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나가는 사람들... 그는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영화 리뷰] <마리우폴에서의 20일>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면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돈바스 지역을 두고 벌어진 산발적 전투 형태로 시작했다. 이후 교착 상태 상황에서 2022년 초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탈나치화를 기치로 걸었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총동원령을 발표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곧바로 러시아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집을 버리고 고향을 등진 채 도망간 사람들도 있고, 갈 곳 없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으며,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점을 정교하게 그리고 현장감 있게 들여다본다. 'AP통신'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팀이 동남부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2022년 2월 24일부터 20일간 머물며 기록한 영상들이 주요 소재다. 아카데미와 퓰리처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들에서 수십 관왕을 차지했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라고 했던가. 2022년 2월 24일 마리우폴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폭풍전야라고 할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린다. 다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전쟁을 실감한다. 아이들이 이 사태에 휘말리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나이를 남기려는 이유
이 작품은 이른바 '프로'가 만들지 않았다. 주지했듯 전쟁이 터지자 해외 취재팀은 모두 빠져나갔는데 < AP 통신 > 우크라이나 취재팀만 남아 촬영을 이어갔다.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영상기자가 감독, 각본, 촬영, 제작, 내레이션을 도맡아 당시의 참상을 온전히 전하려 했다. 그런데 말이 '온전히'지 죽음을 무릅쓴, 죽음을 상정한 취재였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담보로 전쟁의 참상, 전쟁의 실체를 낱낱이 취재하고 보도해 고발하는 건 개인적이라고 치자.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둔 채 촬영하고 취재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기자로서의 윤리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극 중에서도 내레이션으로 고민을 전한다.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오열하는 이를 촬영할 때 "촬영을 멈추고 달래야 할지 망설였다"라고. 군인이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하니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답하며 시체를 묻는 모습을 촬영할 땐 "뇌는 눈앞의 광경을 잊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는 계속 기록한다"라고 되뇐다. 그런가 하면 의료진은 공격받아 죽어 가는 민간인을 살리려는 모습을 꼭 촬영해 달라고 한다.
그렇다.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민간인만 있는 지역을 폭격했다. 용서받기 힘든 '전쟁 범죄'다. 급기야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병원까지 폭격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작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한가운데가 바로 여기, 민간인들밖에 없는 마리우폴의 어느 일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여 이 전쟁의 성격이 민간인 학살에 가닿아 있다는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남기려는 이유다.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하지 않는가. 전쟁 영화를 제아무리 사실감 있게 잘 만들어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투 현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러시아군의 포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이 한순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라고 할까.
기자이자 감독 체르노우는 본인의 안위는 물론이고 가족의 생사도 뒤로한 채 참상의 실체를 오롯이 영상에 담아 전 세계로 송출하고자 모든 걸 촬영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 곧 모든 게 작동을 멈춰 실시간 송출도 어려워진다.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참상은 여기저기서 수단으로 쓰이며 객체로 머물 뿐이다. 참상이 주체가 되어 전쟁이라는 개념의 실체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냥 먼 나라 어딘가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로 치부될 것이다. 하여 누군가가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럼에도 이 기록물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게 다 부질없이 여겨진다. 허무해진다. 삶이 하찮아진다. 한순간에 박살 나고 마는 인간이 한없이 약해 보인다. 그동안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막연한 개념을 붙잡고는 아는 채 했던 게 창피하다. 전쟁의 실체에는 전쟁 따위는 없고 죽음의 공포만 있을 뿐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데 어찌 전쟁을 안다고 하겠는가.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면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돈바스 지역을 두고 벌어진 산발적 전투 형태로 시작했다. 이후 교착 상태 상황에서 2022년 초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탈나치화를 기치로 걸었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점을 정교하게 그리고 현장감 있게 들여다본다. 'AP통신'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팀이 동남부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2022년 2월 24일부터 20일간 머물며 기록한 영상들이 주요 소재다. 아카데미와 퓰리처상을 비롯해 전 세계 영화제들에서 수십 관왕을 차지했지만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
'전쟁은 폭발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한다'라고 했던가. 2022년 2월 24일 마리우폴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폭풍전야라고 할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방에서 폭발음이 울린다. 다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전쟁을 실감한다. 아이들이 이 사태에 휘말리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나이를 남기려는 이유
▲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이 작품은 이른바 '프로'가 만들지 않았다. 주지했듯 전쟁이 터지자 해외 취재팀은 모두 빠져나갔는데 < AP 통신 > 우크라이나 취재팀만 남아 촬영을 이어갔다.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 영상기자가 감독, 각본, 촬영, 제작, 내레이션을 도맡아 당시의 참상을 온전히 전하려 했다. 그런데 말이 '온전히'지 죽음을 무릅쓴, 죽음을 상정한 취재였을 것이다.
나의 죽음을 담보로 전쟁의 참상, 전쟁의 실체를 낱낱이 취재하고 보도해 고발하는 건 개인적이라고 치자.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 자식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눈앞에 둔 채 촬영하고 취재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다.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기자로서의 윤리가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극 중에서도 내레이션으로 고민을 전한다. 집을 잃고 실의에 빠져 오열하는 이를 촬영할 때 "촬영을 멈추고 달래야 할지 망설였다"라고. 군인이 촬영하지 말아 달라고 하니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답하며 시체를 묻는 모습을 촬영할 땐 "뇌는 눈앞의 광경을 잊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는 계속 기록한다"라고 되뇐다. 그런가 하면 의료진은 공격받아 죽어 가는 민간인을 살리려는 모습을 꼭 촬영해 달라고 한다.
그렇다. 러시아는 민간인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민간인만 있는 지역을 폭격했다. 용서받기 힘든 '전쟁 범죄'다. 급기야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병원까지 폭격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 작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한가운데가 바로 여기, 민간인들밖에 없는 마리우폴의 어느 일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여 이 전쟁의 성격이 민간인 학살에 가닿아 있다는 것이다.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나이를 남기려는 이유다.
"역사적인 전쟁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어요"
▲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의 한 장면.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하지 않는가. 전쟁 영화를 제아무리 사실감 있게 잘 만들어도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전투 현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러시아군의 포격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수 천 킬로미터 떨어진 그곳이 한순간에 눈앞으로 다가온 느낌이라고 할까.
기자이자 감독 체르노우는 본인의 안위는 물론이고 가족의 생사도 뒤로한 채 참상의 실체를 오롯이 영상에 담아 전 세계로 송출하고자 모든 걸 촬영하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 곧 모든 게 작동을 멈춰 실시간 송출도 어려워진다. 러시아군에게 점령당하기 전에 탈출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참상은 여기저기서 수단으로 쓰이며 객체로 머물 뿐이다. 참상이 주체가 되어 전쟁이라는 개념의 실체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냥 먼 나라 어딘가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로 치부될 것이다. 하여 누군가가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럼에도 이 기록물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게 다 부질없이 여겨진다. 허무해진다. 삶이 하찮아진다. 한순간에 박살 나고 마는 인간이 한없이 약해 보인다. 그동안 전쟁이라는 거대하고 막연한 개념을 붙잡고는 아는 채 했던 게 창피하다. 전쟁의 실체에는 전쟁 따위는 없고 죽음의 공포만 있을 뿐이다. 그걸 알지 못하는데 어찌 전쟁을 안다고 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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