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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구 전세사기' 감형 판결... 황당하고, 황망하다

피해자가 본 2심 선고의 부당함... 국가는 정당한 심판마저 포기했나

등록|2024.11.13 10:59 수정|2024.11.13 11:50

항소심 판결은 피해자들의 삶과 미래를 짓밟은 판결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주최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인천 미추홀구 남OO 일당 엄벌 촉구 및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전세보증금을 가로채 세입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미추홀구 전세사기 일당에 대한 2심 선고공판이 지난 8월 27일 열렸다. 결과는 주동자인 남아무개씨 7년, 공모자들은 무죄와 집행유예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였다. 1심 공판에서 절반도 넘게 감형된 결과였다. 이런 결과를 들은 남씨 일당은 서로 축하꽃을 나누며 서로에게 축하를 전했다고 한다. 이토록 황당하고, 황망한 일이 있을까. 지난 6일 피해자들은 3심을 앞두고 이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었다. (관련 기사 : "축하꽃 주고받은 전세사기범들, 대통령님 지구 끝까지 추적한다면서요?")

나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20대 청년 피해자이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해사실 인정이 시작된 건 3~4년부터이다. 딱 그것에 두 배 정도 되는 형량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3~4년을 어렵게 버티면서도 결국엔 저 사기꾼들이 엄벌을 받을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었지만 2심 재판은 그 희망을 깨부순 것과 같다. 무엇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남씨가 7년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나온다 하더라도, 우리의 피해가 온전히 나아져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남씨와 그들 일당의 수법은 매우 치밀했다. 촘촘한 거미줄 사이에서 우리가 벗어날 방법은 희박했다. 더더욱 집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전세매물 많음'이라는 문구에 어찌 혹하지 않겠는가. 유혹부터 계약까지 그 촘촘하게 짜여진 각본 안에서, 피해자들은 어찌 그걸 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각본을 쓴 이들에게 고작 7년, 집행유예, 무죄라는 법이 선고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던가. (관련 기사 : '덜렁덜렁'해서 당했다? 이 치밀한 사기 각본을 보세요)

피해자들은 아직도 불안에 살고 있다. 개정된 전세사기특별법을 고려하였을 때, 피해회복을 좀 더 빠르게 하기 위해서는 LH에 우선매입권을 양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렇게 신청하고 집을 보러오기까지 한 달, 그 이후로 한 달이 조금 못되어간다. 아직도 매입이 되었는지, 되지 않았는지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매입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하루 하루를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만 같다.

LH공공주택으로 매입이 된다해도 문제다. 지금의 집은 내가 피해를 당한 온상이며, 그 모든 감정과 기억을 갖고 있는 곳이다. 당장 LH에 매입되어 한시름 놓는다 하더라도, 피해의 흔적이 가득 남은 집에서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절망으로 빠뜨린다. 결국 피해자들은 이도저도 못 하는 최악의 선택들 속에서 그나마 나은 방법을 찾고 있고, 이마저도 LH의 매입이 불가로 결정나면 또 다시 발품 팔아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3년간 피해자들은 이렇게 살아오고, 이렇게 싸워왔다. 누군가는 유서를 쓰고 우리 곁을 떠났고, 다들 점점 지쳐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내몰린 사람도, 정신적으로 내몰린 사람도 모두 존재한다. 언제 어떻게 또 이별을 겪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피해자들은 3년간 이렇게 살았는데...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

전세사기가 적극적으로 밝혀진 지 2년째, 윤석열 대통령은 전세사기범​​​​과 그 일당들을 지구 끝까지라도 추적해 반드시 처단하라고 했다. 그 말이 우선 이들을 지구 끝까지 도망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저 국가가 놓치고 있던 허점들로 인해 생겨난 이 범죄들을 온전히 그들만의 잘못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국가는 이들의 정당한 심판마저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7년, 집행유예, 무죄라는 말에 꽃을 주고 받으며 축하한 그 꽃은 피해자들의 피눈물을 마시고 자랐다. 우리 곁을 떠난 이들에게 한 번도 국화꽃 올리지 않은 이들이 저이들끼리 꽃을 주고 받는다. 그들의 꽃은 고혈로 피어난 붉디 붉은 국화꽃일테다. 제 아무리 이쁜 꽃으로 예쁘게 꾸민 꽃다발이라 할지라도, 그 꽃은 우리의 피묻은 국화꽃이다. 피해자들의 피눈물로 만들어진 그 꽃을 웃으며 축하할​​​ 수 있도록 한 인천지방법원은 그 책임을 마땅히 지어야 할 것이다.

요즘 전세사기에 대한 정치권과, 사람들의 관심이 많이 무뎌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피해사실을 고스란히 안고서 그렇게 똑같이 있다. 그 많은 지원책들 중 무엇을​​ 골라도 피눈물 흘리며 그렇게 가슴치며 살아가고 있다.

혁신적인 전세 제도, 그리고 촘촘하게 짜여진 전세제도 안전장치가 국가적으로 마련되지​​​ 않는 한, 그리고 악의적으로 작당한 범죄자들에게 마땅한 벌이 내려지지 않는 한 전세사기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정치권부터 이 문제를 견인하여 더더욱 빠르게 사회적으로 논의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게, 계속해서 관심갖고 이야기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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