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피아노, 이젠 놓아주려 합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883] 221회 독립영화 쇼케이스 <어텀노트>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억한다. 1986년 태어난 내가 88 서울 올림픽을 기억하듯, 이제는 많은 이들이 교과서며 자료화면에나 나오는 옛 이야기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리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박동의 순간을 겪은 나는 2002년 여름을 끝내 잊지 못할 것이다. 그 해 여름, 나는 정말이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간절하다면,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면, 어떤 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2002년 월드컵은 카드섹션으로도 유명했다. 개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과 치른 준결승전 때였다. 한국 남자 국가대표팀이 치른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을 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에 앞서 객석을 가득 채운 붉은악마들은 미리 준비된 카드를 머리 위로 집어들었다. 드러난 문구는 '꿈★은 / 이루어진다'. 그러한가. 꿈은 이루어지는가.
그러나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꿈★은 / 이루어졌다'가 아닌 '꿈★은 / 이루어진다'를 쓴 건 한국의 여정이 4강에서 그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일 테다. 그러나 이 경기는 막강한 독일 대표팀에게 시종 막히다가 당대 최고 미드필더 미하엘 발락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패한다. 그리고 발락은 한국전에서 옐로카드 한 장을 받으며 결승전 출전이 좌절된다. 팀의 핵을 잃은 독일은 결승전에서 브라질을 만나 여지없이 침몰한다. 말하자면 그날 피치 위에 선 누구도 그날 품은 꿈을 이루진 못했다.
꿈★은 이루어지는가
지난 삶으로부터 내가 배운 건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단 사실이다. 노력은 배신하고, 꿈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보통에 가깝다. 꿈은 지극히 이례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드높고 빛나는 꿈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삶에선 꿈꾸는 것만큼이나 꿈을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꿈이 부러져 다른 귀한 무엇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적절한 때 적절히 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생을 굴려온 꿈은, 그것이 간절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더는 꿈꾸지 말라고,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수인(박세재 분)은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이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단 건 특별한 표현이다. 대개는 피아노를 치거나 피아노를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인이 피아노를 치지 않는 건 어깨가 나간 어느 야구 유망주 출신이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거나, 성대결절에 이른 가수지망생 출신이 노래방조차 가지 않는 일과 비슷하다. 피아노와 얽힌 결코 좋지 않은 기억들이 그녀로 하여금 피아노를 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수인에게 피아노는 떼놓을 수 없는 악기다. 당장 그녀가 하는 일이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피아노를 대하며 스스로가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 유쾌할 수 없다. 그 우울한 감상이 가을 이파리 물들 듯 수인에서 영화를 보는 이에게 번져간다.
수인에게 피아노를 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대학교에서 수인을 지도한 교수가 신인연주회에 올라 달라 부탁한 것이다. 거절키 어려운 제안이다. 수인은 연주회를 준비한다. 다시 피아노를 치기로 한다.
<어텀 노트>는 잔잔한 영화다. 조금 달리 말하면 지루하다 해도 좋겠다. 통상 영화에 기대하는 극적인 사건, 서사가 진행된다 할 만한 드라마가 없다. 보고만 있어도 우울함이 묻어나는 수인이 일상을 나는 과정이 그저 흘러가듯 화면 위로 지나쳐갈 뿐이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나는 여자, 고모, 애인과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마저도 특별히 힘이 되는 건 아니다. 수인 자체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주변인들도 제 삶에 바빠서인지 수인에게 큰 관심은 없다. 그나마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기회를 줘도 수인이 들을 만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연주회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 피아노를 쳐야 할 일이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결정
왜 연주회를 하기로 했느냐, 또 언제 하느냐고 먼저 묻지 않아 서운하게 했던 남자친구는 결국 연주회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수인이 강하게 청하지 않았을 테고, 무심한 그는 꼭 가야겠단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다.
졸업연주회가 여러모로 아쉬웠다며 수인이 본인 마음에도 들지 않았을 거란 아버지는 연주회장에 왔을까. 아마도 오지 않은 것 같지만 참석여부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뿐인가. 아예 연주회 장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드레스를 차려입고 연주회장 바깥을 걷는 수인의 모습을 짧게 잡아내는 게 전부다.
졸업연주회를 끝으로 수인은 피아노를 떠나보내려 한다. 피아노를 보내려 하면서도 조율사를 불러 조율을 맡기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영화의 끝에서 가만히 피아노를 내려다보는 수인의 모습으로부터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이 일기를 기대했을까.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속을 터주지 않는 수인의 외로움이 끝내는 풀렸을까. 여러모로 부족한 이 영화만으론 알 수가 없는 일이다.
<어텀 노트>는 차라리 관계맺음을 힘겨워하는 어떤 이들에 대한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영화 가운데 수인이 가장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건 손목 터널증후군으로 찾은 병원 물리치료실에서다. 사람들에게 말 붙이고 이야기하길 즐긴다는 물리치료사의 압도적 역량으로 수인은 그녀와 이런저런 말을 나눈다. 이 장면이 아버지와 애인, 친구들과 나눈 시시껄렁한 대화보다도 훨씬 더 깊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외로움을 털 길 없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대화가 주는 편안함이 어떤 것일까. 약간의 배려와 섬세한 보살핌까지 받아가니 수인에겐 며칠, 아니 몇 주의 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낯선 이와 대화하길 즐기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 또 가까운 이와도 속깊은 이야기를 편히 나누지 못하는 투박한 이들에겐 절망적인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서로의 마음을 적합한 방식으로 전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를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일까. 물리치료사와의 짧은 만남이 사실상 동거를 하는 애인이나 자신을 낳은 부모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보다 값지다면 말이다. 그런 일상은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세상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72분에 이르는 장편이지만 <어텀 노트>가 수인의 삶 가운데 주요한 순간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평가하진 못하겠다. 아버지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이귀우가 221회 독립영화쇼케이스 자리에서 "처음 봤을 때도, 두 번째 봤을 때도, 오늘까지도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은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영화가 표현의 예술이라면 <어텀 노트>의 캐릭터며 서사는 모호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난 뒤 잔상이 있는 영화다. 어쩌면 언어로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의미 너머에 감성에 일어난 물결이 더욱 의미 깊은 작품도 있는 것이다. <어텀 노트> 속 외로운 수인은 곁의 누구로부터도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많은 걸 걸었을 피아노를 접기로 결심한다. 그저 결심에 그치지 않고 부러지기 직전인 제 꿈을 스스로 갈무리하려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안다. 꿈을 품고, 그를 잃어 본 누구나 그를 알고 있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이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게 사실이지만, 홀로 외로이 꿈을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쩌면 세상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2002년 월드컵은 카드섹션으로도 유명했다. 개중 가장 유명한 것은 독일과 치른 준결승전 때였다. 한국 남자 국가대표팀이 치른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기가 바로 이것이었을 테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경기에 앞서 객석을 가득 채운 붉은악마들은 미리 준비된 카드를 머리 위로 집어들었다. 드러난 문구는 '꿈★은 / 이루어진다'. 그러한가. 꿈은 이루어지는가.
꿈★은 이루어지는가
▲ 어텀노트스틸컷 ⓒ 한국독립영화협회
지난 삶으로부터 내가 배운 건 꿈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단 사실이다. 노력은 배신하고, 꿈은 이뤄지지 않는 것이 차라리 보통에 가깝다. 꿈은 지극히 이례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드높고 빛나는 꿈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리하여 삶에선 꿈꾸는 것만큼이나 꿈을 갈무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꿈이 부러져 다른 귀한 무엇에 생채기를 내지 않도록, 적절한 때 적절히 갈무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일생을 굴려온 꿈은, 그것이 간절할수록 되돌리기 어려운 일이다. 더는 꿈꾸지 말라고, 여기까지라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수인(박세재 분)은 피아노를 치지 않는 이다. 피아노를 치지 않는단 건 특별한 표현이다. 대개는 피아노를 치거나 피아노를 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인이 피아노를 치지 않는 건 어깨가 나간 어느 야구 유망주 출신이 다시는 야구를 보지 않는다거나, 성대결절에 이른 가수지망생 출신이 노래방조차 가지 않는 일과 비슷하다. 피아노와 얽힌 결코 좋지 않은 기억들이 그녀로 하여금 피아노를 치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수인에게 피아노는 떼놓을 수 없는 악기다. 당장 그녀가 하는 일이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피아노를 대하며 스스로가 피아노를 더는 치지 않으려 한다는 걸 깨닫는 일이 유쾌할 수 없다. 그 우울한 감상이 가을 이파리 물들 듯 수인에서 영화를 보는 이에게 번져간다.
수인에게 피아노를 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대학교에서 수인을 지도한 교수가 신인연주회에 올라 달라 부탁한 것이다. 거절키 어려운 제안이다. 수인은 연주회를 준비한다. 다시 피아노를 치기로 한다.
<어텀 노트>는 잔잔한 영화다. 조금 달리 말하면 지루하다 해도 좋겠다. 통상 영화에 기대하는 극적인 사건, 서사가 진행된다 할 만한 드라마가 없다. 보고만 있어도 우울함이 묻어나는 수인이 일상을 나는 과정이 그저 흘러가듯 화면 위로 지나쳐갈 뿐이다.
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나는 여자, 고모, 애인과 친구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다. 그마저도 특별히 힘이 되는 건 아니다. 수인 자체가 속을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하지만, 주변인들도 제 삶에 바빠서인지 수인에게 큰 관심은 없다. 그나마 네 이야기를 해보라고 기회를 줘도 수인이 들을 만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연주회 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 어쨌든 약속은 약속, 피아노를 쳐야 할 일이다.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결정
왜 연주회를 하기로 했느냐, 또 언제 하느냐고 먼저 묻지 않아 서운하게 했던 남자친구는 결국 연주회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수인이 강하게 청하지 않았을 테고, 무심한 그는 꼭 가야겠단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다.
졸업연주회가 여러모로 아쉬웠다며 수인이 본인 마음에도 들지 않았을 거란 아버지는 연주회장에 왔을까. 아마도 오지 않은 것 같지만 참석여부를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뿐인가. 아예 연주회 장면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드레스를 차려입고 연주회장 바깥을 걷는 수인의 모습을 짧게 잡아내는 게 전부다.
졸업연주회를 끝으로 수인은 피아노를 떠나보내려 한다. 피아노를 보내려 하면서도 조율사를 불러 조율을 맡기는 그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영화의 끝에서 가만히 피아노를 내려다보는 수인의 모습으로부터 감독은 관객에게 어떤 감정이 일기를 기대했을까.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스스로도 속을 터주지 않는 수인의 외로움이 끝내는 풀렸을까. 여러모로 부족한 이 영화만으론 알 수가 없는 일이다.
▲ 어텀노트포스터 ⓒ 한국독립영화협회
<어텀 노트>는 차라리 관계맺음을 힘겨워하는 어떤 이들에 대한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영화 가운데 수인이 가장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건 손목 터널증후군으로 찾은 병원 물리치료실에서다. 사람들에게 말 붙이고 이야기하길 즐긴다는 물리치료사의 압도적 역량으로 수인은 그녀와 이런저런 말을 나눈다. 이 장면이 아버지와 애인, 친구들과 나눈 시시껄렁한 대화보다도 훨씬 더 깊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외로움을 털 길 없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대화가 주는 편안함이 어떤 것일까. 약간의 배려와 섬세한 보살핌까지 받아가니 수인에겐 며칠, 아니 몇 주의 힘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낯선 이와 대화하길 즐기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 또 가까운 이와도 속깊은 이야기를 편히 나누지 못하는 투박한 이들에겐 절망적인 이야기처럼도 보인다. 서로의 마음을 적합한 방식으로 전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를 더욱 외롭게 하는 것일까. 물리치료사와의 짧은 만남이 사실상 동거를 하는 애인이나 자신을 낳은 부모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보다 값지다면 말이다. 그런 일상은 얼마나 외로운 것인가.
세상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72분에 이르는 장편이지만 <어텀 노트>가 수인의 삶 가운데 주요한 순간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평가하진 못하겠다. 아버지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이귀우가 221회 독립영화쇼케이스 자리에서 "처음 봤을 때도, 두 번째 봤을 때도, 오늘까지도 수인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은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영화가 표현의 예술이라면 <어텀 노트>의 캐릭터며 서사는 모호하기 짝이 없으니까.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난 뒤 잔상이 있는 영화다. 어쩌면 언어로 명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의미 너머에 감성에 일어난 물결이 더욱 의미 깊은 작품도 있는 것이다. <어텀 노트> 속 외로운 수인은 곁의 누구로부터도 조력을 받지 못한 채 스스로 많은 걸 걸었을 피아노를 접기로 결심한다. 그저 결심에 그치지 않고 부러지기 직전인 제 꿈을 스스로 갈무리하려 한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안다. 꿈을 품고, 그를 잃어 본 누구나 그를 알고 있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이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게 사실이지만, 홀로 외로이 꿈을 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떠한 응원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쩌면 세상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 어텀노트221회 독립영화쇼케이스 현장에서 이보라 영화평론가와 감독, 배우들이 대화하는 모습. ⓒ 한국독립영화협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