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구도심 한가운데 이런 카페가 있었다니
인천 중구 '비거뉴어리'를 가다, '비건 업계의 백종원' 꿈꾸는 그녀는 오늘도 휘낭시에 굽습니다
▲ 인천 중구 도서원길 64-1층에 위치한 카페 비거뉴어리 전경. ⓒ 아이-뷰 최시연
비건은 동물성 식품뿐만 아니라, 동물로부터 비롯된 모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려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서, 의류, 화장품, 약품 등 모든 생활용품에서 동물성 제품이나 동물 실험을 거친 제품을 배제하는 철저한 윤리적 선택을 의미한다.
비건(Vegan)이라는 용어는 채식주의자(Vegetarian)에서 파생된 단어로, 식물성 식단만을 추구하는 새로운 채식주의 형태를 나타낸다. 1944년 영국에서 도널드 왓슨(Donald Watson)과 그의 동료들이 비건 소사이어티(The Vegan Ssciety)를 창립하면서 시작됐다.
인천 중구 도서원길 골목에 위치한 '비거뉴어리'
▲ 카페 비거뉴어리의 특별 직원 ‘히솝’(래브라도 리트리버 7살). ⓒ 아이-뷰 최시연
김민솔(33) 대표는 2022년 5월 인천 중구 도서원길에 비건 전문 카페인 '비거뉴어리'를 열었고, 3년째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오는 손님을 항상 반갑게 맞이하는 특별한 직원도 함께 근무한다. '히솝'이라는 이름을 가진 7살 래브라도 리트리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히솝이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메뉴를 주문한다. 이것이 비거뉴어리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비거뉴어리에서 판매하는 12종류의 휘낭시에는 밀가루, 우유, 버터, 백설탕(유기농 비정제 설탕), 계란 등이 첨가되지 않았다. 또 커피 원두는 공정무역을 통해 수입한 것만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비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다소 높아져 가고는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다. 더구나 인천에서는 비건 식당을 비롯해서 비건과 관련된 먹거리조차 찾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상권도 발달하지 않은 골목에서 비건 카페를 시작할 때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김민솔 대표는 "오만함과 자만심에서 오는 무지가 이곳에서 창업할 수 있는 용기가 됐던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비건 카페나 비건 식당은 대부분 서울 번화가에 있어서, 따로 시간을 내야만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어요. 저와 같은 아쉬움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구도심인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죠."
그녀는 비건식을 원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보고 싶었던 욕구도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창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어요."
▲ 카페 비거뉴어리 대표 김민솔(33)씨. ⓒ 아이-뷰 최시연
김민솔 대표는 2019년부터 2022년 카페 비거뉴어리 개업 전까지 커피 자격증만 15개를 취득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뿐만 아니라 제과 제빵 기능을 비롯해 비건 관련 베이커리도 따로 배웠고, 실무를 위해서 일반 카페에서도 1년여간 일했다.
"카페도 본질은 음식점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것은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의 맛과 청결, 그리고 찾아주는 사람들에 대한 서비스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카페에서도 일했었고, 많은 비건식을 먹어 보면서 지향해야 할 점과 지양해야 할 것들을 꼼꼼히 점검했죠."
준비 기간 동안 전국 200여 곳의 비건과 관련된 식당과 카페를 찾아다니면서 하나하나 맛보았고, 그런 열정이 어느 순간 김민솔 대표에게 세상 밖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용기를 내게 했다.
카페 '비거뉴어리'
'비거뉴어리'의 본래의 뜻은 비건(Vegan)과 1월(Jaunary)의 합성어로 1월 한 달간만 비건을 실천하자는 캠페인 명이다. 이 단체는 2014년 설립된 영국 비영리단체로 채식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민솔 대표가 운영하는 카페 '비거뉴어리'는 이 단체와는 상관이 없다. 우선 주변 사람들에게 비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고, '나의 비거니즘'이라는 보선 작가의 글에서 '한 명의 비건보다 백 명의 어설픈 채식주의가 낫다'라는 문장을 통해 받은 영감으로 '비거뉴어리'라는 상호를 짓게 됐다.
그녀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지구 환경과 동물 복지를 위해 식물성 재료로 새로운 가치를 만듭니다' Try vegan(트라이 비건)! 이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늘 나눠 준다. 그동안 스티커 내용에 대해 질문을 해 온 사람들은 없었지만, 블로그에 사진을 찍어 올린 것을 가끔 보게 된다며 그것만으로도 보람이 있다고 했다.
"비거뉴어리가 세계적인 환경 캠페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서 드리는 것도 있지만 실은 제가 보려는 이유가 더 커요"라며 그녀는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매 순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태 채식주의자 김민솔 대표
▲ 두 가지 일(방사선사와 카페)을 병행하는 김민솔 대표는 출근 전이나 퇴근 후에 부족한 양의 휘낭시에를 굽고 있다. ⓒ 아이-뷰 최시연
김민솔 대표가 비건에 대해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어머니가 채소와 해산물만 드시는 채식주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고기를 접할 기회가 없었고, 어려서도 내내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김민솔 대표는 초등학교 입학해서 급식 시간에 처음으로 장조림을 먹고 고기에 입문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채식하면 환경과 동물 복지에 좋다는 것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비거니즘이 됐다.
히솝이와의 만남 또한 비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유기견 봉사활동을 하면서 동물 윤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고, 히솝이를 키우면서 동물에 대한 존중의 마음은 더욱 커져갔다.
김민솔 대표의 직업은 방사선사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녀는 환자들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런 의문에 답을 찾기 위해 KOICA(한국국제협력단체)에 지원하게 됐고, 2016년부터 동남아시아 라오스에 있는 한라 아동병원에서 근무하게 된다. 중간에 교통사고가 나서 계약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한국에 들어와 남은 기간을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중 코로나 펜데믹을 맞았다. 이런 여러 사건이 자연스럽게 환경과 비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동물들이 인간의 소비를 위해 착취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과, 대규모 공장식 목축업이 자원 소비와 환경오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가 그녀를 비거니즘으로 이끈 중요한 요인이다.
비건 생활방식은 환경적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한다. 고기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과 토지 자원은 매우 방대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소 한 마리가 1년 동안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지구상에 배출되는 가스 비율의 15% 정도라고 한다. 이런 소들을 단지 고기를 먹기 위해 엄청난 양으로 불려놓고 있다.
'사브레 디아망'를 비롯해 쿠키종류 개발 중
'사브레'는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식감을 의미하고, '디아망'은 사브레에 설탕을 빙 둘러 다이아몬드처럼 예쁘게 모양을 내서 만든 쿠키다. 사브레 디아망은 간편하게 들고 먹기에도 좋으며 휘낭시에 보다 보관 기간이 길다. 김민솔 대표는 보관이 쉬운 쿠키 종류를 다양하게 개발하는 중이다.
"원래 비건인 것을 제품화하는 것이 제일 좋거든요. 그래서 처음엔 미니 떡케이크를 만들어서 팔아보기도 했죠. 그런데 유통기간이 너무 짧아서 소비하기 힘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 하기에는 떡보다는 제과류가 더 맞았어요."
올해 초까지 빵도 만들었지만, 현재는 휘낭시에만 판매 중이다. 앞으로도 그녀는 이 상권에서 잘 팔릴 수 있는 것들을 개발할 생각이라고 한다.
▲ 카페 비거뉴어리에서 판매되고 있는 휘낭시에 중 일부(얼그레이, 흑임자, 코코넛). ⓒ 아이-뷰 최시연
현장에서 느끼는 비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는 있을까
김 대표는 비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별로 없지만, 단골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이 정도의 변화에도 만족한다고 했다.
"이 카페에서는 우유와 밀가루, 계란을 쓰지 않는다는 정도로 아시는 것 같아요. 왜 안 쓰는지 잘은 모르시지만 그렇게 나름으로 인지하면서 재방문해 주셔요."
비건에 대한 비전이 있냐는 질문에 그녀는 "솔직히 보이지 않는다"라며 웃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보람은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성과가 보여지는 결과만을 중시하지만, 김민솔 대표에게는 과정 자체도 중요하다.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하루를 살더라도 스스로 만족해야 내 삶을 사는 게 아닐까요? 저는 제 삶을 살고 싶어요."
김민솔 대표는 현재 카페의 수입만으로는 가게 운영이 되지 않아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병원에서 방사선사로 일하고 있고, 일요일 하루만 종일 카페 일을 보고 있다. 평일에는 병원에 출근하기 전 카페에 나와서 준비해 놓고, 퇴근 후 마무리하기를 9개월째 이어오고 있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내일에 대한 희망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은 저의 이런 여정들이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고 본보기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몇 년 안에 비건 식당을 개업할 계획을 하고 있다. 종래에는 비건 관련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이 꿈이며, '비건 업계의 백종원'이 되는 것이 김민솔 대표의 최종 목표다.
김민솔 대표는 2025년 3월부터 인천 송도 홈플러스 문화 센터에서 매주 월요일 비건 수업도 개최하기로 돼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그녀의 발걸음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글·사진 최시연 i-View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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