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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가 당연한 사회... '원하는 노동'의 의미

[서평] 우리가 바라는 직업과 노동... 황벼리의 〈믿을 수 없는 영화관〉

등록|2024.11.13 15:18 수정|2024.11.14 09:11
황벼리 작가의 첫 장편 그래픽노블인 〈믿을 수 없는 영화관〉(한겨레출판사, 2024)에는 일하는 청년 노동자들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고무섭, 보일러 상담사로 일하는 이이소, 영화관에서 일하는 곽풀잎이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공간에서 돈을 벌며 살아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들은 불평불만을 꺼내 놓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품고 있는 직업의 생리에 대해서 고민한다.

이 작품이 직업에 대한 적성이나 생활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온전히 재현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각각의 인물들은 직업이 자신에게 맞거나 맞지 않거나만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사물 속에 숨겨진 어두운 그림자는 가려진 듯하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타자에 대한 '공감'에 초점을 맞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업과 노동에 대한 풍경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본격적인 노동의 풍경도 중요하지만, 흔적의 형태로 노동의 현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 <믿을 수 없는 영화관> 표지 ⓒ 한겨레출판사


극중 곽풀잎은 영화관 매니저다. 풀잎은 영사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아늑한 기분이 좋았다고 고백한다. 어두운 공간에 영상만이 비치는 세계는 그녀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닿게 했다. 이 감각이 좋아서 오랜 시간 영화관에서 일할 수 있었다.

영화 〈시네마천국〉(1990)의 알프레도처럼 직접 영사기를 돌리는 일은 하지 못했다. 영사기 기술도 당대의 기술과 함께 덩달아 발전한다는 점에서 필름이 돌아가는 영사기는 현재 찾아볼 수 없다. 노동력도 노동력이지만 요즘 시대에 굳이 힘들게 영사기를 돌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영사기가 디지털화된 스위치만 켜고 끄는 '스위치 기사'를 한다. 그래도 그것은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이 공간은 그녀를 살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영사실은 무인 카페처럼 무인화되었고 그때부터 풀잎은 극장에서 손님들에게 음료수와 팝콘을 팔게 된다. 영사기를 담당하는 일은 한때 평판이 좋은 직업이었지만, 이제 풀잎은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영화에 기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고 싶어 한다. 이 부분은 공상과학적인 바람이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세계관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직업도 변한다는, 언뜻 당연한 듯한 사실이다.

각자의 운명, 각자의 삶... 현실을 응시하기

고무섭은 7년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다. 그에게는 미래에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없다. 굳이 꿈을 찾자면 카페 직원이 아닌 자신만의 카페를 차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 없을까.

청펀펀 감독의 영화 〈청설〉(2010)을 리메이크한 조선호 감독의 〈청설〉(2024) 속 '용준'과 '여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젊은 청춘임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이 없거나, 찾지 못한다.

여름의 경우는 자신만 빼고 가족 모두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에서 미안한 마음이 컸기에 자신보다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죄책감을 덜어내는 것이라는 판단해 자신을 숨겼다고 하더라도, 용준은 왜 찾지 못했을까. 하지만 이것은 질문이 될 수 없다. 방황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젊은이만의 특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방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방황'이 문제 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삶이 부정되어야 할 것도 아니겠다.

이시대가 요구하고 원하는 특정한 '시기'나 적절한 '때'에 꼭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시기'나 '때'에 매달리다 보면 자신의 삶을 찾기보다는 누군가의 삶에 의탁해 의지하게 된다. 우리에겐 각자 자신의 삶과 운명이 있을 뿐이다.

▲ 카페에서 일하는 고무섭, 보일러 상담사 이이소, 영화관 직원 곽풀잎.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 나선다. ⓒ 한겨레출판사


이이소는 나이스 보일러 상담사로 일한다. 온종일 의자에 앉아서 보일러 문제와 관련된 상담을 한다. 이곳에서 1년 정도 성실하게 일한 그녀는 경력이 쌓이자 보일러의 모델명과 설치 지역 또는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새 학기를 맞아 대학교 근처 원룸에서 자취하는 학생의 전화를 받게 된 일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자취방을 얻은 청년은 가스를 설치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이사 온 첫날, 가스 연결 신청을 해야 한다는 걸 모른다면 이제 막 첫 독립생활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판단해 최대한 친절히 불안에 떨고 있는 학생의 마음을 달래준다.

이처럼 이이소는 그 누구보다도 상대방의 마음을 잘 느끼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 일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보일러 상담사 일은 이소가 진심으로 바라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모험을 시작한다. "침묵에서 벗어나기. 나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어디에 소속되기보다는 주인공이 되어 〈이소의 믿을 수 없는 상담소〉를 운영한다. 상담은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

이처럼 황벼리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영화관〉은 젊은 청춘의 이야기와 방황을 담았다. 물론, 이 작품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여지를 안고 있지만, 젊은 주인공들이 겪는 보이지 않는 '미래'와 관계의 '불안'은 동시대의 중요한 감정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매사 '불안'하므로 흔들린다. 이런 흔들림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역시 손쉽게 무너진다.

이 작품은 그런 관계의 진폭을 조심스럽게 조율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 이곳에서 먹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하는 인물의 풍경을 외면하지 않고 담는다.

조금은 낭만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낭만 속에서도 노동의 살결을 느낄 수 있다.

늘 그렇지만 '노동'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곁에서 숨 쉬는 공기와 같다. 피할 수 없을뿐더러, 그로부터 도망칠 수도 없다. 직업이나 미래 또는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러그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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