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법 1심 재판 결과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현직 변호사인 박서진씨가 이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다른 입장의 글도 환영합니다.[편집자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5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 1심 선고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혹시라도 이 글이 받을 수도 있는 여러 오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저 자신에 대해 밝히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는 우연히도 변호사를 생업으로 삼아 법적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나, 정치와는 무관한 일상을 살아 가고 있는 평범한 유권자입니다. 투표 행위,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과의 잡답 이외에는 단 한 번도 저의 정치적 의견을 외부화해본 적 없으니, 소극적인 유권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와 같이 민주당을 유일한 선택지로 생각한 것은, 민주당이 가장 이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현실적인 범위에서 우리 사회에 대한 보다 합리적, 인간적인 비전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며 수십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사에서 민주당이 쌓아온 귀중한 자산은 정당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처한 위기, 그리고 참을 수 없는 답답함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유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 민주당이 처한 위기를 보면서 느낀 참을 수 없는 답답함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이 글에서 공직선거법 1심 판결에 대한 의견을 말할 생각은 없으며 판결에 대한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1심에서 징역+집행유예 판결이 선고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사실이 민주당에 큰 혼란과 충격을 주고, 나아가 정권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 현 상황에서 '찬물' 효과가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1심 유죄 판결이 선고된 이후 민주당은 충격에 빠졌다고 하는데, 1심 유죄 판결이 진실로 예견할 수 없었던 일인가요. 혹은 유죄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을 수면 위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요. 이재명 대표는 당선자는 아니지만, 통계적으로 보면 선거법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당선무효 미만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당선무효형 이상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보다 더 낮은 것이 분명합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1심에서 피선거권박탈형이 선고되는 경우를 대비한 어떤 대책이 있었나요. 보다 중요하게는, 앞으로 민주당은 2심, 3심을 거쳐 최종 판결이 선고되기까지의 수개월 또는 1년 이상 기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정치탄압 프레임으로 현 상황을 규정하고, 부정의한 사법부를 규탄하고, 내부 단속을 하고, 장외 집회를 하면서 '그런데 김건희는? 윤석열은?'이라고 대외적 투쟁 수위를 높인다면, 현재의 위기가 해결되나요.
법정에서 승패를 다투는 것이 일상인 저 같은 사람은 형사 사건에서 무죄를 받는 것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재명 대표의 진실을 진심으로 믿고 싶고, 그 '진실'이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했으며 이후 진행될 2심, 3심에서 이러한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열렬히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기대를 보정하고 변호사로서 냉정하게 결과를 예측한다면, 2심, 3심에서 희망대로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보다는, 1심과 동일한 판결, 내지는 형량이 줄어들더라도 피선거권박탈형에 해당하는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 내용이나 재판 진행에 대해 언론에 보도된 것 이상의 내용을 알지 못하므로, 저의 생각은 이 사건에 대한 특별한 의견이라기보다는 과거 재판에서 다수의 쓴 맛을 보면서 재판의 벽이 얼마나 높고 험한 것인지 실시간으로 느끼는 변호사로서 갖는 일반론적 견해이며, 저의 이러한 비관이 틀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재판은 '진실'하다고 해서, '정의'롭다고 해서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의 개인적인 진실을 재판부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진짜로 '진실'이 묻히고 '거짓'이 이기기도 하는 것이 재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법부를 부정의하다고 매도할 수도 없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를 규탄한다고 해서, 또는 재판정 밖에서 열렬하게 국민들에게 호소한다고 해서,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변호사로서 재판을 하면서, 소송 당사자가 사건에 대한 어떤 입장을 명확하게 세우고 해당 입장을 수십,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변호사를 비롯한 '우리 편들' 모두가 객관성을 잃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사건이 중요할수록 패소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요. 그러나 우리 편 중 누군가는 객관성을 잃지 않고 패소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야 하며, 사건이 중요할수록 패소할 경우에 대한 대비를 하여야 합니다. 플랜비는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플랜비를 이야기한다고 하여 우리편의 '진실'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고, 적전분열이라고 매도되어서도 안됩니다.
민주당이 해야할 일
대다수의 국민들은 민주당이 '그런데 김건희는, 윤석열은?'이라고 묻지 않더라도 이 정부의 참담한 실상을 점점 더 깨닫고 있으며, 열망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짜로 물이 비등점을 넘어서 끓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내부적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하고 대안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당면한 위험이 현실화 되는 경우에 대비한 대안을 제시하여야 국민들의 열망에 구심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표의 피선거권박탈형이 확정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마당까지 들어온 코끼리를 모른척 하거나, 없다고 희망 회로를 돌리거나, 코끼리를 계속 비난하면서, 결국 코끼리가 마당을 망치고 집을 부수는, 그래서 구심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그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재명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앞으로의 재판에 대해 최선의 대응을 하여 반드시 무죄 내지 피선거권박탈형 미만의 판결을 받기를 바라며, 당 차원에서도 전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희망과 다른 결과가 내려질 가능성에 대해 손놓고 있으면서 당 전체를 혼란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비관적인 가능성이 낮지 않음을 직시하고, 그 경우에 대비하며 최선의 방향을 미리 준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열린 논의가 있어야 합니다. 당내 논의가 어떤 매커니즘으로 움직이는지, 저와 같은 정치 문외한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문외한이기 때문에 더더욱 민주주의의 원칙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일사불란한 대오를 강조하고 내부 단속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소 혼란스럽고 시끄럽더라도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하면서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을 찾아 가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면한 현정권 관련 이슈들에 대한 대응이 다소 아래로 소강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농부가 낫을 갈기 위해 잠시 추수를 중단하듯, 내부 전열을 정비한 이후의 폭발력은 비등점을 넘어 설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민주당, 플랜비를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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