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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병력이 죽고 죽이는 고대 전쟁의 진면목

[김성호의 씨네만세 882] <킹덤 2: 아득한 대지로>

등록|2024.11.17 11:13 수정|2024.11.17 11:13
천하대장군을 꿈꾸는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신(야마자키 켄토 분), 전쟁고아로 노예가 되었다가 비로소 자유를 얻은 이다. 때는 전국시대,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나라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여온 전란의 시대다. 손에 쥔 무엇도 없는 이가 뜻을 펼치기 위해 검을 드는 건 자연스런 귀결이다. 그렇게 많은 이가 죽고 또 죽여야 했다.

신의 이야기는 이번이 두 번째다. 함께 노예로 자라며 언젠가 전장에 나가 노예 딱지를 떼고 출세하자던 꿈을 꾸었던 표(요시자와 료 분)가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것이 첫 영화 <킹덤>의 도입이었다. 표는 저와 용모가 닮은 진나라 왕 영정을 위해 대역이 되었다가 자객들의 급습으로 죽음을 맞는 것이다.

표의 죽음 뒤 여차저차하여 그 뜻을 잇게 된 신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드는 이야기가 속편 <킹덤2: 아득한 대지로>를 이룬다.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만화를 논하자면 반드시 언급할 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찌감치 누적 판매량 1억부를 돌파한 만화 <킹덤>은 전 세계적 성공을 바탕으로 여전히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흥행작인 덕이다. 사토 신스케가 실사화한 작품은 당대 일본 최고의 배우들을 여럿 기용하고 최신 CG기술까지 덧입혀 좀처럼 불가능해 보였던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가능케 했다.

킹덤2: 아득한 대지로포스터 ⓒ 도키엔터테인먼트


'킹덤' 시리즈가 갖는 현재적 의미

명분 없는 전쟁이 범죄로 여겨지고, 전쟁이 신분상승의 길도 되지 못하는 21세기가 아닌가. 만화며 영화를 보는 이들 대부분은 일생에 걸쳐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도 못하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무려 22세기 전 중국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세계관을 오늘의 독자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영화화하는 것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사극이 과거의 역사로 오늘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킹덤> 시리즈 또한 그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전쟁을 다룬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쟁의 비극성을 비추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심는 것이다. 소위 반전영화로 불리는 많은 작품이 이에 속한다. 선진국에선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또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남아시아 일대에서 거듭된 내전과 분쟁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를 겨냥해 그 문제를 환기하고, 혹여 있을지 모를 전란의 불씨를 꺼뜨리는 것이 반전영화의 주된 목적이라 하겠다.

반대쪽엔 전쟁을 다루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 전쟁의 일면, 그러니까 전략과 전술, 전쟁 가운데 있는 영웅의 서사를 바탕으로 극적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전쟁 또한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전쟁을 더욱 잘 치르기 위한 수많은 결정과 고민들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는 역경을 극복하고, 또 누구는 그렇지 못해 패퇴한다. 삶 전체를 걸어 제 운명과 맞서는 일이 전란 가운데는 수두룩한데, 어찌 이야기가 그를 다루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누군가의 죽음이 그저 극적 재미로 환원되고, 또 이제는 범죄라 불리는 잔학한 행위 또한 영화를 만드는 수단으로 쓰인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인간 이성의 정수라 해도 좋을 예술, 그 가운데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한 영화가 건드리지 못할 인간의 문제란 없는 것이다. 전란 가운데도 삶이 있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꿈이 있으며, 온갖 저열함과 아름다움이 전쟁 가운데도 있을 수 있다면, 그 이야기를 다루는 것 또한 가능할 테다. 하물며 지금으로부터 22세기 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킹덤2: 아득한 대지로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천하통일 꿈꾸는 풋내기 청년들

<킹덤2: 아득한 대지로>는 중국 전국시대를 통일하는 신과 진나라의 여정, 그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다. 전편에서 내란을 수습하고 겨우 왕위를 복권한 국왕 영정이다. 숨 돌릴 틈 없이 국경에서 파발이 당도하니, 인근한 위나라가 군을 일으켜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다. 신에겐 이번이 첫 전쟁, 농민군으로 징발돼 진나라 보병으로 출진한다.

영화는 향후 시리즈의 기본을 이룰 설정을 내보인다. 전쟁을 수행하는 최소 단위가 조직되는 모습을 아래서부터 내보이는 것이다. 주인공인 신은 말단의 농민병, 함께 징발된 다른 이들과 함께 오를 이뤄야 한다. 오는 말 그대로 다섯 명의 병사가 한 조를 이루는 것으로, 진을 이루는 최소한의 단위가 된다. 전란 내내 함께 싸울 오를 이뤄야 하니 덩치가 크고 험악한 이들이 높은 평가를 받을 밖에 없다. 살아남기도 벅차보이는 이들에게 등을 맡기고 전쟁에 뛰어들 어리석은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오엔 오장이 있고, 그 위엔 백인대와 백인장이, 다시 천인대와 천인장이 있다. 그 천인대를 장기 말로 하여 수천부터 수만의 군대가 운용된다. 장군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전체 조직이 움직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의 군대 또한 다르지 않아, 분대부터 소대, 중대, 대대, 연대, 군단에 이르는 조직이 확고한 명령체계를 바탕으로 임무를 수행하지 않던가. 그 원형이 고대 전쟁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가 영화 가운데 생동감 있게 나타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다.

킹덤2: 아득한 대지로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일진일퇴의 전쟁, 규모 있게 그린 액션

침공군 위나라의 총대장은 오경(오자와 유키요시 분), 한때 위나라 최강이라 불린 일곱 명의 장수를 뜻하는 화룡칠사 중 일인이었다. 지장으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그의 공격에 맞서는 진나라 장수는 표공(토요카와 에츠시 분)이다.

국력이 쇠하고 걸출한 장수가 대부분 사라진 진나라에서 몇 안 되는 명장이다. 신은 표공이 이끄는 부대의 보병대로 출진하여 사감평원 드넓은 전장 가운데 위나라 전차부대의 공격을 상대한다.

일진일퇴의 공방, 오경의 지략과 표공의 본능이 맞붙는 전장이다. 사감평원 드넓은 전장에서 두 장수는 수만에 이르는 양쪽 군대를 능란하게 지휘하며 각자의 운명을 불태운다. 전력에서 우세한 위나라 군이 전차대를 동원해 진의 보병대를 섬멸하는 가운데, 표공은 전체 전황을 바꿀 수 있는 불씨가 그 가운데 피어오르고 있음에 주목한다. 틈새가 보이면 놓치지 않는 본능형 장수의 기질로써 직접 선봉에 서 정예 기마대를 거느리고 위나라의 옆구리를 치는 표공의 모습은 전체 전황을 뒤집을 만큼 강렬하다.

킹덤2: 아득한 대지로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이제 겨우 초입, 역대 최장 시리즈 될까

<킹덤2: 아득한 대지로>는 향후 아마도 수십 편이 이어질 시리즈의 본격적인 막을 연다. 앞서 1편이 신과 표, 영정의 서사와 함께 이들이 전쟁에 뛰어들 밖에 없는 이유를 썼다면, 2편은 실제 전쟁의 모습을 내보이고 그곳에서 활약할 이들의 면면을 확인케 한다. 신과 함께 싸운 오와 그 주변의 이들이 첫 전공을 세우는 이야기가 되고, 이 가운데 활약한 강외(세이노 나나 분)와 같이 비현실적 무공을 지닌 인물의 사연 또한 등장한다.

왕과 대신, 장군과 장수들, 신과 같은 말단 병사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수많은 캐릭터를 좀처럼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모두가 하라 야스히사의 원작과 각본이 가진 힘이다. 자칫 난잡해질 수 있는 규모 있는 이야기를 실사화하며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해나간 연출자 사토 신스케의 공이 크다. 이로부터 오늘의 독자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 원작의 실사를 마주할 수 있고, 또 규모 있는 전쟁의 좀처럼 보이지 않는 면을 새삼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저 반전만을 외치며 실재하는 전쟁의 일면을 외면하는 시각으로는 닿을 수 없는 전쟁이야기가 바로 이곳에 있다. 상당한 부분을 판타지로 채우면서도 실제 역사와 전쟁의 성질을 적절히 반영한 작가의 솜씨는 그가 어째서 이와 같은 명작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맞이한 번영한 시대 또한 이와 같은 전란의 시대를 거쳐서 왔고, 그 가운데 엿보이는 인간의 여러 면모는 우리가 사는 세상 가운데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킹덤2: 아득한 대지로>로부터 앞으로 이어질 이 시리즈의 성취를 내다보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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