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의료 대란에 이미 1조 원 넘게 썼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전례 없는 일... 지자체 재난관리기금까지 끌어 써"
▲ 올해 2월 전공의 집단 이탈로 시작된 의정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 관계자가 이동하고 있다. 2024.8.2 ⓒ 연합뉴스
정부가 세수 부족 상황에서 의료 대란 예산을 1조 원 넘게 썼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15일 '지금은 추경이 필요한 순간' 칼럼에서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상황에서 의료대란으로 이미 1조 원 넘게 지출됐다"며 "재난이 발생한 것인지 발생시킨 것인지, 천재인지 인재인지 답답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보다 돈 쓰는 속도 빨라져"
정 소장은 "지난 14일 기재부의 <월간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나라살림이 91조 5000억 원의 적자를 보였다"라며 "총수입은 439조 300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조1000억 원 증가했고, 이중 국세수입은 255조 3000억 원으로 11조 3000억 원 감소했는데 경기 악화와 감세 등으로 법인세가 17조 4000억 원이 감소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세외수입과 기금은 각각 1조 6000억 원과 12조 8000억 원이 늘었다"며 "지출로 보면 1년 전보다 24조 8000억 원이 늘어난 492조 3000억 원이다. 예산대비 진도율은 75%로 지난해(73.2%)보다 돈 쓰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정 소장은 "결국 수입은 3조 1000억 원이 늘었는데 지출은 24조 8000억 원이 늘었다"며 "올해 정부는 연말까지 91조 6000억 원 정도의 적자를 전망했는데, 이제 1천억 원 남았다. 세수진도율을 보면 더욱 악화되고 있어 총체적 난국"이라고 지적했다.
"더욱 전례 없는 일... 의료대란에 지자체 재난관리기금 끌어 써"
▲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6월 1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의료농단 저지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정 소장은 정부 대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양극화 타개를 위해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 세수를 늘리거나 다른 곳에 쓰던 것을 줄이든가 해야 하지만 그런 대책은 발표하지 않았다"라며 "결국 세수 부족을 타개할 대책으로 내세운 기금 여유재원 활용, 지방에 전가, 불용이라는 3가지 대책밖에는 없다"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이어 "하지만 기금 여유재원은 2년 연속 세수 감소에 내년까지 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여유가 많지 않다"라며 "또한 외평기금도 계속 줄어들어 위험한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지방 전가도 지방 잉여금이 감소하면서 처음으로 예산편성액이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전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 소장은 "이런 가운데 더욱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라면서 "바로 의료대란 대책에 지방자치단체 재난관리기금을 끌어쓰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올해 정부는 의료대란 대책으로 예비비를 2040억 원을 사용했다. 주로 상급병원의 당직비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미 바닥이 났다"라며 "정부는 대신 지방자치단체의 재난관리기금을 사용하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정 소장에 따르면 "이미 전국의 지자체는 9월까지 489억 원의 재난관리기금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재난관리기금은 각종 재난의 예방 및 복구에 따른 이자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지자체가 매년 보통세의 1%를 적립하는 법정의무기금"이라고 강조했다.
정 소장은 또한 "행안부는 현재의 의료대란을 '보건의료분야 국가핵심기반의 마비'라는 이유로 1712억 원을 요청했고 응급의료기금 5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라며 "그래도 모자라 3차 예비비를 투입하려 한다"는 지적과 함께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문제는 이미 9월까지 건강보험에서 비상진료체제 유지에 6237억 원을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건보 재정은 인건비로 사용할 수 없어서 예비비로 인건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상황에서 의료대란으로 1조 원이 넘게 이미 지출된 것입니다."
"재난이라는 현실이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어"
▲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정 소장은 정부의 불용처리 대책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날렸다. 그는 "불용처리라 함은 편성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정부에서 마음대로 쓰지 않는다면 국회의 예산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정 소장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하라고 한 것도 안 한다면 그것 또한 사실상의 위법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총체적 재난 상황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라면서 "일단 올해 예산은 추경을 해야 한다. 수정예산안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25년 예산안 수정 필요성에 대해 정 소장은 "9월에 제출된 정부예산안은 세수 부족을 전제하지 않은 예산안"이라며 "이미 올해 세수 결손으로 정부 추산으로만 해도 내년도 수입 기준을 맞추려면 세수가 올해보다 13.2% 증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총체적 재난 상황입니다. 잘잘못이나 책임을 따지고 싶지도 않습니다."
끝으로 정 소장은 "일단 재정이 어려우면 국민의 삶이 어려워진다. 그리고 재정 지출이 줄면 더 어려운 상황으로 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면서 "현실에 맞는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재난이라는 현실이 파탄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자료자신)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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