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슬람 여성의 히잡 착용 의무화, 우리가 몰랐던 사실

[리뷰] tvN <벌거벗은 세계사>

등록|2024.11.20 15:42 수정|2024.11.20 15:42
이슬람(Islam)은 알라를 신으로 섬기는 유일신앙 종교 중 하나다. 특히 중동과 서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일대에서 큰 영향권을 미치고 있고, 전 세계에서 기독교 다음으로 많은 신도를 보유한 종교다. 현재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Muslim, 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만 약 20억이 넘으며, 이는 81억 6000만에 이르는 전체 인류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슬람교는 외부의 시선에서 봤을 때 지나치게 엄격하고 강경한 교리, 배타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으로 인해 '폭력과 억압의 종교'라는 오명 혹은 오해도 있다. 역사적으로 종교를 명분으로 내건 수많은 전쟁과 테러 등에 항상 깊숙이 관여하면서, 이슬람교를 둘러싼 극과 극의 평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우리는 진정한 이슬람교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19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20억 명의 종교, 이슬람교에 대한 오해와 진실'편을 조명했다. 박헌대 서강대 유로메나 연구소 교수가 이날의 강연자로 나섰다.

무함마드의 탄생

▲ 방송장면 갈무리 ⓒ tvN


이슬람교는 인류 역사에서 약 7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이후 약 1400여년에 걸쳐 세계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종교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도시 메카(Mecca)는 메디나, 예루살렘과 함께 이슬람의 최대 성지로 꼽힌다. 570년 바로 메카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함마드가 탄생한다.

카라반(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무함마드는 40세가 되던 610년 경 히라산에 올랐다가 신의 전령인 대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유일신 알라(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 무슬림들은 알라가 기독교에서의 하느님과 동일한 존재라고 여기며, 기독교와 이슬람은 같은 신을 믿는 뿌리가 같은 종교라고 생각한다.

두 종교의 차이는 예수(Jesus)의 존재를 해석하는 관점에서 갈린다. 기독교에서는 삼위 일체론을 바탕으로 예수를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신성한 구원자로 해석한다. 반면 이슬람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알라가 내려보낸 여러 예언자 중 하나다. 예수 이후에 가장 마지막으로 내려보낸 예언자가 무함마드라고 해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뿌리를 공유하던 기독교와 이슬람은 훗날 인류 역사에서 뿌리 깊은 라이벌이 된다.

기독교에 성경(Bible)이 있듯이, 이슬람교에는 꾸란(Koran)이 있다. 이는 무함마드가 전한 알라의 계시를 기록으로 남긴 경전이다. 꾸란은 아랍어로 '낭송'을 의미하며, 무슬림에게는 올바른 삶을 위한 지침서이자 신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교육서이다. 꾸란을 읽고 배우는 것은 이슬람교도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다.

당시 메카 일대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사회는 이슬람교 이전만 해도 다신교 신앙이 보편적이었다. 무함마드는 알라를 유일신으로 간주하며 우상숭배 금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베풂을 강조하며 하층민들을 중심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는다.

622년, 무함마드는 기득권 세력의 탄압을 피해 메카를 떠나 메디나에서 정착한다. 그는 메디나의 부족들을 통합하고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며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세력을 키운 무함마드는 몇 년 뒤 다시 돌아온 메카를 장악하고 신전들을 모두 파괴하고 메카를 이슬람교의 제 1의 성지로 선포한다. 이때부터 1400여년 간 이어지게 될 메카 성지 순례의 기원이다.

칼리파의 등장

▲ 방송장면 갈무리 ⓒ tvN


632년,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뒤를 이은 칼리파(계승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제국의 지도자를 의미)들은 흩어졌던 부족을 통합하고,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일대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정하며 거대한 이슬람 제국을 설립한다. 이슬람교 탄생 약 130년 만에 이슬람 제국은 왕성한 영토 확장을 바탕으로 강대국으로 거듭났고, 자연히 이슬람교의 세력 역시 크게 확산됐다.

무슬림 상인들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활발한 교역활동으로 이슬람교를 전파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무슬림 상인들의 영향으로 훗날 동남아시아 일대에 이슬람교가 확산됐고, 이들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까지 이른다.

한국사에서 이슬람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 시대부터이며, 고려 때는 수도 개경에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고려가요 <쌍화점>에는 당시 이슬람인을 의미하는 '회회'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이슬람 문화의 흔적들은, 단지 종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친숙한 아라비아 숫자와 수학, 알고리즘, 연금술, 커피와 사프란 등 식문화, 현대 통기타의 원조로 꼽히는 현악기 우드에 이르기까지, 알고보면 아랍어나 아랍문화에서 그 기원을 두고 해외로 전파된 것들이 상당히 많다.

이처럼 이슬람 교인은 활발한 대외 상업 교역 활동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유산들을 남겼다. 이러한 이슬람 교인들의 영향력을 두고 대표적인 운송 도구로 활용한 낙타에 빗대어 '이슬람은 낙타가 키운 종교'라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처럼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슬람교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부정적인 인식과 오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이슬람은 엄격한 교리를 강조하며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을 부정하는 '금욕적인 종교'라는 인식이 강하다.

라마단(Ramadan)은 이슬람의 주요한 종교적 의무 중 하나로, 이 기간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금식은 물론 술·담배와 성생활까지 엄격하게 자제해야 한다. 또한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최고 경전인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학설이 분분하다. 타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이슬람교도들은 이를 두고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을 올바른 삶으로 이끌기 위한 지침일 뿐이라고 반박한다.

특히 오늘날까지 이슬람에 대한 가장 부정적인 인식 중 하나는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현대에서도 남녀 차별이 만연하고 있으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히잡' 착용을 통하여 여성의 신체 노출이자 사회활동을 제약하거나, 어린 소녀들이 나이 많은 남성과 강제로 결혼하게 하는 '조혼' 등은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남녀 차별 악습으로 꼽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슬람교에서 숭상하는 꾸란에는, 오히려 여성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부모와 친척들이 남긴 몫에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합당한 몫이 있노라"며 여성의 상속권을 보장한 구절이 대표적이다.

본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아랍권에서 여성들은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며 개인재산 소유도 불가능했다. 초기 이슬람교는 꾸란을 통하여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지위를 향상해 줬을 만큼 당대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진보적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변화한 시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꾸란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만' 적용할 것을 강요하면서, 이슬람교 율법은 남녀를 차별하는 방식으로 왜곡되기에 이른다. 이슬람권에서는 히잡 착용에 저항하는 여성들이 남성들이나 공권력에 의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끔찍한 테러까지 당하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꾸란의 내용

▲ 방송장면 갈무리 ⓒ tvN


사실 꾸란에서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했던 것은, 아랍의 사막 기후 특성상 뜨거운 태양과 모래바람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다른 유목민들의 약탈로부터 여성을 지키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꾸란의 의도를 곡해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해 히잡은 여성들을 억압과 폭력으로 내모는 상징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또한 오늘날 이슬람교를 향한 가장 뼈아픈 오명은, 전쟁과 테러를 불사하는 '폭력적인 종교'라는 타이틀이다. 2001년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을 공격한 911 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폭탄테러,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 등은, 모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벌인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IS(이슬람국가) 등 유명한 이슬람권 무장 테러 단체들은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가장 위대하다)'는 구호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신의 뜻을 대신하여 성전을 치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테러의 명분은 그들의 경전인 꾸란에서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꾸란에는 "내가 불신자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리니 그들의 손가락을 자르라. 너희가 전쟁에서 불신자들을 만나면 그들의 목을 쳐라"며 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단죄를 지시하는 구절이 나온다.

하지만 꾸란의 내용들도 당시의 특수한 시대 상황이 반영됐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꾸란이 쓰이고 이슬람교가 갓 형성된 7세기에는 주변의 위협 세력과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던 상황이었다. 정작 예언자 무함마드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반대파에게도 자비와 관용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이슬람교를 수호하기 위하여 테러를 벌인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왜곡된 몽상인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이들은 같은 이슬람교인들조차, 극단주의와 무장투쟁에 동참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불신자로 규정하며 테러의 대상으로 삼는가 하면, 아이들을 이용한 자살테러 등 반인권적이고 반지성적인 행위들까지 서슴지 않는다. 많은 이슬람권 국가조차 이러한 극단주의 테러 세력들을 '다에시(광신도)'로 분류하며 정상적인 이슬람교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손으로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라" 이 역시 꾸란에 등장하는 구절 중 하나다. 이처럼 본래의 이슬람 교리에서는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살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신의 뜻을 자처하면서 정작 꾸란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슬람 무장 단체들의 악행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슬람교를 악용하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만하다.

종교는 해석의 역사이고, 후대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길로 가게 될 수도 있다. 이권 쟁탈을 위해 교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왜곡하는 세력들 때문에 이슬람교가 추구하던 진정한 가치와 의미마저 왜곡되는 안타까운 현실은, 인간에게 '종교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