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 수염풍뎅이, 맹꽁이에게 21번 절 한 까닭
[환경새뜸] 보철거시민행동, 16일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기념 문화제' 열어... 다양한 퍼포먼스·공연
▲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문화제 때 찍은 기념사진 ⓒ 이경호
"왕버들, 수염풍뎅이, 맹꽁이, 수달, 흰목물떼새, 꼬마물떼새, 알락꼬리마도요, 멧새, 까치검은등 할미새, 황조롱이를 위해 1배를 올리겠습니다."
맑은 가을하늘 아래 200여 종의 야생생물들이 호명됐다.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보철거시민행동)이 지난 4월 30일, 세종보 상류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뒤 이곳에서 동거하고 있다는 것을 육안으로 확인한 생물들의 이름이었다. 힘차게 흐르는 금강변 자갈밭에 선 시민들은 지난 16일,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의 안내에 따라 21배를 했다.
천막농성 200일 문화제, 70여명 참석해 다채로운 문화행사
▲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기념 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 ⓒ 김병기
▲ 세종보천막농성 200일 기념 문화제 행사 스케치 ⓒ 이경호
이날 보철거시민행동이 주최한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기념 문화제'에는 7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환경단체 활동가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도 많았다. 이날 행사는 세종손글씨연구소의 붓글씨 퍼포먼스와 편경렬·임도훈 가수의 축하공연,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 생명의 솟대와 만장 설치, 떡나눔 등으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사회자인 박은영 보철거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대전충남녹색연합 사무처장)은 "200일이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간 동안 세종보 가동을 막아서 금강이 흐를 수 있도록 지켜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면서 "여기 오신 여러분뿐만 아니라, 이곳을 다녀가거나 마음을 보태주신 많은 분들 덕분이고, 그 힘으로 계속해서 이곳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편경렬 목사(성서대전 운영위원)의 공연이 시작됐다. 편 목사는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맑고 향기롭게'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을 불러 흥을 돋웠다. 시민들은 어깨를 흔들고 박수를 치면서 앵콜송을 요청했다. 편 목사는 자작곡인 '나의 소리'로 화답을 했다.
이정임 대전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은 "200일을 축하한다고 얘기를 해야 되나, 잘 지켜왔다고 얘기를 해야 되나, 앞으로 더 험난한 길을 같이 손잡고 가자는 얘기를 해야 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날"이라면서도 "많은 분들이 함께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처럼 뚜벅뚜벅 걷다보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격려했다.
문성호 보철거시민행동 공동대표(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오늘 새벽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있다"면서 핸드폰을 보면서 읽어 내려갔다.
"이웃들과 둘레둘레 앉아서 꿈같은 이야기가 흐르는 금강에 풀어 흰수마자도, 미호종개에게도, 수라 갯벌의 흰발농게에게도, 낙동강 팔현습지 부엉이 부부에게도, 낙동강 끝자락 가덕도 상괭이에게도 200일 문화제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 (중략) 제가 늘 하는 얘기인데 지금 수많은 우리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4대강 중 유일하게 흐르고 있는 금강을 온전하게 지키겠습니다."
"강물은 길을 잃지 않는다"... 김성장 소장 붓글씨 퍼포먼스
▲ 김성장 소장이 붓글씨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이경호
▲ 16일 열린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문화제에서 진행된 붓글씨 퍼포먼스 작품 ⓒ 이경호
▲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문화제 때 걸린 만장 ⓒ 이경호
이어 세종 손글씨연구소의 김성장 소장이 제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손글씨 퍼포먼스가 열렸다. 이날 모인 시민들과 함께 보철거시민행동에 전달하는 만장과 현수막 10여 장을 만드는 공동 작업이다. 제자들이 글씨를 쓰고 시민들은 붓글씨를 쓰는 천이 날리지 않도록 양옆에서 거들었다.
마지막 퍼포먼스는 김성장 소장이 장식했다. 그는 커다란 붓 끝에 힘을 주어가면서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었다.
"강물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낮게 낮게 바닥을 기어서 바다에 이른다"
김 소장은 퍼포먼스를 마친 뒤 "신영복 선생의 글씨를 연구하고 회원들과 함께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충청북도 옥천군 울목강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동안에 쓴 시와 글의 대부분이 강에 대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곳도 모래가 덮여있었던 곳이었을 텐데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2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강바닥의 모래를 죄다 파서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를 지으면서 세상을 뒤집어놓았다"면서 "하지만 어릴 때 보았던 강은 제 마음속에 지금도 출렁이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정의, 자유, 평등을 위해 애쓰는 분을 위해 글씨라는 작은 도구로 목소리를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에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은 "오는 12월 6~7일에 설악산, 지리산, 제주도, 가덕도, 새만금, 4대강에서 천막을 치고 망루를 세우고 깃발을 들어 생태 학살을 막고자 힘써 온 활동가들이 모여서 지킴이 대회를 열고 환경부와 국토부 앞에서 생명 위령제를 진행한다"면서 "오늘 만든 이 만장은 이날 위령제의 맨 앞에 세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 솟대 세우기
▲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 행사를 하는 시민들 ⓒ 김병기
▲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문화제 때 솟대를 설치한 뒤 찍은 기념사진 ⓒ 김병기
다음 행사는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였다. 이경호 보철거시민행동 집행위원(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진행했다. 세종보 농성장에서 200일 동안 농성을 하면서 육안으로 확인한 200종의 야생동물들을 10여종씩 호명하면서 이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한배 씩 절을 올리는 행사였다.
이 위원은 "그동안 이곳을 지키면서, 우리가 200종의 생명을 지켜준 게 아니라, 반대로 그 생물들이 우리를 지켜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땅의 기운도 받으시고 강바람을 맘껏 느끼면서 성령의 소리를 들으며 힘차게 흐르는 금강을 향해 절을 올리도록 하겠다"고 안내했다.
이들은 마지막 1배는 200종의 생명을 품어준 금강에게 올렸다.
이날 마지막 행사는 '밴드 프리버드'의 메인 보컬이기도 한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이 장식했다. 임 실장은 노래 '당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불렀다. 마지막 앵콜곡은 엄보컬과 김선수가 작사작곡한 '흘러라 강물아'였다. 세종보 천막농성장에서 자주 불려진 노래이다. 임 실장이 이 곡을 부를 때에는 많은 시민들도 따라 불렀다.
▲ 임도훈 보철거시민행동 상황실장의 노래 공연 ⓒ 이경호
임 실장은 이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렇게 보여도 서울사람입니다(웃음). 엊그제 서울에서 친구 2명이 내려왔어요. 여기서 난로를 피웠고, 그 위에 고구마를 얹었습니다. 쥐포도 구웠고 쌍화차도 탔습니다. 그 친구들이 헤어지면서 '진짜 놀랍다, 200일 동안 강에 천막을 쳐놓고 언제까지 해야 할지를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는데, 너무 명랑하고 행복해 보였다'고 말하더라고요. 이게 바로 저희가 200일을 버틴 비결이고 힘입니다. 그러니 겨울이 온다고, 추울 때는 잠깐 천막을 걷고 쉬자는 이야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이날 행사는 김성장 소장이 쓴 현수막 붓글씨를 앞에 세우고 기념촬영을 한 뒤, 천막농성 옆에 솟대를 세우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보철거시민행동은 천막농성 200일째 되는 날인 지난 14일 성명 낸 성명을 통해 "지난 2023년 11월, 윤석열 정부가 4대강 정신을 계승한다면서 2024년 5월을 목표로 세종보 재가동을 추진했지만, 그 계획은 아직도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200일, 300일을 각오한 우리는 보 재가동 추진이 중단되고, 보 처리방안 취소와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이 정책적 재검토에 들어갈 때까지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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