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동굴서 마신 훈제향 맥주... 본능적으로 나온 한 마디
[윤한샘의 맥주실록] 독일 밤베르크 슈렝케를라 양조장 방문기
▲ 슈렝케를라 양조장. 원래 이름은 헬러브로이다. ⓒ 윤한샘
"너도밤나무가 아니라고요? 아니, 훈연맥아에 들어가는 나무가 너도밤나무가 아니라니요. 여태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리고 제 강연과 책에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고요."
내 말을 듣고 있는 마티아스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몇 차례 우리의 소심한 반발에도 슈렝케를라에서 만들고 있는 훈연맥아에는 너도밤나무가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급하게 스마트폰을 검색한 뒤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독일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 뜻이 왜곡될 리는 없었다. 바로 옆에 통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역을 도와주고 있던 누님도 독일에서는 이 나무를 너도밤나무라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진을 받아 네이버 렌즈와 챗지피티(Chat GPT)로 검색했지만 인공지능들은 여전히 너도밤나무로 번역하고 있었다. 나는 패닉에 빠졌다. 그렇다면 그동안 번역이 잘못됐다는 말 아닌가. 여기 독일에서 살고 있는 두 사람을 믿어야 할지, 인공지능을 믿어야 할지, 맥주는 나에게 21세기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훈연맥주의 본진으로
독일 밤베르크, 훈연맥주를 경험하기 위해 이곳에 처음 발을 들인 게 벌써 10년 전이다. 독일어로 라우흐비어(rauchbier)로 불리는 훈연맥주는 나무를 태워 건조한 맥아로 만든 맥주를 말한다. 석탄을 이용해 맥아를 굽기 전, 모든 맥주는 응당 훈제 비슷한 향을 품고 있었다.
고대 양조 흔적이 배어있는 훈연맥주는 이제 밤베르크에서만 즐길 수 있다. 물론 이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는 맥주뿐만 아니라 유구한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곳이다. 이곳의 매력에 빠져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 여러 번 찾아왔었다.
2024년 유럽 맥주 기행 목적지로 다시 밤베르크를 넣으며 사라졌던 설렘이 느껴졌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훈연맥주에 관한 한 밤베르크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었다. 현지인처럼 마셔보기도 했고 밤늦게까지 도시를 거닐며 취해보기도 했었다. 도시 주변의 작은 양조장 탐험도 했었던 터였다. 이번에 나를 들뜨게 했던 건, 바로 양조장 투어였다.
슈렝케를라(Schlenkerla)는 슈페지알(Spezial)과 더불어 훈연맥주를 생산하는 유이한 양조장이다. 슈렝케를라 양조장 방문은 인생 버킷리스트였다. 무엇보다 사진 자료로만 보던 훈연맥아 가마와 지하 셀러를 가보고 싶었다. 매번 양조장 앞에 서서 언제 한 번 들어가 볼 수 있을까 상상만 했었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게다가 대표가 직접 인솔까지 해준다니, 설레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지.
400년 역사가 깃든 양조장
▲ 마티아스가 통로에 있는 그림을 설명해 주고 있다. ⓒ 윤한샘
슈렝케를라 양조장은 아담했다. 주택가에 있어 양조장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독일 전통 가옥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로 건물 위에는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마티아스 대표의 가족이 살고 있다. 세계대전의 폭격을 피해서였을까. 작은 아치형 입구 위에는 '1790'이라는 숫자가 보였다. 무려 230살 먹은 집이었다.
입구 옆에는 'Aecht Schlenkerla Rauchbier'와 'Hellerbrau'라는 글자가 담긴 방패 모양의 문패가 보였다. '오래된 슈렝케를라 훈연맥주', '헬러브로이'라는 뜻이었다. 사실 슈렝케를라 양조장은 틀린 이름이다. 슈렝케를라라는 브랜드가 워낙 유명해 이름처럼 불리고 있지만 실제 양조장 이름은 헬러브로이다.
통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벽에 흑연필로 그린 밤베르크와 슈렝케를라 연대기가 보였다. 놀란 토끼 눈으로 그림을 하나하나 살피던 와중, 저 멀리서 누군가 '구텐 모르겐(좋은 아침)'을 외치며 다가왔다. 슈렝케를라를 이끌고 있는 마티아스 대표였다.
40대 초반, 훤칠한 키에 선한 미소, 금테 안경을 쓴 그는 지적이고 기품이 가득했다. 부드럽고 활기찬 목소리로 환영 인사를 건넨 후, 곧바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영어도 가능했지만 우리에게 독일어 통역이 가능한 지인이 있어 투어는 독일어로 하기로 했다.
통로에 있는 그림이 정말 연필로 그린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지우개로 지우면 안 된다는 독일식 농담을 던졌다. 서로 인사를 마친 후, 벽에 있는 그림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으로 투어가 시작됐다.
밤베르크는 생각보다 오랜 양조 역사를 갖고 있었다. 무려 1015년 성 미하엘 수도원 양조장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우리가 있는 이 양조장 부지에 대한 언급은 1387년 문서에, 슈렝케를라 양조장 기록은 1405년 문서에 존재한다. 슈렝케를라는 이 1405년을 양조장 원년으로 삼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숫자는 '12.10.1489'였다. 밤베르크는 1489년 12월 10일 맥주순수령을 제정했다. 바이에른 공국의 맥주순수령 선포 날짜가 1516년 4월 23일이니 밤베르크는 무려 27년 전에 맥주에 보리, 물, 홉만 넣어야 한다는 법이 있었던 것이다. 오버프랑켄 지역이 맥주에 대해 그토록 강한 자부심을 가진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슈렝케를라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해는 1877년 안드레아스 그레이져가 주인이 되었을 때였다. 그는 과거 성 미하엘 양조장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쳤는데, 이후 휘청휘청이며 걷는 사람이라는 뜻의 '슈렝케틀라'가 별명처럼 붙었다. 처음 슈렝케를라라는 애칭을 이용한 곳은 맥주를 파는 레스토랑이었다. 그리고 점차 이 이름이 인기를 얻자 양조장의 상징이 되었다.
너도밤나무의 비밀
▲ 훈연맥아를 만드는 가마. 나무를 넣는 곳이다. ⓒ 윤한샘
밤베르크와 슈렝케를라 역사를 훑어 준 마티아스는 설명이 끝나자 왼쪽 통로로 우리를 안내했다. 브루 하우스를 오른쪽으로 끼고 작은 마당을 지나자 조그만 문이 나타났다. 안에는 길게 쪼개져 쌓여있는 나무들이 보였고 콧속으로는 흐릿한 연기의 흔적이 느껴졌다. 훈연맥아를 만드는 가마로 들어온 것이다.
드디어 왔구나. 내 버킷리스트에 있었던 비밀의 방을. 하지만 그때까지 이곳이 호그와트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던 '비밀의 방'처럼 될 줄은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가마는 생각보다 작았다. 여남은 사람이 들어가자 빈틈이 없을 정도였다. 마티아스는 장작을 태우는 입구 옆 계단에 서서 훈연맥아 기원을 설명했다. 고대 맥아는 싹튼 보리를 햇볕에 건조시켜 만들어졌다. 그러나 습했던 밤베르크는 나무를 태워 보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마티아스는 이미 기원전 500년부터 있었던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비슷한 방식을 스리랑카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인류가 곡물을 보관하던 보편적인 방법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1635년 영국에서 니콜라스 할스가 코크(coke) 가마를 발명하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가마가 특별했던 건 단순히 코크를 사용했다는 점이 아니었다. 석탄이 베이스인 코크도 태우면 안 좋은 향이 났다. 할스는 이 향을 제거하는 방법을 고안해 가마에 적용했고 특허를 받았다.
훈연 향이 맥주와 헤어질 결심을 한 시기가 역설적으로 훈연맥주가 태동한 원년이 됐다. 슈렝케를라는 오히려 전통을 이어갈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럽에서 훈연 향을 품은 맥주가 사라져 갈 때, 밤베르크만이 고대 맥주의 흔적을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 결과 슈렝케를라와 슈페지알이 전통을 지키는 유이한 맥주로 현재까지 남아있다.
▲ 훈연맥아에 넣는 나무들 ⓒ 윤한샘
마티아스는 뒤에 있는 장작을 가리키며 훈연맥아에 사용되는 나무가 밤베르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부헤(buche)라고 설명했다. 부헤? 그 순간 호그와트의 비밀의 방이 열렸다. 통역사 누님이 부헤면 마로니에 부헤, 너도밤나무가 아니냐고 묻자 마티아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스마트 폰으로 부헤를 검색했다. 영어로 하면 비치우드로 나오고, 한국어로도 너도밤나무로 번역됐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슈렝케를라 훈연맥아에 넣는 나무는 너도밤나무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독일어로 너도밤나무는 카스티안(Kastanien)이라고 덧붙이며 이 나무는 카스티안이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급하게 부헤와 카스티안을 다시 검색했지만 결과는 더 난감했다. 부헤가 너도밤나무, 카스티안이 단밤나무로 나온 것이다. 굳이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카스티안인지 부헤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뭐가 됐던 전통과 진정성이 듬뿍 가미된 맛있는 슈렝케를라만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확실한 건, 슈렝케를라 훈연 향을 담당하는 나무가 밤베르크의 기운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호그와트를 들썩이게 했던 이 해프닝은 나중에 더 알아보자는 합의로 슬그머니 마무리됐다.
신비와 모험이 가득한 지하 세계
▲ 슈렝케를라 브루하우스 ⓒ 윤한샘
마티아스가 가마에서 건네준 훈연맥아를 우적우적 씹으며 아까 잠시 보였던 브루 하우스로 들어갔다. 백색 타일 위에 구릿빛 케틀, 전통적인 독일 스타일의 당화조와 끓임조가 보였다.
어디선가 온기가 느껴졌다. 앞에 있는 끓임조였다. 마티아스는 끓임조 입구를 열어 우리에게 보여줬다. 흑색 맥즙이 훈제 향을 조금씩 뱉으며 끓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훈연맥주 양조 장면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다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브루 하우스는 생각보다 아담했다. 이곳에서 밤베르크와 전 세계 수출되는 수요를 감당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훈연맥주를 향한 사랑과 헌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양조사가 자신이 만드는 맥주를 사랑해야 좋은 맥주가 나오는 법. 전통은 원래 그렇게 이어진다.
맥주의 온기를 느꼈으니 이제 찬 기운을 느껴야 할 시간. 양조 설명을 마친 마티아스는 우리를 지하 세계로 내려가는 계단 앞으로 데려갔다. 자줏빛 계단 밑으로 거대한 스테인리스 스틸 문이 반짝였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기가 조금씩 아려왔다. 지하 세계는 겨울이었다. 눈처럼 하얀 동굴은 150년 전 암벽을 손으로 뚫어 완성한 작품이었다. 마티아스는 사암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항시 8~9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총 1, 2층에 100여 개의 발효숙성탱크가 놓여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안쪽으로 깨끗한 은색 발효숙성조가 줄지어 있었다. 기온은 쌀쌀했지만 공기는 쾌적했다. 지하 셀러를 유지하며 발효숙성을 하는 양조장은 슈렝케를라가 유일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언뜻 봐도 좁고 추운 공간이라 작업 난이도가 쉽지 않을 듯했다.
안쪽으로 나무 배럴과 케그들이 쌓여있는 공간도 보였다. 모두 맥주를 담고 바깥으로 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무 배럴은 슈렝케를라 레스토랑용으로, 나머지 케그들은 온라인 배송, 바틀샵 그리고 수출용으로 사용된다.
▲ 지하 셀러 숙성조에서 맥주를 따라주고 있는 마티아스 대표 ⓒ 윤한샘
"이제 마셔볼까요?" 마티아스 한 마디에 우리 모두 함성을 질렀다. 슈렝케를라 대표가 숙성조에서 따라주는 훈연맥주를 마시는 순간이 실제로 오다니. 마호가니 색 슈렝케를라 메르첸이 손에 차가운 기운을 전달하며 잔을 채웠다. 빛은 아름답고 고혹적인 우주를 살짝 뚫고 있었다. 필터링되지 않은 언필터드 슈렝케를라 메르첸이었다.
그 맛은 어땠을까? 깨끗한 훈연 향은 마치 과일처럼 신선했다. 섬세한 건 자두, 옅은 캐러멜, 희미한 허니 그리고 부드러운 쓴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한국과 현지 레스토랑에서 수없이 먹어봤던 맥주였지만, 그 어떤 것도 150년 된 지하 동굴에서 마시는 언필터드 슈렝케를라를 따라올 수 없었다. 단연코 이번 여행에서 마신 맥주 중 가장 맛있고 매력적인 맥주였다.
▲ 슈렝케를라 지하 셀러에서 마신 맥주 ⓒ 윤한샘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한 잔 더'를 외쳤다. 본능에 따른 요구였다. 손과 얼굴은 점점 얼어갔지만 코와 혀는 살아났다. '양조장 굴뚝 아래서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는 맥주다'라는 독일 속담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양조장 지하 셀러에서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는 맥주다'라고.
마티아스는 자신의 자식들이 이 전통을 이어가기를 바란다고 전하며 투어를 마무리했다. 7대째 이어지는 가족 양조장은 그 자체로 예술이 아닐까. 밤베르크는 그렇게 술로 예술을 빚고 있었다. 슈렝케를라는 예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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