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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로 대하사극 4편 만든 일본, 매력 뭐길래

[김성호의 씨네만세 884] < 킹덤3: 운명의 불꽃 >

등록|2024.11.19 11:27 수정|2024.11.19 11:27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킹덤> 시리즈 네 번째 편, < 킹덤4: 대장군의 귀환 > 개봉에 발맞춰 몇몇 상영관이 전작들의 재개봉을 진행하고 있다. 전체 이야기로 치면 그 서막이 열린 정도에 불과하지만, 어느덧 네 번째 편이 나온 만큼 지난 이야기를 되짚어 한 번에 새로 보고자 하는 이들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전체 이야기를 알고 새 작품을 봐야 그에 대한 이해 또한 깊어질 것이라는 배급상의 판단도 빠뜨릴 수 없는 이유다.

수도권과 부산 등에서만 재개봉을 볼 수 있단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느 지역 극장 관계자가 말하길, 신작 개봉에 맞춰 재개봉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상영관 수도 적고 수도권과 달리 지역민은 이런 영화가 있단 사실을 알지도 못해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킹덤> 지난 시리즈를 재개봉하는 상영관이 수도권과 부산에나마 제법 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지닌 매력을 이해하는 이가 적잖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킹덤> 시리즈의 인기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제작한 규모 있는 사극이 저들의 역사가 아닌 중국 고대, 전국시대 칠웅의 전쟁사에 기반한 판타지란 점에서 그렇다. 하라 야스히사의 만화 원작부터 애니메이션을 거쳐 실사영화에 이르기까지, <킹덤> 시리즈가 받은 인기는 일본 열도는 물론,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다 해도 좋겠다. 1억부 클럽에 든 몇 안 되는 신작 만화이고, 비슷한 성격의 이야기를 사실상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독창적인 작품이기에 <킹덤>이 거둔 놀라운 성취엔 이해가 가는 부분도 많다.

▲ < 킹덤3: 운명의 불꽃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중국 역사로 대하사극 만드는 일본

그럼에도 이들이 어째서 중국의 역사를 저들의 콘텐츠 재료로 삼는가, 또 그에 대한 반감이 어째서 없는가를 돌아보면 놀라움을 금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과 일본 대중 간 문화적 동질감이며 정체성의 유사함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이들이 경계를 넘어 다른 국가의 역사를 자기화하는 과정이 색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일례로 루이16세의 이야기를 영국 배우들이 영어로 찍는다거나 하는 사례가 생길 때 상당한 비판이 따르지 않던가. 일본 배우들이 중국 전국시대의 역할을 일본어로 연기한다는 건 한눈에 보기에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비판을 넘어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 같은 설정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단 점을 주목해 봐야 한다.

기실 중국역사의 소비는 동아시아 3국의 오랜 습관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한국만 해도 <삼국지연의>가 정비석과 박종화, 이문열과 황석영 등 문단의 거물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널리 읽혀온 것이 사실이다. 비단 이 책뿐 아니라 <초한지>, <열국지> 등 분열하고 갈등하는 중국 고대사는 한국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것이다.

▲ < 킹덤3: 운명의 불꽃 > 포스터 ⓒ 도키엔터테인먼트


국경 너머 날개 편 콘텐츠의 힘

한국사 가운데 이 같은 이야기를 독자적으로 찾아내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후삼국 통일의 여정을 다룬 사극 <용의 눈물>조차 <삼국지연의>의 주요 설정을 베끼다시피 가져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테면 왕건을 세 의형제의 맏이로 설정한다거나 종간이나 최승로 같은 책사를 묘사하는 방식, 제갈량의 일화를 그대로 본뜬 몇몇 장면들은 의식하지 않아도 <삼국지연의>가 떠오를 만큼 빼다 박지 않았나. 그럼에도 관객들은 이에 호응을 보내지 불평하지 않았다. 그들의 역사를 우리의 것에 가져다 대는 데 거부감이 없었단 뜻이겠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중국 역사에 친근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지만 일본은 그 정도가 상상 이상이다. 하라 야스히사가 <킹덤>을 빚고, 다시 사토 신스케가 이를 영화화하는 과정에도 중국 역사를 적극 소비하는 데 대한 거부감이 거의 읽히지 않는다. 일본이 저들의 전국시대를 이해하는 방식 또한 <삼국지연의>로부터 출발한 중국사며 중국문화의 흔적이 많이 녹아 있지 않던가. 아예 중국사를 다룬 작품에 대해서도 그 친숙함을 내보이는 모습이 마치 저들 자신의 역사를 대하는 듯하다.

▲ < 킹덤3: 운명의 불꽃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진일보한 주인공, 한 층 커진 전투

< 킹덤3: 운명의 불꽃 >은 실사화된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위나라의 침공에 맞서 간신히 승리한 뒤 신(야마자키 켄토 분)은 환골탈태의 각오로 스스로를 단련한다. 한때 진나라를 대표하는 여섯 장군 중 하나로 꼽혔던 왕기(오오사와 타카오 분)에게 수련을 청한 신이다. 왕기는 신에게 아직 주인이 가려지지 않은 채 여러 민족이 나뉘어 싸우고 있는 무법지대를 평정하라 명한다. 그로부터 반년 가까운 시일이 흐른 뒤 마침내 한 부족의 통일을 이끈 신이다. 그는 돌아와 백인장으로 거듭난다. 지난 전쟁에서 세운 공에 더하여 왕기가 내준 과제를 수행한 신이 한층 강해진 것은 물론이다.

영화는 진나라와 악연을 가진 조나라가 군을 일으켜 진을 침공한 뒤의 이야기다. 국왕인 영정(요시자와 료 분)과 승상 여불위(사토 코이치 분)가 불화하는 가운데, 진나라의 명운을 건 전투를 수행할 장수로 오래 전장을 떠나 있던 왕기가 선임된다. 9년 전 조나라와 치른 일대 전투에서 아픈 사연을 가진 그가 꼭 9년 만에 전장에 복귀하는 것이다. 영정이 왕기를 제 신하로 맞이하고, 또 왕기가 영정을 제 주군으로 모시는 과정, 그 가운데 조나라 땅에 볼모로 보내졌다가 간신히 탈출한 영정의 감춰진 사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한다.

뒤는 <킹덤> 원작에서도 인상 깊게 등장하는 진과 조의 마양전투다. 왕기의 복귀전인 만큼, 전력의 열세를 뒤집는 전략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중군과 좌우로 나뉜 전장 가운데서 핵심은 진나라 좌군과 조나라 우군이 맞상대하는 전장이다. 두 배가 넘는 전력차에 상대 우군을 이끄는 풍기(카타오카 아이노스케 분)를 당해낼 장수가 없는 상황, 이곳에 왕기가 쏜 화살이 한 대 있으니 그게 바로 신과 그의 백인대가 되겠다.

왕기가 신을 이곳에 보내며 특별히 부대의 이름을 하사하니, 훗날 유명해질 비신대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의 후반부는 커다란 전장 가운데 차이를 만들어내는 비신대의 이야기다. 전작에서 강렬하게 등장한 부장 강외(세이노 나나 분)가 이번 편에서도 대활약을 거듭하고, 신은 마침내 왕기의 명령을 완수한다.

▲ < 킹덤3: 운명의 불꽃 >스틸컷 ⓒ 도키엔터테인먼트


전작을 봐야 하는 이유

< 킹덤3: 운명의 불꽃 >은 곧 개봉을 앞둔 4편 < 킹덤4: 대장군의 귀환 >과 맞물려 하나의 작품이라 해도 좋겠다. 1편이 신과 영정의 이야기를, 2편이 진과 위나라 간의 싸움을 다루었다면, 3편과 4편은 진과 조나라의 마양전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중 앞의 것은 신이 이끄는 백인대의 활약을 통하여 진나라가 열세를 극복하는 이야기인데, 뒤는 비로소 왕기와 적군 총대장이 맞붙는 전면전이다.

말인즉슨, < 킹덤4: 대장군의 귀환 >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짝을 이루는 < 킹덤3: 운명의 불꽃 >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1편과 2편을 보지 않더라도 3편만큼은 반드시 보아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신작 개봉에 맞춰 몇몇 극장이 전작들을 재개봉 하는 이유다.

만화와 애니 애호가를 중심으로 점차 팬층이 확대돼 가고 있는 <킹덤> 시리즈 관객이 한국에서도 적잖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제까지 중에서 가장 규모 있고 강렬한 이야기를 다룰 < 킹덤4: 대장군의 귀환 >에 거는 기대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a href="https://brunch.co.kr/@goldstarsky" target="_blank" class=autolink>https://brunch.co.kr/@goldstarsky</a>)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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