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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잔치 쓰레기 어쩔 거야? 시골 어르신들의 '다툼'

쓰레기 문제에 '진심' 충남 홍성군 장곡면 주민들 직접 쓴 대본으로 연극 무대 올려

등록|2024.11.17 14:50 수정|2024.11.17 14:50

▲ 지난 12일 충남 홍성군 장곡초등학교에서는 장곡면 주민들로 구성된 '쓰레기 유랑극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 이재환


"야야야~ 쓰레기가 어때서 재활용에 남녀노소 있나요. 분리수거 딱 좋은 날인데~"

지난 12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장곡초등학교 장곡관에서는 웃음이 흘러 넘쳤다. '마을로 찾아가는 쓰레기 유랑극단'의 첫 번째 창작극 '쓰레기가 어때서'가 공연됐는데 주민들과 장곡초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연극에 참여한 장곡면 주민 11명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기를 경험했다. 이들 주민들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연극 무대에 나선 것은 그 누구보다도 '쓰레기 문제'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연극 대본도 주민들이 직접 썼다. 시골 주민들의 관점에서 본 쓰레기 분리수거와 무단 소각 문제를 '날것' 그대로 다룬 것.

쓰레기 태울까, 말까, 옥신각신... 연극 소재가 된 시골마을 풍경

실제로 농촌 마을에서는 폐비닐과 농업부산물을 함부로 태우는 경우가 흔하다. 그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하고, 심지어 산불로까지 번지기도 한다.

장곡면 주민자치회 환경분과 소속 주민들은 지난 1월 '쓰레기 유랑극단'을 창단하고 맹연습 끝에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연습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이다. 연극은 쓰레기 처리 문제를 놓고 갈등하는 시골 마을의 흔한 풍경을 유쾌하게 풍자하고 있다.

연극은 '계복순 여사의 팔순 잔치'를 배경으로 한다. 팔순 잔치 과정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 마을주민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쓰레기를 태워 버리자'는 마을 이장(곽현정 분)과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부녀회장(한성숙 분)이 옥신각신하며 다투는 장면이 담겼다. 그 과정에서 말귀를 잘 못알아 듣는 마을 할머니(홍수민 분)가 감초처럼 웃음을 만들어낸다.

물론 이 연극에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빈병을 돈으로 바꿔 주는 빈병 보상금제와 농촌 영농 폐기물 처리 방법 등의 '꿀팁'도 대본에 깨알같이 녹였다. 또 쓰레기를 태우는 과정에서 산불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담았다.

연극을 관람한 김선애 장곡초 교사는 "무척 재미있었다. 단원 모두 우리 마을 분들이고 평소에도 잘 알고 지낸 분들"이라며 "그분들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했다. 이어 "쓰레기를 쉽게 (버리고) 태우고 싶어 하는 심리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리수거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아 이야기를 잘 풀어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농촌 쓰레기 문제,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싶었다"

▲ 연극에서는 오승근의 노래 '내나이가 어때서'를 개사한 '쓰레기가 어때서' 라는 노랫말이 등장했다. ⓒ 이재환


이번 연극 공연은 딱딱한 환경교육에서 벗어나 농촌의 쓰레기 문제를 좀 더 쉽게 알리고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대본을 직접 쓴 김혜란(장곡면, 계복순 여사 역)씨는 "예상했던 것보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연극공연이 처음인데도 조금 덜 떨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리수거나 환경교육은 딱딱한 측면이 있다. 쓰레기 문제를 좀 더 재미있고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연극을 해보자는 주민들의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극단이 꾸려졌다"라고 연극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김씨는 "시골에서는 분리수거가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마을 잔치가 끝나고 나면 쓰레기를 태우기도 한다. 일상의 경험들을 에피소드로 엮었다"라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로 인한 갈등은) 우리 마을에서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시골에서는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연극은 시골 마을에 살고있는 어린의 대사로 마무리가 된다. '예진 역'의 심예진 어린이는 연극 말미에 어른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이웃 마을에서는 산불도 크게 났고 할머니 마을에서는 쓰레기 태우는 냄새가 나서 무서웠다. 지금처럼 쓰레기를 태우면 우리가 사는 땅이 어떻게 될지 생각만해도 걱정이다.

우리가 어른이 돼서도 깨끗한 땅과 물과 공기가 그대로 남아 있을까. 마음놓고 놀던 뒷동산과 계곡, 바다에서 더 이상 놀 수 없다면 정말 슬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른들이 막아줄 것이라고 믿고 싶다."

'홍성군 영농 폐기물 수거 및 처리 조례' 이끌어낸 바로 그 주민들

▲ 지난 12일 충남 홍성군 장곡면 쓰레기 유랑극단 소속 주민들이 연극 '쓰레기가 어때서'를 공연하고 마무리 인사를 하고 있다. ⓒ 이재환


이 연극은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쓰레기 유랑극단' 단원들을 포함한 장곡면 주민들은 2021년 말 주민자치 사업으로 영농 폐비닐 수거 사업을 진행했다. 이들이 1년간 자발적으로 진행한 '영농 쓰레기 수거 사업'은 그대로 홍성군 조례로 이어졌다.

다음해인 2022년 홍성군의회는 최선경(더불어민주당) 군의원의 대표 발의로 '홍성군 영농폐기물 수거·처리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홍성군 농업기술센터는 논밭을 직접 찾아가 파쇄기계로 들깨와 고춧대 등의 영농부산물을 파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파쇄된 부산물은 그대로 거름이 된다.

홍성군 평생교육관 관계자는 "주민들이 쓰레기 문제에 꾸준히 문제 의식을 가지고 쓰레기 관련 조례 제정까지 이끌어 냈다. 주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주민자치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연극 공연은 오는 19일 오전 10시 30분 장곡면 신풍1리 체육관, 이어 23일 오전 10시 장곡면 도산2리 오누이센터, 같은 날 오후 2시 장곡면 대현1리 정다운 농장에서 잇따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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