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나쁜 사람이야?" 미국 사는 엄마의 답은
미국 본토에서 가족과 함께 지켜본 대통령 선거... 아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미국 대통령이 누구인지에 따라 국제 이슈의 주요 흐름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미국 본토에서 대선을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바톤 터치를 하며 대선 후보로 등장하는 시점부터 우리 집 식탁에도 미국 대선 이야기가 주요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도 밖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가 있고,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웃들을 통해 엿본 미국 대선
아이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대만에서 이민 와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며 자리를 잘 잡은 동네 친구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뉴욕 거리와 보스턴 로건 공항에 가득 찬 불법 이민자들에게 우리의 세금으로 먹을 것과 잘 곳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곳에서 대학을 졸업한 동네 친구는 해리스를 지지한다. 미국의 다수 주에서 임신 중단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선택할 권리와 자유를 짓밟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테니스 코치는 MAGA라 쓰인 모자를 쓰고 다니는 텍사스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MAGA는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약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사용하며 유명해진 정치 슬로건이다. 보스턴 시내에서 우리가 사는 타운으로 차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토요일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다리 위에 모여 트럼프를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다리 아래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항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인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은 푯말을 집 앞마당에 꽂아둔다.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집주인에게 대놓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 옆집 노부부는 해리스를 지지하고, 우리가 자주 오가는 길에서 눈에 띄는 집에는 테슬라 사이버 트럭과 트럼프 지지 푯말이 늘 나란히 서 있다.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정책 토론에서 어떤 자세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등을 아이들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동네 친구들의 성향을 통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미국 대선을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
미국의 복잡한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
미국의 대선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고, 때마침 선생님과 학부모가 만나는 자리가 있어 학교에 들렀다. 학교 도서관을 지나치는데 투표를 독려하는 책들이 즐비했다. 그중 여성과 흑인의 선거권 역사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1920년부터 여성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고, 1965년 되어서야 비로소 흑인들이 투표할 수 있었던 미국 역사를 통해 성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의 역사는 질기고도 질긴 것을 엿볼 수 있다.
대통령 투표 날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미국과 한국의 각기 다른 선거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언제부터 대통령을 투표로 뽑은 거야?"
"엄마가 일곱 살 때였던 해에 한 사람이 한 표를 던져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어(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그때부터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뽑았어."
"그럼, 미국도 한국처럼 한 사람이 한 표를 가지고 있는 거야?"
"아니, 미국은 선거인단 제도가 있어서 주 단위로 경선을 해. 한 곳의 주에서 승리를 하면 대통령 후보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져가거든. 미국 전체 선거인단은 538명인데, 그중 몇 명을 확보하는지가 중요해. 선거인단의 절반 이상을 확보해야 해."
나 역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선거 제도의 특징이나 규칙 등을 아이가 시나브로 듣다 보면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얀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
"엄마,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야?"
우리가 싱가포르에 살 때,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6월, 싱가포르의 주요 호텔 앞에는 성조기, 태극기, 북한의 인공기, 싱가포르 국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해외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반도에 곧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아 괜히 설렜다.
큰아이는 아직도 그때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미국의 회담으로 인해 북적거렸던 싱가포르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첫 해외살이를 하던 그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였는데 미국에 온 지금 또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니, 그저 이런 상황이 생경할 뿐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트럼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의 팻말을 보거나 관련 뉴스를 들은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야?"
"음, 트럼프 당선자를 두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지금 세상이 변해가는 방향에 맞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평가해야 할 것 같아.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는 모두 추방할 거라고 하는데 이게 올바른 일일까? 미국은 이민자들이 갈고 닦아 일으킨 나라잖아. 11월이 이렇게까지 따뜻해서 지구온난화가 나날이 심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트럼프 당선자는 세계가 지구온난화를 같이 막자며 만든 약속을 깨려고 하거든.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약속을 깨려고 하는 자세도 옳지 않아 보여. 미국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는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국 대선을 맞아 아이와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앞으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법 질서에 맞게 민주적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한국을 포함해 민주적이지 않은 시기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민주주의와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역사, 사회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가져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익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연일 쏟아지는 국내외 뉴스가 심심찮다. 뉴스만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곧 망할 것 같고, 미국도 그리 평안하진 않을 것 같다. 아이와 공유하기에 부끄러운 뉴스가 너무 많은 요즘, 세상을 지나치게 회의적인 태도로 바라보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아이에게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뭔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밝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현실은 냉철하게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겠다.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바톤 터치를 하며 대선 후보로 등장하는 시점부터 우리 집 식탁에도 미국 대선 이야기가 주요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이지만 아이들도 밖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가 있고, 대통령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보고 듣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이다. 대만에서 이민 와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으로 직장에 다니며 자리를 잘 잡은 동네 친구는 트럼프를 지지한다. 뉴욕 거리와 보스턴 로건 공항에 가득 찬 불법 이민자들에게 우리의 세금으로 먹을 것과 잘 곳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되어 진보적인 색채가 강한 곳에서 대학을 졸업한 동네 친구는 해리스를 지지한다. 미국의 다수 주에서 임신 중단을 제한하는 법이 제정되었다는 것은 여전히 여성의 선택할 권리와 자유를 짓밟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테니스 코치는 MAGA라 쓰인 모자를 쓰고 다니는 텍사스 출신의 백인 남성이다. MAGA는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약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페인에서 사용하며 유명해진 정치 슬로건이다. 보스턴 시내에서 우리가 사는 타운으로 차를 타고 다니다 만나는 다리가 하나 있는데, 토요일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다리 위에 모여 트럼프를 지지하는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다리 아래를 달리는 자동차들을 항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또 하나, 미국인들은 지지하는 후보의 이름을 적은 푯말을 집 앞마당에 꽂아둔다.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는지 집주인에게 대놓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 옆집 노부부는 해리스를 지지하고, 우리가 자주 오가는 길에서 눈에 띄는 집에는 테슬라 사이버 트럭과 트럼프 지지 푯말이 늘 나란히 서 있다.
후보들이 어떤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지, 정책 토론에서 어떤 자세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 등을 아이들이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동네 친구들의 성향을 통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미국 대선을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
▲ 지난 일요일(현지시각)에 도착한 뉴욕타임즈를 펼치자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이 쓰인 새빨간 모자가 첫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이번 미국 대선 결과의 강렬함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김보민
미국의 복잡한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
미국의 대선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고, 때마침 선생님과 학부모가 만나는 자리가 있어 학교에 들렀다. 학교 도서관을 지나치는데 투표를 독려하는 책들이 즐비했다. 그중 여성과 흑인의 선거권 역사에 대한 책들이 눈에 띄었다. 1920년부터 여성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고, 1965년 되어서야 비로소 흑인들이 투표할 수 있었던 미국 역사를 통해 성별과 인종에 따른 차별의 역사는 질기고도 질긴 것을 엿볼 수 있다.
▲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투표에 관한 책. 투표 참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대통령 선거를 통해 투표의 중요성을 느껴보는 것만큼 살아있는 교육이 또 있을까? ⓒ 김보민
대통령 투표 날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미국과 한국의 각기 다른 선거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은 언제부터 대통령을 투표로 뽑은 거야?"
"엄마가 일곱 살 때였던 해에 한 사람이 한 표를 던져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어(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그때부터 민주적으로 대통령을 뽑았어."
"그럼, 미국도 한국처럼 한 사람이 한 표를 가지고 있는 거야?"
"아니, 미국은 선거인단 제도가 있어서 주 단위로 경선을 해. 한 곳의 주에서 승리를 하면 대통령 후보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져가거든. 미국 전체 선거인단은 538명인데, 그중 몇 명을 확보하는지가 중요해. 선거인단의 절반 이상을 확보해야 해."
나 역시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를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선거 제도의 특징이나 규칙 등을 아이가 시나브로 듣다 보면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하얀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했다.
▲ 미국 대선 다음 날, 아침밥을 먹으며 대선 결과를 알려주는 뉴스를 아이들 함께 봤다. 미국 땅에서 대선 결과를 접하니 기분이 묘했다. ⓒ 김보민
"엄마,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야?"
우리가 싱가포르에 살 때,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만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던 2018년 6월, 싱가포르의 주요 호텔 앞에는 성조기, 태극기, 북한의 인공기, 싱가포르 국기가 나란히 서 있었다. 해외에서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반도에 곧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아 괜히 설렜다.
큰아이는 아직도 그때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미국의 회담으로 인해 북적거렸던 싱가포르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다. 첫 해외살이를 하던 그때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였는데 미국에 온 지금 또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이라니, 그저 이런 상황이 생경할 뿐이다.
아이는 어른들의 대화를 통해 우리 주변에서 트럼프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트럼프 지지자의 팻말을 보거나 관련 뉴스를 들은 날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야?"
"음, 트럼프 당선자를 두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보다는 지금 세상이 변해가는 방향에 맞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평가해야 할 것 같아.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는 모두 추방할 거라고 하는데 이게 올바른 일일까? 미국은 이민자들이 갈고 닦아 일으킨 나라잖아. 11월이 이렇게까지 따뜻해서 지구온난화가 나날이 심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트럼프 당선자는 세계가 지구온난화를 같이 막자며 만든 약속을 깨려고 하거든.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약속을 깨려고 하는 자세도 옳지 않아 보여. 미국의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는 내 알 바가 아니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보고 있으면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치는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들어."
▲ 하버드대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읽으며, 현 미국 정치의 맹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 과연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지켜나갈 수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아주 각별한 애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 김보민
미국 대선을 맞아 아이와 국가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니, 앞으로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뽑고, 법 질서에 맞게 민주적으로 국가가 운영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한국을 포함해 민주적이지 않은 시기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민주주의와 정치 경제를 아우르는 역사, 사회에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가져야 하는 역할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익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연일 쏟아지는 국내외 뉴스가 심심찮다. 뉴스만 들여다보면 우리나라가 곧 망할 것 같고, 미국도 그리 평안하진 않을 것 같다. 아이와 공유하기에 부끄러운 뉴스가 너무 많은 요즘, 세상을 지나치게 회의적인 태도로 바라보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아이에게 부끄러운 어른은 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뭔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밝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현실은 냉철하게 직시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고 눈 똑바로 뜨고 살아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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