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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기억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것

[이태원 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대학 연속 간담회 ①] 함께하는 시간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들

등록|2024.11.18 10:43 수정|2024.11.18 10:43
지난 11월 5일 저녁 7시, 2022년 10월 29일로부터 2년이 지나고 다시 마주한 10월 29일을 함께 기억하기 위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 간담회가 가톨릭대학교에서 열렸다. 간담회의 공동주최로는 가톨릭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 위원회, 가톨릭대학보, 사회학과 소속 언론 시사 학회 대쉬가 함께 했다.

간담회 당일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씨의 아버지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조인영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 두 분이 패널로 참석했다. 30명 가까이 되는 재학생들과 시작한 간담회는 패널들과의 대담으로 시작해 학생들이 간담회 중간에 포스트잇에 적은 질문으로 마무리되었다. 해당 글은 간담회의 기획, 준비과정 그리고 그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간담회를 함께한 사람들간담회를 마치고 모두 앞에 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소셜투어


추모와 기억, 공감과 연대의 장

많은 이들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던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발생일로부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예방 대책의 미비와 부실 대응이라는 명백한 이유로 159명이 희생된 이 참사에 대해 여전히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 이태원 참사라는 큰 슬픔과 작별할 수 없었다.

이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에 공감하고 또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소셜투어 4기: 기억을 이어나가는 여행'(아래 소셜투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가톨릭대학교 재학생들과 함께 해당 간담회를 진행하게 되었다. 소셜투어는 다양한 사회적 경험과 기여를 원하는 대학생 및 청년들이 모여 전국 곳곳 사회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코스를 직접 탐방하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4기는 10.29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를 주제로 기획되었으며 참여자들의 학교에서 직접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를 개최하는 것이 최종 미션이었다.

해당 간담회는 참사 당일부터 지난 2년 간의 일들을 모두 겪어온 유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오해들을 바로잡고, 동시에 진정한 추모란 무엇인지, 또 다른 참사 방지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에는 무엇이 있을지 함께 고민하는 하나의 '장'을 만들고자 기획되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학교에서 다룰 수 없다?

간담회를 열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장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대자보는 물론이고 홍보물 하나도 마음대로 붙일 수 없게 하는 학교에서 기획단의 이름만으로는 대관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때문에 학내 단위의 이름은 기획단에게 간절히 필요했다.

가장 먼저 학보사에 연락해 공동주최를 요청했다. 함께 하겠다는 답변을 받아 학보사의 이름을 통해 학생 강의실 신청 시스템으로 강의실 대관을 신청하였지만, 며칠 후 돌아온 건 대관 신청을 보류였다. 학생지원팀에 직접 연락해 대관 보류에 대해 물었으나 "학교에서 간담회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질문과 내부 회의를 통해 다시 답변해 준다는 답변만을 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강의실을 빌렸지만 그 후에도 외부인은 몇 명인지, 재학생들로 구성되어 준비한 것인지, 어떻게 기획된 것인지 등의 전화가 계속 되었다.

움츠러들 수 없었던 이유

가장 급했던 장소가 해결되고, 그 다음은 홍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획단원들은 이틀에 한번씩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홍보글을 올렸다. 홍보글을 올리는 과정 중 게시판을 잘못 선택하여 업로드하자 간담회는 순식간에 커뮤니티의 화거리가 되었다.

올라온 글의 주된 내용은 '학교에서 왜 이런 것을 하냐'는 것과 '정당 이름이 포함된 행사를 왜 학교에서 하냐'는 물음들이었다. 학교에 정치를 끌어들인 자들이 누구인지 기억하자는 글, 특정 학과 학회를 보고 학과 전체를 하나로 묶어 근거 없는 비난을 하는 등 참사에 대한 혐오부터 이를 준비한 학생들에 대한 비난글들이 가득했다. 어떤 이는 간담회 당일 계란 테러를 하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처음 겪는 일이었고, 혐오발언을 한 학생들은 다른 이들이 아닌 세월호 참사를 겪고 이태원 참사를 함께 겪은 세대이기에 절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힘이 없는 혐오가 참사와 간담회를 아무렇게나 규정한대로 남아있게 할 순 없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놀러 갔다 죽은 사람들로 남게 할 수 없었고, 이태원 참사를 국가의 잘못이 없는 하나의 사고로 남겨둘 수 없었다. 혐오는 힘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포스터를 더욱 열심히 붙이고 다녔고, 포스터와 화자보(화장실용 자보)가 계속해서 떼어져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접착제 삼아 다시 붙였다.

기획단은 나름의 큰 일이 벌어지고 난 후 모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고 가는 말 속에는 대학생은 어떤 존재인지, 학생이 학교가 아니면 어떤 공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있었지만 결국 모든 말은 간담회는 꼭 열려야 한다는 것으로 끝났다. 그 시간을 통해 기획단원들은 서로의 고민과 마음을 나누며 간담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했고,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를 확인했다.

간담회 패널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학생들강의실 자리 곳곳을 채워 앉은 재학생들이 집중하고 있다. ⓒ 소셜투어


그들은 왜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나

순탄치 않은 준비 과정을 겪으며 간담회 당일 참여자가 많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기획단은 초조했다. 하지만 간담회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학생들은 곧 강의실 자리 곳곳을 채워주었고 그렇게 꽉 찬 강의실로 간담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태원으로 빨리 와주세요."

먼저 참사 당일 상황에 대해 질문했다. 유가족임과 동시에 그날 그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였기에 들을 수 있는 간절했던 그날의 골목에 대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대해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서글플 정도로 담담하게 그날의 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10월 29일 토요일에 딸의 남자친구에게 걸려온 전화에 부리나케 달려간 이태원은 테러 현장 그 자체였고 딸아이는 참사가 일어난 골목 옆 상가에 누워있었다고 말했다. 안에서 남자친구가 계속 CPR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였던 그는 그 안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경찰은 안에서 환자들 치료가 진행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기 때문에 물러난 것이었는데 이후 해당 상가에 누워있던 사람들 모두 이미 사망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경찰의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159명의 희생자와 159개의 참사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규명', '투쟁'과 같은 생소한 단어들이 일상이 되는 시간을 보냈을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싸워온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늘 유가족의 옆에서 함께 싸우며 2년여 간의 시간을 함께했던 조인영 상황실장은 해당 사건을 맡고 처음으로 유가족과 만났던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위원장님을 처음 본 날 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를 하나의 참사로 볼 수 없구나 생각했다"며 159명의 희생자가 있으면 이는 159개의 참사라고 봐야 하는 사건임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이이서 지금도 유가족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하며 "한 명 한 명의 희생자에 대해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건"임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159'라는 거대한 숫자에만 주목하고 희생자와 피해자 수만큼의 다양한 개별적인 사건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숫자로만 참사를 바라보는 것은 숫자 너머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없게 한다. 한 명의 삶엔 수많은 매일이 있다. 참사만 아니었다면 10월 29일도 즐거웠던 핼러윈의 밤으로 남았을 것이다. 골목에서 허무하게 빼앗긴 그 평범한 일상과 매일의 시간이 모여 만들어졌을 한 사람, 한 사람의 빛나는 인생을 떠올릴 때 참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서로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기억하는 것, 연대하는 것은 우리가 함께 쓰는 고귀한 역사이다. 기억한다는 것은 눈에 띄지 않고, 누구도 모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귀하고 위대한 것이다. 누군가 눈을 감으라고, 귀를 닫으라고, 입을 열지 말라고 소리쳐도 기억은 이어진다. 이태원을 추모하고자 하는 우리가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어떤 연대의 순간이 기억에 남는지에 대한 이정민 위원장의 대답은 그런 우리의 마음 속에 깊이 와닿았다.

"사실 오늘 같은 이런 자리가 우리한테는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간담회를 준비하는 내내 우리가 기다렸던 대답이었다. 우리의 행동이, 말 한마디가 도움이 될지 걱정하고 고민하던 우리에게 그 말은 완벽한 위로였다.

"개혁이라는 건 억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의 계획이라는 게 그렇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보라리본, 보라뱃지 그런 것들을 그냥 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곱씹어 읽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말들이기를 바란다.

추모의 한마디를 적은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는 재학생강의실 뒷편에 놓인 추모의 한마디 남기기 판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 소셜투어


이후 패널 질문이 모두 마무리 되고 이어진 질의응답과 마지막 한 마디에서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우린 더이상 참사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모든 게 마무리 된 이후에는 '새로운 일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이번 일을 통해 사회가 나누어준 연대의 마음을 돌려주기 위해 안전사회를 위한 걸음에 동참할 것이며, 이제는 우리가 연대할 차례"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사회를 바꾸는 것은 대학생"이라며 우리와 같은 청년들이 사회적 이슈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조인영 상황실장은 "재난 참사는 인권의 문제"라고 말하며 사회적 참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길을 잃은 별들에게

간담회란 무엇일까. 그저 이야기를 듣고 물음에 답하는 것일까. 지난 2년간의 희로애락을 나누며 위로하고, 답답하고 분노했던 날들을 나누는 자리가 아닐까?

정부와 싸우고, 2차 가해에 맞서며 힘들었을 날들을 우리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랐다. 함께 기억하고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것.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에서 그 아픔을 나누며, 그 모든 앞날에 외롭지 않게 함께 걸어가려 한다. 이윽고 2025년 10월 29일에는 국가다운 국가가 되어있기를 소망한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간담회에 참여하지 못한 한 학생이 참여 신청폼을 통해 전달해준 메시지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강의실 대관 불가와 항의 전화라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꿋꿋이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에 용기가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번 간담회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함께하는 친구들과 지지의 말들을 보내는 학우들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었기에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혼자서는 조금 두려웠을 일에 함께였기에 용기낼 수 있었다.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특정한 공간에서 기억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자신에게 주어진 내일을 맞이함에 두려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함께하는 순간 우리는 평범한 이들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나갈 수 있다."

- 가톨릭대학교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원 중 한 명의 대자보 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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