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분 너무 길지 않아? 원작의 힘 믿은 감독의 자신감
[넘버링 무비 414] 영화 <글래디에이터 2>
▲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01.
"좋은 서사는 여전히 힘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는 글래디에이터 원작이 갖고 있는 서사의 힘이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대가 가진 확고한 계급 체계의 부정(不正)과 이를 뚫고 나아가는 영웅이 가진 명분과 정의다. 전편의 마지막 시점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시점으로, 주인공이었던 막시무스(러셀 크로우 분)와 황제 아우렐리우스 황제(리처드 해리스 분)의 딸인 루실라(코니 닐슨 분)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을 이번 작품의 중심에 놓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두 작품 사이의 연결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설정이자, 혈연의 가치를 통한 인물의 복제. 두 영화는 분명 다르지만, 큰 갈래에서 닮은 모습을 하고 있다.
02.
아프리카에 남겨진 마지막 나라, 누미디아 왕국을 향해 다가오는 로마군의 전함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로마군의 압도적인 화력으로 게르만족을 포위 섬멸했던 전작과 유사한 오프닝이다. 이들을 막으려는 누미디아의 군사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패배하게 되고, 최전선에서 병사를 이끌던 하노(폴 메스칼 분)는 아내 아리샷을 잃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패자에게는 비통한 현실만 남는다. 나라를 잃은 민족은 노예가 되어 로마로 끌려오게 되고, 하노 역시 로마 외곽의 '안티움'의 검투장으로 옮겨져 마크리누스(덴젤 워싱턴 분)의 검투사가 된다.
한편, 로마는 쌍둥이 황제의 광기와 폭정으로 자유를 잃고 기근과 환락에 시들어 가고 있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시민은 황제의 근위대에 의해 억압당한다. 전대 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의 시대에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이에 아프리카 마지막 출정을 마치고 돌아온 아카시우스 장군(페드로 파스칼 분)은 아내인 루실라와 함께 원로원을 등에 업고 콜로세움의 경기 마지막 날 반란을 계획한다. 두 황제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로마의 번영을 다시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는 크게 두 개의 내러티브가 존재한다. 검투사 하노와 (훗날 루시우스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는 인물이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것이다. 두 이야기는 마크리누스의 서사로 인해 영화의 후반부에서 마주하게 된다. 콜로세움 경기의 마지막 날 이루어지는 대결을 통해서다. 전작인 <글래디에이터>에서도 거의 동일한 흐름이 있었다. 아버지 아우렐리우스 황제를 살해한 콤모두스 황태자(호아킨 피닉스 분)와 가족을 잃고 노예 상인에게 납치되어 검투사가 된 막시무스의 서사다. 두 사람 역시 극의 마지막에서 콜로세움에서 만난다. 사사로운 지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분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내부의 문제가 외부의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 정도에 불과하다.
▲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3.
그 중에서도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인물의 분노다. 그 방향성과 역학 관계. 모든 분노가 직접적인 연결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떨어져 있는 분노를 하나의 자리에 맞대어 보면 이는 시대의 계급구조와 그 모양을 함께한다. 아카시우스 장군에 대한 하노의 분노와 쌍둥이 왕에 대한 아카시우스 장군의 분노다. 수직적으로 구성된 이 분노의 연결고리는 형성의 지점에서 서로에게 작용하지 못하지만, 해체와 붕괴의 지점에서 영향을 미친다.
루실라에 의해 하노가 자신과 막시무스의 아들임이 드러나는 순간, 노예 검투사가 로마의 장군에게로, 다시 로마의 장군이 황제에게로 향하던 분노의 수직적 구조도 이때 무너지고 만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분노가 잠시 거두어지고, 하노를 내려다보게 되는 지점이다. 신분의 상승을 꾀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마크리누스의 계략에 의해 모든 반란 계획이 드러나며 무산되고 만다.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루실라의 부탁에 의해 처음의 계획이 지연되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하노가 원했던 아카시우스 장군과의 대결이 콜로세움에서 성사된다. 분노를 가슴에 새기고 있는 자와 저지당한 자의 대결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고, 꺾인 분노는 처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뿐이다. 이제 분노의 수직화는 재편된다. 아카시우스 장군의 것은 하노에게 넘겨지고, 이를 물려받은 인물은 자신의 원래 이름인 루시우스를 받아들인다. 영화적으로 두 황제의 처단을 직접 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로마의 모든 탐욕을 이양받은 마크리누스와의 대결이 성사되는 것에는 그런 의미가 놓인다.
04.
"지옥의 문은 밤낮으로 열려있어 순식간에 타락해 들어서기 쉽다."
그 과정에서 가져갈 수밖에 없는 설정 하나가 로마 외부에서 성장한 핏줄과 관련한 서사다. 정확히 하노가 가진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의 초반부에서부터 영화는 이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전투에서 패배 후, 로마로 끌려오는 수송선에서 나오는 대사인 하노가 사막에서 온 외로운 아이라는 것으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이야기여서다. 이 내용은 늑대의 젖을 먹고 성장했다는 고대 로마의 설화가 담긴, 도시 외곽 구조물의 형상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결국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고국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새 시대의 기수가 된다.
고전적 영웅 서사의 전형적인 형태다. 24년 전의 작품의 속편을 지금 시대에 만들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이 영화는 자신의 단순하고 고전적인 면모를 감출 생각이 조금도 없다. 모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몇몇 지점을 이야기한 것처럼 전작과의 동일성 또한 마찬가지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히려 가장 익숙한 것으로 대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영화의 첫 전투 시퀀스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90년대를 전후로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봐왔던 장르 영화의 전형. 이 영화의 목적은 분명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 영화 <글래디에이터2>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05.
영화 <글래디에이터 2>에는 속편이 가질 수 있는 장단점이 모두 놓여있다. 먼저 전작의 탄탄한 뼈대 위에서 완성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정통성을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의 감동을 주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야기가 독립적이고 복잡하지 않기에 시리즈에 처음 진입하는 관객에게도 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강조되고 있는 고전성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미지수다. 전작과 거의 동일하지만, 150분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 역시 지금의 쇼츠 시대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는 아니다.
올 한 해, 이 작품의 제작비로 알려진 약 3억 달러의 월드와이드 수익을 넘긴 작품은 총 13편에 불과하다. (11월 16일 기준) 25년 만의 속편이었던 팀 버튼 감독의 <비틀쥬스 비틀쥬스>(2024)도 그중 하나. 국내에서는 다소 주춤했으나 북미가 흥행을 이끌며 4억 5천만 달러의 월드와이드 성적을 거뒀다. 이 작품이 마주하게 될 성적이 더욱 궁금해진다. <글래디에이더 2>까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원작 IP의 속편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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