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미오기傳>,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의 김미옥 작가 북토크 후기
따뜻한 11월 14일 저녁, 김미옥 작가가 군산 정담북클럽을 방문했다. 올해 선보인 두 권의 책, <미오기傳>(김미옥, 2024, 이유출판),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김미옥, 2024, 파람북)은 넉 달 만에 10쇄를 찍었고, 전국에서 쇄도하는 북토크 요청으로 촘촘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미옥 현상'의 주인공이다. 드물게 하룻밤을 묵어간 군산이라는 도시를 그는 어떻게 보았을까.
"군산은 섭외 기간이 가장 길었어요. 강형철 시인을 통해 방문을 약속한 것이 6월이었으니 마침내 오게 된 오늘까지 오랫동안 이곳에 대해 생각했지요. 혼자 둘러보려고 일찍 왔어요. 군산이라는 도시는 시간이 머문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안고 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작가는 단지 책을 소개하기 위해 지역 곳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지역의 동네 책방들을 '염탐'하기 위해서다. 건강한 책방들이 문화를 살리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담북클럽은 국립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의 국립대학육성사업의 일환이라 책방과 무관하지만, '군산 동네서점 지도'를 급히 공수하며 군산의 책방 소식을 전했다.
김미옥 작가는 90년대 이후 급격하게 극과 극으로 나뉘어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우리의 현실을 염려했다. 알려지지 않는 작가와 책, 출판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서울과 지역의 문화 격차도 극으로 나뉘고 있다. 심지어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귀신마저 있을 자리가 없다. 귀신의 사연도 들어주던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 보여도 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결핍의 사람으로 소개한 김미옥 작가는 '늪에 빠진 아이가 스스로 제 머리카락을 쥐고 나와'야 하는 유년을 살았다. 잔혹한 가난으로 초등학교 6학년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캐러멜 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유년이라는 결정적인 시기에 '문화'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책과 클래식 음악이었다. 커다란 배터리가 들어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노랫말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음악의 존재에 충격을 받았다. 베토벤의 "황제"였다.
이후 문화는 그에게 더 없는 영양분이었다. 그를 두고 '1년에 800권 읽은 독서가'라고 감탄하지만 우스운 표현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그는 일 년에 800권이 아니라 천 권도 더 읽을 것이며, 각종의 음악, 영화, 그림까지 섭렵하리라. 그만큼 읽기와 쓰기와 살기가 하나의 매듭으로 조밀하게 엮인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장르와 국가와 시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인물과 작품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그런 만큼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독서법과 글쓰는 방법, 육아법이나 가족상담, 심지어 부동산 재테크까지 묻고 싶지만 꾹 눌러 참는다. 일곱 번째 정담북클럽의 주제인 <문학과 독자>에 집중하여 독자는 어떻게 진화하는지 물었다.
"독자에게는 몰입하지 말라고 하겠어요. 반드시 자기 생각이 필요해요. <테스>(토마스 하디)처럼 되고 싶다는 독자가 있었어요. 곤란한 일이지요. '사랑받고 싶다' 라는 자기 욕망과 혼동하는 겁니다. 책과 독자 사이에는 객관적인 거리가 있어야 해요.
물론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몰입해야 해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면 인간을 이해하게 됩니다. 린 헌트가 <인권의 발명>(린 헌트, 2022, 교유서가)에서 말했듯이, 문학을 통한 공감은 연대로 이어집니다. 노예 해방이 가능했던 것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해리엇 비처 스토)이라는 문학으로 노예의 삶에 공감한 연대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출판사,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김미옥 작가도 오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적 허영에 들려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유치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멸시하던 옆 방의 술집 아가씨 애숙이가 끙끙 앓느라 며칠을 굶은 대학생 미옥에게 밥상을 넣어주었다. '밥 한 공기'가 한 사람을 살리고 바꾸는 순간이었다.
<미오기傳>에도 나오는 에피소드지만 작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애숙이를 생각한다. 세상의 마이너들에게 연민을 갖는 김미옥 작가의 태도에 동화된다.
우리는 김미옥 작가처럼 읽고 쓰고 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에 소개된 책 하나하나가 흥미로워 모두 읽고 싶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흔드는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작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연민의 마음이다. 이제 우리는 대형 출판사의 화려한 홍보가 없는 소박한 책에도 세심한 눈길을 줄 수 있다. 처음 듣는 작가의 책에도 편견 없이 다가설 수 있다.
책을 펴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군산은 섭외 기간이 가장 길었어요. 강형철 시인을 통해 방문을 약속한 것이 6월이었으니 마침내 오게 된 오늘까지 오랫동안 이곳에 대해 생각했지요. 혼자 둘러보려고 일찍 왔어요. 군산이라는 도시는 시간이 머문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안고 가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 정담북클럽 part.7 <문학과 독자> 김미옥 작가 대담을 진행하는 김규영 이야기그릇담 표환영 음악이나 축하 노래없이 대담과 참여자의 질문과 코멘트만으로도 2시간은 유쾌하게 가득 찼다. ⓒ 이재필
작가는 단지 책을 소개하기 위해 지역 곳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지역의 동네 책방들을 '염탐'하기 위해서다. 건강한 책방들이 문화를 살리는 힘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담북클럽은 국립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의 국립대학육성사업의 일환이라 책방과 무관하지만, '군산 동네서점 지도'를 급히 공수하며 군산의 책방 소식을 전했다.
김미옥 작가는 90년대 이후 급격하게 극과 극으로 나뉘어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우리의 현실을 염려했다. 알려지지 않는 작가와 책, 출판사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서울과 지역의 문화 격차도 극으로 나뉘고 있다. 심지어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는다는 귀신마저 있을 자리가 없다. 귀신의 사연도 들어주던 사람들이 외면하고 있다. 보여도 보려 하지 않는다. 우리의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김미옥 작가와 함께 하는 정담북클럽지난 2024년 11월 14일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진행된 정담북클럽에 많은 분들이 함께 했다. ⓒ 문가은
스스로를 결핍의 사람으로 소개한 김미옥 작가는 '늪에 빠진 아이가 스스로 제 머리카락을 쥐고 나와'야 하는 유년을 살았다. 잔혹한 가난으로 초등학교 6학년에는 엄마 손에 이끌려 캐러멜 공장에서 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유년이라는 결정적인 시기에 '문화'를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책과 클래식 음악이었다. 커다란 배터리가 들어가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유행가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노랫말도 없이 길게 이어지는 음악의 존재에 충격을 받았다. 베토벤의 "황제"였다.
이후 문화는 그에게 더 없는 영양분이었다. 그를 두고 '1년에 800권 읽은 독서가'라고 감탄하지만 우스운 표현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충분히 가늠하게 된다. 그는 일 년에 800권이 아니라 천 권도 더 읽을 것이며, 각종의 음악, 영화, 그림까지 섭렵하리라. 그만큼 읽기와 쓰기와 살기가 하나의 매듭으로 조밀하게 엮인 삶을 살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장르와 국가와 시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인물과 작품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된다.
▲ 김미옥 작가의 두 권의 책<미오기전>(김미옥, 2024, 이유출판),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김미옥, 2024, 파람북) ⓒ 김규영
그런 만큼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독서법과 글쓰는 방법, 육아법이나 가족상담, 심지어 부동산 재테크까지 묻고 싶지만 꾹 눌러 참는다. 일곱 번째 정담북클럽의 주제인 <문학과 독자>에 집중하여 독자는 어떻게 진화하는지 물었다.
"독자에게는 몰입하지 말라고 하겠어요. 반드시 자기 생각이 필요해요. <테스>(토마스 하디)처럼 되고 싶다는 독자가 있었어요. 곤란한 일이지요. '사랑받고 싶다' 라는 자기 욕망과 혼동하는 겁니다. 책과 독자 사이에는 객관적인 거리가 있어야 해요.
물론 문학을 읽을 때 우리는 몰입해야 해요.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면 인간을 이해하게 됩니다. 린 헌트가 <인권의 발명>(린 헌트, 2022, 교유서가)에서 말했듯이, 문학을 통한 공감은 연대로 이어집니다. 노예 해방이 가능했던 것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해리엇 비처 스토)이라는 문학으로 노예의 삶에 공감한 연대가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출판사,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소개하는 김미옥 작가도 오만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적 허영에 들려 '나는 당신과 다르다'는 유치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군림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다. 그렇게 멸시하던 옆 방의 술집 아가씨 애숙이가 끙끙 앓느라 며칠을 굶은 대학생 미옥에게 밥상을 넣어주었다. '밥 한 공기'가 한 사람을 살리고 바꾸는 순간이었다.
<미오기傳>에도 나오는 에피소드지만 작가의 입을 통해 들으니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애숙이를 생각한다. 세상의 마이너들에게 연민을 갖는 김미옥 작가의 태도에 동화된다.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길을 찾은 영혼의 인간을 만나면 나는 감탄한다. 세상이 준 수많은 상처를, 인간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쓰는 이를 보면 콧등이 시큰해진다. 환경과 경험이 존재를 규정함에도 상황을 초월하는 인간은 경이의 대상이다."
-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36쪽
우리는 김미옥 작가처럼 읽고 쓰고 할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에 소개된 책 하나하나가 흥미로워 모두 읽고 싶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마음을 흔드는 우리가 읽어내는 것은 작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연민의 마음이다. 이제 우리는 대형 출판사의 화려한 홍보가 없는 소박한 책에도 세심한 눈길을 줄 수 있다. 처음 듣는 작가의 책에도 편견 없이 다가설 수 있다.
책을 펴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 정담북클럽 <문학과 독자> 참여자들과 함께대담과 참여자들의 질문과 코멘트 만으로 두 시간을 가득 채운 유쾌한 시간이었다. ⓒ 문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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