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당선인, '깨어있는' 장군들 모두 숙청하나
[김종성의 히,스토리] 트럼프 정권인수팀, 전사위원회 구성해 군부 숙청 계획
▲ 199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제14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2년간의 군인 통치에 뒤이어 문민정부가 들어선 지 11일 뒤인 1993년 3월 8일, 한국인들은 쿵 하고 머리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날 <동아일보>는 "정부는 8일 김진영 육참총장을 9일 자로 전격 해임하고 후임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김동진 대장을 임명했다"라며 "정부는 또 서완수 국군기무사령관을 보직 해임하고 후임에 김도윤 현 기무사 참모장을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김영삼은 군부 출신 정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을 계승하는 민주자유당(민주당)의 공천으로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가 김대중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했었기 때문에 전두환·노태우를 따르는 군부 수뇌부가 그를 경계하지 않을 리 없었다.
김영삼의 조치는 박정희가 친위 세력을 양성하고자 전두환 등을 내세워 비밀리에 조직한 군부 사조직 하나회에 대한 전격 숙청의 신호탄이었다. 박정희 집권기에는 유신독재를 떠받치고 전두환 집권기에는 국정 일선에서 나라를 암흑으로 몰아넣은 하나회는 이때부터 순차적으로 숙청됐다. 위 기사는 이렇게 평했다.
"군 주변에서는 김 전 총장과 서 전 기무사령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 소수 장성들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 군맥에 속하여 이들에 대한 새 정부의 갑작스러운 경질이 군부 내에 고질로 여겨진 파벌과 인맥을 개혁하려는 강한 의지라고 풀이했다."
트럼프의 군부 숙청 계획
▲ 12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트럼프 행정명령 초안, 장군 숙청 위원회 만든다" ⓒ 월스트리트저널
12일 자 <월스트리트저널>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준비하는 정권인수팀의 군부 숙청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이 숙청 계획은 새로운 행정부의 추진력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을 떠올리게 하지만, 역사를 발전시키기보다는 퇴행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1993년의 한국 숙군과 동떨어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정권인수팀이 예비역 장군들로 구성된 전사위원회(warrior board)를 설치해 중장 및 대장급들을 평가하고 해임할 수 있게 하는 행정명령 초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를 통해 '깨어 있는 장군'(woke general, 보수 세력이 진보적인 정책이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고위 장교를 비판적으로 부르는 말)들을 군대에서 축출하는 것이 의도라고 보도됐다.
장성급을 해임하는 권한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 있지만, 전사위원회 구성은 그런 해임이 시스템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트럼프가 이를 승인할 경우 군에 대한 인사 조치가 상당한 강도를 띠게 되리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트럼프의 숙군 계획은 대선 기간에도 강조됐다. 지난 10월 4일 그는 군인 인구가 많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페이엣빌을 방문했다. 자동차로 워싱턴 남쪽 대여섯 시간 거리에 있는 이곳에서 그는 예비역 공군 조종사의 질문을 받았다. '깨어 있는 장군들'이 국방부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그날 <뉴욕타임스> 기사 '트럼프, 노스캐롤라이나 타운홀에서 재향군인들에게 어필하는 일련의 약속을 하다'에 따르면, 그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했다. 청중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그는 그 예비역에게 "당신을 그 태스크포스팀에 넣을 겁니다"라고 발언했다. 위 기사는 트럼프가 사전에 질문지를 받았다고 알려준다.
군에서 확산하는 진보적 흐름 경계하는 트럼프
1990년을 전후해 세계적으로 냉전 질서가 크게 약화된 것은 미국이 소련보다 강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 투쟁, 반유신 투쟁, 부마항쟁, 6월항쟁 등과 필리핀 피플파워 등과 유럽 68혁명 및 미국 반전운동 등으로 상징되는 세계 민중의 에너지가 냉전 세력을 끊임없이 압박한 결과물이다. 이로 인한 영향을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받았을 따름이다.
소수의 대자본가와 군부 세력의 세계 지배 욕망에 맞선 이 투쟁은 인권 및 민주주의의 신장과 각종 차별의 철폐를 목적으로 지금도 계속 전개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미국 군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콜린 파월에 이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작년 5월 합동참모의장이 된 찰스 브라운은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2020년에 용기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공군 참모총장인 그는 자신이 전투기 조종사 시절에 겪은 인종차별을 토로하면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응원했다.
이런 흐름은 인종과 관계없이 전개되고 있다. 작년까지 합동참모의장을 지낸 마크 밀리는 자신의 상관이었던 트럼프를 파시스트로 비판하며 위험시했다. 이 발언은 지난 10월 15일 출간된 언론인 밥 우드워드의 <전쟁>에 소개됐다.
노스캐롤라이나 발언에서도 나타나듯이 트럼프는 군에서 확산하는 진보적 흐름을 경계하고 있다. 뉴스 전문 케이블 TV인 MSNBC 홈페이지에 실린 작가 겸 정치평론가 스티브 베넨의 글은 트럼프가 이 현상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이 '트럼프, 미군 리더십을 정밀 검사하는 터무니없는 계획에 주목'인 이 글은 트럼프가 인터뷰 때 "군은 나쁘다"라며 "우리는 그처럼 나쁜 일을 하는 장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발언한 일을 소개했다. 이 글은 "분명히 트럼프는 미군 지도자들이 어떤 종류의 이념적 검증을 받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한다.
보수세력 정서를 배경으로 군부 숙청 예고
▲ 1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하원 공화당 의원들과 만나며 손짓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영삼은 전광석화처럼 하나회를 숙청했지만 트럼프는 사전에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겨냥하는 숙군 대상이 하나회만큼 강력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트럼프와 생각을 같이하는 보수세력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9월 30일 헤리티지재단 홈페이지에 실린 전 국방센터(Center for National Defense) 소장인 토마스 슈포어의 글 '군대 내에서 깨어 있음의 증가'는 군에서 진보적 의제가 점증하는 현상을 보수세력이 어떤 시선으로 지켜보는지를 드러낸다.
"깨어 있음의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방식으로 군의 대비 태세를 침해한다. 이는 인종·민족·성별에 기초한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응집력을 침해한다. 이는 진급이 성적이나 할당량 요건을 따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리더십의 권위를 침해한다."
소수자나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군대의 통합을 해치고 인사 조치에 대한 불만을 확산시킨다는 보수세력의 불만을 읽을 수 있다. 군대를 공동체 전체의 군대로 생각한다면 이런 불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말로는 국민의 군대라고 하면서도 실상은 특권층과 주류 세력을 지키는 군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불만이 나온다.
그 같은 보수세력의 정서를 배경으로 트럼프가 군부 숙청을 예고하고 있다. 제1기에 뒤이어 곧바로 제2기 임기에 취임하는 대통령과 달리 4년 간격을 두고 2기 임기에 취임하는 트럼프의 힘이 좀 더 강력할 것으로 보이므로, 미국 군대 내의 진보적 흐름이 앞으로 한동안은 큰 견제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더 행정부가 군부를 존중해온 미국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전부터 군부 숙청을 예고하는 것은 미국 군대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인권과 민주주의, 차별 철폐를 갈구하는 미국 사회의 열망이 트럼프 행정부하의 미국 군대 내에서 어떻게 발현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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