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황금빛 벽화, '죽은 자의 도시'를 구경했다
[문명의 요람 이집트를 가다-8] 도굴꾼들의 표적이 됐던, 62개 무덤 있는 룩소르
▲ 룩소르 열기구새벽마다 운행하는 열기구는 일출과 함께 룩소르의 자태를 만끽할 수 있다. ⓒ 운민
이집트 어디를 방문하든지 고대의 찬란한 문명을 마주하기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경주나 중국의 시안처럼 왕과 귀족들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은 무덤들이 곳곳에 자리한 고장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기자 남쪽의 사카라도 있지만, 우리에게 투탕카멘으로 널리 알려진 왕가의 계곡을 위시로 하여 파라오의 안식처가 자리한 룩소르가 제일이다. 고대 테베라는 명칭으로 불러졌으며 중왕국, 신왕국 시대에는 수도로서 번영했다.
죽음 이후에 영혼이 부활해 영생한다고 믿은 고대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했지만 금은보화를 노리는 도굴꾼을 막을 수 없었다. 신왕국 시대가 되자 룩소르 서안의 깊숙한 땅에서 그들의 안식처를 찾았다. 그 유명한 왕가의 계곡이 바로 여기다. 물론 투탕카멘을 제외하고 대부분 약탈을 피할 수 없었다.
그 밖에도 서안에는 파라오의 장례를 위한 신전과 왕비, 귀족의 무덤을 살펴볼 수 있어 제대로 둘러보려면 일주일도 부족하다. 황량한 옛 자취를 바라보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파라오가 잠든 곳, 무덤 입장에만 약 8만 원
▲ 룩소르 왕가의 계곡서안 깊숙한 계곡에 숨겨진 왕가의 계곡은 투탕카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도굴당했다. ⓒ 운민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와 미얀마의 바간과 함께 룩소르의 열기구는 꼭 해봐야 할 체험으로 유명하다. 수십대의 열기구가 나란히 올라가는 것도 장관이지만 아래에서 바라보는 나일강과 서안의 풍경이 이색적이라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가격이 다른 곳의 절반이라는 점도 무시 못할 요소다.
새벽부터 호텔과 크루즈에서 모인 관광객은 투어사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열기구가 모여있는 장소로 이동해 이륙을 기다린다. 기후에 따라 운행을 안 할 때도 있지만 건조한 날씨 특성상 그런 일은 드물다.
열기구가 올라가는 동시에 해가 동쪽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며 올라온다. 유유자적 흐르는 나일강과 맴논의 거상, 하트셉수트 신전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이집트 수천 년 문명이 한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열기구는 금세 내려가더니 터프하게 착륙을 시도했다. 열기구에서 사람이 내리기를 기다리던 이집트의 어린아이들은 저마다 돈을 달라고 구걸한다.
서안에서 가장 먼저 가볼 왕가의 계곡은 깊숙한 골짜기에 구멍을 내어 만든 파라오의 무덤을 하나씩 둘러보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 62개에 달하는 모든 무덤을 구경하긴 어렵고, 하나의 티켓으로 공개되어 있는 3개의 무덤을 선택해서 보는 것과 관람료를 따로 내고 들어가야 하는 투탕카멘과 세티 1세, 람세스 5,6세의 무덤으로 나뉘어 있다.
세티 1세의 무덤은 한화로 약 7만 8천 원에 달하는 비싼 입장료를 자랑하지만, 여기까지 어렵게 온 만큼 6개의 무덤을 과감히 관람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은 그늘이 없고 무더운 룩소르에서도 가마솥에 들어간 듯한 지독한 더위를 자랑한다. 그래서 주차장에서 꽤 멀리 떨어진 분묘군의 입구까지 카트를 타고 가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이집트인들의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
검표원이 우리를 붙잡으며 직접 종이에 지도를 그려가면서 과한 친절함으로 여기를 보라고 추천해 준다.
다만, 그들의 과한 호의는 곧 돈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카트의 직원은 앞자리를 앉아야 전망이 좋다고 권하지만, 가급적 앉지 말 것을 권한다. 거기엔 팁박스가 있어 내릴 때 얼마간 내지 않으면 힘들어질 수 있다.
시작부터 진을 뺐지만 람세스, 투탕카멘, 세티 등 책에서만 보단 유명한 파라오들의 무덤을 살필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픈 기억은 사막 건너편으로 달아났다. 돈을 사실상 강탈당했지만 직원의 추천 코스대로 하나씩 무덤의 비밀을 풀어보기로 했다.
▲ 투탕카멘의 묘가장 화려한 유물이 남아있는 투탕카멘은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규모가 작고 초라하다. ⓒ 운민
가장 먼저 방문할 곳은 투탕카멘의 안식처다. 일련번호 KV62로 통칭되는 이 무덤은, 발견되기 전까지는 존재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죽은 나이도 18살로 어린 편이고 생전 별다른 업적도 없어 주목받지 못했지만, 1922년 발굴로 인해 가장 유명한 파라오가 되었다. 이 무덤을 제외하고 모두 도굴이 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세기의 발굴로 칭해졌고, 흔히 '파라오의 저주'라 불리는 뜬소문도 돌았었다.
기대가 무척 커서였을까? 실제론 다른 파라오 무덤에 비해 규모도 초라하고 매장실을 제외하고는 벽화도 없었다. 앙상한 투탕카멘의 미라만 전실의 유리관 속에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남아, 애처롭게 보일 정도였다.
도굴꾼들이 노렸던 파라오의 무덤들
▲ 세티 1세의 무덤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세티 1세의 무덤 ⓒ 운민
여기서 머지않은 세티 1세의 무덤은 더 비싼 입장료만큼이나마 그 값어치를 한다. 개인 무덤으로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17개의 공간 중 2군데를 제외하고 모두 부조와 벽화로 가득 채워져 화려함을 자랑한다.
세티 1세가 제외하고 있던 19 왕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시기로 그의 아들이 바로 람세스 2세다. 아치형 천장에는 별자리가 세겨져 있고, 벽면에는 시간의 서를 요약한 그림이 빼곡하다.
수천 년이 지나도 뚜렷한 황금, 푸른빛 색채는 문명의 위대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 람세스 3세의 무덤무덤마다 화려한 벽화와 부조가 가득하다. ⓒ 운민
람세스 5/6세의 무덤은 투탕카멘의 묘 윗편에 위치해 있다. 이 덕분에 그 무덤이 가려져 도굴꾼의 침략을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무덤은 파라오의 이름이 두 번 등장한다. 람세스 5세가 건설을 시작했지만, 삼촌인 람세스 6세가 강탈하여 완성했다고. 그 과정에서 벽화에 적힌 5세의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변경했고, 확장한 새로운 구역을 자신의 이미지로 장식했다.
별도의 입장권을 사서 입장해야 하는 만큼, 이곳도 세티 1세 못지않게 화려하면서도 산뜻한 느낌의 벽화가 두루 장식되어 있다.
이제 수많은 파라오의 무덤 중에서 단 3개 정도 취사선택 해야 한다. 정말 고고학이나 이집트 역사에 대해 관심이 지극한 분이 아니라면, 무덤을 3개 이상 보다 보면 거의 다 비슷해 보이고 그 더위 기세에 눌려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람세스 3세와 4세, 9세의 무덤을 주로 방문하는 편이다. 그럼 무덤에 있던 파라오의 미라는 어디로 갔을까?
이는 이집트 카이로에 위치한 국립문명박물관의 미라 안치실에 모두 모여있다. 전 세계에 흩어진 이집트 유물은 많지만, 이토록 화려한 벽화의 자태는 오직 룩소르에서 감상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강의, 기고, 프로젝트가 필요하신 분은 <a href="mailto:ugzm@naver.com" target="_blank" class=autolink>ugzm@naver.com</a>로 연락주세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