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내 남자 불륜 몰래 엿본다면? 어른들을 위한 치정극
[리뷰] 영화 <히든 페이스>
▲ 영화 <히든 페이스> ⓒ (주)NEW
성진(송승헌)은 어려운 집안 형편을 딛고 성공한 자수성가형 지휘자다. 분식집 아들 콤플렉스가 있지만 클래식 음악에 진심인 매력적인 마에스트로다.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쳐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지방의 한 오케스트라 단장(박지영)의 딸이자 첼리스트 수연(조여정)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열렬히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결혼으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연이 돌연 자취를 감춘 후 공든 탑이 무너지게 생겼다. 수연은 결혼에 회의적이라는 영상을 남겨둔 채 떠났다. 성진은 자책감과 상실감에 괴로워하나, 수연을 대신할 새 첼리스트 미주(박지현)에게 강한 끌림을 받아 갈등한다. 같은 흙수저 출신 미주와 있으면 동질감과 편안함이 든다. 예비 장모이자 단장의 은근한 무시와 약혼자 수연의 불편한 말은 창살 없는 감옥 그 자체였다. 그래서일까. 둘은 순식간에 억눌렀던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가까워진다.
한국 영화에서 만나기 힘든 파격적인 서사구조다. 처음부터 관계 설정 복선을 깔아두고 시작했다면 후반 반전이 통했을까 싶다. 원작을 비튼 각색은 어떤 이유로든 충격적이다. 안드레스 바이즈 감독의 <히든 페이스>를 원작으로 하나 캐릭터 성향을 예상치 못하게 바꿔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구축했다. 성별을 바꾸고 관계의 친밀감을 높이며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해 스릴러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단순히 실종 사건을 쫓던 미스터리한 초반 분위기를 지나 패닉룸에 갇힌 수연이 등장하는 순간, 영화는 2막으로 넘어간다. 세 사람의 캐릭터 소개와 설정을 통해 영화의 분위기에 익숙해질 때쯤 순식간에 뒤통수를 때린다. 예상하던 줄거리를 깬 독보적인 스토리텔링은 '관음'과 '욕망'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말하려던 바를 향해 시동을 건다.
영화 속 밀실은 마음의 거울이자 창문이며 욕망의 척도라고 볼 수 있다. 거울과 밀실은 연결돼 있다. 남을 훔쳐보는 목적 보다 관음의 시선을 아는 건너편의 욕망 때문에 흥미롭다. 마치 도발을 똑똑히 지켜보라고 의도한 표정과 행동이 흥미를 유발한다. 결국 관계의 상하관계를 규정하는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원작과는 다르게 흘러가 극명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비밀 공간에서는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들을 수 있지만 반대 공간에서는 알 수 없다. 누가 꺼내주기 전까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가운데 이를 뚫고 전해지는 인간의 민낯이 투명하게 읽힌다. 이 공간감을 활용해 출세욕, 소유욕, 복수심을 통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논한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욕망을 평소에 드러내지 않지만, 거울 앞에서는 민낯을 만날 수 있는 원리로 생각하면 쉽다.
▲ 영화 <히든 페이스> 스틸컷 ⓒ (주)NEW
▲ 영화 <히든 페이스> 스틸컷 ⓒ (주)NEW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하려는 남자와 이를 이용해 대외적인 남편감을 찾는 상류층 여자, 그 여자의 실질적인 놀이 대상인 또 다른 여자의 아슬아슬한 관계성이 포인트다. 원작에서 강했던 스릴러 장르의 장점보다는 수연과 미주가 면식 관계라는 설정으로 파생된 곁가지 서사가 층층이 쌓여 폭발하는 기교가 장점이다. 결국 결핍을 채우려는 세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을 통해 행복을 충족하게 된다.
미스터리, 스릴러, 에로티시즘, 드라마의 적절한 밸런스가 돋보이는 원작의 재해석이다. 감춰진 얼굴이라는 영화의 제목과 어우러지는 각색이다. <음란서생>, <방자전>, <인간중독>으로 금기된 사랑, 에로티시즘 장르를 꾸준히 선보인 김대우 감독의 과감한 설정은 단연 눈에 띈다. 네 번째 리메이크된 영화인 만큼 차별점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예상 보다 노출 수위가 세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준이나, 한국 상업영화에서 보기 드문 베드신이다. 이면에는 노출 연기에 거칠 것 없는 배우 박지현이 있다. 영화 <곤지암>을 통해 얼굴을 각인하며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에서 보여준 재벌가 맏며느리의 정석을 보여줬다. <히든 페이스>를 통해 제2의 조여정, 임지연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박지현을 볼 날이 많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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