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30주년 맞아 자료집 내고 추모식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평전 31] 1991년 4월 1일 추모회가 묘역에서 열렸다
▲ 임시정부 환국 기념 촬영 사진.(1945년 11월 3일) 맨 앞줄 백범 김구 왼쪽이 김규식이다. ⓒ 백범기념사업회
보통 사람은 죽으면 망각되지만 역사적 인물은 재평가되고 추모를 받는다.
생전에는 포폄이 따랐으나 사후에 제대로 평가받는 인물이 있고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1991년 4월 1일 추모회가 묘역에서 열렸다. 한국자주인연합대표 최갑용은 <제30주기 추모제에 즈음하여>에서 고인의 생애를 일별하면서 자신과의 일화를 다음과 같이 상기하였다.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선생의 평소의 말씀이 있다.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일류학교에 보내며, 재물과 지위, 명예를 모두 채우고도 애국하고 혁명한다는 사람은 위선자요, 2중인격자라 하여 증오시하던 일이다. 선생은 순수한 양심적인 애국자, 혁명자를 존경하시었다.
6.25로 인하여 부산에서 피난 중 노농청년연맹원이자 노농한국편집인 노명인(경북안동 출신)이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변사하자 산 기슭에 가매장하였다. 단주는 비단으로 시신을 싸고 비석에는 "혁명청년 노명일지묘"라고 자서하시고 혁명자로서의 최상의 예우를 하시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동지들이 "혁명자만이 혁명자를 분별할 수 있다."는 교훈을 되뇌이던 일이 생각난다. (주석 1)
단주 유림선생 30주기 추도식 준비위원회 회장 이강훈의 <개식사>중 일부를 소개한다.
선생이 타계하신 어언 30년 그날그날 하루의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시한을 극복해 왔으나 지금 생각하면 모든 것이 속아 살아왔습니다. 망국노 소리를 면한 이외에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선생 같으신 어른이, 선생 같으신 숭고한 대사상가들이, 선생 같으신 대의관과 철학을 지니신 분들이 계시오매, 그래도 실날 같은 저희들의 마음 든든 하옵더니만 이제는 호소할 곳조차 잃게 되었으니 누구를 우러러 의지하고, 누구를 마음의 사표로 삼고 살으오리까.
지금 이 사회는 위기의식에 가득차 있습니다. 산업사회로서의 겉만 번지르하게 뵈이나 속은 곪았습니다. 민족의 정기는 희석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민족에게 이롭지 못한 바다 건너로부터 닥쳐 몰려오는 퇴폐한 것들, 대다수 위정자의 탈을 쓴 자칭 애국자 연하여 물욕과 권세욕에 사로잡혀 무소불위의 행패, 대의를 위해 생애를 바쳐오신 분들은 모두 기력이 쇠진하여 불의를 보고도 뜻만 살아 있어서 부질없는 장탄식에 그칠 따름입니다. 그리하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생과 같으신 선열. 선생 같으신 지공무사(至公無私)하신 사표를 동경하는 심정 더욱 간절해집니다.
오늘날 내노라고 방약무인하게 날뛰는 무리들의 추악한 모습을 생각할 때에 격분보다 그 일생들이 가련하기로 생각되옵니다. 이러한 어두운 장면 중에서도 저희들은 속세를 떠나는 순간까지 선생 같으신 선각자들의 기백을 체득하여 그 높으신 뜻을 받들어 펼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오리다. (주석 2)
유림 선생 30주기 추도식 집행위원장 이창근의 추도사 일부다.
난마와 같이 얽히고 설킨 좌우대립의 혼미속에서, 시내물 흐르듯 조용히 그러면서 정연하게 하나씩 둘씩 모든 것을 풀어주시던 선생님이 아니셨나요. 그것만도 아니지요. 광채있는 눈을 부릅뜨시고 우리가 카이젤 수염이라고 별칭하였던 수염이 상하좌우로 경련(上下左右로 痙攣)하시면서 불호령 내리시던 그 준엄한 용자가 무던이도 그립고 아쉬워짐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길가에서 잘못된 장난질을 하는 어린이거나, 일 잘못하는 어른이 됐거나, 별판을 어깨에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장군이 되었거나, 무산계급을 등에 업고 왕조를 형성하는 독재자가 되었건, 천하국부를 자처하면서 반공을 빌미로 온갖 못된 짓을 다하는 무리들을 가리지 않고, 이치에 어긋나고 도피에 벗어나 현실을 오도하고 통일독립에 방해가 되는 모든 대상을 향하여 그 불호령을 내리셨지요. 참으로 장엄한 호령이었습니다.
선생님이 가신지 2개월도 못되어 1961년 5월 16일 무서운 군사 팟쇼가 등장하여 간부 동지들 전원을 투옥시키면서 문헌을 전부 관헌에게 압수당하여 30주기를 기하여 선생님의 영전에 바치려는 자료집에 선생님이 동지들에게 보낸 친필서한 한 점도 수록 못하는 안타까움이 남을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요, 참으로 기복이 무상하였던 선생님의 그 뜻, 고루 펴보지 못하고 한많은 세상 그대로 두고 하직하시다니 그 일 누가 맡아 계승할 것이며 그 열매 누가 따서 간직하리요. 참으로 애닲으고 서러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주석 3)
주석
1> <단주 유림자료집>, 236쪽.
2> 앞의 책, 237쪽.
3> 앞의 책, 239~240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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