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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 잃어버린 통일부의 기형적인 예산안

2025년 통일부 예산안, 북한 인권 예산 삭감하고 접경지역 주민 치유 지원해야

등록|2024.11.15 17:58 수정|2024.11.15 17:58

답변하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0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가을과 함께 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가 한창이다. 예산안은 정부가 한 회계연도에 국가 활동에 수반되는 수입과 지출의 계획(예산)을 편성하여 국회의 심의·확정을 받기 위해 제출하는 의안을 말한다. 이렇게 제출된 예산안은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 예비 심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종합심사를 거쳐 본회의 의결로 확정된다.

우리 헌법은 국가 예산안의 편성·제출권을 정부에 전속하게 한 반면, 심의·확정권은 국회에 전속시킴으로써 예산은 오직 국회의 심의·의결에 의하여만 확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54조). 여기서는 통일부의 2025년도 예산안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새롭게 필요한 사업들을 제안하려 한다.

노골적인 남북관계 포기 선언

통일부 예산은 말 그대로 기형적이다. 2025년도 통일부 예산안은 총 1조 554억 원 규모로, 일반회계 2,293억 원, 남북협력기금 8,261억 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회계 중 인건비와 기본경비를 제외한 사업비는 1,676억 원으로, 이중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예산이 808억 원으로 전체 사업비의 약 48%를 차지하고 있다.

북한 인권 관련 예산 또한 전체 사업비의 약 13%인 211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분야별로 보면, 북한인권개선 기반구축에 182억 원, 전시납북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15억 원, 이산가족 및 납북피해자 지원에 15억 원 등이다. 여기에 북한 인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국내외 통일기반조성 사업, 북한 인권 관련 정보 수집과 연구사업을 포함하면 그 액수는 더 늘어난다.

그렇다면 남북관계 관련 예산은 어떨까? 통일부가 책정한 사업비 중 남북관계 관련 예산은 전체 68억 원으로 이마저도 남북관계관리단의 시설 관리 예산 56억 원을 제외하면 12억 원에 불과하다. 전체 일반회계 사업비의 1%도 안 되는 예산이다. 말 그대로 남북관계 회복은 고사하고 관리조차 할 생각이 없다는 노골적인 남북관계 포기 선언이 아닌가?

우리 법률에서 통일부 장관은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의 수립, 통일교육, 그밖에 통일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정부조직법 제31조).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통일부는 북한인권부, 북한이탈주민지원부가 된 지 오래다. 본업에 관심이 없다 보니 북한이탈주민지원과 북한 인권 관련 사업에 예산을 집중하며 무엇이 주 업무인지 불명확한 행정 부처가 되어버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인식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63.9%가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로 "남북평화공존과 한반도 평화 정착"을 꼽았다.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국민의 인식과 동떨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다.

행사, 행사, 행사, 보여주기식 북한 인권 예산 삭감해야

통일부의 내년도 예산 중,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과 통일정책 및 교육 관련 예산을 제외하면, 많은 부분이 '북한 인권'을 앞세운 보여주기, 나눠주기식 예산이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를 공론화 한다는 명목으로 국내외에서 대규모 행사들을 개최하고, 지원 사업의 형식으로 민간단체와 연구자(단체)들을 줄 세우고 있다.

문제는 통일부 예산에서 북한 인권개선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실효적인 성과라 할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북한은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다"라고 소리치는 보여주기식 행사와 나눠주기식 지원 사업으로 국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 인권 관련 예산 중 행사성 예산은 최대한 삭감해야 한다.

통일부는 말로만 '북한 인권'을 외치며 국민의 혈세를 행사에 탕진하지 말고 구체적인 행동을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에서 탈북민의 인권침해를 막고 당사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국제기구와의 협업을 통해 인권 침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예산에 반영되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는 통일부가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이 맞냐는데 있다. 관련하여 필자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는 주무 부처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통일부는 '북한'이라는 상대가 존재한다.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 통일부의 북한 인권 업무를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로 분산 배치할 필요가 있다(관련 기사: 윤석열 정부는 북한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https://omn.kr/252th).

접경지역 주민 치유 위한 예산 신설해야

▲ 10월 23일 김동연 경기도지사를 만난 파주 대성동 마을 주민들이 반북·탈북인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맞선 북한의 대남 확성기 소음 방송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 경기도


지난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북한의 대남방송 소음 피해를 증언하는 접경지역 주민의 호소가 울려 퍼졌다. 참고인으로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인천 강화군의 주민은 "딸아이 같은 경우는 잠을 못 자고 힘들어하니까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내미는 새벽 3~4시까지도 잠을 못 자고 그런 상황인데 아무것도 안 해주시더라"고 토로했다. 이 참고인은 국정감사장에서 무릎을 꿇고 문제 해결을 호소했지만, 정부는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했다.

반대로 통일부 국정감사장은 반대의 모습이 연출됐다. 대북 전단을 살포해 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대북 전단 살포가 항공안전법 위반이라는 지적에 대해 전단 살포를 지속하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내법을 준수하라"는 지적에 대해 박상학 대표는 "이거 뭐 최고인민위원회야? 내가 지금 법정에 섰냐고"라고 반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해서 통일부는 박상학 대표에게 항공안전법 위반 소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샀다. 접경지역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대남방송뿐만 아니라 우리 측의 대북 방송으로 매일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통일부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존재한단 말인가?

통일부는 보여주기식 북한 인권 행사에 예산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접경지역에서 고통받는 우리 국민들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관련하여 통일부는 접경지역 주민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예산을 새롭게 편성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인권에는 침묵하면서 개최되는 북한 인권 행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국회 또한 접경지역 주민들이 하루속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예산심의 과정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있다. 우선 접경지역 주민들이 대남, 대북 방송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소음 방지 시설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치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남북 통합문화 프로그램 예산 증액할 필요

우리는 종종 북한이탈주민을 '먼저 온 통일의 손님'이라 말한다. 하지만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인식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이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견이 30.6%로 '친근하게 느낀다'는 의견(17.5%) 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반반/그저 그렇다'는 의견이 51.9%로 최근 3년간 증가하는 추세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악화된 원인에는, 앞서 언급한 박상학 대표 등 일부 탈북민들이 주도하는 반북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해 접경지역의 우리 국민들이 고통받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은 우리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우리 국민,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인식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을 만나 본 경험이 있는 우리 국민은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친근감과 탈북민 수용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하여 통일부 산하의 남북통합문화센터는 남한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상호 소통하며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오랜 기간 진행해 왔다. 남북통합문화센터의 내년도 운영 예산은 33억 원이 책정되어 있다. 통일부가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행사에 예산을 낭비하기보다는 남북통합문화센터 예산을 대폭 증액할 것을 제안한다.

추가적으로, 새로운 통일 비전 마련을 위해 지난 2년간 활동해 온 통일미래기획위원회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통일미래기획위원회는 2023년 출범 이후 5개분과 35명의 위원들이 54차례의 회의를 개최했으며 2023년과 2024년 25억 5천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제시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8.15 통일 독트린'이 탄생한 것은, 동 위원회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미래기획위원회의 내년도 운영 예산이 올해와 같은 수준(10억 원)으로 책정된 것은 납득할 수 없다. 관련하여 외유성 예산을 포함한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전체 예산의 대폭 삭감이 요구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통일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국회는 통일부가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도록 예산심의 및 확정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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