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의열, 의열사의 존재
[김삼웅의 인물열전 - 자주독립 의열사 열전 1] 일제강점기 수많은 선열이 민족을 위해 몸을 던졌다
▲ 이봉창 동상 ⓒ 김현자
안보·외교·경제·정치·의료·검찰·사법·방송 등 어느 한 분야도 멀쩡한 곳이 없다. 국가기강이 무너지고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속물들이 주요기관의 수장이 되어 나라를 위기로 내몬다.
공동체의 준거인 '공정과 상식'이 사병화된 검객들의 칼날에 난도질당하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은 친일·반민주 뉴라이트 호위무사들에 의해 짓밟힌다. 국민의 피땀으로 어렵살이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는가 싶더니 한 순간 와르르 무너져가는 형국이다.
국가(나라)라는 공동체는 공유하는 사상(정신)이 있음으로 하여 유지 발전한다. 우리의 경우 1895년 일본군 수비대와 낭인들이 범궐하여 민비를 살해한 을미사변으로부터 해방까지 50여 년의 항일독립운동과 1945년 해방에서 지금까지 80여 년의 민주화운동이다. 덧붙여 민족에는 자주가, 민주에는 공화의 가치와 명제가 함께한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선열이 민족을 위해 몸을 던졌다. 이분들을 의열사(義烈士)라 부른다. 자진·절식·음독, 그리고 왜적에 의해 사형·고문·암살·납치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독재정권과 부패권력에 맞서 많은 민주인사들이 민주제단에 몸을 바쳤다. 민주열사·노동열사·통일열사라 호칭한다. 이분들 역시 분신·단식·자결·투신·사법살인·행불·고문 등으로 생명을 잃었다.
한말 의병대장 유인석(1842~1915)은 민족수난기에 선비들의 처신의 규범으로 '처변삼사(處變三事)'를 제시하였다. 의병을 일으켜 일제를 축출하는 거의소청(擧義掃淸), 해외로 망명하여 대의를 지키는 거지수구(去之守舊), 의리를 간직한 채 치명(致命)하는 자정수지(自靖遂志)의 세 가지 행동 방안이다. 풀이하면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우거나, 여의치 않으면 해외로 나가 독립운동을 하거나. 이 역시 어려우면 왜적에 옥죄어 살지 말고 스스로 자진하라는 뜻이다.
일제의 침략으로 국망의 위기에 처한 조선(대한제국)의 지식인들은 민족의식(민족주의)이 충만해 있었다. 흔히 민족주의는 같은 종족, 같은 언어, 같은 문자, 같은 습속의 사람들이 일정 지역을 점거하여 서로 동포·동족으로 여겨 함께 독립과 자치를 통해 공익을 도모하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내는 주의·사상으로 정리되었다.
▲ 윤봉길 의거와 이봉창 의거 ⓒ 김현자
일제침략 시기와 강점기에 민족주의는 독립운동의 최고의 동력(動力)이었다. 이런 현상은 해방 이후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고, 6.25전란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근래 남북에서 차이는 보이지만 파시즘이 자리하면서 민족주의가 크게 상처를 입고 있지만 '민족'의 원형질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반드시 회복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민족주의는 '오래된 미래'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은 왕조시대 이래 충의로운 인사들을 높이 기려왔다. 고려 말의 정몽주, 조선 초 수양대군의 쿠데타에 맞선 사육신, 청국의 칼날에도 굴하지 않은 삼학사, 왜적의 물 한 잔도 마시지 않겠다는 면암 최익현으로 이어진다. 역사에는 '정의로운 도적'이라는 의적의 존재도 평가받는다. 홍길동·임꺽정이 대표적이다.
왜적의 침입으로 정부가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 그러니까 임진·정유왜란 때 일어난 의병, 한말 국망지추에 봉기한 의병이 있다. 박은식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이란 민군이다. 국가가 위급할 때 즉각 의로써 분기하여 조정의 징발령을 기다리지 않고 적개(敵愾)하는 자"를 일컫는다.
근세에 들어 왜적의 침입이 잦고 결국은 국망에 이르게 되었다. 이 과정에 스스로 의병에 나서거나 해외망명 또는 자진순국하는 의열사가 많았다. '의열(義烈)'이란 말은 천추의열 (千秋義烈)에서 유래한다.
"천추에 빛날 충의로 열렬하게 행동한 인물"을 지칭한다. '유방백세(遺芳百世)'라는 말도 있다.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오래도록 전한다."는 뜻이다.
국치와 국망기에 이분들의 존재로 하여 민족혼이 이어지고 민족주의 사상이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20년 2월 민족독립의 전쟁전략을 수립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작탄투쟁이다. 전담 행동대에 의한 적의 두목과 기관에 대한 암살·파괴를 포함하여 일제 요인 및 촉수 섬멸과 반민족 분자의 응징이 목표였다.
임시정부는 '7가살(七可殺)'을 기관지 <독립신문>의 사설로서 천명하였다. 7가살이란 '죽여도 되는 일곱 부류'를 말하는데,유형별로는 ①적괴 ②매국적 ③창귀 ④친일부호 ⑤반성 없는 관공리 ⑥불량배 ⑦모반자 등이다. '7가살'은 의열단에서도 채택하였다.
▲ 애국 지사들의 위패를 모신 의열사 ⓒ 김현자
'7가살'의 원문을 소개한다.
7가살
우리의 적이 누구누구이뇨. 전시의 적에게는 사형이 있을 뿐이라. 과거 일년 간 우리는 저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나니, 일년의 기간은 저들에게 과분한 은전이니라. 이미 은전의 기간이 다하였도다.
동포여, 용감한 애국자여, 주저할 것 없이 죽일 자는 죽이고 태울 자는 태울지어다. 저들은 양심이 없는 금수이니, 금수의 흉악한 자에게는 죽음밖에 줄 것이 없나니라. 생명을 죽임이 어찌 본의리오. 저 금수 같은 한놈으로 인하여 국가가 큰 해를 입는다 할진대 아니 죽이고 어찌하리오. 이제 우리의 가살의 적을 헤어보자
이러한 난폭한 행동을 취하지 말기를 극력 동포에게 권유하였거니와, 적의 횡포가 이에 이름에 우리는 더 참을 수 없도다. 아아 우리로 하여금 이런 말 이런 행동을 하게 함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뇨.
내 몇 번이나 적의 개오를 권하고 동포 중의 역적의 반성을 구하였던고.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지성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하는 충언을 무시하였도다. 이제 네가 받기에 합당한 것은 오직 죽음뿐이니라. (주석 1)
주석
1> <독립신문>, 1920년 2월 15일.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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