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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이태원참사 2주기 유가족과 함께하는 대학 연속 간담회 ②]

등록|2024.11.20 11:11 수정|2024.11.20 11:11

서강대·이화여대 이태원참사유가족간담회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화여대 생활도서관에 많은 학생들이 모였다. ⓒ 소셜투어


11월 8일 금요일,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도서관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과 함께하는서강대·이화여대 간담회'가 열렸다. '소셜투어 4기 :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을 통해 만난 서강대·이화여대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 기획단이 주관하고 서강대학교 인권실천연대 노고지리와 기본소득당 청년·대학생위원회가 공동주최로 참여했다.

특별한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

간담회 기획단원들은 '소셜투어 4기 : 기억을 이어가는 여행'을 통해 이태원참사 2주기 시민추모대회에 함께 참여했다. 시민추모대회 현장에서 본 유가족들은 추모 행진 행렬의 가장 앞에 서서 구호를 외치고,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 앞에서 발언하고 있었다. 2주기를 맞아 열린 추모대회인만큼 규모가 컸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함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분명히 하는, 투지를 다져야 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유가족들은 여느 때보다 굳세보이고 조금은 냉랭해 보이기도 했다.

지난 9월, 간담회 기획단원들은 이태원참사 기억공간인 별들의 집에 방문하여 이태원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청중으로 참석하며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유가족들의 모습을 처음 본 기획단원은 2주기 추모대회에서 마주한 유가족들의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계속 '싸워야 하는' 유가족들의 모습과, 누군가의 부모님으로서 자신의 딸 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유가족들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주변 사람과 크게 다른 점 없어 보였던 사람들이 우리 주변 사람과는 다른 낯선 모습을 할 때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자리가 꼭 필요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유가족들의 행복했던 일상을 듣고, 유가족들이 우리와 다른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감각을 느끼고, 그리고 이 평범한 사람들이 참사 이후 왜 이렇게 '특별하게' 살아와야 했는지에 대해 직접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대학별 간담회에 최대한 많은 참가자들을 모으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이야기고 김의진씨의 어머니 임현주씨가 발언하고 있다. ⓒ 소셜투어


내 아이의 마지막 공간이 어디인가

간담회 당일 오후 7시, 이화여자대학교 생활도서관으로 학생들이 모였다. 날은 추웠지만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인 이들 덕에 공기는 훈훈했다. 간담회에는 고 김의진씨 어머니 임현주씨, 고 이재현군 어머니 송해진씨가
패널로 참석했다. 참사 당일의 상황 설명으로 대담은 시작되었다. 임현주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르고 "참사에 이유가 있었을 거란 생각에 그의 마지막 공간인 이태원을 방문했다"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날의 이태원에는 재난 대응 체계가 부재했다. 인파를 통제할 기동대도 없었고 용산구청의 재난안전상황실도 작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 중심에서 15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고 그 직후의 빠른 병원 이송을 위한 교통 통제, 유가족 연락까지 여러 행정 기관의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유가족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참사 연락을 받았고 서둘러 간 병원에서는 사건의 경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들은 위로와 안심의 말 대신 취조와 무관심에 직면했다.

"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지만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에요?"

유가족들은 왜 이런 참사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었다.

"세상에 애들이 어떻게 159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책임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지… 이게 정부나 지자체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야 해서 우리가 현재 가진 법령상으로는 이들을 처벌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특별볍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사법적 재판 외에 다른 관점에서 참사를 바라봐야 하거든요. 시스템의 부재도 있을 수 있고 여러 과실들이 총체적으로 모여서 그날 그 참사가 일어난 거잖아요."

송해진씨는 참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 제대로 된 진상 규명과 분명한 책임자 처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을 져야 될 사람들은 책임을 져야 돼요. 그런 사람들이 본보기가 되어야지 그 안에 있는 행정 공무원들이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당하기 위해 각성하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국가는 이들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답해야만 한다.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학생들이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소셜투어


참사는 골목에만 머물지 않았다

떠난 이들 뒤에는 남은 이들이 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의 삶, 일상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 안내도 받지 못했다. "누가 저한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 청소년의 경우 학교보다는 어디를 보내는 게 나을 거야, 아이의 교육을 어떻게 진행해야 도움이 될 것인지 아무도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아무도… 그냥 제가 다 알아서 찾았어야 했던 그런 시간이었고 심지어는 재현이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어요". 송해진씨는 청소년 참사 생존자의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일상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단순 약값 지원 말고도 참사 생존자를 위한 여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 간의 연대도 어려웠다. 여러 전문가들은 재난 피해자들이 서로 모여 '지지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간하는 '재난 정신건강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심리적 응급처치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다른 재난 경험자 혹은 지원단체 연결'이라고 한다. 허나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다른 유가족의 연락처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다른 유가족을 직접 수소문해 모임을 결성해야 했다.

인터넷에 넘치는 2차 가해 표현에 대해서도 정부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유가족과 참사 생존자에 대한 혐오와 조롱표현이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모른다. 참사를 축소하고 피해자를 탓하는 발언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유가족과 참사 생존자는 움츠러들었다. 고 이재현군은 참사 생존자였지만 참사 발생 43일 만에 하늘의 별이 되었다.

"제가 (행정안전부에) 우리 재현이가 희생자 맞습니까, 물어봤는데 이런 전화가 올 거라는 것조차 아예 생각을 못 한 거예요. 행안부에서도."

참사 이후에도 정부의 대처는 미흡했다. 우리는 이제 참사 자체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어떤 것이 필요한지, 이들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인 담론을 형성해야 한다.

추모와 연대의 메시지학생들은 유가족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작성하여 전달했다. ⓒ 소셜투어


계속해서 연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이 여기 있다. 시위 현장, 간담회, 북 콘서트 등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이 곳곳에 있다. 진상 규명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다가도 유가족은 세계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송해진씨는 "이렇게 연대해 주시고 저희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는 분들이 이 세계와 나의 세계 사이에 어떤 완충 작용을 해요"라며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참사 후의 연대가 어떻게 유가족을 차츰 회복시키는지에 대해 전했다.

"울면서도 웃을 수 있어요. 웃으면서도 울 수 있고. 괴롭고 아프긴 하겠지만 여러 사람이랑 다양한 자리에서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순히 아픈 일로만 넘어가지 않고 그래도 약간은 우리 사회가 좀 나아질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은 있네, 이런 위안이나 안심,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거든요."

임현주씨는 "저희 손 잡아 주시는 우리 시민, 학생들, 재난 참사 피해자들이 길을 낼 때 여러분이 같이 걸어 주시면 그 길이 넓어지고 빨라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해야함을 강조했다.

10·29이태원참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고 행정 기관의 여러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발생한 참사이다. 정부, 고위 공직자, 몇몇 언론은 참사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문제 제기를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해왔다. 정세랑의 소설 <피프티 피플>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라는 문장이 있다. 지금 유가족들이 걷는 길은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걷는 길이다. 이미 발생한 참사는 되돌릴 수 없지만 이를 통해 우리는 이 같은 참사가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참사 생존자, 유가족을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하고, 사회는 이들을 어떻게 품어야 하는지를 고민해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 같이 있는 이런 가족, 어머님들
만나서 웃고 여러분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이 자리를 보며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그렇게 사는 거에요." 우리의 고민이 다음 참사를 막을 수 있도록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대학생, 유가족이 모인 이번 간담회가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큰 발자국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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