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길을 잃지 않는다'... 금강만 보고 달려온 200일의 기쁨과 감동
[천막 소식 200일-202일차] 금강의 생명 기리는 만장과 솟대가 세워진 천막농성장
▲ 큰기러기가 금강에서 잠시 쉬고 있다. ⓒ 임도훈
"큰 기러기다."
멀리서 큰 기러기떼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정한 톤으로 서로 대열을 정비하느라 바쁜 소리다. 한 무리가 머리 위를 지나가더니 세종보 수력발전소 바로 위 강변에 내려앉는다. 내려앉는 모습을 자세히 보면 줄을 잘 맞추고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 자신들만의 법칙이 있다. 강 위에 내려 앉기 위해 하강하는 모습이 제법 다녀본 솜씨다. 또 한 계절이 가는 모양을 이들을 통해서 발견한다.
▲ 금강과 그 곁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비는 20+1배를 올리다. ⓒ 임도훈
지난 16일, 천막농성장에서는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주최로 '세종보 천막농성 200일 기념 문화제'가 열렸다. 이날 문화제는 생명을 위한 20+1배, 세종손글씨연구소의 붓글씨 퍼포먼스 및 축하공연 등으로 진행되었고 60여 명의 시민, 활동가들이 농성장을 찾아 앞으로의 투쟁을 격려하고 힘을 불어넣는 자리를 가졌다. (관련 기사 : 왕버들, 수염풍뎅이, 맹꽁이에게 21번 절 한 까닭 https://omn.kr/2b0cj)
'우리가 200종의 생명을 지킨 게 아니라 이들이 우리를 지켜줬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금강을 지켜온 200종의 생명을 위한 20+1배'였다. 사회를 맡은 보철거시민행동 이경호 집행위원은 이렇게 말하며 참가자들과 함께 20배를 함께 하자고 요청했다. 참가자들 모두 강변 자갈밭에 모여 세종보 농성장에서 200일간 투쟁하면서 만난 생명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보고 이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 절을 올렸다. 그 모습은 우리가 해 온 천막농성의 과정과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낮고 낮은 자세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달려온 200일의 시간 그 자체였다.
▲ 붓사위로 참가자들의 마음을 홀렸던 김성장 소장의 붓글씨퍼포먼스 ⓒ 임도훈
세종손글씨연구소의 김성장 소장과 그 제자들이 진행한 손글씨 퍼포먼스 또한 참가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만장 10장과 현수막 글씨를 공동작업 하는 모습은 하나의 공연과도 같았다. 관중들은 글자가 그려질 현수막을 서로 팽팽하게 잡아주고, 김성장 소장과 그 제자들은 붓을 들고 글자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붓사위로 그려지는 글자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다음 글자는 무엇일까 기대했다. 문장이 완성되는 순간 모두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 200일 행사에 함께 해주신 분들 ⓒ Sunny
'강물은 길을 잃지 않는다. 낮게낮게 바닥으로 기어서 바다에 이른다.'
우리가 200일을 넘게 이 곳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지치지 않고, 길을 잃지도 않는 금강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리고, 금방 흩어져버릴 권력에 기댄 것이 아니라 낮고 낮은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그저 버텨왔을 뿐이었다. 그 결과로 우리가 얻은 것은 200일 동안 금강이 쉼없이 흐를 수 있었다는 것, 그것 하나였다. 덥고 추운 계절을 겪는 동안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준 것은 금강의 생명들이었다. 오직 금강만을 바라보고 달려온 날들이었다.
▲ 달을 향해 힘차게 날개짓하는 큰기러기들 ⓒ 박은영
"와, 달이 멋지다!"
이제 보름달을 몇 번이나 봤나 세어보는 것은 포기했지만 한없이 크고 둥근 달을 볼 때면 언제나 마음이 벅차오른다. '다 괜찮다'고 말하는 넓은 품이 유난히 크게 보이는 날이었다. 그 옆으로 큰기러기떼가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모습이 겹쳐진 장관이었다. 날개짓을 힘차게 하는 저 행진은 왠지 두려움 하나 없어보인다. 달 속으로 기러기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라던 어느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큰기러기들이 끊임없이 자기 자리를 찾아 도약하고 행진하는 모습에서 또 오늘의 힘을 얻는다. 200일 너머 어떤 숫자의 날들이 다가오더라도 금강이 제자리에서 흐를 수 있다면, 금강의 생명들이 제 자리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한 날들이겠다 싶다.
두려움 없이 힘차게 날개짓 하는 큰기러기처럼, 더욱 힘차게 오늘 하루의 농성을 채워낸다. 그렇게 200일이 지나고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