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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내가 동덕여대 남녀공학 전환 반대 시위에 연대하는 이유

등록|2024.11.17 19:05 수정|2024.11.17 19:14
2016년 4월. 대학 새내기였을 때였다. 한 학과 선배의 추천으로 과 학술 연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과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족보 공유가 원활하단 평을 들은지라 가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동아리 원은 20여 명 남짓. 남학생 수가 훨씬 많았다.

선배들은 신입생환영회를 연다며 학교 후문에 위치한 룸 술집 주소를 공유했다. 교수님 면담이 있었던 나는 남들보다 늦게 술집 문을 열었다. 어두침침한 붉은 조명 아래 독한 소주 냄새가 풍기던 5번 방. 그 안엔 남녀 학생들이 양 사이드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묘한 긴장이 어려 있는 여성 동기들의 표정을 살피며 의자 끄트머리에 앉았다.

"19금 버전으로 가자"

▲ 냉장고 속 소주(자료사진). ⓒ unsplash


"자, 니네 왕 게임 알지? 우린 성인들이니까 재미없게 안 해. 19금 버전으로 가자."

누구에게서 배설됐는지 모를 말이 방 안을 울렸고, 한 선배가 흰 쪽지들이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왔다. 그는 한 손으로 통 안을 헤집다 두 장을 집어 올렸다. 나와 3학년 남자 선배가 지목 당했다.

"처음부터 재밌겠는데? 1번은 3번 무릎 위에 앉아서 소주 한 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술 게임이란 명목 하에 낯선 남자와 스킨십을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해야 했다. 나는 신입생이었고 그 곳에서 나를 지켜줄 사람은 없었다. 다른 여학생이 조심스레 괜찮냐고 물었다. 불편한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볼에 뽀뽀하기. 포옹하면서 러브 샷하기. 쇄골에 술 담아 마시기. 폭력적인 상황이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분위기를 깨는 '노잼'이나 '선비'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동아리 회장은 오히려 '스킨십이 너무 약하다'며 더 진한 접촉을 부추겼다.

나는 술에 취해 어지럽다는 핑계를 대고 자정을 넘어서야 그 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기숙사로 향하는 내내 울고 또 울었다. 악몽을 헤매다 구정물에 온몸을 더럽힌 기분이었다.

쏟아지는 제보

다시 한 해가 흘렀다. 3월에 접어들자 신입생들이 대학을 찾았다. 그 맘 때쯤 나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학생들끼리 구성한 교내 성평등위원회에 합류하게 됐다.

우린 학생들에게 학내 성차별에 대한 제보를 받기로 하고 메일함을 열었다. 학교는 단 한 차례도 학내 성 문제 대해 직접 귀를 열거나 발 벗고 나선 적이 없었다. 남녀공학 대학에서 으레 발생할 수 있는 '민망한' 일 따위로 치부했기 때문일까.

"같은 과 남학우들 단톡방을 제보합니다. 여학우들 사진과 실명을 내걸고 외모와 몸매 품평을..."
"과 MT에서 여학우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예쁜 순대로 술을 마시도록 시켜서..."
"선배가 시험 족보를 공유해주는 대신 밤에 술을 같이 마셔달라고..."

▲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여성(자료사진). ⓒ unsplash


일주일에도 몇 건씩 제보가 쏟아졌다. 대부분 1학년 여학생들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꾹꾹 눌러 담은 수치와 분노. 남자 선배의 무릎 위에 앉아 소주를 마셔야 했던 그 날의 내가 읽혔다.

위원장을 맡던 선배는 각 단과 대학 회장에게 성 평등 개선을 촉구했다. 당시 거의 모든 단과 대 회장은 남학생이었는데 우리의 목소리를 듣긴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제보는 1년 내내 그치지 않는 소나기처럼 쏟아졌으니.

우린 한 해 동안 여러 성 평등 활동을 전개해왔다. 단과대별 여자 화장실에 생리대를 비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를 홍보하는 현수막을 제작해 학 내 곳곳에 걸어 놓았다. 여러 남학생들이 '생리대란 부끄러운 단어를 학내에 걸어 놨다', '현수막이 야해서 불편하다' 등의 불만을 제기했다. 생리대가 민망한 건지 또는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 불편한 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가을 들어 열린 학교 축제였다. 부스 간판에 '오빠, 소주가 나보다 맛있어?', '선배~ 오늘 땀 빼고 갈래?' 등 낯 뜨거운 문구가 걸렸다. 문제를 제기하자 축제 날인데 너무 보수적으로 군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당시 부스 간판은 지역 뉴스 기사에도 게시 됐다. '성 감수성이 부족한 요즘 대학생'들을 거세게 비판하는 내용이 실렸다.

늘 이런 식이었다. 성 감수성이 메마른 공간에서 우리의 파동은 파도가 될 수 없었다. 한해가 흐르고 총학생회가 바뀌면서 위원회도 문을 닫아야 했다. 자신들을 지켜 달라는 어린 여학생들의 메일을 마지막으로 읽으며 쓰린 마음을 잡았다. 차가운 함박눈이 내리던 겨울이었다.

8년 후인 지금도

몇 번의 겨울을 더 거쳐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인이 됐고 2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대학가에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학내 성범죄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일어났고 선후배·동기 사이 스토킹과 성폭행, 교제 살인이 잇따랐다. 여자 화장실 벽에 구멍이 뚫렸고 딥페이크 영상들은 얼굴과 실명이 공개된 채 유령처럼 소셜 미디어를 떠돌았다. 여성 혐오가 뿌리가 되어 피해는 가지처럼 무수히 쳐나갔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로부터 8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어린 여학생들을 무릎에 앉혀 술을 마시게 했던 그들은 자라 사회인이 됐고, 그들의 혐오를 보고 자란 이들이 대학생이 됐다. 범죄는 반복됐고 양상은 지독해졌다. 숭고한 학습의 배움터에서 여학생들은 단 한 번도 안전하고 온전한 공간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만일 그날 룸 술집에서 '불쾌하다'며 방을 박차고 나갔더라면. 아니, 학내 성평등위원회 활동을 멈추지 않았더라면. 아니, 대학을 졸업해서라도 여학생들을 위해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작은 어깨 옆에 서서 연대했더라면. 다수가 귀를 열지 않더라도 손을 뻗은 소수를 위해 함께 목소리 냈더라면.

여성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아프지 않아도 괜찮았을까. 이렇게 힘겨운 나날을 보내지 않았어도 괜찮았을까. 미안해, 언니로서 미안해. 그 공간의 문을 열고 나왔다는 이유로 방안의 어둠을 잊고 살았어. 그 어둠을 끝까지 밝히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남녀공학' 이란 공간이 가진 문제가 문화로 고착화된 게 문제

동덕여대 과잠 시위동덕여대 과잠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 https://x.com/shipdo11


혐오와 차별. 주류가 돼버린 문화 속에서 여학생들은 끊임없이 목소리내고 싸우며 자신을 지켜내야 했다. 학업에 매진해야 할 그녀들을 끝없는 투쟁 속에 몰아넣은 건 결국 그 문화를 허물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던 우리 어른들이다.

여성 혐오가 여전한 사회에 살아가면서 '예전보단 평등해졌어'란 말로 남아있던 차별을 무마하고, 다음 세대가 해결할 거라 무책임하게 손을 떼버린.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다.

평범한 남녀공학 대학을 졸업하고 30대를 바라보는 내가.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시위를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거나 카카오톡 단체방에 공유하며 역동적이진 않지만 조용한 연대를 보내는 이유다.

적어도 그들에겐 성차별을 고발하는 메일을 쓰게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겪었던 일들이 그들에게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대학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여성들의 공간과 그 공간이 뜻한 의미를 언제까지고 지켜주고 싶다. 이번 시위가 비단 여대에 대한 논의에서 멈추지 않고 대학 내 벌어지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고찰과 개선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우리의
'다시 만난 세계' 2013년 소녀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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