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수학은 절대 배우지 않는 학교가 있습니다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괜찮아 앨리스>
14일 오늘은 2025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일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수능 한파가 닥치고, 모진 한기가 다가오는 중에도 부모들은 영험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 지성으로 기원한다. 시험 당일에는 전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출근 시간마저 조정된다. 그야말로 입시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의 실체가 한 번에 드러나는 셈이다. 물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유행어가 된 1980년대 이후 대학입시의 폐해는 널리 공인되었지만, 단 한 번도 그 지위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정작 효율성이 입증된 적도 없는데 말이다.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문제제기 역시 오래전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매년 10대 청소년들이 입시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지만, 소수의 안타까운 사례 혹은 심지어 인내력이 부족한 '요즘 애들'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렇게 다들 견디며 참을 따름이다. 수학능력시험에 실업계나 학교 외 청소년이 무려 3할이나 응시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렵게 입시를 치르면 이제 취업 전쟁이다. 평생 앞만 보며 전투를 치르듯 달려야 한다. 궤도를 이탈하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강박만 팽배한 사회에서 남들 다 하는 순서를 벗어나는 건 인생을 건 모험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괜찮아 앨리스>는 그런 바늘귀 같은 틈새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1년의 유예 기회가 발견되다
50만 명 전후의 동년배 청소년 중 7할이 대학입시에 매달린다. 매년 수능시험 응시자 중 1/3은 재수생이다. 한국의 입시는 그 마력이 엄청난 바람에 대안학교마저 입시전형에 유리하다는 입소문으로 선택지에 오르내릴 지경이다. 진학하는 대학의 학벌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은 깨지지 않는다. 중학교 교과과정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중학교에서 소화하는 게 '국롤'이 되어간다.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농어촌 전형을 만들어 놨더니, 위장전입으로 그 약간의 의외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귀한 1년을 '일단정지'하는, 또래 중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소수 한국 교육현장의 '앨리스'들 희귀사례에 영화는 주목한다. ·
그 주인공은 꿈틀리인생학교, 중학교를 마쳤거나 고등학교 초반에 1년을 유예하고 이곳에서 일단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충전하는 대안적 교육과정이다. 각자의 사연과 배경을 지닌 또래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공동생활과 교육을 함께 한다. 하지만 정규 교과과정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길이 입시로 통하는 나라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영어·수학 대신에 학생들이 몰두하는 건 토론과 팀 활동, 체험학습과 할당된 청소 및 빨래 같은 것들이다.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부모들은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이곳에 맡긴 걸까? 호기심 천국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이 학교의 기원을 추적해 보자. 학교 설립자는 진보언론 기자에서 매체 대표로 평생 활약해 온 '86' 세대 일원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매진해 왔지만, 결산은 아직 신통하지 않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소리 높여 항의하고 규탄하는 것 말고 또 무엇에 도전해야 할까? 세상에 길들어지는 교육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만큼 기존 체제의 재생산과정 핵심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입시지옥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상상력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다른 방식은 존재하지 않을까?
우연한 기회에 덴마크 교육제도 중 1년 유예 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세계 어디에도 제도교육에서 볼 수 없는 극히 희귀한 사례다. 의무교육 과정이면 자연히 진학하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정해진 코스를 밟게 마련인 공교육에서 상상하기 거의 불가능한 방식이지만, 직접 목격한 해당 과정은 그야말로 '유레카!' 외치게 만들 정도였다고 담담히 소회를 풀어낸다. 그렇게 꿈틀리인생학교가 출발한다.
청소년 당사자의 실제 삶과 증언으로 입증하는 내려놓기의 효능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덕목은 요즘처럼 세대 간 갈등이 격심한 세태에서 아주 중요한 처신이 된다. 학교를 세운 오연호 대표가 진보언론인다운 말주변과 그 당시의 감흥을 밝히는 소감이 길면 영화의 균형감이 위태롭기 쉽다. 살짝 늘어질 위기에 처할 즈음 다행히 말이 멈추고 장면이 전환된다. 관객이 보고 싶은 장면, 좋은 취지로 개설된 과정에서 실제로 머무는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설 차례다.
꿈틀리에 1년 동안 머물고 있는 '주연'이 자기 사연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그저 인내력 부족, 혹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소수 특이한 사례로 치부하기 쉬운 기성세대 편견을 환기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저 앞만 보고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걸친 채 꿈 많을 10대를 감내하던 중 도래한 위기를 서술하는 태도가 진중하기 그지없다. 카메라가 영리하게 포착한 주연의 방 가득한 온갖 상장과 실적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증명한다. 조금만 버티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 주연이 오죽했으면 일등석에서 스스로 내리게 되었을까.
그렇게 본인이 겪은 슬픔과 체념을 뒤로 한 채 이제 그는 자신의 변화와 안정감을 화면 가득 펼치기 시작한다.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공간과 수업 과정을 일일 안내하는 투어를 통해 꿈틀리의 실상이 낱낱이 관객에게 공개한다. 보고 있자면 우리가 요즘 안과 밖으로 쉽게 접하는 '요즘 애들' 문제점이 하나둘 눈 녹듯 사라지는 체험을 공유하게 된다. 아침마다 진행되는 토론, 경쟁이 아닌 협력을 도모하는 프로젝트 해결, 공부 외엔 젬병이던 아이들이 온갖 생활 체험을 습득하는 풍경이 흐뭇한 동시에, 정말 저 나이에 중요하고 필요한 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이 곧이어 관객의 뇌리에 스칠 수밖에 없다. 1년간 휴식을 취하는 건 좋은데 저러다 너무 뒤처지면 어떡하나 의구심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물론 제작진은 대책을 마련해 둔 상태다. 꿈틀리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시 일반 교육과정으로 복귀한 당사자가 등장할 차례다.
고3이 된 '황하름'이 그 중책을 맡는다. 카메라가 화면을 비추면 연극연출 전공으로 곧 성인이 될 두 번째 주자가 맹활약 중이다. 졸업을 앞둔 무대 감독으로 친구들을 진두지휘하느라 목이 잠길 지경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요즘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취약하다고 걱정이 태산인 기성세대가 보기엔 너무나 모범 사례다. 저게 다 꿈틀리 덕분인가 싶다.
물론 그 역시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의 고민을 토로한다. 지금의 활기와는 전혀 딴판인 긴장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증언에는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가세한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현실판 격이다. 거기에 꿈틀리 이후에도 끈끈하게 연결되는 청소년들의 유대관계가 조명되기에 흉중에 품던 의심 가득한 질문을 스르륵 내리게 되는 신통방통 효과가 조성된다.
꿈틀리는 지속 가능한 사례인지 묻고 답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꿈틀리 사례는 전국 교육청마다 당연히 설치해야 할 모범 예시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과정이 겪고 있는 고충을 감출 생각은 없다. 여기에는 실용적인 문제가 결부된다. 다시 등장한 설립자는 조심스럽게 덴마크와 한국을 비교한다. 공교육 과정 일부로 공적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 한계를 토로하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분위기 깨는 것 같지만,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할 말을 해야한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 근본적인 고민도 등장한다. 학교 내 3주체,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꿈틀리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개학을 앞둔 교사회의에선 현재 한국 교육 전체가 당면한 난제가 토론 주제로 오른다. 꿈틀리 내에선 높은 수준으로 대안적 교육이 이뤄짐에도 학생들은 가정에서, 그리고 1년 유예기간이 끝나면 다시 거대한 입시 기계 톱니바퀴에 맞물려버리는 문제다. 이 공간에서 체험하는 것들은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면 과연 효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이 적지 않고, 신규 유입이 점점 줄어드는 실정을 고백한다. 희귀한 예외 사례가 기존 입시 체제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꿈틀리의 소중한 체험은 휩쓸려 잊히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그렇게 공감할 테다. 한국의 입시지옥은 그 실효성이 검증된 바 없음에도 고장 난 테이프처럼 공회전 중이다. 심지어 한국 자본주의 체제 수호신 격인 한국은행 총재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지역별 대학 정원 할당을 해당 지역 비례로 개편해 사회적 손실을 줄이자 할 지경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합리성이 아니라 맹목적 갈라치기로 정작 사회에 필요한 시민도, 기업 구미에 맞는 인적 자원도 배출하지 못하는 말기적 교육 현실이다. 1년의 유예는 허비가 아니라 '2보 전진을 위한 일시 정지'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다. 그저 우리 사회가 결단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한 때 격찬을 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업문화에 유해하다는 검증을 마친 잭 웰치 리더십이란 게 있다.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매년 회사 내 하위 20%를 구조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노력해도 기계적 실적 처리로 의외란 없이 반복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 그가 CEO로 군림하던 GE는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 표류하고 만다. 단기적 속성 효과에 치우친 극약 처방이 낳은 현실이다. 이 철 지난 사례가 여전히 한국에선 진리처럼 통용된다.
꿈틀리 사례는 정확히 그 대척점이자 병폐의 만병치유법에 속한다. 약간의 참을성으로 '앨리스'를 풀어주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소설속 주인공처럼 이상한 나라를 넘어 광활한 세상으로 장대한 모험을 알아서 떠날 텐데 말이다.
<작품정보>
괜찮아, 앨리스
Efterskole, Going to the Wonderland Korea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11.13. 개봉|75분|전체관람가
감독 양지혜
출연 이주연, 황하름, 오연호
제작 ㈜오마이뉴스
배급 미디어나무(주)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문제제기 역시 오래전부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매년 10대 청소년들이 입시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지만, 소수의 안타까운 사례 혹은 심지어 인내력이 부족한 '요즘 애들'로 치부되기 일쑤다. 그렇게 다들 견디며 참을 따름이다. 수학능력시험에 실업계나 학교 외 청소년이 무려 3할이나 응시하지 않아도 세상은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렵게 입시를 치르면 이제 취업 전쟁이다. 평생 앞만 보며 전투를 치르듯 달려야 한다. 궤도를 이탈하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강박만 팽배한 사회에서 남들 다 하는 순서를 벗어나는 건 인생을 건 모험이 되고 만다. 하지만 그게 왜 그렇게 문제란 말인가. <괜찮아 앨리스>는 그런 바늘귀 같은 틈새를 포착하는 작업이다.
▲ 영화 <괜찮아, 앨리스>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주)
50만 명 전후의 동년배 청소년 중 7할이 대학입시에 매달린다. 매년 수능시험 응시자 중 1/3은 재수생이다. 한국의 입시는 그 마력이 엄청난 바람에 대안학교마저 입시전형에 유리하다는 입소문으로 선택지에 오르내릴 지경이다. 진학하는 대학의 학벌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믿음은 깨지지 않는다. 중학교 교과과정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중학교에서 소화하는 게 '국롤'이 되어간다. 수도권 과밀화를 막기 위해 농어촌 전형을 만들어 놨더니, 위장전입으로 그 약간의 의외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귀한 1년을 '일단정지'하는, 또래 중 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극소수 한국 교육현장의 '앨리스'들 희귀사례에 영화는 주목한다. ·
그 주인공은 꿈틀리인생학교, 중학교를 마쳤거나 고등학교 초반에 1년을 유예하고 이곳에서 일단 멈춰 자신을 돌아보고 충전하는 대안적 교육과정이다. 각자의 사연과 배경을 지닌 또래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공동생활과 교육을 함께 한다. 하지만 정규 교과과정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길이 입시로 통하는 나라에서 경천동지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어·영어·수학 대신에 학생들이 몰두하는 건 토론과 팀 활동, 체험학습과 할당된 청소 및 빨래 같은 것들이다.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부모들은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이곳에 맡긴 걸까? 호기심 천국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이 학교의 기원을 추적해 보자. 학교 설립자는 진보언론 기자에서 매체 대표로 평생 활약해 온 '86' 세대 일원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매진해 왔지만, 결산은 아직 신통하지 않다.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거리에서 소리 높여 항의하고 규탄하는 것 말고 또 무엇에 도전해야 할까? 세상에 길들어지는 교육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만큼 기존 체제의 재생산과정 핵심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진 입시지옥으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상상력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뭔가 다른 방식은 존재하지 않을까?
우연한 기회에 덴마크 교육제도 중 1년 유예 과정을 접할 수 있었다. 세계 어디에도 제도교육에서 볼 수 없는 극히 희귀한 사례다. 의무교육 과정이면 자연히 진학하고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정해진 코스를 밟게 마련인 공교육에서 상상하기 거의 불가능한 방식이지만, 직접 목격한 해당 과정은 그야말로 '유레카!' 외치게 만들 정도였다고 담담히 소회를 풀어낸다. 그렇게 꿈틀리인생학교가 출발한다.
청소년 당사자의 실제 삶과 증언으로 입증하는 내려놓기의 효능
▲ 영화 <괜찮아, 앨리스>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주)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덕목은 요즘처럼 세대 간 갈등이 격심한 세태에서 아주 중요한 처신이 된다. 학교를 세운 오연호 대표가 진보언론인다운 말주변과 그 당시의 감흥을 밝히는 소감이 길면 영화의 균형감이 위태롭기 쉽다. 살짝 늘어질 위기에 처할 즈음 다행히 말이 멈추고 장면이 전환된다. 관객이 보고 싶은 장면, 좋은 취지로 개설된 과정에서 실제로 머무는 청소년들이 주인공으로 나설 차례다.
꿈틀리에 1년 동안 머물고 있는 '주연'이 자기 사연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그저 인내력 부족, 혹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소수 특이한 사례로 치부하기 쉬운 기성세대 편견을 환기하는 중요한 장치다. 그저 앞만 보고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걸친 채 꿈 많을 10대를 감내하던 중 도래한 위기를 서술하는 태도가 진중하기 그지없다. 카메라가 영리하게 포착한 주연의 방 가득한 온갖 상장과 실적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증명한다. 조금만 버티면 '밝은 미래'가 보장된 주연이 오죽했으면 일등석에서 스스로 내리게 되었을까.
그렇게 본인이 겪은 슬픔과 체념을 뒤로 한 채 이제 그는 자신의 변화와 안정감을 화면 가득 펼치기 시작한다. 룸메이트와 함께 학교 공간과 수업 과정을 일일 안내하는 투어를 통해 꿈틀리의 실상이 낱낱이 관객에게 공개한다. 보고 있자면 우리가 요즘 안과 밖으로 쉽게 접하는 '요즘 애들' 문제점이 하나둘 눈 녹듯 사라지는 체험을 공유하게 된다. 아침마다 진행되는 토론, 경쟁이 아닌 협력을 도모하는 프로젝트 해결, 공부 외엔 젬병이던 아이들이 온갖 생활 체험을 습득하는 풍경이 흐뭇한 동시에, 정말 저 나이에 중요하고 필요한 건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이 곧이어 관객의 뇌리에 스칠 수밖에 없다. 1년간 휴식을 취하는 건 좋은데 저러다 너무 뒤처지면 어떡하나 의구심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물론 제작진은 대책을 마련해 둔 상태다. 꿈틀리에서 1년을 보낸 뒤 다시 일반 교육과정으로 복귀한 당사자가 등장할 차례다.
고3이 된 '황하름'이 그 중책을 맡는다. 카메라가 화면을 비추면 연극연출 전공으로 곧 성인이 될 두 번째 주자가 맹활약 중이다. 졸업을 앞둔 무대 감독으로 친구들을 진두지휘하느라 목이 잠길 지경이지만,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요즘 타인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공감 능력이 취약하다고 걱정이 태산인 기성세대가 보기엔 너무나 모범 사례다. 저게 다 꿈틀리 덕분인가 싶다.
물론 그 역시 평범하지 않았던 과거의 고민을 토로한다. 지금의 활기와는 전혀 딴판인 긴장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증언에는 부모님도 자연스럽게 가세한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달라졌어요' 현실판 격이다. 거기에 꿈틀리 이후에도 끈끈하게 연결되는 청소년들의 유대관계가 조명되기에 흉중에 품던 의심 가득한 질문을 스르륵 내리게 되는 신통방통 효과가 조성된다.
꿈틀리는 지속 가능한 사례인지 묻고 답하다
▲ 영화 <괜찮아, 앨리스> 스틸 이미지 ⓒ 미디어나무(주)
여기까지만 보면, 꿈틀리 사례는 전국 교육청마다 당연히 설치해야 할 모범 예시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 과정이 겪고 있는 고충을 감출 생각은 없다. 여기에는 실용적인 문제가 결부된다. 다시 등장한 설립자는 조심스럽게 덴마크와 한국을 비교한다. 공교육 과정 일부로 공적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실 한계를 토로하며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분위기 깨는 것 같지만,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할 말을 해야한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더 근본적인 고민도 등장한다. 학교 내 3주체, 학생과 교사, 학부모의 꿈틀리 민주주의는 잘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개학을 앞둔 교사회의에선 현재 한국 교육 전체가 당면한 난제가 토론 주제로 오른다. 꿈틀리 내에선 높은 수준으로 대안적 교육이 이뤄짐에도 학생들은 가정에서, 그리고 1년 유예기간이 끝나면 다시 거대한 입시 기계 톱니바퀴에 맞물려버리는 문제다. 이 공간에서 체험하는 것들은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면 과연 효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이 적지 않고, 신규 유입이 점점 줄어드는 실정을 고백한다. 희귀한 예외 사례가 기존 입시 체제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냉혹한 현실이다.
하지만 꿈틀리의 소중한 체험은 휩쓸려 잊히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다들 그렇게 공감할 테다. 한국의 입시지옥은 그 실효성이 검증된 바 없음에도 고장 난 테이프처럼 공회전 중이다. 심지어 한국 자본주의 체제 수호신 격인 한국은행 총재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지역별 대학 정원 할당을 해당 지역 비례로 개편해 사회적 손실을 줄이자 할 지경인데도 말이다. 이쯤 되면 합리성이 아니라 맹목적 갈라치기로 정작 사회에 필요한 시민도, 기업 구미에 맞는 인적 자원도 배출하지 못하는 말기적 교육 현실이다. 1년의 유예는 허비가 아니라 '2보 전진을 위한 일시 정지'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다. 그저 우리 사회가 결단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한 때 격찬을 받았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업문화에 유해하다는 검증을 마친 잭 웰치 리더십이란 게 있다. 아주 간단한 법칙이다. 매년 회사 내 하위 20%를 구조조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모두 함께 노력해도 기계적 실적 처리로 의외란 없이 반복하는 과정이다. 그 결과 그가 CEO로 군림하던 GE는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 표류하고 만다. 단기적 속성 효과에 치우친 극약 처방이 낳은 현실이다. 이 철 지난 사례가 여전히 한국에선 진리처럼 통용된다.
꿈틀리 사례는 정확히 그 대척점이자 병폐의 만병치유법에 속한다. 약간의 참을성으로 '앨리스'를 풀어주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소설속 주인공처럼 이상한 나라를 넘어 광활한 세상으로 장대한 모험을 알아서 떠날 텐데 말이다.
<작품정보>
괜찮아, 앨리스
Efterskole, Going to the Wonderland Korea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11.13. 개봉|75분|전체관람가
감독 양지혜
출연 이주연, 황하름, 오연호
제작 ㈜오마이뉴스
배급 미디어나무(주)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