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연, 유이, 박주현, 설인아 완주 엔딩, 나도 엉엉 울었다
철인3종 경기 4개월의 도전, tvN <무쇠소녀단>이 가르쳐 준 것
나는 마흔세 살에야 자전거를 배웠다. 자전거를 탈 수는 있게 되었지만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정도는 아니다. 장애물이 없는 넓은 공원에서나 간신히 타는 정도의 수준이다. 수영은 2년 정도 배웠다. 이쯤 되면 고급반에서도 접영으로 왕복 몇 번은 해야 할 실력이어야 하지만 영 진급하질 못했다. 오죽하면 수영 강사는 '너처럼 수영을 오래 배우고도 못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달리기는... 그냥 싫다. 달리기가 너무 싫어서 달리기가 좋다고 외치는 사람들마저 싫어할 지경이다.
그런데도 꾸준히 운동은 한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살을 빼려고 마지못해 꾸역꾸역. 그런 나에게 tvN <무쇠소녀단>이 왔다. 처음엔 그저 하기 싫은 운동할 때 동기부여삼아 볼까 싶었지만 그 이상의 깊은 감동과 희망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누구나 자신만의 짐이 있다
운동은 못하면서도 운동에 관심이 있는 걸 유튜브 알고리즘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러닝머신 위에서 처음 접한 <무쇠소녀단>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유이였다. 수영선수 출신답게 기본 체력테스트 때부터 남달랐다. 그러더니 생전 처음 해본다는 5km 달리기도 너무 수월하게 해낸다. 역시 운동 DNA는 따로 있구나. 수영도, 달리기도 척척 잘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기가 죽었다.
어라?! 그런 유이가 자전거는 못 탄다! 차가운 바다 속을 인어처럼 유영하고, 긴 다리로 트랙을 겅중겅중 달리던 유이가 자전거 안장에만 앉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긴장해서 바짝 언 채로 동그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코치의 지시에 어린 아이마냥 '네!' 대답하는 유이를 보면서 왜일까. 나는 묘한 안도를 느꼈다.
설인아는 달리기가 싫다. 수영도 기본 이상의 실력인 데다 사이클을 탈 때는 선수처럼 멋진 폼을 자랑하며 속도를 내는 덕에 '운동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놓고도 첫 5km 달리기를 할 때 '달리기 싫어, 달리기 정말 싫어'를 무슨 주문처럼 외우는 모습에서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났다.
맏언니 진서연은 어떤가. 연기자로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왔지만, 수영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물공포증이 있어 '음파'도 하지 못하는데 4개월 만에 바다 수영을 하겠다고? 수영을 2년 배워도 바다 수영은 엄두도 못내는 내 입장에서는, 이건 진서연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진의 섭외가 잘못 되었다고 여길 지경이었다. 그때까지 몰랐다. 노력하는 인간에게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를.
나날이 실력이 달라지는 <무쇠소녀단>을 러닝머신 위에서 보고 있으면 덩달아 힘이 났다. 10분만 더 하자. 1분만 더 달려보자. 속도를 조금만 높여보자.
그동안은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던 <무쇠소녀단>의 마지막 회만큼은 본방사수를 해야 했다는 결심으로 오랜만에 TV 앞에 앉았다. 철인 3종 경기 실전은 수없이 했던 연습과는 또 달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 훈련을 해왔지만 자꾸 터지는 돌발 상황에 멤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짧은 방송시간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 아니 4개월이라는 시간.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을까.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다른 어떤 소리도 없이 자막으로만 해설이 더해져 그들의 레이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결국, 맏언니 진서연의 예언처럼 엔딩은 완주였다. '도전'과 '완주' 라는 두 단어 사이에 프로그램 소제목 그대로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이 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노력과 고비와 숱한 자신과의 싸움을 <무쇠소녀단>은 성장으로서 보여줬다. 마지막 주자까지 끝끝내 시간 안에 완주하고 네 명의 선수는 부둥켜안고 마치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는 순간이었다.
그저 운동 동기부여 좀 하려고 보다가 반해버린 <무쇠소녀단>의 마지막회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엉엉 울었다. 저마다의 취약점을 갖고도 도전한다는 것은 체력, 그 이상의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늘 입버릇처럼 "엔딩은 정해져 있어"라고 외치던 진서연은 알고 보니 사실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낯선 시민들과도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며 밝게만 보였던 막내 박주현은 자신이 제일 부족하다는 생각에 남몰래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수영 에이스 유이도,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설인아도 자기만의 짐을 지고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완주가 이토록 감동적인 것은 모두가 그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넘어지는 순간은 온다
유이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첫 종목인 수영을 마치고 자전거에 오른다. 아직 핸들을 한 손으로 잡지 못해서 자전거에서 물을 마실 수 없으니 타는 듯한 갈증을 그저 참으며 마침내 반환점을 맞이한다. 그 순간, 여전히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아 그만 크게 넘어지고 만다. 경기복의 양 무릎이 찢어지고, 팔꿈치까지 까져서 피가 나는데, 유이가 웃는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 번 넘어졌는데 두 번 넘어지겠어?"
유이의 그 말에 왈칵 눈물이 터졌다. 몇 달 전, 나는 인생에서 한번 대차게 넘어졌다. 5년간 일했던 프로그램에서 자의 반, 타의 반 하차하게 된 것이다. 방송을 만들면서 그 어떤 고비도, 그 어떤 스트레스도 참았지만 역시일 자체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었다.
개국 멤버로 시작해서 '아무도 몰랐던 방송'을 꽤 이름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기까지 애정과 노력을 쏟았다. 그렇게 나의 5년이 깃든 방송을 책임피디가 바뀌고 겨우 석 달 만에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자체만으로 힘들었지만 후폭풍은 뒤늦게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21년 동안 방송작가를 하며 오직 글쓰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로 살았는데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 나의 자랑이었던 경력이 오히려 짐이 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몇 달 째 계속 넘어진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이가 자신이 가장 빛나는 곳이었던 바다에서 나와 자전거에 올라야 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 역시 나의 무대를 떠나야 할 순간이 온 건지도 모른다. 잘 하는 것만 계속 하면 좋으련만 철인 3종 경기가 펼쳐지는 51.5km보다 더 긴 것이 인생이 아닌가. 자전거가 무섭다고 언제까지나 바다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넘어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동안은 유튜브로 <무쇠소녀단>을 접하다 보니 댓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멤버들을 응원하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댓글도 많았다.
폼이 너무 안 좋다느니, 4개월을 배웠는데 저 정도밖에 못하냐느니, 이 상태면 100% 컷오프 당한다느니 이런 댓글을 보면서는 기가 막혔다. 당신은 수영을 얼마나 잘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설령 선수급으로 잘한다 해도 그런 태도는 문제다. 나에게 쉽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남이 쉽게 한다고 나에게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누군가는 죽도록 해야만 겨우 평균에 다다를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다.
지난 20년 간 내 소원 중 하나는 전업주부였다.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하고 아이템을 생각하는 방송작가로 살다보니 '전업주부의 삶은 어떨까?'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시간이 넘쳐나서 살림을 잘할 줄로만 알았다. 이 기회를 통해 모든 전업주부들에게 깊은 사과와 존경을 전한다. 살림을 놓고 살 때는 몰랐다. 살림이 이렇게 몸과 머리를 써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도전했다. 20년간 방송을 만들 때는 몰랐다. 늘 카메라 뒤에만 서 있던 방송작가에서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 되니 이게 이렇게 떨릴 일인가 싶다. 그동안 방송에 출연해주신 분들이 새삼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고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구독자 수 한 명 한 명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꽤나 해로운 일이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이 일을 꾸준히 해왔음을 생각하니 세상 모든 유튜버가 존경스러워졌다.
넘어져봐서 다행이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할 줄 아는 건 글쓰기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넘어졌으니 되었다. 두 번 넘어지지 않으라는 법은 없는 게 인생이지만 겁이 덜 나는 것은 사실이다. <무쇠소녀단>의 엔딩은 정해져 있지만 나의 인생은 여기가 끝이 아니니, 이제 더 이상 넘어졌다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저마다 하나씩 아킬레스건을 가졌음에도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고 마침내 완주한 <무쇠소녀단>을 보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고마워요, <무쇠소녀단>!
그런데도 꾸준히 운동은 한다.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살을 빼려고 마지못해 꾸역꾸역. 그런 나에게 tvN <무쇠소녀단>이 왔다. 처음엔 그저 하기 싫은 운동할 때 동기부여삼아 볼까 싶었지만 그 이상의 깊은 감동과 희망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운동은 못하면서도 운동에 관심이 있는 걸 유튜브 알고리즘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러닝머신 위에서 처음 접한 <무쇠소녀단>에서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유이였다. 수영선수 출신답게 기본 체력테스트 때부터 남달랐다. 그러더니 생전 처음 해본다는 5km 달리기도 너무 수월하게 해낸다. 역시 운동 DNA는 따로 있구나. 수영도, 달리기도 척척 잘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이상하게 기가 죽었다.
어라?! 그런 유이가 자전거는 못 탄다! 차가운 바다 속을 인어처럼 유영하고, 긴 다리로 트랙을 겅중겅중 달리던 유이가 자전거 안장에만 앉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긴장해서 바짝 언 채로 동그란 두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코치의 지시에 어린 아이마냥 '네!' 대답하는 유이를 보면서 왜일까. 나는 묘한 안도를 느꼈다.
설인아는 달리기가 싫다. 수영도 기본 이상의 실력인 데다 사이클을 탈 때는 선수처럼 멋진 폼을 자랑하며 속도를 내는 덕에 '운동천재'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놓고도 첫 5km 달리기를 할 때 '달리기 싫어, 달리기 정말 싫어'를 무슨 주문처럼 외우는 모습에서는 동질감이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났다.
맏언니 진서연은 어떤가. 연기자로서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자랑하고 운동도 꾸준히 해왔지만, 수영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진다. 물공포증이 있어 '음파'도 하지 못하는데 4개월 만에 바다 수영을 하겠다고? 수영을 2년 배워도 바다 수영은 엄두도 못내는 내 입장에서는, 이건 진서연의 문제가 아니라, 제작진의 섭외가 잘못 되었다고 여길 지경이었다. 그때까지 몰랐다. 노력하는 인간에게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를.
나날이 실력이 달라지는 <무쇠소녀단>을 러닝머신 위에서 보고 있으면 덩달아 힘이 났다. 10분만 더 하자. 1분만 더 달려보자. 속도를 조금만 높여보자.
그동안은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던 <무쇠소녀단>의 마지막 회만큼은 본방사수를 해야 했다는 결심으로 오랜만에 TV 앞에 앉았다. 철인 3종 경기 실전은 수없이 했던 연습과는 또 달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서 계속 훈련을 해왔지만 자꾸 터지는 돌발 상황에 멤버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짧은 방송시간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한 3시간이 넘는 경기 시간, 아니 4개월이라는 시간.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했을까. 멤버들의 거친 숨소리 외에는 다른 어떤 소리도 없이 자막으로만 해설이 더해져 그들의 레이스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 tvN <무쇠소녀단> 관련 이미지. ⓒ tvN
결국, 맏언니 진서연의 예언처럼 엔딩은 완주였다. '도전'과 '완주' 라는 두 단어 사이에 프로그램 소제목 그대로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이 있을까.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노력과 고비와 숱한 자신과의 싸움을 <무쇠소녀단>은 성장으로서 보여줬다. 마지막 주자까지 끝끝내 시간 안에 완주하고 네 명의 선수는 부둥켜안고 마치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어떤 말도 필요없는 순간이었다.
그저 운동 동기부여 좀 하려고 보다가 반해버린 <무쇠소녀단>의 마지막회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엉엉 울었다. 저마다의 취약점을 갖고도 도전한다는 것은 체력, 그 이상의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늘 입버릇처럼 "엔딩은 정해져 있어"라고 외치던 진서연은 알고 보니 사실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끝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었다. 낯선 시민들과도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며 밝게만 보였던 막내 박주현은 자신이 제일 부족하다는 생각에 남몰래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수영 에이스 유이도, 강철 체력을 자랑하는 설인아도 자기만의 짐을 지고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완주가 이토록 감동적인 것은 모두가 그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누구나 넘어지는 순간은 온다
▲ tvN <무쇠소녀단>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한 유이사이클 경기 중에 한번 크게 넘어지고 오히려 홀가분한 마음으로 달리는 유이 "한 번 넘어졌는데 두 번 넘어지겠어?" ⓒ tvN
유이는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첫 종목인 수영을 마치고 자전거에 오른다. 아직 핸들을 한 손으로 잡지 못해서 자전거에서 물을 마실 수 없으니 타는 듯한 갈증을 그저 참으며 마침내 반환점을 맞이한다. 그 순간, 여전히 자전거에 익숙하지 않아 그만 크게 넘어지고 만다. 경기복의 양 무릎이 찢어지고, 팔꿈치까지 까져서 피가 나는데, 유이가 웃는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한 번 넘어졌는데 두 번 넘어지겠어?"
유이의 그 말에 왈칵 눈물이 터졌다. 몇 달 전, 나는 인생에서 한번 대차게 넘어졌다. 5년간 일했던 프로그램에서 자의 반, 타의 반 하차하게 된 것이다. 방송을 만들면서 그 어떤 고비도, 그 어떤 스트레스도 참았지만 역시일 자체보다 힘든 것은 '사람'이었다.
개국 멤버로 시작해서 '아무도 몰랐던 방송'을 꽤 이름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기까지 애정과 노력을 쏟았다. 그렇게 나의 5년이 깃든 방송을 책임피디가 바뀌고 겨우 석 달 만에 그만두게 될 줄은 몰랐다. 그 자체만으로 힘들었지만 후폭풍은 뒤늦게 하나씩 하나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21년 동안 방송작가를 하며 오직 글쓰기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로 살았는데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다. 나의 자랑이었던 경력이 오히려 짐이 되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덜컥 겁이 났다. 그렇게 몇 달 째 계속 넘어진 채 일어서지 못하고 있던 중이었다.
유이가 자신이 가장 빛나는 곳이었던 바다에서 나와 자전거에 올라야 했던 것처럼 어쩌면 나 역시 나의 무대를 떠나야 할 순간이 온 건지도 모른다. 잘 하는 것만 계속 하면 좋으련만 철인 3종 경기가 펼쳐지는 51.5km보다 더 긴 것이 인생이 아닌가. 자전거가 무섭다고 언제까지나 바다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넘어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해낸 무쇠소녀단 ⓒ tvN
그동안은 유튜브로 <무쇠소녀단>을 접하다 보니 댓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멤버들을 응원하고,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분위기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정적인 댓글도 많았다.
폼이 너무 안 좋다느니, 4개월을 배웠는데 저 정도밖에 못하냐느니, 이 상태면 100% 컷오프 당한다느니 이런 댓글을 보면서는 기가 막혔다. 당신은 수영을 얼마나 잘하느냐고 묻고 싶었다. 설령 선수급으로 잘한다 해도 그런 태도는 문제다. 나에게 쉽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남이 쉽게 한다고 나에게도 쉬울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누군가는 죽도록 해야만 겨우 평균에 다다를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다.
지난 20년 간 내 소원 중 하나는 전업주부였다. 일을 하지 않을 때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하고 아이템을 생각하는 방송작가로 살다보니 '전업주부의 삶은 어떨까?'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시간이 넘쳐나서 살림을 잘할 줄로만 알았다. 이 기회를 통해 모든 전업주부들에게 깊은 사과와 존경을 전한다. 살림을 놓고 살 때는 몰랐다. 살림이 이렇게 몸과 머리를 써야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임을 이제야 깨닫는다.
최근에는 유튜브에 도전했다. 20년간 방송을 만들 때는 몰랐다. 늘 카메라 뒤에만 서 있던 방송작가에서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이 되니 이게 이렇게 떨릴 일인가 싶다. 그동안 방송에 출연해주신 분들이 새삼 대단하고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내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듣고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고, 구독자 수 한 명 한 명에 일희일비하는 것도 정신 건강에는 꽤나 해로운 일이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이 일을 꾸준히 해왔음을 생각하니 세상 모든 유튜버가 존경스러워졌다.
넘어져봐서 다행이다. 넘어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알게 되었다. 할 줄 아는 건 글쓰기 밖에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 다행이다.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있는 중이다.
한 번 넘어졌으니 되었다. 두 번 넘어지지 않으라는 법은 없는 게 인생이지만 겁이 덜 나는 것은 사실이다. <무쇠소녀단>의 엔딩은 정해져 있지만 나의 인생은 여기가 끝이 아니니, 이제 더 이상 넘어졌다고 주저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저마다 하나씩 아킬레스건을 가졌음에도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고 마침내 완주한 <무쇠소녀단>을 보며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고마워요, <무쇠소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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