편 일본어는 한마디도 모르지만, 키가 크고 외모가 수려해 치마저고리를 입으면 그렇게 빛나던 모친과 함께 거리를 다니길 좋아한 딸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조선인 혐오를 담아 그들을 향해 일본인이 던진 돌은 이 '황국 소녀'에게 영문을 알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대체 왜 같은 일본인인 우리를 차별하는 걸까.
의문은 해방 이후 분단과 함께 기회를 놓친 후 언젠가 올 귀환을 대비해 동포들이 세운 민족학교에 다니며 해소된다. 식민지 출신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정착하는 걸 우려한 당국이 학교 폐쇄를 위해 공권력을 투입할 때 친구들과 함께 맞서며 자연히 민족 정체성에 눈뜨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민족정신 함양을 주도하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아래 조총련, 친북 성향의 재일본인 단체)계열 기자로 활동하게 된 건 딱히 친북이라기보단 자연스러운 행보였을 테다. 마침 북송선이 출발하고, 박수남의 여동생도 배에 오른다. 그렇게 평범한 재일동포의 삶을 살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건을 접하기 전까지는.
훗날 일본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거장 오시마 나기사에 의해 <교수형(교사형)>으로 극화된 '고마쓰가와 사건'이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고등학생 재일동포 소년이 두 명의 일본 여성을 살해한 일은 소년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극대화된다. 장애인 모친을 둔 극빈층 출신으로 공부를 잘했지만, 조선인 차별로 취업이 막힌 불우한 행적 때문이다. 저명한 지식인들의 감형 청원이 이어졌고, 박수남 역시 언론인으로 피의자 이진우를 취재하면서 교류하게 된다. 재일동포라는 공감대 덕분에 둘은 누나 동생처럼 교감하고, 적극적으로 구명에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조총련은 재일동포의 흉악범죄가 일본 정부의 표적이 된다는 판단 아래, 박수남에게 지원 활동을 중단하도록 종용한다. 부끄러운 조선인과 엮이지 말라는 경고다. 그러나 그는 이진우의 삶은 조선인으로 정체성을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차별에 직면했기 때문이므로 조선인 사회가 힘써 구명과 갱생에 나서야 한다는 소신을 거두지 않았다. 그 결과 직장을 잃는다. 당시 많은 재일동포들이 호구지책으로 삼던 고깃집을 운영하며 프리랜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4년 후 끝내 형장에서 사라진 이진우와 교류한 서간집을 펴낸 박수남은 꾸준히 재일동포 사회의 피압박 역사를 기록했지만, 피해자의 망설임과 함께 낮은 학력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말과 글로 오롯이 표현하지 못하는 상대를 보며 깨달음을 얻는다. 글이 아니라 영상으로 기록하는 게 더 적절하고 효과적임을 말이다. 뒤늦게 영상 기술을 습득해 감독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이후 4편의 기록영화를 완성하고 상영과 강연, 행사에 참여하며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2단계: 영화가 아니라면 사라지고 말았을 피해자의 역사
▲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 ⓒ 시네마 달
다큐멘터리 감독에겐 딜레마가 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파격적 소재를 갈구하지만, 이를 온전히 (착취하지 않고) 소화하기 위해 엄청난 수준의 이해와 감정 이입이 요구된다. 반드시 대상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교감은 필수다. 상담과 비슷한 측면이라면 이해가 쉬울 법하다. 타인의 기구한 사연을 듣는 건, 그 감정의 진폭과 상처의 무게가 자신에게 옮겨오는 것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박수남은 본인도 겪었던 차별의 생생한 체험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하필 4편 영화들은 개요만 들어도 듣는 가슴을 철렁하게 할 정도다. 그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재일조선인을 찾아다닌다. 태평양 전쟁 중 가장 처절한 민간인 피해를 낳은 전장인 오키나와를 찾아 전쟁의 상흔을 목격한다. 위안부 생존자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곳곳을 헤맨다. 일본 각지를 탐방하던 카메라는 마침내 한국에 도착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공론화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이다. 역사의 흔적마다 박수남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의 작업은 본인의 재일조선인 정체성을 놓지 않은 평생의 삶, 자신의 부모세대부터 자녀세대에 이르기까지 공유하는 차별과 혐오에 직면한 피해자의 역사, 그리고 미래 협력과 교류를 위해 짚어야 할 숙제가 삼위일체처럼 거대한 순환으로 연결된다. 이를 통해 가해자의 역사, 지배자의 역사가 아닌 아래로부터의 역사이자 피압박 민중의 역사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한 인간이 수행하기엔 너무나 거대한 과제다. 하지만 박수남의 탁월함은 남들이 도전하기 꺼리는 소재에 천착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서술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이해의 결과가 이기에 특별해진다.
한국은 일제에서 독립한 이후 국가 주도로 반일 감정을 주창했지만, 정작 이를 주도한 세력은 친일 전력이 있거나, 부역자들을 보호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광화문에 이순신 동상을 세운 박정희 정권은 민간의 피해보상 청구권을 훼손하는 한일협약을 강행했고, 대일 관계에서 외교적 수사학으로 위안부 문제를 써먹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자 지원이나 실태조사조차 외면하기 일쑤였다. 정치가들의 협상 게임 장기 말로 전락한 것이다. 박수남은 그 공백을 자신의 평생 작업으로 바로 세우고자 분투해 왔다. 차례로 소개되는 기록영화 4편 요약을 보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3단계: 12km 길이의 복원된 필름 속에서 부활하는 역사의 교훈
▲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 ⓒ 시네마 달
박수남은 이제 고령에다 지병으로 영구적으로 시력에 제약이 생겼다. 간간이 대외 활동을 이어가며 평생 목격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알리지만, 4편의 다큐멘터리로 온전히 풀어내지 못한 방대한 기록자료가 더 남아 있었다. 그의 집에는 아직 영상으로 공개되지 못한 16mm 필름이 10만 피트(30cm 전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12km 길이 미공개 분량이 남아 있었다. 역시 감독의 길을 걷던 딸 박마의는 여기에 주목한다. 엄마를 돌보며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을 테다.
필름은 물론 별도 녹음된 사운드 자료 역시 어마어마하지만, 광화학 필름 특성상 열화를 피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늦췄다면 영영 재생하지 못했을 법했다. 그 50시간 분량 기록이 세상에 부활하는 과정이 박수남의 장대한 기억 투쟁과 합을 맞춰 5번째 영화로 세상에 공개된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제목 그대로 그가 기록한 재일조선인 피압박 역사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마지막 싸움인 것이다.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는 한국(과 중국) 지도층 공식 입장과 달리 20대 시절 박수남에게 조총련 간부가 강권하던 것처럼, 자랑스럽지 않은 기록과 개인은 덮는 행태는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결과적으로 조선 기득권층이 '화냥년'으로 피해자를 매도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이다. 민족의 수치, 조선인답지 않은 찌꺼기 취급을 받으며 희생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박수남의 카메라가 그들과 접속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무엇을 담고 있나. 제암리 양민학살 마지막 증인은 치매에 걸려 인터뷰 불가능한 상태지만, 카메라 앞에서 역사의 증언을 위해 마지막 생명력을 쥐어짜듯 또박또박 과거의 참극을 어제 일처럼 말한다. 심지어 정갈한 복장을 갖춘 채다. 치매로 증거능력을 의심받을지 긴장한 것처럼 말이다.
종종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에 대해 고소하다 통쾌하다는 시각을 접하지만, 강제로 징용된 숱한 조선인 노무자와 동포들이 그중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기억하지 않는다. 후유증을 안고 살면서도 의연한 생존자와 후손들의 자긍심, 하지만 치유 불가능한 상흔이 카메라에 담긴다. 이들을 돕는 일본인 피폭자 단체 활동가는 그들과 교유하며 피해를 공감하되 양자가 동등한 맥락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정부가 숨기는 것을 피해자 의식을 공유할 때 돌파할 수 있다는 예시다. 과거의 상처에서 어떻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지 소리 없는 웅변을 듣는 셈이다.
영화는 불의한 세상과 망각에 맞서 싸우는 법
▲ <되살아나는 목소리> 스틸 ⓒ 시네마 달
숨어 있던 필름엔 대부분 고인이 된 마지막 증언자들이 가득하다. 침략 전쟁에 강제동원된 노동자의 입을 통해 그들이 겪었던 황국신민 세뇌 교육이 생생하게 각인된다. 이는 박수남과 박마의 모녀가 일본 내에서 조선인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희생했던 기억과 직결된다. 요즘 논란이 되는, 기미가요 제창에 관해 몸서리치는 박수남의 과거, 일본 이름 대신 조선 이름을 표기했다 왕따 대상이 된 박마의의 학창 시절이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는 자의 경계를 무력화시킨다.
과거의 기억은 미래를 향한 경고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정경유착 기업인 미쓰비시의 동양 최대 조선소에 징용당해 항공모함 건조에 종사하던 피폭자의 증언은 지금 현재도 전쟁할 권리와 해외 진출을 노리는 해상자위대의 최신 군함이 정박한 부두로 넘어온다. 전쟁에 희생당한 오키나와는 미국과 그 파트너 지위를 움켜쥔 일본에 의해 군사화 중이다. 평화운동 시위에 결합하면서 비범한 모녀 감독은 과거를 올바로 기억하는 게 어떻게 미래 전망을 열 수 있는지 입증한다. 이를 반박하기란 불가능하다.
매년 등장하는 재일조선인과 한일 과거사 영화가 지루하다는 선입견은 <되살아나는 목소리> 앞에서 순식간에 무력해지고 만다. 관동대학살과 태평양전쟁, 일본 패망과 전후 분단, 작금의 일본 재무장과 평화헌법 폐기 논쟁까지 동북아시아 긴장과 대결의 역사가, <아이 캔 스피크>와 <군함도>, <말모이>와 <마이웨이>의 실제 역사, 그것도 상업영화의 역사 재현에서 빼먹은 것들이 본 다큐멘터리 1편에 보물 상자처럼 압축되어 있다는 걸 감히 장담할 수 있다. 한 인간이 역사의 파도 앞에 치열하게 당당히 맞설 때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그 생생한 증거를 맞이하는 중이다.
▲ <되살아나는 목소리> 포스터 ⓒ 시네마 달
<작품정보>
되살아나는 목소리
Voices of the Silenced
2023|한국|다큐멘터리
2024.11.13. 개봉|148분|12세 관람가
연출 박수남, 박마의
제작 영화사 하르빈, 아리랑의 노래 제작위원회, 박수남
배급 시네마 달, 푸른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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